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17
한 소녀가 있었다.
일곱 살이었던 그녀가 천마촌에 들어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십년 전이었다.
당시 그녀는 십만대산에서 조금 떨어진 다른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마적 떼가 들이닥쳤다.
천마신교가 마교 살수의 변으로 혼란스러운 시기를 틈타 대담하게도 공격을 가한 것이었다.
사실 그전까지는 십만대산 주위 마을은 모두 교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천마촌처럼 천마신교 무사들의 가족이 직접 거주하는 곳이 아니지만 아무래도 왕래가 빈번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소녀가 살던 마을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삼십 호도 안 되는 곳이었으나 다들 열심히 사는 양민들이었다.
모르는 사람은 마교 총단과 가까워 살기 힘들 거로 생각하겠지만 현실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결국 마적 떼의 습격을 받아 마을 사람들이 몰살당하고 말았다.
소녀의 가족이 모두 죽은 것도 그때였다.
일곱 살이었던 그녀는 아직도 그때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만큼은 살리기 위해 그녀의 부모가 자신을 마루 밑에 급히 숨겨두었다.
하지만 그녀가 보는 앞에서 마적 떼에 의해 부모는 무참히 살해당했다.
어린 소녀가 그 광경을 보고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
비명을 질렀고 결국 발각되고 말았다.
그때는 이미 다른 마을 사람들은 모두 죽임을 당한 상황.
마적 한 명의 손에 잡혀 버둥거리면서도 소녀는 복수심에 불탔다.
어린 마음이지만 힘이 없어 복수할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원통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그녀를 잡은 마적이 낄낄 웃으며 칼을 들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씨를 말리라는 두목의 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녀의 목이 잘리려는 찰나.
흑의를 입은 한 청년이 나타났다.
낡은 검을 든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마적의 목을 베었다.
소녀를 한 손으로 가슴에 품은 그는 빠르게 나머지 마적들을 베어갔다.
백여 명에 달했던 마적들은 별다른 반항도 못 해보고 쓰러졌다.
그렇게 마적 떼를 소탕한 청년은 소녀의 부모를 비롯해 마을 사람들의 시신을 한데 모아 공동 무덤을 만들어주었다.
소녀로 하여금 무덤을 향해 절을 하게 한 청년은 그녀를 데리고 어디론 가로 향했다.
그곳이 바로 천마촌이었다.
천마촌 촌장에게 소녀를 데려다준 청년은 몇 마디 당부를 남기고 사라졌다.
소녀는 당시만 해도 청년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촌장을 비롯해 모든 사람이 그를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청년을 보자 모두 엎드려 절을 했기 때문이었다.
소녀는 생명의 은인이라 할 수 있는 청년과 몇 마디 말도 나누지 못했다.
졸지에 부모를 잃은 그녀를 안타까워하며 이름을 물어봤을 뿐이었다.
– 매영설(枚英雪)이라고 해요.
– 좋은 이름이구나. 용기를 잃지 말고 열심히 살도록 해라. 내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느냐?
– 아저씨께 무공을 배우고 싶어요.
– 그래 나중에 네가 크면 가르쳐주마.
그 말을 마지막으로 청년은 그녀를 떠났다.
며칠 후 소녀는 촌장에게 청년의 정체에 관해 물었다.
촌장이 조심스럽게 대답해주었다.
청년은 이번에 천마신교의 교주가 되신 분이라고.
살수 출신이라는 말도 빼먹지 않았다.
소녀는 다시 그를 만나고 싶었지만, 기회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살수 육성 계획이 공표되었다.
소녀는 공고문을 보고 바로 지원했다.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자신을 구해준 청년 교주가 살수 출신이라는 말을 기억해뒀기 때문이었다.
‘무작정 살수가 되면 아저씨를 만나 뵐 수 있을 줄 알았지.’
피투성이가 된 소녀 한 명이 옛일을 떠올렸다.
모진 고문으로 몸에는 성한 구석이 없었다.
날카로운 가시가 박혀 있는 채찍을 얼마나 맞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소녀는 즐거운 옛 추억을 떠올리며 고통을 이겨내고 있었다.
철썩.
채찍 한 대가 다시 그녀의 등에 내리쳤다.
소녀의 몸이 한차례 출렁이며 검붉은 피를 토해냈다.
벽과 연결된 쇠사슬이 그녀의 양어깨를 관통하고 있어 쓰러지지는 않았다.
“독한 년! 어서 말해라! 네년을 비롯해 살수를 보낸 곳이 어디냐? 마교냐?”
“······.”
소녀는 말이 없었다.
천혈방 악양지부 창고에 숨어있다가 발각된 그녀, 즉 천마살수 제66조 조장 매영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입에 물고 있던 독단을 복용하려다가 아혈까지 찍혔기 때문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벌써 자진했을 것이었다.
그녀는 조원들이 자신을 구출하러 오다가 다치거나 죽는 것을 원치 않았다.
다만 마음속으로 기다리는 사람은 있었다.
바로 며칠 전 십 년 만에 만난 교주였다.
교주만이 불 수 있는 천마음을 듣는 순간 그녀는 격동했다.
일년 전 악양으로 파견되어 정마대전 발발만 기다리고 있던 그녀였다.
전쟁이 벌어지면 언제 죽을지 몰랐다.
특히 요인 암살이 주된 임무인 천마살수의 경우는 더욱더 위험했다.
첫 번째 암살 임무까지 확정되어 있던 상황.
십만대산에서 십만 정예가 출발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곧바로 악양의 대표적 정파 인물을 죽이기로 되어 있었다.
제1호 암살 대상은 바로 영웅보주 백운목이었다.
일대일 대결은 그의 상대가 되지 못하지만, 열 명으로 이루어진 천마살수 일개조라면 충분히 가능했다.
무려 열 명의 살수가 은밀히 접근해 합공을 가할 때 이를 피할 고수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래도 교주님을 뵈었으니 그걸로 됐어. 비록 역용을 하셔서 십 년 전 그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그것만으로 만족하자. 바보같이 교주님께서 나를 구출하러 오실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다니.’
매영설이 피식 웃었다.
그녀의 뺨에 깊게 새겨진 흉터가 꿈틀거렸다.
천마살수 중 최고 미인으로 손꼽혔던 그녀의 얼굴에 치명적인 손상이 간 것이다.
바로 이번에 조도생을 죽이면서 그의 반격으로 입은 검상이었다.
조도생은 생각보다 강자였다.
첫 번째 습격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원래는 도주해야 했다.
하지만 매영설은 죽음을 각오하고 마지막 공격을 가했고 결국 성공했다.
‘그래도 교주님께서 내게 처음 내리신 명인데 어떻게든 완수했으니 정말 다행이다.’
매영설이 다시 피식 웃었다.
“이년이! 웃어?”
철썩. 철썩.
채찍이 연거푸 날아왔다.
온몸이 피로 뒤덮인 매영설의 몸이 거세게 출렁였다.
그동안 피를 너무 많이 흘렸는지 이제는 튀어 오르는 피의 양도 얼마 되지 않았다.
“어서 말하지 못해?”
“간수장님. 계집이 죽게 되면 큰일입니다. 처형식이 이제 한 시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혈이 찍혀 있어 말을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아혈을 풀어주면 곧바로 혀를 깨물고 자진할 계집이다. 계집! 다시 말하겠다! 네놈들 정체를 밝힐 생각이 있으면 고개를 끄덕여라. 그러면 아혈을 풀어주겠다. 열을 살리겠다. 그때까지 고개를 끄덕이지 않으면 네년의 코를 자르겠다. 하나 둘 셋······.”
간수장이 숫자를 살렸지만, 매영설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이미 뺨에 거대한 흉터가 생긴 그녀였다.
거기에 더해 코까지 잘린다 한들 큰 상관이 없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어차피 내 얼굴은 망가졌어. 교주님께서 못 보신 것이 다행이구나.’
매영설이 다시 교주, 즉 백엽을 떠올렸다.
사실 그녀의 미모는 천마살수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혹자는 성녀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주로 복면을 쓰고 있는 데다가 살수의 특성상 공개된 자리에 나서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그 때문에 매영설의 미모는 천마살수들만의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했다.
간수장이 열까지 모두 살린 후 비수를 꺼내 정말로 코를 자르려 했다.
어차피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매영설이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생사신의의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그녀였다.
나중에 그를 만나게 되면 뺨의 흉터를 치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코를 잘리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복구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후후후! 네년도 두려운 게 있었구나. 좋다. 쉽게 가지. 네년이 천마살수가 맞는다면 고개를 끄덕여라. 그러면 코를 보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경고이니 잘 생각해라.”
간수장의 말에 매영설의 안색이 굳어졌다.
하지만 아무리 지난번 암살 작전에 천마신교의 흔적을 남기라는 지시가 떨어졌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잡혀서 자백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어떤 경우에도 천마살수는 입을 열지 않는 것이 철칙이었다.
“퇫!”
매영설이 피가 섞인 침을 뱉었다.
원래 아혈이 찍혀 있어 입을 잘 움직이지 못했는데, 핏물이 너무 많이 고여 용케 뱉어낼 수 있었다.
졸지에 핏물을 얼굴에 덮어쓴 간수장이 분노하며 매영설의 뺨을 후려쳤다.
철썩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가 돌아갔다.
워낙 세게 때렸기 때문일까.
매영설이 충격으로 실신해버렸다.
“독한 계집!”
간수장이 비수를 내렸다.
“코를 베지 않으실 생각입니까?”
“물론이다. 비록 얼굴에 검상을 입었지만 이 계집의 미모는 천하절색이다. 얼굴에 피가 묻어 있어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말이다. 지부장 대행께서 괜히 공개처형식을 진행하려는 것이 아니지.”
“공개 처형은 그날 도주했던 살수들을 유인하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물론 그렇기도 하지. 하지만 흑도 영웅대회의 전통에 따라 영웅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는 의미가 더 크다. 만인이 보는 앞에서 몇 명이 되든 계집의 몸을 취하게 하고 곧바로 불에 태워죽이는 것.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장면이 있겠느냐?”
“영웅들의 광기를 끌어올려 그 힘을 극대화하려는 의도군요.”
“그렇다. 특히 수적들이 그런 광기에 익숙하지.”
“아, 그러고 보니 동정수로채 수적들을 환영하기 위한 특별행사로군요.”
“그렇다. 명분은 지부장님을 살해한 범인을 처형하는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몇 가지 숨은 의도가 있지.”
“네. 많이 배웠습니다. 한데 이 계집은 아무래도 조장급 천마살수 같은데, 마교가 본방을 견제하는 걸까요?”
“나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제 본방이 마교를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흑도 대동맹이 결성되고 있으니까 무림맹과 마교에 이어 우리 흑도 영웅들이 무림을 삼분하게 될 것이다. 한데 이까짓 계집의 입 하나 열게 못 만들다니. 부끄럽구나.”
“독한 계집이라서 그렇습니다. 천마살수일 가능성이 크니 상부에서도 이해할 겁니다. 어떻게 보면 진상을 밝히지 않고 이렇게 처형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지요.”
“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
“네. 사실 제가 알기로 방주께서는 이번 사건을 마교 악양 분타의 독단적인 소행으로 추측하고 계십니다. 본방이 악양무림을 장악하려고 하니 천마살수를 시켜 우리를 견제하려 한 것이지요. 솔직히 말해 무림맹에 대해 선전포고까지 한 천마가 이곳 일까지 신경을 쓰겠습니까? 물론 누구 소행인지 정확하게 알면 더 좋겠지만, 차선책으로 방주님이 오기 전에 이 계집을 처형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으음, 머리가 비상하구나. 부간수장이 된 게 운만은 아니구나. 아마 네 말대로 진행될 것 같다. 또 한 가지 비록 우리가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긴 하지만 과연 이 계집을 구하러 올 자들이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이번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될 것이다. 이제 시간이 다 되어 가니 계집을 끌고 처형대로 가자. 쇠사슬부터 풀어라.”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