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13
영웅회가 결성되자, 이제 남은 것은 영웅회주의 선출이었다.
누가 회주가 될 것인가.
이는 군웅들의 최고 관심사이기도 했다.
연무장에 모인 군웅들은 모두 삼천여 명.
그중 천여 명은 단지 구경만 온 사람들이라고 해도 영웅회 무사들의 수는 이천여 명에 달했다.
이미 천혈방 휘하에 들어간 문파들을 제외하고 악양 내의 거의 모든 문파가 집결한 셈이었다.
물론 그들의 중심은 단연 영웅보였다.
비록 백여 명의 무사들이 배신해서 무공이 폐쇄되었으나, 영웅보는 아직 오백여 명의 무사들이 남아 있었다.
영웅보 총관이 말했다.
“그럼 곧바로 회주님의 선출이 있겠습니다. 일단 그 선출 방식에 대한 의견을 듣겠습니다. 보주님. 원칙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여러 번 공지한 바와 같이 이번 회주 선출은 비무방식으로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합의추대 방식도 가능합니다. 일단 저는 회주 자리 도전에 빠질 것을 선언합니다.”
백운목의 말에 군웅들이 술렁였다.
영웅회가 결성되면 자타공인 회주 일 순위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었다.
영웅대주 한복이 말했다.
“보주님. 그건 안될 말씀입니다. 회주는 보주님께서 맡으셔야 합니다. 보주님 외에 누가 그 자리를 맡을 수 있겠습니까?”
“옳습니다.!”
“보주님을 추천합니다!”
영웅보 무사들의 지지 선언이 이어졌다.
이미 위령제는 취소되었고 모임의 성격이 완전히 영웅대회로 바뀐 상황.
회주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는 영웅보 무사들의 의지가 느껴졌다.
하지만 비무를 주장하는 세력도 만만치 않았다.
아무리 천혈방의 압박이 거세다고 해도 문파의 미래가 달려있기 때문이었다.
악양무림을 대표하는 회주를 배출한다는 것.
그것은 해당 문파의 미래를 보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만일 천혈방과의 싸움에서 승리한다면 그 문파에 인재들이 몰려들 것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영웅회주는 그 무공이 가장 뛰어난 분이 맡아야 하오. 백 보주께서는 인품이 뛰어나나 무공이 조금 부족하오. 천혈방주의 무공은 구대문파 장문인과 붙어도 밀리지 않는데, 어찌 그자의 상대가 될 수 있겠소? 추천을 받은 사람들이 서로 무공을 겨뤄 그 승자로 정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오.”
충의문(忠義門) 문주 번약수(繁約修)의 말이었다.
충의문은 악양 오대문파 중 한 곳으로 영웅보와 더불어 정파로 분류되고 있었다.
오대문파 중 나머지 세 곳은 이미 천혈방에 투항해 그 휘하세력이 된 지 오래였다.
그 때문일까.
충의문을 잃게 되면 천혈방과의 싸움은 해보나 마나라는 말이 영웅보 내에서도 널리 퍼져 있었다.
충의문 무사들의 수도 대략 오백여 명.
영웅회 무사 수가 이천이라고 할 때 영웅보와 충의문 무사 두 곳이 그 절반을 차지하는 셈이었다.
백운목이 말했다.
“번 문주 말씀이 옳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힘을 모아야 할 상황으로 회주 자리를 놓고 서로 겨루는 것은 후유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조금 전 말씀 드렸듯이 저는 회주 자리에 욕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분들이 괜찮다면 번 문주님을 회주로 합의추대하고 싶은데 영웅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하하. 선공후사(先公後私)하는 백 보주의 충심에 탄복했습니다. 제가 회주가 되면 백 보주를 부회주로 임명해 단합을 도모하겠습니다. 물론 우리 둘이 비무를 해서 회주를 결정해도 무방합니다.”
번약수가 자신감을 드러냈다.
보다 못한 백여희가 나섰다.
“아버님. 겸양도 좋지만, 그것이 지나치면 화를 불러들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죄송한 말씀이나 아버님과 번 문주님 두 분 모두 천혈방주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이점은 두 분 모두 인정하시지요?”
“여희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물론 내 무공이 천혈방주의 아래라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번 문주의 무공은 잘 모르겠구나.”
백운목이 번약수를 쳐다봤다.
얼굴을 붉어진 번약수가 말했다.
“백 부군사. 지금 나를 무시하는 것이오? 천혈방주 그자의 무공이 대단히 높은 것은 사실이나, 나 역시 최근 신공을 완성해 한번 붙어볼 만하오. 게다가 전투는 그 수장들만의 무공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오. 백 보주께서 단합을 위해 양보를 하셨는데, 나 외에 누가 이 많은 사람을 이끌 수 있단 말이오?”
“신공 말씀하시는 데 제 아버님도 최근 경지를 한 단계 더 올리셨어요. 하지만 영웅회 결성이 본보의 세력 확대 음모라는 세간의 뜬소문을 불식시키기 위해 스스로 물러나시려는 것이지요. 한데 번 문주께서는 그 어떤 겸양도 없이 오직 회주 자리만 욕심내고 계시는군요.”
“백 부군사. 말씀을 삼가시오. 맹의 부군사라고 해서 내 명예를 훼손해도 되는 것이오? 당장 우리 충의문이 중립을 지킨다면 이 병력으로 천혈방을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게다가 조금 전 백항 저자의 말대로 천혈방과 동정수로채, 장강수로십팔채, 녹림칠십이채가 서로 동맹을 맺은 게 사실이라면 우리 힘은 그 백분지 일도 안될 것이오.”
“회주가 안된다면 벌써 영웅회를 탈퇴라도 하시겠단 건가요?”
“흥! 못할 것 있소? 물론 나 역시 정파 무림인으로 당당히 실력을 겨뤄 패한다면 깨끗이 승복하겠으나, 백 부군사가 다른 누군가를 추대하려 한다면 절대 승복할 수 없소.”
“제가 누구를 추대한다는 말씀이지요?”
“내가 모를 줄 알았소? 백 부군사가 저기 있는 백엽 공자를 영웅회주로 추대하려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소.”
번약수의 말에 군웅들이 술렁였다.
백엽의 뛰어난 무공은 이미 군웅들의 마음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혼자서 영웅보 십대장로와 백여 무사들을 제압하는 것을 직접 보지 않았던가.
하지만 너무 막강한 무공을 지녔기에 그가 영웅회 소속이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실제로 백엽은 영웅회 결성에 큰 관심이 없는 듯 장씨부인 옆에서 그녀의 몸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단상에 앉아 있던 악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산옥녀의 미모에 다시 한번 군웅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사실 아까부터 그녀의 얼굴만 바라보는 젊은 사내들도 무척 많았다.
“주제넘지만 저도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 생각에 이번 싸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백 공자를 반드시 회주로 모셔야 합니다. 합의추대도 좋고 비무도 좋습니다. 그 방식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 생각에 백 공자님과 번 문주님께서 비무를 통해 회주를 결정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군요. 물론 그 외 도전하실 분들도 꼭 추천을 받지 않더라도 나서면 기회를 드려야 하니, 일단 추천과 자원 모두 받아 회주 후보를 추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한 분이라도 합의추대를 반대하면 비무로 결정하는 것이 관례이니까요.”
“백 공자를 특별히 추천하는 이유라도 있나요?”
“네. 아직 모르는 분도 계시겠지만 백 공자께서는 장강 이무기를 처치해 저와 대사형의 목숨을 구해주셨습니다. 장강 이무기는 무림맹주님도 제압하기 힘들다고 하실 정도로 무서운 괴수였습니다. 하지만 백 공자는 놈을 일검에 양단했습니다. 제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은 다들 조금 전 백 공자의 무공을 봤으니 수긍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악 소저의 뜻은 잘 알겠어요. 영웅 여러분의 생각을 알고 싶군요. 백 공자를 우리 영웅회 회주로 원하는 분은 함성을 질러주시겠습니까?”
와아아.
백여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백엽이 당황한 것은 물론이었다.
백여희가 정식으로 물어오면 다시 한번 거절 의사를 밝힐 생각이었다.
한데 교묘하게 백여희가 군웅들의 마음부터 뒤흔든 것이다.
백여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번 문주님을 비롯하여 회주 자리에 관심 있으신 여러 영웅께 묻습니다. 백엽 공자께서 회주 자리를 수락하신다고 해도 굳이 비무를 벌이실 건가요? 그런 분이 있다면 손을 들어주세요.”
군웅들이 다시 술렁였다.
하지만 아무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다.
회주 자리에 욕심을 냈던 번약수조차 주저하더니 결국 포기를 선언했다.
“백 공자께서 회주 직을 맡아주신다면 나 역시 승복하겠소. 확실히 나는 조금 전 백 공자가 보여준 무위를 따라갈 수 없소. 장강 이무기 이야기는 아직 믿을 수 없지만 말이오.”
“감사해요. 역시 대국을 아시는 분이군요. 아버님도 찬성하시나요?”
“물론이다. 백 공자. 영웅회주가 되어 우리 악양 무림을 지켜주시오. 부탁하겠소.”
백운목의 말에 군웅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백엽에게 모였다.
백엽이 부담을 느낀 듯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백여희가 말했다.
“공자님. 영웅회가 무림맹의 휘하세력이라서 싫다고 하셨지요?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여기 모이신 영웅 중에는 아직 맹에 가입하지 않은 분들도 상당합니다. 게다가 맹규에 의하더라도 이런 지역적인 자치 무력단체는 무림맹과 독립적으로 운영을 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무림맹주님의 명보다 회주님의 명이 우선한다는 것이지요. 영웅 여러분! 우리 악양 무림 전체의 존망이 달린 일입니다. 제가 먼저 성의를 보이겠습니다.”
백여희가 무릎을 꿇었다.
“부디 회주 자리를 맡아주십시오.”
털썩. 털썩.
군웅들이 하나둘씩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
구경하러 온 사람들도 덩달아 꿇었다.
백운목, 번약수 등도 약간의 시차는 있었지만 모두 무릎을 꿇었다.
이제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은 백엽과 장씨부인뿐이었다.
장씨부인은 온몸이 나른하고 어지러워 의자에 앉아 있었을 뿐 그 마음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였다.
“백 공자. 나까지 꿇어야 수락하시겠습니까?”
장씨부인이 몸을 일으켜 무릎을 꿇으려 하자, 백엽이 만류했다.
“아닙니다. 대부인.”
백엽이 장씨부인을 제지한 후 군웅들을 쳐다봤다.
삼천여 군웅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은 일대 장관이었다.
백엽으로서는 실로 뜻밖의 일이었다.
‘여희에게 또 당했구나. 하지만 내 어찌 정파 세력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겠는가. 지금은 천혈방을 상대하지만 결국 영웅회는 본교와 대립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천혈방과 혈맹을 맺은 세력들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그들까지 상대하려면 그 전투가 최소한 일 년은 이어질 것이다. 그때까지 내가 어찌 지휘할 수 있겠는가.’
백엽이 거부 의사를 밝히려던 찰나.
의자에 앉아 있던 장씨부인이 바닥에 쓰러졌다.
“대부인!”
백엽이 그녀를 급히 부축했으나 이미 의식을 잃은 후였다.
백엽의 안색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조금 전까지 장씨부인의 안색이 약간 돌아오는 것 같아서 혹시나 하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처음 예상대로였다.
오히려 그 시기가 앞당겨졌다.
놀란 백운목과 백여희, 백여옥 등이 달려오는 가운데 백엽이 장씨부인의 맥을 짚었다.
‘맥이 거의 잡히지 않는다. 이대로 어머님을 보내드려야 한단 말인가.’
백엽의 눈에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더는 방법이 없었다.
백엽이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부인께서 곧 임종하실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