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153
다음날 아침 백무명은 성녀의 얼굴로 역용한 후 천마전으로 향했다.
출발하기 전 성녀에게 직접 확인을 받았는데 얼굴뿐만 아니라 몸까지 완전히 여인의 것으로 바꾼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하기야 백무명의 역용술은 절대 내공을 이용한 것이라 완벽에 가까웠다.
한편 백무명은 밤새 고민을 했지만 결국 교주가 가짜라는 사실을 성녀에게 말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성녀가 이미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교주 치료에 성공하게 된다면 그때는 또 사정이 달라질 수 있었다.
‘생사금침대법이 성공해 교주가 깨어나면 그때는 성녀에게 모든 진실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성녀와 비밀을 공유해야만 내 뜻대로 마교의 힘을 빌려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다.’
백무명이 눈을 빛내며 예의 천마전 집무실로 올라갔다.
천마신교 고수들의 의심을 사지 않아야 했기에 조심해서 움직였다.
한데 집무실에 들어가니 어제와 달리 원로원과 장로원 고수들이 백여 명 정도 모여 있지 않은가.
하루씩 교대로 있을 줄 알았는데 하루 만에 다시 양 세력이 모두 모인 셈이었다.
물론 원로원과 장로원 고수들이 지금 집무실에 모인 인원만은 아니었지만 양 세력을 대표할 수 있는 주요 고수들임은 분명했다.
“하하하. 어서 오시오. 안 그래도 다들 성녀를 기다리고 있었소.”
태상원로 고목노인의 말이었다.
그 옆에는 태상장로 불패검객도 있었는데 이미 모종의 합의를 본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백무명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지만 애써 무시했다.
일단 치료가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침실에 있는 교주가 비록 가짜라 해도 성녀와 깊은 관계에 있는 인물일 터.
성녀와의 친분을 생각해서라도 목숨이 위급한 그를 반드시 치료해야만 했다.
“교주님 치료에 어찌 소홀할 수 있겠어요?”
백무명이 성녀 목소리로 담담히 말했다.
너무나 감쪽같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하하. 물론이오. 하지만 어제 교주께서 성녀의 치료를 받고서도 아무런 차도가 없으셨소. 그래서 우리끼리 의견을 모았는데 하루빨리 부교주를 임명하기로 했소. 성녀 생각은 어떠하오?”
“교주님 치료가 시급하니 치료 후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백무명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부교주 임명 문제는 자신이 관여할 일이 아니었기에 나중에 성녀전으로 돌아가 성녀에게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고목노인과 불패검객 등 원로원과 장로원 고수들은 지금 당장 답변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찬성인지 반대인지 말씀해보시오. 칠마종 문제도 있고 서장무맹 문제도 있어 단일 지도체제가 시급한 상황이오. 성녀만 찬성한다면 나와 불패검객 두 사람이 비무를 통해 부교주 자리를 채우려 하오.”
“두 분이 비무를 벌여 그 승자가 부교주가 된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소. 원래는 본교 고수들에게 참가 자격을 줘야 하겠지만 지금은 비상시국이니 그럴 여유가 없소. 그래서 우리 두 사람이 공정하게 무공을 겨뤄 부교주라는 중책을 맡고자 하는 것이오. 지금 바로 성녀가 대답하지 않는다면 찬성하는 것으로 간주하겠소. 어서 말씀하시오.”
고목노인의 재촉에 백무명이 안색을 조금 굳혔다.
대답을 미루려고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된 것이었다.
‘이자들 뜻대로 되게 만들 수는 없지.’
백무명이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부교주를 임명할 수 있는 분은 교주님뿐인데 감히 누가 임명할 수 있단 말인가요?”
“하하하. 말은 임명이지만 추대라 할 수 있을 것이오. 교주 대행 임무를 성녀전과 원로원, 그리고 장로원 세 곳이 맡고 있으니, 그 과반수 결정으로 부교주 역시 얼마든지 뽑을 수 있는 것이오.”
“이번에도 장로원과 원로원 두 곳이 의견의 일치를 본 건가요?”
“물론이오. 성녀가 반대해도 부교주를 뽑는다는 결정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오.”
“그럼 굳이 저의 찬성이 필요한 것도 아니군요. 혹시 부교주 선출에 성녀전을 배제할 수 없어 그러는 건가요?”
“하하하. 그렇소. 율법에 따라 성녀전 역시 부교주 후보를 낼 수 있소. 쉽게 말해 성녀전와 원로원, 그리고 장로원에서 각각 한 명의 후보를 내서 그 승자가 부교주가 되는 식이오. 어떻게 하겠소? 성녀전에서도 후보를 내겠소?”
“좋아요. 기왕 이렇게 되었다면 저 역시 참가하겠어요.”
백무명이 주저 없이 대답했다.
나중에 기권하더라도 일단 참가 신청을 하는 것이 성녀의 생각과도 일치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성녀의 무공이라면 고목노인과 불패검객과 겨뤄도 손색이 없었다.
오히려 백무명은 성녀의 승리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고목노인과 불패검객 이 두 사람이 합공을 가한다면 모르겠지만 삼파전을 벌인다면 성녀가 가장 유리할 것이다. 한데 그걸 이자들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백무명이 내심 불안해할 때.
고목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성녀. 지금 무슨 말씀을 하는 것이오? 성녀 신분으로 어찌 부교주 자리까지 넘본단 말이오? 우리 두 사람이야 부교주가 되더라도 태상원로와 태상장로 직을 겸할 수 있지만, 성녀는 불가하오. 게다가 성녀 직책은 함부로 사퇴할 수도 없고 오직 교주님께서만 그 사임을 결정할 수 있소. 결론적으로 성녀전에서 성녀 외의 고수가 후보로 나와야 할 것이오.”
“저 말고 다른 성녀전 고수 말씀인가요?”
“하하하. 그렇소. 하지만 성녀전의 특성도 있으니 굳이 성녀전 소속이 아니라고 해도 본교 무사 신분이면 성녀의 추천을 받아 후보로 나설 수도 있을 것이오. 다만 신원 확인 문제가 있으니 오층무사 이상이어야 할 것이오. 질문이 있소?”
“으음, 좋아요. 하지만 아직 마음의 결정을 못 했으니 내일 최종 입장을 내겠어요.”
“알겠소. 부교주 선출은 내일 당장 있을 예정이니 기권을 하든지 조금 전 말한 대로 대리 후보를 내든지 둘 중 선택하시오. 이제 침실로 들어가 교주님을 치료하시오.”
“흥!”
백무명이 끝까지 성녀 흉내를 낸 후 교주 침실로 들어갔다.
일단 최종 결정을 내일로 미뤘기 때문에 부교주 선출 건은 성녀과 다시 의논하면 될 것이었다.
‘지금이라도 교주를 치료해 깨어나게 하면 굳이 부교주를 뽑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다만 해독에 성공해도 곧바로 깨어나기는 힘들 것 같구나.’
* * *
교주 침실로 들어간 백무명은 호법을 서고 있던 팔대호법에게 일단 나가 달라고 했다.
팔대호법이 이를 거부한 것은 물론이었다.
하지만 외부인이 있으면 치료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대신 침실 문 앞에서 호법을 서기로 했다.
그들로서는 성녀는 검증된 인물이었고 침실로 들어오는 외부인만 막으면 되기 때문에 타협을 본 셈이었다.
‘호법들이 생사금침대법과 청룡주를 보게 된다면 내 신분이 탄로 날 수도 있다. 굳이 그런 모험을 할 필요가 없지.’
백무명이 눈을 빛내며 침상에 누워있는 교주를 쳐다봤다.
팔대호법이 모두 침실에서 나간 이후라 백무명의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
‘사실 아직 가짜라고 확정된 것은 아니니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는 천마 교주로 대해야겠군. 혹시 내가 잘못 판단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
백무명이 품속에서 침통과 청룡주를 꺼냈다.
이미 성녀 치료를 통해서 생사금침대법과 청룡주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그였다.
다만 성녀가 없어 성력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운 점이었으나 백무명의 절대 내공으로 대체할 수 있었다.
게다가 지난 이틀간 성녀가 성력으로 치료를 했기 때문에 그 효과가 남아 있었다.
‘시작하자.’
백무명이 금침 백팔 개를 교주의 몸에 꽂기 시작했다.
생사금침대법은 굳이 옷을 벗기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신속히 이뤄졌다.
픽픽픽.
침통에 있던 금침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와 교주의 몸에 꽂혔다.
그것은 마치 금침들이 스스로 날아가는 것으로 보였지만 백무명이 내공으로 침술을 펼친 것이었다.
이는 마치 정확한 장소에 암기를 날리는 것과 비슷했다.
다만 생사금침대법의 특성상 침이 꽂히는 깊이는 모두 달랐다.
침이 모두 꽂히자 백무명이 청룡주에 내공을 실어 교주의 몸을 비추기 시작했다.
청룡주에서 나온 붉은 빛이 침실 전체에 가득했다.
팔대호법을 밖으로 잘 내보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장엄한 광경이었다.
엄숙한 분위기라 어떤 소란도 용납되지 않는다고나 할까.
백무명의 이마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예상은 했지만 무형지독의 해독이 쉽지 않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조금씩 기혈이 안정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해독이 가능할 것 같구나.’
승기를 잡은 것일까.
백무명의 표정에 자신감이 보였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시진에 걸친 생사금침대법이 모두 끝났다.
금침과 청룡주를 모두 회수한 백무명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휴우!”
백무명이 여전히 정신을 잃고 누워있는 교주를 쳐다봤다.
‘해독은 성공했지만 깨어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 같구나. 그래도 목숨을 잃을 위험은 사라졌으니 천만다행이다.’
백무명이 교주의 맥을 짚어보니 이전보다 훨씬 활기차게 뛰고 있었다.
하지만 깨어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언제 깨어날지는 성녀와 상의를 해봐야겠군. 내일 성녀가 성력으로 기의 보충을 해준다면 깨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백무명이 신형을 돌려 침실의 문을 열었다.
호법을 서던 팔대호법이 다시 들어왔다.
백무명이 그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한 후 침실에서 나와 집무실로 들어갔다.
집무실에는 고목노인과 불패검객을 비롯한 지휘부 고수 백여 명이 여전히 있었다.
“성녀. 어떻게 되었소? 오늘 치료는 진척이 있소?”
“네. 아직 깨어나지는 못하셨으나 고비를 넘기셨다고 보면 될 거예요.”
“잘되었군. 하지만 부교주 선출은 미룰 수 없소. 단 하루라도 교의 지휘체계가 흔들려서는 안 되니까. 기권하지 않는다면 내일 정오 출전할 무사 한 명을 데리고 천마전으로 오기 바라오. 비무는 천마전 대청에서 이뤄질 것이오.”
“알겠어요. 그럼.”
백무명이 서둘러 천마전을 나왔다.
여자 행세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자칫하면 실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상황을 성녀에게 최대한 빨리 알려야 했다.
천마전을 빠져나온 백무명은 서둘러 성녀전으로 향했다.
성녀전 근처로 왔을 때 그의 역용은 풀려 이전 모습으로 돌아왔다.
바로 그때 성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 성녀님.”
“이제 오시는군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성녀전 안에 계시지 왜 밖에?”
“걱정되어서요. 백 무사가 저로 역용해 천마전으로 간 것은 매 소저밖에 몰라 혹시 무사들이 의심할까 봐 나와 있었어요. 역용은 언제 풀었어요?”
“조금 전에 풀었습니다.”
“갔던 일은 어떻게 되었나요? 해독에 성공했나요?”
“네. 다행히 해독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교주께서 깨어나시는 것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그보다 시급한 문제가 있습니다.”
백무명이 부교주 선출 건에 관해 설명해줬다.
자신이 성녀 대신 한 말을 모두 말하자, 성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어느 정도 예상했어요. 백 무사께서 지금 오층무사이지요?”
“네. 성녀님께서 직접 승급시켜주셨지요.”
“잘되었어요. 이왕 이렇게 된 이상 백 무사밖에 없을 것 같군요. 내일 비무에 백 무사께서 출전해주세요. 백 무사가 부교주가 되면 저도 안심 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찌 제가? 저 말고 다른 고수도 많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성녀전 고수들은 모두 여자라 부교주가 되더라도 그 명이 온전히 서지 않을 가능성이 커요. 무엇보다 백 무사보다 무공이 높은 사람이 없어요. 칠마종 무사 수백 명을 단숨에 제거한 백 무사의 실력이라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그래도······.”
“이건 성녀로서의 명이에요. 그래도 거절하시겠어요?”
“알겠습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좋아요. 백 무사를 믿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말씀드리겠어요. 무형지독을 해독하신 분이니 어쩌면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무슨 말씀을?”
“정말 모르셨나요? 하기야 보통 역용술이 아니니 백 무사도 알아차리지 못했겠군요. 으음, 사실 지금 교주 침실에 누워있는 분은 진짜 천마 교주님이 아니에요.”
“아! 그게 정말입니까? 사실 약간의 의심은 했었습니다.”
“역시 그랬군요. 백 무사가 부교주가 되면 어차피 알려야 할 것 같아서 미리 말씀드리는 거예요. 침실에 있는 분은 천마 교주님이 아니라 생사신의예요.”
성녀가 말을 한 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줬다.
그 요지는 천마 교주가 매영설과 함께 낙양으로 가기 전에 생사신의로 하여금 자신의 얼굴로 역용해 교주로 행세하게 했다는 것이었다.
백무명이 눈을 빛냈다.
‘역시 그랬었구나. 그럼 천마는 지금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