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162
“후후후! 죽기 전에 할 말이 없느냐? 영웅보 대부인이라고 했나? 이곳 영웅보는 네년이 살던 곳이니 대표로 말해봐라. 우리가 아무리 인정이 없다고 해도 죽기 전에 유언을 남기는 것까지 막겠느냐?”
도마종 악양 분타주 하종위(夏種胃)의 말에 장씨부인이 무심히 말했다.
“내 복수는 나중에 내 아들이 해줄 것이다. 어서 죽여라.”
“후후후! 네년의 아들 이름이 백동방이라고 했나? 한때 이곳 악양에서 명성을 떨쳤다고 했지? 하지만 실종된 지 오래라고 들었다. 아마도 죽은 게 분명할 것이다.”
“내 아들은 분명히 살아 있다.”
장씨부인이 고개를 흔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태연하던 그녀의 표정이 급격히 흔들렸다.
하기야 지금 아들의 생사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녀를 비롯한 포로 일만 명의 목숨이 달려 있었다.
영웅보 연무장에 파놓은 거대한 구덩이 앞에 무릎 꿇린 일만 명의 포로들.
그들 뒤에는 도마종 악양 분타 무사 오천 명이 도열해 있었다.
포로들의 경우 혈도가 모두 찍혀있는 상태라 반항은 생각도 못 하는 상황.
가히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포로들도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며칠 전부터 포로들 사이에서 떠돌던 한 가지 소문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영웅보 대공자 백동방이 곧 복귀할 거란 것이었다.
소문은 그의 모친인 장씨부인이 포로로 잡혀 온 것을 기화로 증폭되었다.
하기야 백동방이 인근에 있다면 모친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달려올 게 분명했다.
그만큼 악양성 내에서의 백동방에 대한 기대는 남달랐다.
하지만 그러한 희망도 이제 꺼져가고 있었다.
거대한 구덩이에 일만 명이 넣어지면 그대로 생매장될 게 분명했다.
하종위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 어떤 특이점도 없었다.
애초 구경꾼들의 진입을 불허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비공개 처형이었다.
‘백동방인가 하는 그놈 때문에 악양 민심을 아직 우리가 장악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놈이 나타난다면 바로 제거할 수 있을 텐데 아쉽군.’
하종위가 입맛을 다셨다.
포로들을 처형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번 처형식을 일종의 유인 작전으로 생각하고 있던 터라 구출하러 오는 사람이 없을 것 같아 실망하는 표정이었다.
‘일단 장씨부인이라는 저 계집부터 목을 베고 나머지를 땅에 묻어야겠군. 저 계집이 잡혀 온 후 포로 중에 투항하는 자가 거의 없었다.’
하종위가 검을 뽑아 구덩이와 가장 가까이 무릎 꿇려 있는 장씨부인에게 다가갔다.
“지금도 네 아들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느냐?”
“당연하다. 잔말 말고 어서 죽여라.”
장씨부인이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 급격히 흔들리던 표정이 아니었다.
“후후후! 어쩔 수 없군. 지금 우리 칠마종은 무림 정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 때문에 웬만하면 네놈들을 살려두고 우리 수하로 삼으려 했다. 하지만 종주께서 몰살하라는 명을 내리셨기에 나도 어쩔 수 없다. 그 말은 지금 투항해도 이미 늦었다는 말이다. 으음, 말이 길어지니 일단 네년부터 죽여주마.”
하종위가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쐐애액.
그야말로 쉽게 보이는 검초.
하지만 그는 도마종 장로 출신이었다.
그 무공이 높아 도마종주가 내심 경계할 정도였다.
그 때문일까.
다시 보니 검초가 예사롭지 않았다.
장씨부인 역시 이미 마음을 비운 모양이었다.
하기야 혈도를 찍히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녀가 하종위의 적수는 될 수 없었다.
‘방이를 다시 보지 못하는 게 한이구나.’
장씨부인이 아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도 그럴 것이 자그마치 삼십 년 만에 찾은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을 해후의 기쁨도 잠시 한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이런 상황이 되고 말았다.
‘주위 분들 말대로 가족이 있는 소림사로 갔어야 했나. 애꿎은 무사들만 죽었구나.’
장씨부인이 애통해했다.
은신처에서 자신을 지키던 영웅보 무사들이 몰살당한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팠다.
‘내가 고집을 부려 많은 목숨이 사라졌구나. 모두가 내 책임이다.’
장씨부인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사실 그녀의 호위 때문이 아니라도 총단 사수를 위해 최소한의 병력을 남길 생각을 하고 있었던 백운목이었다.
장씨부인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후후후! 죽음이 두려운 것이냐?”
하종위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장씨부인의 목을 베기 직전.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사내 한 명이 갑자기 장씨부인 앞에서 나타나 그의 검을 막아낸 것이다.
차창.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하종위가 급히 뒤로 물러났다.
“네놈은 누구냐?”
하종위가 소리쳤다.
일순 매우 놀랐으나 상대는 단 한 명이었다.
반면 그의 수하는 오천 명이 넘었다.
검을 통해 느껴졌던 반탄력이 대단했으나, 그가 위축될 이유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정작 놀랄 일은 다음에 벌어졌다.
장씨부인이 자신을 구해준 사내의 얼굴을 보고 소리쳤다.
“방아. 네가 돌아왔구나.”
그녀의 말은 큰 반향을 가져왔다.
“아! 맞다! 영웅보 대공자님이시다!”
“백동방 공자님이 돌아오셨구나!”
아혈은 아직 막히지 않았던 일만 포로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하지만 정작 가장 놀란 사람은 바로 백동방이라고 불린 사내였다.
사내는 바로 다름 아닌 백무명이었기 때문이었다.
‘장씨부인을 직접 보게 되자 나도 모르게 본 얼굴이 회복되었는데, 그 얼굴이 바로 백동방이란 사내의 것이었다니. 그렇다면 내가 바로 영웅보 대공자였다는 말인가. 하지만 이것만으로 확신할 수 없다.’
절체절명의 상황이라 이런 생각할 여유가 있는 게 절대 아니었으나 백무명은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짧은 순간이지만 자신의 진짜 신분을 알아낼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었다.
“제가 백동방입니까?”
“방아. 물론이다. 이 어미를 몰라보겠느냐?”
장씨부인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생사는 도외시하고 오직 백무명만을 걱정하는 표정이었다.
“네. 사실 사고를 당해 지난 기억을 모두 잃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인가.
백무명이 신형을 돌려 하종위를 쳐다봤다.
“지금 즉시 물러가면 오늘 하루는 목숨을 거두지 않겠다.”
“하하하! 정말 미친놈이구나. 네놈이 진짜 백동방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기억도 정상이 아닌 것 같고. 내공은 제법 강하지만 그렇다고 오천이나 되는 병력을 네놈 혼자 상대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야? 네놈이 천마라도 되느냐?”
“싸움은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적이 천만 명이라고 해도 주눅 들지 않으며 승리할 수 있는 법이지.”
백무명이 일단 지존검을 휘둘러 포로들 주위에 보호막부터 형성했다.
일종의 검기방패로 최소 한시진 정도는 적의 공격으로부터 무사할 수 있었다.
대신 보호막의 강도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 지존검을 땅에 박아 놓았다.
지존검을 싸움에 사용하면 그만큼 보호막의 강도가 약해지기 때문으로, 백무명은 어느 정도 자신 있는 표정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이곳에 있는 도마종 무사가 비록 오천 명이 넘는다고 하나 정작 고수는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절정고수 이상은 하종위를 제외하고 네 명 정도였다.
그들 네 명 역시 도마종 장로 출신으로 병력이 많아지자 총단에서 분타주 보조로 파견한 고문들이었다.
‘일단 저들 다섯 명부터 제거한다.’
백무명이 지체없이 장력을 날렸다.
바로 무명신장이었다.
쏴아아.
강력한 경력이 마치 회오리처럼 하종위 등 다섯 고수를 향해 날아갔다.
고수들이 일제히 장력으로 맞섰으나 결과는 참혹했다.
하종위를 비롯한 다섯 고수의 심장이 그대로 터져 즉사하고 만 것이다.
와아아.
보호막 안에서 관전을 하던 포로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순간, 도마종 지휘부 고수 한 명이 소리쳤다.
“모두 죽여라!”
와아아.
도마종 무사들이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다.
일종의 인해전술이었다.
그들의 공격 대상은 백무명뿐만이 아니었다.
일만 포로들 역시 공격 대상이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들은 보호막을 뚫지 못했다.
오히려 보호막 자체의 반탄력에 당해 죽는 자가 속출했다.
이는 백무명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상당한 효과를 가져왔다.
보호막을 함부로 건드리다가 죽은 도마종 무사들이 순식간에 천 명을 넘어선 것이다.
백무명이 품속에서 지존비수를 꺼내 검기다발을 형성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검기다발이란 검기가 다발로 뭉쳐 있는 것으로 이를 채찍처럼 휘두르면 엄청난 위력이 있었다.
파파파파!
“으윽!”
“으윽!”
수십 장 길이로 늘어난 검기 다발이 도마종 무사들을 한번 휩쓸 때마다 백여 명의 몸이 갈기갈기 찢겼다.
그것은 한편의 지옥도였다.
백무명은 한 놈도 살려둘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마치 그물처럼 공격 범위에 갇힌 도마종 무사들이 필사의 탈출과 반격을 시도했으나 결국 전멸을 당하고 말았다.
바다에 빠진 상태에서 높은 파도를 피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와아아.
포로들의 함성이 극에 달했다.
도마종 무사들을 전멸시킨 후 백무명이 그제야 보호막을 해제하고 포로들의 혈도를 풀어주기 시작했다.
해혈 과정도 쉽지 않았는데 백무명이 십지풍을 이용해 나름대로 신속해 풀어줬다.
물론 가장 먼저 혈도를 풀어준 사람은 바로 장씨부인이었다.
그녀는 백무명이 포로들의 혈도를 모두 풀어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에게 다가갔다.
“방아. 몸은 괜찮으냐?”
“네.”
아직 호칭에 어려움을 겪는 백무명이었다.
하지만 기억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장씨부인은 재촉하지 않았다.
오히려 백무명을 도와 이번 전투의 수습에 만전을 기했다.
* * *
도마종 악양 분타 무사들의 전멸과 포로 구출, 그리고 뒷수습은 밤늦게서야 끝이 났다.
갈 길이 바쁜 백무명이었지만 수습의 중요성을 알고 포로 신분에서 벗어난 악양 무림인들을 지휘했다.
다만 비상시국임을 고려하여 수습을 마친 후 악양 무림인들로 하여금 당분간 은신해 있을 것을 권유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칠마종과의 싸움에 동참하겠다는 사람도 상당했다.
그들 대부분은 소림사로 가서 힘을 보태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백무명 역시 소림사로 가는 중이었으나 그들과 함께 가다가 훨씬 늦어질 수 있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제는 장씨부인이었다.
악양 무림인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가자 장씨부인은 백무명을 찾았고, 두 사람은 장씨부인의 처소에서 한동안 대화를 나눴다.
주로 장씨부인이 이야기하고 백무명이 듣는 식이었다.
백동방이 갓난아기 때 실종되어 어떻게 다시 집으로 돌아왔는지 상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들으면 들을수록 백무명은 그게 바로 자신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는데 장씨부인의 그 증표로 언급한 것이 바로 모자옥패였다.
하지만 그런 옥패를 가지고 있지 않은 백무명으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밤이 깊어지자 객잔에 가서 천리비마를 찾아온 백무명은 배정받은 영웅보 객방에 들어갔다.
잠시 눈을 붙이고 내일 아침 소림사로 출발하기 위해서였다. 도마종 무사 오천여 명을 상대하느라 내공 소모가 극심해 운기조식할 시간을 확보하려는 이유도 있었다.
‘내일 전체적인 상황 점검을 한 후 소림사로 다시 출발해야겠다. 한데 장씨부인께서 소림사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시니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백무명이 소림사에 있을 백운목과 백여희, 백여옥 세 사람을 떠올렸다.
사실 소림사는 이곳 악양보다 더 위험한 상황에 부닥쳐있었으나 장씨부인의 결심은 확고했다.
계속 악양에 있다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또 무사들이 희생을 당하지나 않을까 극히 우려하는 것 같았다.
백무명은 장씨부인과의 관계를 좀 더 확실하게 알고 싶은 마음도 커서 수락을 했다.
‘천리비마를 같이 타고 가는 수밖에 없겠군. 그나저나 그 모자옥패라는게 내게 정말 있을까. 그 옥패만 찾으면 내가 백동방이 맞는 것 같은데······.’
백무명이 지존환에 손을 대고 내공을 실었다.
혹시 모자옥패가 자신에게 있는지 시험해보기 위해서였다.
모자옥패를 찾고자 하는 간절함은 차고 넘쳤다.
그리고 얼마 후 금빛 섬광과 함께 옥패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모자옥패였다.
장씨부인에게 옥패의 모양에 대해 자세히 들었기 때문에 확실했다.
백무명이 탄성과 함께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 정말 내가 영웅보 대공자였구나. 하기야 지금 얼굴이 내 본 얼굴이 확실하니 의심할 필요가 없었지. 한데 백동방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으니 그게 조금 마음에 걸리는구나. 천마 교주와 나와의 관계도 잘 모르겠고. 결국 내가 스스로 기억해내야 한다는 말인데, 혹시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라 생각나지 않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