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11
“아! 부인!”
“어머니!”
“대부인!”
백운목과 백여희, 백여옥 등이 그녀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바로 의식불명에 빠졌던 장씨부인이기 때문이었다.
군웅들 또한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죽다가 살아나 겨우 목숨만 부지하고 있단 소문이 자자한 그녀였다. 한데 이렇게 전격적으로 나타난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백엽 또한 당연히 그중의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는 기뻐하기보다 안색을 급격히 굳히고 있었다.
‘큰일 났구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한 달을 버티실 수 있을 뿐인데, 근원적인 치료 없이 깨어나셨으니 하루도 버티기 힘들다. 생사신의가 오려면 한 달이 걸리는데 이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백엽이 침통해 했다.
‘하루 안에 다시 쓰러지실 것이다. 그때는 선천진기 치료도 무용지물이고 방법이 없다.’
백엽은 앞이 캄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백운목과 백여희, 백여옥이 장씨부인을 둘러싸고 기뻐했지만 그는 전혀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없었다.
백엽이 바라는 것은 앞으로 수십 년 이상 어머니가 건강하게 사시는 것이었다.
비록 그가 십만대산으로 돌아가더라도 정기적으로 와서 어머니를 살펴보고 건강을 챙길 생각이었다.
한데 단 하루밖에 사시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어찌 비통하지 않겠는가.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어머님의 의지가 몸을 깨웠지만, 오히려 그것이 독이 될 줄이야.’
백엽이 절망감 속에서도 빠르게 타개책을 궁리했다.
지금 그에게 영웅보의 후계 구도 같은 것은 관심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방법이 갑자기 생각날 리가 없었다.
한편 장씨부인은 백항과 묘한 대치를 이루고 있었다.
“형수님. 깨어나셨습니까?”
백항의 말에 장씨부인이 코웃음을 쳤다.
“제가 깨어난 게 영 못마땅한 표정이군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요. 제 아들 백아(白兒)는 죽지 않았으니 위령제는 인정할 수 없어요. 저까짓 제단에 분향한다고 살아있는 아이가 죽은 것으로 되나요?”
장씨부인이 우수를 흔들어 장풍을 날리자, 제단이 와르르 소리를 내며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아니!”
“저럴 수가!”
군웅들이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장씨부인의 안색이 창백하고 부축까지 받고 있어 무공을 펼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 못 했던 것이다.
물론 장씨부인의 원래 무공수위가 낮은 편은 아니었다.
젊었을 때 악양여협이라는 말을 정도로 일류고수의 반열에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아들을 잃어버린 후 마음의 병을 얻어 무공까지 약해졌다.
한데 삼십 년 만에 처음으로 이전과 같은 위력을 보인 것이다.
장씨부인 역시 그 사실을 깨닫고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그냥 분노가 치솟아 제단을 향해 손짓을 했을 뿐인데 거센 경력이 분출된 것이다.
물론 그 실체는 바로 백엽이 그녀의 몸속에 넣어준 선천진기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백엽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하루가량의 수명이 반나절로 줄어들었다. 오늘 밤을 넘기시기 어려울 것 같구나.’
백엽이 한탄했으나 처음으로 보는 어머니의 생기있는 모습에 묘한 감정을 느끼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실제로 장씨부인의 안색은 매우 좋아져 있었다.
무사들의 부축은 이제 전혀 필요 없었다.
뺨이 불그스레한 것이 누가 봐도 완쾌된 것으로 보였다.
백엽은 지금 장씨부인의 상태가 회광반조(回光返照)에 가깝다고 파악했다.
회광반조는 죽기 직전 잠시 정신이 맑아지는 상태로, 무림인의 경우 일시적이지만 이전의 공력을 되찾을 수도 있었다.
백엽이 그녀의 모습을 보고 다시금 안타까워했다.
‘지금 고비를 넘겨 마음의 병을 원천적으로 치료할 수만 있다면 어머님의 무공은 아버님과 필적할 것이다. 선천진기 치료로 이미 세맥까지 뚫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속에 맺힌 울화를 어떻게 치료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모르고 있으니······.’
백엽은 지금이라도 자신이 아들임을 밝히는 방안도 생각해봤으나, 그렇다고 울화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미 울화가 오래되어 마음의 병이면서도 몸의 병으로 고착되었기 때문이었다.
백엽은 이전에 생사신의에게 의술을 배우면서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 교주님. 가장 어려운 치료는 바로 마음을 치료하는 겁니다. 이제 내외상을 치료하는 경지는 절대내공을 지닌 교주님께서 저보다 우위에 서셨지만, 아직 마음 치료에 대해서는 많이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생사신의의 말이었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하지만 생사신의의 간단한 설명 정도는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마음의 치료는 상단전과 관련이 있다는 것으로, 놀랍게도 생사신의는 침술로 마음 치료까지 가능한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생사금침대법(生死金針大法)이라고 했던가. 완전히 익히게 되면 가르쳐준다고 했었지. 얼마 전에 성공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출정식 준비로 배우지 못한 게 한이 되는구나.’
생사금침대법은 비단 몸만이 아니라 마음의 병까지 고칠 수 있는 상승 치료 대법이었다.
생사신의는 원래 일개 약초꾼에 불과했는데, 어느 날 희대의 의서를 발견하게 된다.
바로 천년 전 신마대전 때 강호에 남겨진 천계의 의서였다.
생사신의는 그 의서를 연구했고 이십 년 후 천하제일신의의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그 역시 천마촌 출신이었기에 천마신교에 투신해 지금까지 치료와 연구를 병행하고 있었다.
그가 천마신교 무사들 외에는 치료를 해주지 않는다는 소문은 와전된 것으로, 천마신교와 적대적인 세력만 아니면 최대한 치료를 해주고 있었다.
특히 주기적으로 약초를 구하기 위해 천하를 떠돌 때 그의 치료로 목숨을 구한 양민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다만 그 소문이 나지 않은 것은 자신의 신분을 숨겼기 때문이었다.
올해 그의 나이 팔십.
천마신교 하부 조직 중 하나인 천마신의당(天魔神醫黨)의 당주이기도 한 그는 무공 역시 매우 높은 수준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외부에 무공을 펼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생사신의가 오늘 밤까지 영웅보에 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반드시 다른 방법을 생각해내야 한다.’
백엽이 궁리하며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서두를수록 오히려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그 역시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백엽이 장씨부인을 쳐다보니 예상대로 백항과 날카로운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후후후! 형수님. 제단을 무너뜨린다고 위령제가 없던 것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게다가 지금 보니 그동안 병석에 누워 정신을 잃고 계셨던 것도 모두 거짓이었군요. 누가 형수님을 병자라고 하겠습니까?”
“또 무슨 황당한 말씀을 하는 건가요? 여기 오면서 들었어요. 제가 반대하면 위령제를 취소하고 보주님에 대한 탄핵 또한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한 입으로 두말하지는 않겠지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형수님께서 진짜 쓰러져 정신을 잃었을 때를 가정한 겁니다. 거짓으로 쓰러진 척하셨으니 장로 회의의 결정 또한 새롭게 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장로들께서는 다시 회의를 열어주시오.”
“알겠습니다.”
장로들이 일제히 대답하며 회의에 들어갔다.
군웅들이 술렁였다.
“보자 보자 하니까 너무 억지로군. 대부인께서 반대하시면 위령제는 끝난 것 아닌가.”
“완전히 개판이군.”
“장로들이 완전히 부보주편만 드는군.”
봇물이 터진 것처럼 비난과 야유가 쏟아졌다.
백항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본보 내부의 일이오. 외부인의 간섭은 허용치 않겠소이다. 이게 다 본보의 질서를 유지해 천혈방과의 싸움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니 조용히들 해주시오.”
참다못한 백운목이 소리쳤다.
“백항! 부인은 백 공자의 치료 덕분에 깨어난 것이다. 강남명의도 인정한 일을 네 녀석이 손바닥 뒤집듯 뒤엎다니 어처구니가 없구나.”
“형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설마 장로 회의의 결정 사항을 어기겠다는 말씀입니까? 일단 결정 내용을 들어보시지요.”
“흥! 낯짝도 두껍구나.”
백운목이 화를 삭이지 못했으나, 옆에 있는 백여희가 눈짓을 보내 흥분을 가라앉혔다.
장로 회의의 결정은 매우 빠르게 내려졌다.
대장로가 말했다.
“회의 결과 대부인의 위령제 반대 의사는 인정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프지도 않으면서 일부러 사람들을 속였으니, 그 제재로 일시 대부인의 자격을 정지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됩니다. 제단을 다시 세우고 분향을 해 위령제를 속히 마쳐야 합니다. 이번에도 만장일치입니다.”
“우우우!”
“장난하나?”
군웅들의 야유가 폭발했다.
장씨부인 역시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백여희가 말했다.
“장로분들의 결정에 심각한 오류가 있군요. 어머님께서 사흘 전 쓰러진 사실은 본보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어요. 저기 직접 치료하신 백 공자도 계시지요. 백 공자님. 직접 설명을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백엽이 단상에 올라갔다.
“대부인께서 깨어나셨군요.”
백엽이 자연스럽게 장씨부인의 맥을 짚었다.
백엽이 자신을 치료해준 사람이라는 것을 들은 장씨부인은 주저 없이 손목을 맡겼다.
진맥 결과.
장씨부인의 상태는 백엽이 예상한 것과 같았다.
‘언제 쓰러지실 줄은 모르겠지만 오늘 밤은 넘길 수 없을 것 같구나.’
백엽은 혹시나 하는 기대마저 무너져 마음이 쓰라렸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어떻소?”
백운목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백엽이 담담히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한 달 이내 다시 쓰러지시지 않는다면 완쾌되실 희망이 있습니다.”
“아! 그럼 아직은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오?”
“네. 대부인께서 쓰러지셨을 때는 매우 심각했으나 보시다시피 천운이 따라 기운을 많이 차리셨습니다. 아, 그리고 아까 들으니 대부인께서 꾀병을 부리셨다고 하던데 어떤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궁금하군요.”
백엽이 백항과 장로들을 쳐다봤다.
대장로가 말했다.
“근거가 중요한 것이 아니오. 중요한 것은 장로 회의의 결정 사항은 본보 사람이라면 누구나 따라야 한다는 것이오. 특히 만장일치 사항은 보주님도 따라야 하니, 누가 감히 이의를 제기하겠소? 그대는 외부인이니 이쯤에서 물러나시오.”
“으음······.”
백엽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말로서 이들을 굴복시키는 어려울 것 같구나. 그렇다면······.’
백엽이 담담히 말했다.
“보주님. 아까 들으니 부보주께서 천혈방과 은밀히 투항 협상을 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만일 그게 사실이면 그 벌은 어떻게 됩니까?”
“반역죄를 물어 부보주 지위를 박탈하고 최고 사형에 처할 수 있소.”
“장로들까지 가담했다면?”
“그 역시 마찬가지요.”
“그 판단은 보주님께서 하시는 겁니까?”
“그렇소. 부보주와 장로들이 모두 반역에 가담했다면 보주인 본인이 전권을 쥐고 결정할 수 있소.”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백항이 발끈했다.
장로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백엽은 태연했다.
‘역시 아버님 말씀대로 천혈방과 비밀 협상이 있었군. 흥분하는 것을 보니 숙부뿐만 아니라 장로들 또한 가담한 것이 거의 확실하다.’
백엽이 무심히 말했다.
“사실 이미 증거를 확보했소. 본 공자가 악양에 온 것은 그대들 같은 배신자를 색출하기 위해서였소. 천혈방은 양민들의 피고름을 짜내는 버러지 같은 놈들이 모인 곳으로, 본 공자는 어젯밤 천혈방 악양지부로 들어가 비밀 자료를 확보했소. 그 자료에는 부보주와 장로들께서 천혈방과 비밀 협상한 내용이 있었소.”
“네놈이 천혈방 악양지부로 들어갔었다는 말이냐?”
“그렇소. 마침 살수들이 들이닥쳐 경계가 허술해진 틈을 타 자료 보관소로 잠입할 수 있었소. 원한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그 자료를 보여주겠소.”
백엽이 품속에 손을 넣었다.
그러면서 장로들에게 동시에 전음을 날렸다.
「지금이라도 자백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소. 선택하시오.」
장로들이 일제히 흠칫했다.
백엽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그들도 지금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비밀리에 백항, 백철한과 함께 천혈방 특사와 투항 협상을 벌인 것은 사실이었다.
그 내용은 바로 투항하면 보주 자리는 백항이 맡고 장로들은 그 자리를 유지하는 조건이었다.
다만 막바지에 천혈방 쪽에서 현 보주인 백운목을 죽여달라는 조건을 하나 더 붙인 것이 문제였다.
다시 말해 투항은 영웅보 전체가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고민 결과 형세를 관망해 불리하다고 판단하면 즉시 거사를 일으켜 백운목을 죽이고 투항하기로 뜻을 모은 상태였다.
한데 뜻밖에도 백엽이 그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하니 덜컥하는 심정이 된 것이었다.
무엇보다 군웅들이 보고 있었다.
실제 증거가 드러나면 절대 무사할 수 없었다.
백엽에 대한 출수를 가장 먼저 한 것은 대장로였다.
“어디서 모함을 하는 것이냐? 죽어랏!”
나머지 장로들 역시 곧바로 출수했다.
가까운 거리.
열 명의 장로들의 합공으로 장풍이 폭포수처럼 백엽을 향해 쏟아졌다.
쏴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