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126
“총호법님. 여기가 바로 천중산입니다.”
“그렇군요. 다들 잠시 쉬도록 합시다.”
“네.”
백무명과 악완, 우문혜, 성려화, 황설지 다섯 명이 천중산에 도착한 것은 흑선보를 멸문시킨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시간이 지체된 것은 흑선보 잔당을 색출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서평성은 완전히 평화를 되찾았으며 서평 무림 연합 무사들의 수는 천여 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그들의 사기 또한 매우 높아져 있었다. 그 때문에 이번 천중산 행에 동참하고자 하는 무사들이 매우 많았다.
하지만 백무명은 정중히 거절했다.
정탐이 주목적이라 오히려 놈들 눈에 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하지만 여호법들은 이미 그 말을 믿지 않고 있었다.
“총호법님. 이제 천중산에 도착했으니 솔직하게 말씀해보세요. 맹주님께서 단순히 정탐 임무만 내리신 게 아니지요?”
우문혜의 거듭된 물음이었다.
백무명이 담담히 말했다.
“하하하. 내 어찌 여러분을 속일 수 있겠소? 그렇소. 가능하다면 놈들을 궤멸시킬 생각이오. 하지만 지금 보니 보호 진법을 쉽게 파훼하기 힘들 것 같소.”
백무명이 붉은 안개가 짙게 드리운 천중산을 쳐다봤다.
정보에 의하면 권마종 무사들의 진영이 산 중턱에 있으며 진법은 그 바로 밑에 설치되어 있다고 했다.
문제는 진법을 통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데 있었다.
이전에 낭인대 무사들이 진을 뚫지 못하고 고전한 것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악완이 말했다.
“원래 진법에 군자 안개가 섞여 더욱더 견고해졌다고 하던데 지금 보니 사실인 것 같군요.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인지 궁금합니다. 일단 진을 뚫어야 공격을 하든지 말든지 할 게 아닌가요?”
“악 호법의 말이 맞소. 그래서 조금 있다 해가 지면 나 혼자 산 위로 올라갈 볼 생각이오.”
“또 총호법님 혼자서요?”
“그렇소.”
“그건 너무 위험해요. 권마종 주력의 무공은 흑선보와 비교도 할 수 없이 강해요. 무엇보다 놈들의 진법은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군자 안개와도 섞여 한번 들어가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거예요. 확실한 파훼법을 알지 못하는 한 무작정 뛰어드는 것은 아무리 총호법님이라고 해도 삼가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악완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나머지 호법들의 생각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대안이 있는 것 또한 아니었다.
백무명이 미소를 지었다.
“여러분의 걱정은 당연하오. 감사한 마음이오. 하지만 여기서 놈들의 진에 들어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 확률이 가장 높은 사람은 바로 나요. 그 사실까지 부인하지 못할 것이오. 일단 탐색만 하고 올 생각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도록 하시오.”
“한번 들어가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실 거예요. 설마 이번에도 혼자서 놈들을 제거하려는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물론이오. 비록 부상자가 많다고 하지만 놈들의 병력이 이만인데 어찌 나 혼자 감당할 수 있겠소? 절대 무리하지 않을 테니 믿고 기다리도록 하시오. 다만 만에 하나라도 놈들이 산 아래로 내려오면 그때는 한 놈도 빠짐없이 주살하도록 하시오.”
“네. 하지만 저희 무공이 그렇게 강하지 않아 놈들을 당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에요. 흑선보 놈들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는데, 권마종 놈들은 차원이 다르니까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이번에도 성한 몸으로 도주하는 사람은 없게 하겠소.”
“호호. 말씀은 정확하게 하셔야지요. 저번 흑선보 총단 공격 때에는 단 한 명도 빠져나온 사람이 없었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되기 힘들겠지요.”
“으음, 그럴 것이오. 만약 놈들의 무공이 너무 강해 감당하기 힘들면 끝까지 싸우지 말고 일단 몸을 피하도록 하시오. 최대한 정탐만 하고 오도록 할 테니 너무 앞선 걱정은 하지 마시오.”
“알겠습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 * *
‘이번에야말로 반선들의 위력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겠군.’
해가 지자 백무명은 주저 없이 은신술을 펼친 채 산 위로 올라갔다.
이번 정탐의 목적은 진법의 허실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 권마종 진영을 궤멸시킬 생각도 있었다.
문제는 공격 방법이었다.
이번에도 화공을 사용할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사용할지는 미지수였다.
일단 진법을 통과해 권마종 진영에 잠입하는 자체가 상당히 어려울 거로 예상되기 때문이었다.
스스슷.
산 위를 오르는 백무명의 속도는 거침이 없었다.
얼마 후 산 중턱에 도달하자 붉은 안개를 발견했다.
바로 보호 진법이었다.
겉으로 봐서는 보통 안개처럼 보이지만 백무명은 한눈에 특별한 기관이 설치된 환상 진법임을 간파할 수 있었다.
환상 진법은 침입자에게 환영을 일으키게 하는 것으로 기본적으로 상승 진법에 속했다.
흔히 진에 들어갔다가 절벽 위에 고립된다거나 불구덩이 속에 빠져 고통스러워하는 경우가 있는데, 알고 보면 실제가 아니라 환영인 게 바로 그 예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사자는 실제와 같은 극심한 고통을 느끼며 즉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환영에 불과한데 왜 죽냐며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통증이 같으므로 심맥이 끊기는 경우가 허다했다.
예를 들어 환영 속에서 팔다리가 잘려 그 고통으로 죽은 사람의 시신을 나중에 보면 아무 상처도 없이 심맥만 끊겨 있는 경우였다.
사람은 공포와 통증이 극도에 이르면 모든 신체활동이 정지상태가 될 수 있기에, 심맥이 끊겨 심장이 멈추는 경우로 설명할 수 있었다.
백무명은 붉은 안개가 몸에 닿는 것을 느꼈지만 멈추지 않았다.
일단 진에 들어가야 파훼 방법을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은신술을 극도로 펼쳐 진 안쪽에서 침입자의 존재를 파악하기 힘들게 했다.
하기야 진 속으로 들어오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라 짐승도 있으므로 안쪽에서 그것을 정확하게 구별하는 것은 힘들었다.
물론 극상승 진법이라면 안쪽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볼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넓은 지역의 경우에는 쉬운 게 아니었다.
“으음.”
진 속에 진입하면서 백무명은 일순 답답한 느낌을 받았다.
밤인데도 불구하고 주위 경관이 확연히 달라졌다.
그가 느낀 것은 일종의 압박감이었다.
환영 속에 들어왔기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백무명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주위가 절벽으로 둘러싸인 계곡이었다.
단순히 한 발자국 안으로 들어섰을 뿐인데 폐쇄적인 공간에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내공 부족으로 아예 진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소문대로 반선들이 진 설치에 도움을 준 게 확실한 것 같구나. 다만 공격적인 성격의 군자 안개라기보다, 같은 군자 안개라 해도 방어에 효과적으로 개조된 것 같다.
백무명이 심호흡을 했다.
직감적으로 곧 공격이 가해질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전에 용케 진 안으로 들어왔던 무사들이 첫 공격에 죽임을 당했을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일종의 관문 돌파 형식으로 짜인 진법 같군. 문제는 관문이 몇 개가 있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백무명이 계곡 안을 둘러보며 주위를 살폈다.
분명 해가 지고 밤이 되었지만, 계곡 안은 대낮처럼 밝았다.
이것 하나만 봐도 환영 속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정도 환영진을 만들 정도라면 이곳 천중산을 단순히 권마종의 근거지로 만들려는 목적만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신선계 반선들 자신들이 무림과 통하는 거점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백무명이 눈을 빛내며 계속 수색했다.
하지만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을 뿐 이상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아니 정말 이상한 것이 있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계곡 위로 그 높이가 무한정이었다.
아무리 환영 속임을 고려해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방에 출구가 없다. 설마 이곳에 가둬놓고 굶겨 죽이려는 것은 아니겠지.’
반시진 가량이 지나자 백무명 역시 긴장이 약간 풀리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예상과 달리 아직 이렇다 할 공격도 없어 무작정 긴장 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사방을 가로막고 있는 절벽을 파괴해야 통과하는 관문인가. 무조건 부술 수도 없고 난감하군. 역시 무작정 뛰어든 것이 무리수였나.’
백무명이 안색을 굳혔다.
일단 계곡 중앙에 있는 평평한 바위에 가부좌하고 앉았다.
집중을 통해 주위 기파를 탐지해볼 생각이었다.
절벽 뒤에 있는 그 무언가를 일단 알아내 보려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우르릉하는 굉음과 함께 절벽 전체가 한꺼번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눈사태처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대처할 시간이 없었다.
아니 피할 공간 자체가 없었다.
유일하게 피할 공간이 머리 위 허공이었는데, 그마저도 절벽이 무너지며 생긴 파편으로 가득했다.
그러다 보니 대낮처럼 밝았던 계곡 전체가 암흑천지로 변해버렸다.
백무명은 일순 놀랐으나 곧바로 호신강기를 일으켰다.
호신강기의 위력은 대체로 내공과 비례하기 때문에 자신의 절대 내공을 믿어보려는 것 같았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이 지금의 경우를 말하는 것 같구나.’
백무명이 호신강기를 극도로 펼쳤다.
얼마 후 거대한 돌무덤이 계곡에 생겨났다.
콰콰콰쾅.
아무리 환영이라고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백무명에게는 실제와 다름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붕괴가 마침내 멈췄다.
돌무덤은 이제 거대한 돌산이 되었다.
백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돌산 위로 구름 한 조각이 나타났다.
한데 그 구름 위에 흑의노인 한 명이 타고 있는 게 아닌가.
“으음, 완전히 묻혔군. 누군지 모르겠지만 재수가 없군. 강화된 진법의 위력을 한 몸에 받았으니. 원래는 만 명의 적을 한 번에 제거하는 용도였는데, 고작 한 명을 죽이는 데 사용되다니.’
흑의노인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환상 진법이라고 해도 이렇게 한번 발동되면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영웅맹 총호법이라는 그자일 수도 있겠군.’
흑반선 중 한 명인 환영선인(幻影仙人)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가 이곳 천중산에 온 것은 환상 진법을 보완하기 위해서였다.
백무명의 예상대로 신선계와 무림의 통로를 개설하기 위해서인데, 권마종 무사들을 보호해주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환영선인이 돌아가려는 바로 그 순간.
돌산이 흔들리더니 그 속에서 한 사람이 튀어나왔다.
한데 그는 바로 백무명이 아닌가.
가부좌한 자세 그대로인 그는 몸 전체가 금빛 기운에 의해 덮여 있었다.
호신강기를 극대화했기 때문으로 보였다.
환영선인이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대단하군. 엄청난 호신강기다.“
환영선인이 우수를 한번 흔들자, 경력 한 가닥이 백무명의 신체를 강타했다.
퍽.
”으음.“
백무명이 침음과 함께 눈을 떴다.
그의 눈에 구름을 타고 있는 환영선인의 모습이 보였다.
“혹시 영웅문 총호법이란 애송이냐?”
“그렇소. 귀하는 뉘시오?”
백무명이 입가에 실낱같은 피를 흘리며 물었다.
안색이 다소 창백한 것이 조금 전 공격으로 가볍지 않은 내상을 입은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하필이면 지금이 바로 호신강기가 가장 약해졌을 때였다.
절벽이 무너지면서 쏟아져 내린 엄청난 돌무더기를 견디다가 겨우 해방이 되자 자연스럽게 호신강기가 약해진 것이었다.
이는 물속에 숨을 참다가 막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와 비슷한 경우로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환영선인은 천중산에 펼쳐진 진법을 직접 설치한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백무명의 약점을 단번에 간파하고 바로 일장을 날렸던 것이다.
하지만 백무명의 표정은 금세 담담해졌다.
“나는 환영선인이라고 한다.”
“선인? 그럼 혹시 신선계 반선이오?”
“그렇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선인으로 불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용케 살아남았지만, 너도 재수가 없구나. 하필이면 내가 진법을 보완하기 위해 무림으로 다시 왔을 때 들어오다니. 하지만 너무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삶과 죽음은 하나이니까. 이미 내장이 박살 났겠지만, 마무리를 해주마. 잘 가라.”
환영선인이 우수를 들었다.
순간 그의 손에서 조금 전보다 몇 배나 강한 경력이 발출되었다.
백무명이 지존검을 앞으로 내민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내상 때문에 정면 승부는 힘들다. 지존검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