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16
깊은 밤.
객방에 돌아온 백엽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하루 동안 많은 일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장씨부인의 죽음을 직감하고 흘렸던 눈물의 의미는 남달랐다.
지난 삼십 년간 뼈를 깎는 수련에도 절대 울지 않았던 그였다.
‘어머님께서 완쾌되셨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하마터면 천추의 한을 남길 뻔했구나.’
백엽은 장씨부인이 완쾌되어 깨어나던 모습을 떠올렸다.
몸이 회복되고 내공까지 급증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장씨부인은 물론이고 백운목, 백여희, 백여옥 세 사람이 뛸 듯이 기뻐하던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진정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백엽 역시 기뻐했으나 그들과 진정으로 동화되지는 못했다.
생사신의와 더불어 그에게 감사의 인사가 쏟아졌지만, 왠지 모를 씁쓸함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가족을 찾았지만 이것이 한계인가. 밤이라서 그런지 마음이 갈대와 같이 흔들리는구나.’
백엽이 창문을 열고 달을 감상했다.
이전부터 보던 달이었지만 영웅보에서의 느낌은 달랐다.
‘그나마 아버님께서 임시회주가 되신 것이 다행이다. 나중에 매화검선이 오게 되면 자리를 넘겨주시겠지만, 충의문주 번약수 그자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라고 할 수 있지.’
백엽이 미소를 지었다.
장씨부인이 생사금침대법을 받는 동안 영웅대회는 잠시 중단되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마침 식사 시간이라 음식과 술이 제공되어 그 시간이 무료하지는 않았다.
장씨부인이 깨어나고 얼마 후 대회는 속개되었다. 당연히 영웅회주 인선에 관한 논의가 재개되었다.
백엽은 그 자리에서 성녀의 조언대로 회주 자리를 사양했다.
군웅들이 다시 무릎을 꿇고 회주를 맡아달라고 부탁했으나, 백엽이 회주는 화산파 장문인 매화검선이 맡게 될 것 같다고 하자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군웅들이 술렁였고, 때마침 화산파 본산에서 날아온 전서구를 고해풍이 받고 그 내용을 공개했다.
그것은 바로 흑도 대동맹이 사실이며 맹 차원에서 이를 묵과할 수 없다고 판단해 화산파 지원이 결정되었다는 것이었다.
벌써 매화검수 삼백 명을 이끌고 매화검선이 직접 악양으로 오고 있다고 하니 군웅들 모두가 기뻐했다.
매화검선이 오게 되면 영웅회주는 그가 맡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더는 백엽을 회주로 추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무엇보다 백엽은 혼자이지만 매화검선은 휘하 화산파 제자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삼백 명의 매화검수라면 화산파 매화검수 대부분이 출동한 것으로, 그들의 무력만으로 동정수로채 전체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아까 백엽이 회주 자리를 수락하지 않은 것이 다행으로 생각될 정도였다.
수락했다면 다시 매화검선에게 물려주도록 부탁해야 했기에, 그것은 실례되는 일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대회 첫째 날이 마무리되었다.
오늘 결론은 매화검선이 영웅보에 도착하면 곧바로 전투태세를 갖춘다는 것.
그때까지 임시회주인 백운목의 지휘 아래 매일 대회를 열기로 했다.
군웅들이 모여 있으면 비상 상황에 즉각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백운목은 고심 끝에 백항과 백철한, 송씨부인, 십대장로 등 보를 배신한 백여 명의 무사들을 모두 풀어주고 쫓아냈다.
이미 무공이 폐쇄되어 큰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판단으로 보였다. 군웅들은 백운목이 관용을 베푼 것으로 생각했다.
‘매화검선이 도착하면 내가 없어도 효율적으로 영웅회 무사들을 지휘할 수 있을 것이다. 형산파 장문인 역시 소식을 듣고 영웅회 참여 의사를 밝혔다고 하니 한시름 놓을 수 있겠군.’
생각보다 상황이 빠르게 전개되고 있었다.
원래는 최소 열흘은 관망세가 유지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동정수로채 수적들이 속속 천혈방 악양지부로 모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등 양 진영의 움직임은 긴박하게 흐르고 있었다.
문제는 백엽이었다.
성녀의 조언대로 악양 흑도부터 장악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매화검선과 매화검수들이 모두 한혈마를 타고 오고 있다고 알려져 사흘 정도면 도착할 예정이라, 전투가 그때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컸다.
한편 생사신의와 성녀가 묵고 있는 방들은 백엽이 있는 곳과 붙어 있었다.
세 사람은 급변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새벽에 다시 모여 행동 계획을 결정하기로 했다.
아직 새벽이 되려면 한 시진은 남은 시각.
백엽은 두 사람을 기다리면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정리를 해둘 생각이었다.
어차피 최종 결정은 자신이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백엽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그때.
스스슷 하는 소리와 함께 한 인영이 창을 통해 방안으로 들어왔다.
백엽은 전혀 놀라지 않고 오히려 그를 반겼다.
“왔느냐?”
“교주님.”
복면인이 오체투지를 했다.
“어떻게 되었느냐? 조장의 행방을 찾았느냐?”
“네. 교주님.”
“어디에 있느냐?”
“그게······ 지금 천혈방 악양지부 뇌옥에 갇혀 있습니다.”
“어쩌다가 놈들에게 잡혔지? 분명 빠져나갔다고 하지 않았느냐?”
“상처가 심해 아무래도 다시 지부로 돌아가 은신해 있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은신술이 풀려 잡힌 것으로 파악됩니다.”
“으음, 구출 작전은?”
“경계가 너무 심해 시도를 못 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조원들은 지부 인근에서 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네가 부조장이라고 했느냐?”
“네. 교주님. 진국동(陳國東)이라 합니다.”
진국동이 떨리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비록 역용한 얼굴이었지만 교주를 처음 봤을 때도 떨렸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이 순간 그 떨림은 최고조에 달했다.
백엽이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한 그의 앞날이 밝아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 진국동. 조장과 관련해 다른 정보는 없느냐?”
“있습니다. 내일 놈들이······.”
진국동이 말을 잇지 못했다.
“내일 어떻게 한단 말이냐?”
백엽이 언성을 조금 높였다.
“정오에 놈들이 조장을 공개 처형한다고 들었습니다.”
“으음, 공개 처형이라. 지금 너희 병력으로 구출에 성공할 확률은?”
“거의 없습니다. 놈들이 대놓고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는 형국입니다. 게다가 실제 갇힌 장소가 뇌옥이 아니라 비밀거처일 가능성도 큽니다. 모험을 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교주님 지시를 받기 위해 제가 왔습니다.”
“잘했다. 처형은 어떻게 한다고 하더냐?”
“옷을 모두 벗긴 후 만인이 보는 앞에서 불에 태운다고 들었습니다.”
“감히 본교의 살수임을 알고도 그런단 말이냐?”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 확신하지 못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다만 조도생 그자의 복수를 위해 조장을 처형한다고 하더군요. 하명해주십시오.”
“일단 철수해라. 처형식 때 내가 직접 가서 구출하겠다. 내일 단순히 처형식만 열리는 것이냐?”
“아닙니다. 동정수로채에서 일차로 파견한 수적들을 환영하는 연회를 연다고 들었습니다. 인근 흑도들도 대거 모이고요. 그들 나름의 영웅대회라 할 수 있지요. 어쩌면 처형되기 전에 욕을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게 둘 수는 없지. 아마도 놈들은 좀 더 명확한 사실을 알려고 일부러 처형 소식을 흘려 함정을 파둔 것일 것이다. 걱정하지 말고 내 지시대로 철수하고 거점에서 대기하도록 해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진국동이 고개를 숙인 후 경공을 펼쳐 창밖으로 날아갔다.
휙휙.
진국동이 사라진 후 백엽이 담담히 말했다.
“이제 들어와도 좋소.”
“네. 교주님.”
“네.”
방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들어왔다.
한데 그들은 바로 생사신의와 성녀가 아닌가.
“모두 들었소?”
“네. 정말 직접 가서 구출하실 생각입니까?”
“물론이오. 놈들이 이런 공개 처형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본교를 무시하고 있다는 증거요. 게다가 살수 조장은 나의 지시를 따르다가 잡힌 것이니 반드시 구출해야 하오.”
“천혈방 악양지부로 진입하는 것부터 쉽지 않을 겁니다. 구출 작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할 것이기에 잘못하면 당할 수도 있습니다. 교주님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일단 몇 명이 가는 겁니까?”
“나와 신의, 그리고 성녀 세 사람이오.”
“천마살수들은 안 갑니까?”
“살수들이 모두 무사히 빠져나온다는 보장이 없소. 게다가 저번에 암살 작전을 수행하면서 입었던 크고 작은 부상이 아직 낫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소.”
“잘 판단하셨습니다. 사람을 구하러 들어갔다가 다른 사람이 다치거나 죽으면 안 되지요. 기동력 면에서도 우리 세 명만 가는 것이 좋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들어가느냐 하는 겁니다. 은신술을 펼칠 수 있지만, 그것은 행동의 제약이 큽니다. 성녀께서 좋은 방도를 내주시겠습니까?”
“동정수로채 수적 천여 명이 일차로 당도했다고 하니까, 우리 역시 수적으로 변장하는 것이 가장 눈에 띄지 않을 거예요. 인원이 많아 필시 연무장에 막사를 치고 있을 테니, 지금이라도 가서 수적으로 행세하고 있는 게 좋겠네요.”
“그렇게 합시다. 급한 일로 보를 떠난다고 글을 남기면 될 것이오.”
“교주님. 아예 이곳을 떠나기로 하신 겁니까?”
“그렇소. 내가 영웅회주가 되고 싶지 않았던 게 바로 이런 경우 때문이었소. 회주가 되면 마음대로 움직이기 힘드니까. 더는 이곳에 있어봤자 전투가 벌어지기 전까지 내가 할 일은 없소. 그럴 바에는 성녀 말씀대로 흑도 일부라도 장악하는 것이 좋을 듯하오.”
“조장 살수를 구출한 다음에 갈 곳을 정해두었습니까?”
“살수들이 거주하고 있는 비밀 근거지가 있소.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장원인데, 본교의 비밀 거점 중 하나요. 당분간 그곳에 지내면서 계획을 진행하면 될 것이오.”
“으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악양 분타에 기별해 무사들을 대기시키는 것이 어떨까요? 내일 모일 흑도 놈들의 수가 삼천여 명 정도 될 것으로 추정되는데, 중과부적으로 포위될 때도 대비해야 합니다.”
“신의 말씀은 상황에 따라 아예 놈들을 공격하자는 것이오?”
“네. 며칠 후 천혈방 본대 병력과 나머지 동정수로채 수적들이 오게 되면 우리 힘만으로 당해내기 힘들 겁니다. 천혈방주와 동정수로채주, 그리고 두 곳의 지휘부 고수 수백 명이 모두 올 것이니까요. 차라리 분타 병력을 이용해 놈들을 쓸어버린다면 승기를 잡을 수 있습니다.”
“분타 병력은 안 되오.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본교의 존재가 더이상 드러나서는 안 될 것 같소. 성녀의 생각은 어떻소?”
“동의해요. 흑도 놈들이 본교를 무시하기로 한 마당에 더는 경고의 의미가 없지요. 차라리 지난번 암살 작전 또한 본교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돌리는 게 좋을 거예요. 그래야 무림맹 눈치를 보지 않고 세력을 불릴 수 있을 테니까요.”
“좋소. 다만 악양 흑도를 장악하는데 시간이 너무 부족한 것 같소. 일단 천혈방과 영웅회가 전면전을 벌이면 더는 흡수할 세력이 없어질 테니까 말이오.”
“그래서 이번 구출 작전이 중요해요. 교주님께서 가공할 무위를 선보인다면 필시 어느 정도의 세력을 확보할 수 있을 거예요. 흑도 중에는 천혈방 눈치를 보느라 어쩔 수 없이 이번 싸움에 가담하는 곳도 있을 테니까요. 나머지는 임기응변할 수밖에 없을 것 같군요.”
“좋소. 일단 글부터 적고 떠납시다.”
백엽이 책상에 놓인 양피지에 급한 일이 있어 떠난다는 내용의 글을 적어놓았다.
하지만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어머니도 완쾌되었고 본격적으로 가족들과 교류를 해야 할 때였다.
성녀가 담담히 말했다.
“삼십 년 만에 집에 왔는데, 이대로 다시 떠난다고 생각하시니 좀 그렇겠네요.”
“내 마음을 성녀가 아는구려. 그래도 날이 밝으면 영웅보 대공자가 살아있음이 세상에 알려질 테니, 그것만으로 위안을 삼으려 하오.”
“자옥패와 서신을 대부인 방에 두고 오셨나요?”
“그렇소. 아까 마지막으로 진맥을 하면서 두고 왔소. 날이 밝고 시녀가 청소하게 되면 발견하게 될 것이오. 성녀의 조언대로 영웅보 대공자가 동방(東邦) 무림에 있는 것으로 적어놨으니 어머님도 안심하실 것이오.”
“조만간 영웅보에 들린다고도 적어놓으셨지요?”
“물론이오. 의아해하겠지만 옥패가 진짜이니 희망을 품게 되실 것이오.”
“잘하셨어요. 제 생각에 늦지 않은 시기에 교주님께서 정정당당히 영웅보 대공자로 복귀하시게 될 날이 있을 거예요.”
“과연 그럴 날이 있겠소?”
“당연하지요. 가족의 정을 확인해보고 싶어 하셨잖아요? 이번 천혈방과의 싸움이 마무리되면 몇 달이라도 반드시 기회가 있을 거예요. 물론 준비를 철저히 해 교주 신분이 드러나선 안 되겠지만 말이에요. 본교의 대업 수행 여부는 그때 가서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겁니다.”
“고맙소. 이제 갑시다.”
“네.”
“네.”
백엽과 생사신의, 성녀 세 사람이 창밖으로 몸을 날렸다.
휙휙휙.
마치 비조처럼 날아가는 세 사람.
순식간에 작은 점들이 되어 사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