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147
깊은 밤.
어둠이 찾아오자 성녀의 시신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도 모두 떠나고 무림맹 총단 대문 앞에는 칠마종 무사 수십 명만 남았다.
인근 나무 위에 은신하고 있던 백무명이 움직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원래는 곧바로 시신을 수습하려고 했지만 최대한 조용히 처리하기 위해 밤이 되기를 기다렸던 것.
물론 이는 성녀의 상태가 큰 변동이 없었기에 가능했다.
만약 시신의 부패가 시작되는 등 조금이라도 이상 조짐이 있었다면 곧바로 움직였을 것이었다.
스스슷.
은잠술로 대문 근처로 접근하는 백무명의 얼굴은 어느새 바뀌어 예의 인피면구를 쓰고 있었다.
즉, 영웅맹주 백무명의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혹시라도 성녀가 깨어날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 같았다.
‘만에 하나 성녀가 깨어난다면 마교 오층무사 백천보다는 영웅맹주 백무명이 더 동맹 체결에 효과적일 것이다. 어차피 소림사로 돌아가면 영웅맹주로서 움직여야 하니 지금이 적기일 듯하다.’
백무명이 눈을 빛내며 대문 앞에 도착했다.
오십여 명에 달하는 칠마종 무사들이 삼겹으로 호위를 서고 있었으나 아무도 눈치챈 사람이 없었다.
백무명은 싸움이 벌어졌을 때 혹시라도 반선들이 나타날 것을 우려하고 있던 터라 조용히 성녀의 시신을 대문에서 떼어냈다.
줄에 매달려 있었기에 그 줄을 자르면 되었다.
게다가 백무명이 시신을 등에 멘 순간 성녀의 모습 또한 사라졌다.
바로 은잠술의 확장이었다.
칠마종 경계 무사들이 성녀의 시신이 없어진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이미 백무명이 성녀를 데리고 떠난 후였다.
“헉! 시체가 사라졌다!”
“시체를 찾아라!”
호각 소리와 함께 총단 안에서 수백 명의 칠마종 무사들이 뛰쳐나왔다.
백무명이 힐끗 뒤를 돌아봤으나 우려했던 반선들은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성녀가 진짜 죽었는지 몇 번이고 확인했을 터. 시체를 지키는데 큰 관심을 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백무명이 성녀를 데리고 인근 야산으로 날아갔다.
휙휙.
* * *
‘이곳이 좋겠군.’
백무명이 성녀를 업고 야산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이전에 매영설을 구출한 후 왔던 곳과 그 구조가 비슷했다.
동굴 안쪽에 정방형의 석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동굴 입구에 보호진을 쳐둬 외부인의 침입을 방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에는 더욱더 강한 진을 쳐 외부에서 그 입구를 발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어놓았다.
문제는 과연 성녀를 살릴 수 있느냐였다.
성력 덕분에 겉으로 봐서는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
심맥 역시 끊겨 일단 되살아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하지만 백무명은 아직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성력과 청룡주 때문이었다.
‘현명한 성녀가 아무리 천마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 해도 자진할 리가 없다. 물론 혹시 모를 정절 훼손을 막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수도 있지만 그럴 때도 모종의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백무명이 조심스럽게 성녀의 시신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일단 정식으로 진맥을 했다.
예상대로 맥이 뛰지 않았다.
호흡 역시 없었다.
하기야 심장 박동이 멈춘 지 오래라 성력이 아니었다면 죽음을 의심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으음. 스스로 심맥을 끊었구나. 다행히 몸속에 고독은 없는 것 같으니 추적당할 염려는 없는 것 같고. 성녀가 자신의 몸에 어떤 위해가 닥치기 전에 스스로 조처를 한 것 같다. 다만 그것이 진짜 죽음이었는지는 아직 모른다. 일단 귀식대법 여부부터 살펴봐야겠군.’
백무명이 성녀의 몸을 전반적으로 살폈다.
물론 그렇다고 추궁과혈처럼 몸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이 아니고 일단 망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선에서 조사에 들어갔다.
주로 혈도와 내공, 단전 등을 살폈는데 확실히 특이점이 있었다.
‘성력이 아직 몸을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이 상태로라면 시간이 갈수록 불리해질 것이 확실하다. 아무래도 다급한 상황에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성력으로 특이한 귀식대법을 펼친 것 같구나.’
백무명이 눈을 빛냈다.
귀식대법을 펼친 것으로 추정하는 이유는 바로 성력 때문이었다.
몸 상태를 정밀히 살펴보니 이 성력이란 것도 심맥을 끊을 때 작동이 안 되도록 조처할 수 있었다.
‘성력의 비밀에 대해서 가장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바로 성녀 본인일 터. 한 가닥 부활의 기대가 없었다고 할 수 없겠지. 하지만 미세하게나마 성력이 약해지고 있다. 이점은 내가 간과한 부분이구나.’
백무명이 안색을 굳혔다.
성력이 변함없이 작동된다고 판단해 시간을 끌었던 것이 다소 후회가 되었다.
백무명이 품속에서 청룡주를 꺼낸 것은 바로 그때였다.
곧장 내공을 일으켜 청룡주에 담자 붉은빛이 흘러나와 성녀를 비췄다.
‘믿을 것은 이제 청룡주뿐이다. 고독도 제거한 적이 있으니 뭔가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백무명 혼자만의 바람이었을까.
청룡주를 비췄음에도 성녀의 몸에는 그 어떤 변화도 없었다.
‘아쉽구나.’
백무명이 청룡주를 내려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무 효과도 보이지 않는 청룡주를 계속 비추는 것보다 더욱더 효과적인 치료 방법을 발견하려는 것이었다.
‘분명 뭔가 빠져 있다. 성력과 청룡주 외에 강력한 한 가지가. 한데 그 방법을 내가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백무명이 무의식적으로 왼손 약지에 끼어 있는 반지, 즉 지존환을 쳐다봤다.
‘그래, 이번에도 한 번 시도를 해보자. 나의 절실한 마음이 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백무명이 내공을 지존환에 실었다.
순간 금빛 섬광이 석실 안에 가득했다.
얼마 후 새롭게 나타난 물건은 다름 아닌 침통이었다.
백무명이 서둘러 침통을 열어보니 금침이 백여 개 들어있었다.
빠르게 세어보니 모두 백팔 개였다.
그 순간이었다.
백무명의 머릿속에 상승 침술이 떠올랐다.
‘그래. 생사금침대법! 이런 신기한 대법을 내가 알고 있었구나.’
백무명이 매우 기뻐했다.
생사금침대법을 어떻게 배웠는지는 기억나지 않았으나 그 내용은 완벽하게 떠올랐다.
‘성력이 아직 위력을 발휘하는 지금 청룡주와 함께 이 생사금침대법을 펼치면 회복 가능성이 있다.’
백무명이 일단 청룡주를 성녀의 단전 위에 올려놓았다.
그다음 금침 백팔 개를 성녀의 몸에 꽂기 시작했다.
붉은빛과 백색 섬광이 어우러지며 장엄한 광경이 펼쳐졌다.
백무명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대법을 펼쳐 나갔다.
‘마지막 방법이다. 결과는 하늘에 맡긴다.’
* *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다음날 새벽이 다 되어갈 무렵.
미동도 하지 않던 성녀가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으으······.”
엄청난 내력 소모로 땀을 흘리고 있던 백무명이 미소를 지으며 청룡주와 금침들을 회수했다.
사실 이미 생사금침대법은 마친 상태였고 성녀의 회복 여부만 지켜보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성녀가 깨어나자 이후의 일을 생각해 금침과 청룡주를 품속에 넣은 것이었다.
“으으······ 이곳이 어딘가요? 당신은 누구죠?”
성녀가 의아한 눈빛을 보였다.
거의 저승 문 앞까지 갔다가 왔기에 순간적으로 상황 파악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안심하시오. 이곳은 안전하니까. 천마신교 성녀를 뵙게 되어 영광이오.”
“아! 설마 저를 구해주신 건가요?”
“그렇소. 처음 봤을 때는 영락없이 죽은 줄로만 알았소.”
백무명이 당시 상황을 간단히 설명해줬다.
그제야 기억이 나는지 성녀가 안색을 굳혔다.
“놈들의 협박이 이어져 제가 특수한 귀식대법으로 놈들을 속였지요. 하지만 내상을 입은 데다가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제 생각대로 되지 못했어요. 공자께서 도움을 주시지 않았다면 절대 깨어나지 못했을 거예요.”
“아니오. 성력 때문에 어차피 회복했을 것이오.”
“아니에요. 성력도 한계가 있어요. 아무리 성력이 강해도 한 달 이상은 버티기 힘들어요.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한데 어떤 분이신지 궁금하군요. 본교 무사는 아니신 것 같은데······ 혹시 성함이라도 가르쳐주실 수 있나요?”
“나는 백무명이라고 하오.”
“백무명이라면? 영웅맹주신가요?”
“그렇소. 만나서 반갑소.”
“아! 안 그래도 특사를 통해 맹주님께 서신을 보냈었는데 보셨나요?”
“아직 보지 못했소. 길이 엇갈린 것 같소. 그 서찰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소?”
“네. 사실 동맹 체결 제의를 드리는 내용이었어요.”
성녀가 천마신교, 영웅맹, 낙양 무림 연합 이 세 곳의 동맹 체결에 관해 설명했다.
백무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들었소. 사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지니고 있었소. 이번에 낙양에 온 것도 사실 성녀와 낙양 무림 연합 수장을 직접 만나 의견을 듣기 위해서였소. 한데 이렇게 만났으니 다행이오.”
“감사해요. 저 역시 맹주님께서 같은 생각이었다는 점이 고무적이네요. 혹시 본교 낙양 분타 무사들 상황을 아시나요?”
성녀가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백무명이 담담히 말했다.
“잘 모르겠소. 사실 귀교 낙양 분타가 있는 곳에 가봤는데 모든 게 잿더미가 되었고 시신이 이천 구 정도 있었던 것 같소. 불에 타 뼈만 남았지만 대강 파악할 수 있었소.”
“아! 그럼 나머지 무사들의 행방은 아직 알려진 게 없나요?”
“성녀가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피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소.”
“아! 그나마 다행이군요. 삼천 명 정도라도 살아있을 확률이 있으니.”
“혹시 그들이 어디 있는지 알고 계시오?”
“저의 지시를 따랐다면 아마도 지금쯤 소림사에 있을 거예요.”
“우리 영웅맹 무사들이 있는 소림사 말이오?”
“네. 아까 들어보니 낙양 무림 연합 무사들도 소림사로 향했다고 하시던데 잘된 게 아닌가요?”
“물론이오. 이제 남은 것은 성녀께서 명을 내려 귀교의 하남성 분타 병력을 소림사로 모이게 하는 것 같소.”
“그 점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낙양 분타주에게 이미 명을 내렸으니까요. 저와 소림사로 같이 가시면 아마도 본교 무사들 상당수가 이미 도착해 있을 거예요.”
“하하하. 좋소. 비록 귀교 낙양 분타 무사들이 큰 피해를 봐 애석하지만 그나마 동맹 체결에 진척이 있는 것 같아 다행이오. 일단 소림사로 같이 갑시다.”
“네. 맹주님. 아!”
성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비틀거렸다.
백무명이 급히 그녀를 부축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소. 운기조식을 조금 하고 가는 게 좋겠소.”
“그럴 시간이 없어요. 제 예상이지만 칠마종 놈들이 조만간 우리의 동맹 체결을 알고 반선들을 앞세워 총공격을 가해올 가능성이 커요. 어서 빨리 소림사로 가서 대책을 마련해야 해요.”
“으음, 알겠소. 하지만 지금 그 몸으로 경공을 펼치는 것은 무리니 내 손을 잡으시오.”
“하지만 초면에······.”
성녀가 얼굴을 조금 붉혔다.
백무명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급한 마음에 결례했소. 내 소매를 잡으시오. 기본 공력은 어느 정도 운용이 가능할 것이니 그것만으로 충분히 따라올 수 있을 것이오.”
“감사해요.”
성녀가 백무명의 소맷자락을 잡았다.
사실 조금 전 잠시 비틀거렸지만 치료가 성공적이라 조만간 원래 자신의 공력을 회복할 가능성이 컸다.
“그럼 바로 가보겠소. 가다가 말을 구하면 더 수월하게 소림사로 갈 수 있을 것이오.”
“네. 부탁드리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