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109
다시 사흘이 흘렀다.
표물을 실은 운송대는 별 탈 없이 천중산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하기야 천중산을 제외한 하남성 일대 대부분은 칠마종의 침입 없이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시한부 평화였다.
사천성을 제외한 천하 각지의 성 대부분이 칠마종 세력권으로 들어감에 따라 하남성 역시 점점 포위를 당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러던 차에 천중산 일대가 광마종 무사들에 의해 점령당한 사실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놈들이 천중산을 교두보로 삼아 무림맹 총단이 있는 낙양으로 쳐들어올 것을 직감한 맹의 지휘부는 즉시 낭인대 무사 일만을 보냈다.
그 결과 지금 치열한 교전 중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전황은 나빠지고 있었다.
낭인대의 특성상 단합이 잘되지 않아 도주하는 낭인무사들도 속출하고 있었다.
무림맹 총단에서 아직 정확한 무림맹주 선출대회 날짜를 정하지 못한 것도 사실 천중산 일대 전황 때문이었다.
권마종을 제거하지 못하더라도 천중산에서 몰아내야 정상적인 대회를 치를 수 있다는 공감대가 지휘부 고수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었다.
“허창(許昌)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곧바로 쉬지 않고 천중산으로 가겠습니다.”
대륙객의 말에 표사와 쟁자수, 그리고 지원 무사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지난 사흘간 거의 쉬지도 못하고 강행군을 했기 때문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들의 눈에 허창성의 성문이 보였다.
허창은 낙양과 천중산의 중간쯤에 있는 도시로 교통과 물자의 중심지라 무림문파 역시 상당히 많았다.
물론 무림맹 지부도 있었는데, 운송대가 하루 쉴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전서구에 의하면 허창성 무림맹 지부에 개방의 천강개 고수들을 비롯해 천중산 전투에 참여할 여러 고수가 모여 있다고 합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그들과 함께 천중산으로 가면 전력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허창성에 표국주님의 손녀이신 우문 소저도 계십니까?”
백운목의 물음에 대륙객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습니다. 지금 화산옥녀와 함께 있다는 전갈이 전서구를 통해 왔습니다.”
“천중산 전투 전황은 어떠합니까?”
“여전히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낭인무사들의 이탈이 심각하긴 하나 그나마 아직은 버티고 있다고 합니다. 최소한 놈들의 북진을 막고 있단 이야기지요. 그나마 고무적인 것은 우리가 가장 우려하는 신선계 반선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지원부대가 당도하면 승기를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본 표국의 표사들 역시 표물을 전달한 후 돌아가지 않고 전투에 참여할 것이니 그렇게 알고 계십시오.”
대륙객의 말에 무사들이 술렁였다.
표행이 끝나면 표사들은 즉각 복귀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었다.
“아미타불. 역시 대륙표국이군요. 무림맹을 대신해 빈승이 감사드리겠습니다.”
진각대사의 말에 대륙객이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사실 이는 우리 국주님의 확고한 뜻입니다. 무림맹이 존재해야 표국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선재로다. 이번 정마대전이 무림맹의 승리로 끝나게 되면 아마도 대륙표국은 무림제일표국으로 우뚝 서게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대사님 말씀만 들어도 힘이 나는군요.”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 동안 운송대 행렬은 서서히 허창성 안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그동안 노숙을 하느라 다들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무림맹 지부에 들러 몸도 씻고 건량이 아닌 기름진 음식을 먹게 되면 재충전할 수 있었다. 그 힘으로 천중산까지 갈 수 있을 터였다.
국문태가 말했다.
“허창성에 들어가면 저녁에 잠시 자유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네. 어떤가? 밤에 근처 객잔에 가서 술이나 한잔하는 게?”
“이 시국에 무슨 술인가?”
“뭐 어떤가? 내가 표사 시험에 합격했다면 모르겠지만 어차피 우리는 쟁자수 신분이네. 천중산에 도착하면 아마도 쟁자수들은 곧바로 낙양으로 복귀해야 할 걸세. 월 계약을 했기 때문에 다른 표행에 다시 투입되어야 하기 때문이지.”
“으음, 이럴 줄 알았으면 표행 한 건마다 임금을 받는 게 더 좋을 뻔했군.”
“원래 그게 원칙이긴 하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다음 표행까지 쉬는 시간이 많아지네. 월별 계약을 하게 되면 수입이 꾸준하다는 장점이 있지. 물론 지금과 같은 비상시국에는 어떤 것도 보장이 안 되긴 하지만 말일세.”
“그렇군. 하지만 아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천중산에 도착 후 우리도 전투에 참여하면 돈을 더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던데, 내가 잘못 안 건가?”
“아니. 잘 봤네. 사실 나 역시 고민 중이네. 표사들이 전투에 참여하면 분명 전사자가 나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빈자리가 생기게 될 게 아닌가.”
“그 자리를 노리는 것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전황이 너무 불리해 패전이 확실시되면 굳이 전투에 참여할 필요가 없겠지. 나중에 천중산에 도착하면 함께 고민해보세. 자네 역시 부인하지만 어느 정도 무공을 익힌 것 같으니까.”
“아니라고 했을 텐데?”
“나도 처음에 자네 말을 믿었지만 지금은 아니네. 예를 들어 자네 지금 며칠간 수레를 밀면서 전혀 힘든 기색이 없네. 보통 내공이 아니라는 말이지.”
“하하하. 그런가? 그냥 선천적으로 힘이 셀뿐이네.”
백무명이 미소를 지었다.
국문태와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잡생각을 없애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허창성 내에 들어간 이후부터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성내 관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림인들이 너무 많았다.
특히 그들 중 상당수가 탁한 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표행에 대한 습격이 꼭 산속에서 일어나란 법은 없지. 방심은 금물인데 다들 잘 알아서 대처하겠지.’
* * *
무림맹 허창 지부.
표행 운송대가 들어오자 지부 전체가 떠들썩했다.
백무명은 지부에서 제공한 저녁을 먹은 후 국문태와 함께 지부 숙소에서 휴식을 취했다.
원래는 지부 밖 객잔에서 두 사람이 술이라도 한잔하려고 했으나, 비상시국이라는 이유로 외부 출타는 금지되었다.
하기야 지금도 천중산에서는 지원을 기다리고 있는 낭인대 무사들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그곳으로 가야 할 운송대였기 때문에 다른 표행처럼 자유를 줄 수는 없었다.
“젠장 이런 식으로 통제할 것 같으면 그냥 쉬지 말고 천중산으로 가는 게 더 낫지 않나?”
국문태가 투덜댔다.
좋은 구경거리를 놓쳤다는 생각에 여전히 아쉬운 것 같았다.
“무작정 쉬지 않고 간다고 일찍 도착하는 것은 아니지. 이렇게 하루 정도 푹 쉬고 전력을 다해 가는 게 훨씬 빨리 가게 될 거야.”
백무명의 말에 국문태가 고개를 저었다.
“자네 말이 맞기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가두는 것은 오히려 피곤함만 가중할 뿐이네. 자기들은 작전 회의를 핑계로 연회까지 열면서 우리는 완전히 찬밥이군. 역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표사로 들어왔어야 했네. 월봉도 다섯 배나 차이나고 사실 싸움만 안 일어나면 표사가 하는 일이 뭐가 있나?”
“쓸데없는 소리 말고 잠이나 자두세. 아까 이야기 못 들었나? 내일 아침 표행이 재개되면 밤새도록 수레를 밀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젠장.”
국문태가 여전히 투덜댔다.
백무명은 더는 신경 쓰지 않고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아직 초저녁이라 잠이 오지는 않았다.
다른 쟁자수들은 벌써 잠이 든 사람도 있었으나, 백무명은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옆을 보니 구시렁거리던 국문태 또한 어느새 잠들어 있었다.
백무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에서 나왔다.
지부 안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으므로 숙소 주위에서 산책하기 위해서였다.
밤 산책이긴 하나 달이 밝아 주위는 어둡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순간.
숙소 뒤편에 작은 연무장이 하나 있는 것을 보았다.
백무명이 주목한 것은 연무장 한 곁에 있는 한 자루 목검이었다.
연습용인 것 같았는데 원래 연무장에 이런 목검들이 떨어져 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래, 검술이나 연마하자. 안 그래도 무명검법을 연습해보고 싶었다.’
백무명이 목검을 손에 쥐고 천천히 무명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스스슷.
처음에는 매우 천천히 시작된 검무가 점점 빨라지더니 나중에는 아예 백무명의 신형과 목검이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백무명이 동작을 멈췄다.
한 여인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한데 그녀는 바로 황설지가 아닌가.
“백 공자님. 여기 계셨군요.”
“아, 네. 황 사범님.”
백무명이 서둘러 목검을 원래 자리에 놓았다.
“한참 찾았습니다.”
“저를 말입니까?”
“네. 성 소저께서 백 공자님을 모시고 오라고 했습니다.”
“성 소저께서 제가 쟁자수로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네. 제가 말씀드린 것은 아니에요. 지부에 들어온 후 우연히 공자님을 본 것 같아요. 확인차 물어보시는데 거짓말을 할 수 있어야지요.”
“아, 네. 하지만 무슨 일로 저를?”
“설 소저께서 백 공자님의 무공이 대단하다며 총표두께 표사로 진급을 부탁하셨어요. 지금 작전 회의 겸 간단한 연회가 벌어지고 있으니 저를 따라가도록 해요. 간단한 무공 심사만 통과하면 즉시 표사로 진급시켜주겠다고 총표두께서 약속하셨어요. 어서 가요.”
“그게······.
백무명이 망설였다.
원래 표사로 지원할 생각이었기에 좋은 기회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대청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지금 가면 주목을 받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뭐 어때요? 특별히 실력을 숨길 생각이 아니라면 이번이 좋은 기회가 될 거예요. 무공을 마음껏 드러내고 그러다 보면 기억도 되찾을 수 있을 거예요. 용기를 내세요. 알고 보니 공자님이 처단한 대왕방의 이살이란 자의 무공이 일류에 달한다는 말이 많더라고요. 그 때문에 사람들이 공자님 무공을 매우 궁금해하고 있답니다.”
“표사가 되면 천중산 전투에 참전하게 되겠지요?”
“물론이에요. 무림인에게는 좋은 기회이지요. 이제 갈까요?”
“알겠습니다.”
백무명이 황설지를 따라 대청으로 향했다.
‘마치 강호출도를 하는 기분이군. 그래.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자. 무림인으로 활발히 활동하다 보면 황 사범 말대로 내 신세내력을 알게 될 날도 올 것이다.’
“무슨 생각을 하세요?”
“아닙니다. 여러 가지 생각할 게 있어서. 그건 그렇고 이곳 지부의 경계는 잘되고 있는 겁니까?”
“그건 왜요?”
“적들이 이곳을 노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럽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예요. 지부장님께서 철저하게 대비를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마도 지부 주위에 보호 진법을 쳐두신 것 같아요.”
“아, 그래서 지부 밖 출입을 금한 겁니까?”
“네. 내일 아침 표행이 재개되어야 진도 풀릴 거예요. 아, 그리고 이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항인데 내일 표행 재개 때 이곳에 대기하고 있던 무림인들 천여 명이 합세할 거예요.”
“천여 명이나 됩니까?”
“네. 생각보다 많은 무림인이 이번 천중산 전투 지원에 참여하게 될 것 같아요.”
“으음, 그건 아마도 무림맹주 선출과 관련 있을 것 같군요. 권마종주를 죽이는 사람이 나오면 그분이 곧바로 무림맹주로 선출될 가능성이 가장 크지 않겠습니까?”
“네. 맞아요. 권마종주가 천중산에 있다는 것은 보안 사항이었는데 벌써 소문이 퍼진 모양이에요. 총단에서도 천중산 전투가 끝날 때까지 대회 개최 일자 발표를 미루고 있으니 천중산에 더욱더 무림인들이 몰려들 가능성이 커요.”
“그렇게라도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면 무림을 위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저도 마찬가지 생각이에요. 권마종 한 곳이라도 궤멸시킨다면 이번 정마대전의 흐름을 우리 쪽으로 되돌릴 수도 있을 거예요. 다행히 마교가 중립을 지키고 있느니 이때를 놓쳐선 안 될 거예요. 이제 도착했군요. 어서 들어가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