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161
“특사를 핑계로 소림사 대문 인근까지 가봤지만 보호진법의 특성을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영웅맹주 백무명 그자가 환영선인을 죽였다고 하기에 그 말을 믿지 않았었는데, 진법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백의를 입은 노인의 말에 숭산 산기슭에 모인 스무 명가량의 노인들이 안색을 굳혔다.
“진법선인(陣法仙人)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뜻밖이오. 그래 진을 파훼할 수 있다는 말이오?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말이오?”
흰 수염을 멋지게 기른 노인 한 명이 물었다.
그는 소요선인(逍遙仙人)이란 자로 이번에 파견된 신선계 반선 스무 명 중 우두머리였다.
참고로 지금 모여있는 반선들은 모두 흑반선들로 칠마종에서 학수고대하며 기다렸던 지원 반선들이었다.
“진을 파훼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특징을 알 수 없어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다행히 반선들이 스무 명이나 왔으니 보호진법을 무력화하는데 사흘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진법선인의 말에 반선들이 제각각 다른 반응을 보였다.
성미가 급해 보이는 반선들은 실망하는 표정이었고, 소요선인 등 일부는 그나마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소요선인이 말했다.
“다들 진정하시오. 우리가 이번에 무림에 온 것은 환영선인의 복수를 하려는 것도 있지만 백반선들의 움직임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서요. 원래는 칠마종 종주들끼리 경쟁을 붙여 그 결과를 지켜볼 생각이었소. 하지만 우리 동료 반선이 죽임을 당하는 큰 사고가 발생했고 게다가 평등반선 같은 백반선들이 반기를 들고 있으니 걱정이 아닐 수 없소.”
“맞는 말씀입니다. 반기를 든 백반선들의 수가 그렇게 많지 않아 큰 걱정은 아니나 문제는 은둔반선들입니다. 그들이 나선다면 상황이 달라질 겁니다.”
초극선인(超克仙人)이라는 반선의 말이었다.
그는 신선계에 있을 때 백반선들을 추격해 제거하는 임무를 맡았을 정도로 도력도 높고 정보도 밝았다.
소요선인이 말했다.
“은둔반선들은 쉽게 나서지 못할 것이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니 우리 정책에 반기를 든 백반선들을 최대한 빨리 제거하는 게 중요하오. 이미 백반선들의 움직임을 관망하던 때는 지났으니까 과감해져야 할 것이오. 그런 의미에서 백반선들의 지원을 받고 있는 영웅맹주 그자를 이번에 꼭 죽여야 하오.”
“영웅맹주 그자가 백반선들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게 확실합니까?”
“그렇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평등반선이 그자에게 신선술을 가르친 게 분명하오. 그러지 않았다면 절대 환영선인을 죽일 수 없었을 것이오.”
“환영선인의 죽음만으로 영웅맹주 그자가 평등반선의 지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 외 여러 가지 정황이 있소. 아무튼 그렇게 알고 일단 소림사 주위에 펼쳐진 보호진법 파훼에 집중하도록 합시다. 그렇게 되면 영웅맹주 그자가 나타나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영웅맹주가 위기에 처하면 그를 돕는 백반선들도 모습을 드러내겠지요.”
“그렇소이다. 특히 평등반선 그자의 도력은 출중하니 잠깐이라도 신선계에서 나와 무림에서 활동할 수 있을 것이오.”
“평등반선이 우리처럼 상고밀약을 일부 우회할 수 있는 편법을 알아냈다는 말입니까?”
“그럴 소지가 다분하오. 다만 우리처럼 상당 기간 활동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매우 짧을 것이오. 물론 백반선 놈들이 혼란을 초래하기 위해 거짓 정보를 퍼뜨렸을 가능성도 있소.”
“확실한 것은 영웅맹주 그자를 죽일 때 보면 알게 될 것 같네요. 평등반선이 무림에 나올 수 있다면 영웅맹주가 죽는 것을 지켜만 보지는 않을 테니까.”
“맞는 말씀이오. 진법선인께서는 이제 진 해체를 시작해주시오. 우리가 어떻게 도우면 되겠소?”
“제가 지적하는 곳에 도력을 발출해 진 전체에 흐르는 기운을 끊어주시면 됩니다. 주의하실 것은 반드시 제가 지적하는 곳에만 공격을 가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알겠소. 우리 중 진법에 대해서는 진법선인이 최고이니 지시대로 따를 것이오.”
“감사합니다. 자, 다들 소림사 쪽으로 올라가시지요.”
진법선인을 필두로 반선들이 산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 * *
흑반선들이 소림사 주위에 펼쳐진 보호진 파훼 시도를 하는 그 시각.
백무명은 아직 호남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해 지금 그가 있는 곳은 호남성 북쪽에 있는 악양이었다.
십만대산에서 출발한 지도 벌써 하루가 다 되어 가건만 예상보다 늦은 편이었다.
물론 단 하루 만에 이곳까지 온 것도 대단히 빠른 것임은 물론이었다.
늦은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칠마종 세력에 붙잡힌 포로들을 구출해주기 위해서였다.
호남성 각 성에는 칠마종 세력이 득세하고 있었는데, 그들 대부분은 도마종으로 각 지역 무림인들을 줄기차게 숙청하고 있었다.
도마종 세력에게 죽임을 당한 정파나 중도 무사들의 수가 수만 명에 이를 정도였다.
한데 그러다 보니 도마종이 세운 분타 곳곳에 포로들이 많이 갇혀 있었다.
바로 죽이지 않고 상당수 무사들을 가둬놓은 것은 그들을 회유해 수하로 부리기 위해서였다. 이는 아직 현지 정보에 어두운 도마종으로서는 꼭 필요한 절차였다.
하지만 천마신교 총단 무사들의 북상 소식이 전해지자 사정이 달라졌다.
형산 도마종 본산에 있던 도마종주가 분타 감옥에 있는 포로들을 모두 처형하라고 지시를 내린 것이었다.
천리비마를 타고 소림사로 향하다가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된 백무명이 이를 모른 척할 리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자신이 천마신교 총단 병력을 북상시켰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소림사로 하루빨리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펼쳐 놓은 보호진법이 최소 사흘은 버틸 수 있을 거라는 믿음도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각지의 분타 감옥을 습격해 포로들을 구출하기 시작했다.
처형 직전에 구출하는 경우가 제일 많았고, 감옥 자체를 파괴해 포로들이 탈출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그렇게 단 하루지만 그가 구출한 포로들만 일만에 달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지금 입성한 악양은 특별한 곳이었다.
왜냐하면 호남성 전 지역 중 포로들이 가장 많이 갇혀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 사실은 다른 지역의 도마종 분타를 공격하면서 알게 되었는데, 백무명이 이를 알고 곧바로 달려온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만 명을 한꺼번에 매장하려 한다니. 도마종 이놈들이 천인공노할 짓을 하려는구나.’
백무명이 천리비마를 타고 관도를 따라가며 눈을 빛냈다.
처형 소문이 돌아서인지 성내 거리도 삭막했다.
물론 처형될 포로들 대부분이 무림인이기 때문에 양민들은 당장 위험을 느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림인으로 오해를 받아 개죽음을 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므로 다들 조심스러운 표정이었다.
‘오늘 정오 도마종 악양 분타에서 처형을 한다고 했던가. 혹시 나를 유인하기 위해 이렇게 공개적으로 소문을 퍼뜨린 것은 아니겠지.’
백무명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도마종 놈들에 대한 살기가 표정에서 느껴졌다.
한데 지금 그 얼굴은 생사신의의 것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생사신의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 편하게 활동하기 위해 도중에 다시 역용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백 군사의 어머님께서 악양에 계시다고 했지. 정오가 되려면 아직 시간이 멀었으니 한번 들려야겠다.’
백무명이 눈을 빛냈다.
백여희의 모친 이야기는 소림사에 있을 때 백여희가 혼자서 근심에 쌓인 표정을 짓고 있자 그 이유를 물었을 때 들은 이야기였다.
일부러 이곳에 오는 것은 좀 그랬지만 이왕 온 이상 들러보는 것이 마땅했다.
게다가 살펴보려는 장씨부인은 영웅맹 장로 백운목의 부인이며 호법 백여옥의 모친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 사실을 떠올렸을 때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백동방 공자를 기다리기 위해 혼자 악양에 남으셨다고 했던가. 도마종 세력이 악양 무림을 장악하자 영웅보를 비우고 인근 안가에 은신해 있다고 했었지.’
백무명이 사람들에게 물어 영웅보가 있는 쪽으로 갔다.
장씨부인이 은신해 있는 장원의 위치는 백여희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다만 영웅보 위치를 몰랐는데 사람들에게 듣고 보니 이전에 알고 있었던 느낌이 들었다.
‘영웅보 동쪽에 있는 폐장원이라고 했지. 아무리 아들을 기다린다고 하지만 너무 영웅보에서 가깝구나.’
백무명이 안색을 굳혔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에게 물어본 결과 최근 도마종 악양 분타가 바뀌었는데 그곳이 바로 영웅보가 있던 곳이었다.
아무래도 포로가 늘어나자 규모가 있는 영웅보로 분타를 옮긴 모양이었다.
‘아무리 폐장원이라고 해도 분타 인근이라면 수색을 당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장씨부인을 만나 뵙게 되면 은신처를 옮기도록 해야겠구나.’
* * *
“아! 어찌 이럴 수가!”
백무명이 한 줌 재가 되어 버린 폐장원을 보고 탄식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씨부인이 은신해 있는 폐장원을 찾아왔지만 불에 타 그 터만 남아 있지 않은가.
백무명이 주위를 지나가는 사람 한 명을 잡고 물었다.
“언제 이렇게 불에 탄 겁니까?”
“며칠 되었소이다.”
“누구 짓입니까? 칠마종 놈들입니까?”
백무명의 말에 행인이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그가 조용히 말했다.
“영웅보와 관련 있는 분 같은데 말조심하시오. 인근에 있는 이전 영웅보 자리에 도마종 놈들이 들어가 있으니까.”
“알고 있습니다. 놈들이 분타로 사용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데 이곳에 있던 영웅보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모두 불에 타 죽은 것으로 알고 있소. 도마종 놈들이 수색하다가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것으로 알고 있소.”
“대부인께서도 돌아가신 겁니까?”
“그건 나도 모르겠소. 소문에 의하면 경계 무사들이 모두 죽고 대부인 한 사람만 잡혀가 옥에 갇혔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라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소? 오늘 정오 때 포로들을 생매장한다는데······.”
“그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설마 만 명이나 되는 사람을 생매장하겠습니까?”
“무슨 말씀이오? 놈들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소. 게다가 최근 인근에 있던 패거리들이 대거 모여들어 그 병력도 오천 명이 넘는다고 들었소. 놈들이 무얼 두려워하겠소?”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아무튼 말조심하시오. 나는 분통이 터져 몇 마디 했지만 지금과 같은 시국에는 입조심이 제일이오. 그럼 나는 가보겠소.”
“네. 감사합니다.”
백무명이 행인을 보낸 후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인근 객잔에 천리비마를 맡긴 그는 곧바로 영웅보로 향했다.
얼마 가지 않아 외곽 경계를 서고 있는 도마종 무사들이 보였다.
정오가 되려면 이제 반시진밖에 남지 않아 경계가 더 철저해 보였다.
백무명이 은잠술을 펼친 채 근처 나무 위로 올라갔다.
영웅보 내부를 살피기 위해서였다.
예상대로 수천 명의 도마종 무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백무명이 유심히 본 것은 연무장 쪽이었다.
만 명이나 되는 포로를 생매장하려면 그 자리가 연무장밖에 없었다.
그러한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연무장 중앙에 거대한 구덩이 하나가 파여 있었다.
백무명이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경공을 펼쳐 영웅보 내부로 들어갔다.
연무장 옆에 있는 전각의 지붕 위에 올라간 그가 은잠술을 펼친 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직 포로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연무장에는 단상도 준비되어 있고 처형 준비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실제 처형할 속셈 같구나. 포로 중에 장씨부인이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모두 구해야 한다.’
백무명이 백여희가 보여줬던 장씨부인의 초상화를 한번 떠올린 후 눈을 빛냈다.
‘포로들을 무사히 탈출시키려면 아무래도 오늘 대량살상을 피하기 어렵겠구나. 하기야 인간 이하의 것들은 살려둘 가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