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177
백무명이 이끄는 천마신교 본대 병력 십만이 십만대산에 도착한 것은 닷새 후였다.
십만대산에 도착한 후 백무명은 생사신의와 의논해 역용을 풀고 백천 무사의 얼굴로 돌아갔다.
교주 집무실에 천마와 성녀, 매영설이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무사들에게 교주 얼굴로 역용했던 사실을 알리는 것은 천마를 만난 이후로 하기로 한 상황.
백천은 생사신의와 함께 약간 긴장된 표정으로 천마전으로 향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혹여 이번에 복귀했다는 천마가 가짜라면 한바탕 싸움이 불가피했다.
무엇보다 우려가 되는 것은 성녀의 공격이었다.
성녀가 오해하고 자신에게 공격을 가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천마신교의 역사를 볼 때 성녀의 성력이 교주에게 위협이 될 가능성이 있다. 어떻게든 그녀와 싸우는 일이 없어야 할 텐데······.’
지난 닷새간 걱정이 컸던 천마와의 만남.
예상과 달리 닷새 전 보낸 지휘서신 외에 다른 서찰을 백무명에게 보내지는 않았다.
그 때문일까.
오히려 긴장이 더 되는 백무명이었다.
교주 집무실에 들어서자 예상대로 천마와 성녀, 매영설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백무명과 생사신의가 천마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천마의 얼굴은 이전에 백무명과 생사신의가 역용했던 교주 얼굴 바로 그대로였다.
너무나 자연스러웠고 역용의 흔적 또한 찾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특수한 역용술이 얼마든지 있고 개중에는 아무리 무공이 높아도 진위를 알아낼 수 없는 것도 많았다.
성녀가 미소지었다.
“어서 오세요. 백천 무사. 신의.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특히 백 무사가 세운 공은 정말 대단해요. 백 무사 덕분에 도마종, 색마종, 지옥마종 이 세 곳을 소탕했으니 이제 본교에 반역했던 칠마종이 모두 제거된 셈이군요. 교주님. 저분이 바로 제가 말씀드린 백천 무사입니다.”
성녀가 천마를 쳐다봤다.
천마가 백무명을 향해 말했다.
“셩녀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었소. 직접 보니 역시 본교의 부교주 자리를 맡을 만하오. 앞으로도 계속 부교주로서 본인을 도와주길 바라오. 아, 물론 신의 역시 그동안 고생이 많았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백무명과 생사신의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생각보다 밋밋한 환영이었다.
천마는 그 속을 알기 어려울 정도로 담담한 모습이었다.
생사신의가 물었다.
“교주님. 외람되지만 그동안 어디 계셨습니까? 그동안 왜 소식이 닿지 않은 겁니까?”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소. 낙양에 있을 때 설이와 헤어져 와룡곡에 간 적이 있었소. 그때 무림맹주 좌평을 죽인 자객을 쫓다가 그만 신선계로 들어가게 되었소. 그곳에서 평등반선이란 분을 만나 가르침을 듣고 다시 무림으로 나오다가 그만 암습을 받고 절벽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소.”
“아! 어찌 그런 일이?”
생사신의가 매우 놀라며 안색을 굳혔다.
백무명 또한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하기야 이 상황에서 놀라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긴 했다.
“어느 놈이 감히 교주님을 공격한 겁니까? 신선계에서 급히 나오느라 안 그래도 정신이 없으셨을 텐데······.”
“신의의 말씀이 옳소. 당시 상황이 급박해 특수 이동대법 대신 법보를 사용해 무림으로 왔는데 그 후유증으로 일시 공력을 상실하고 말았소. 한데 어떻게 알았는지 그놈이 나타나 나를 공격해 내 모든 것을 빼앗고 만 것이오. 놈은 특수 대법을 이용해 내가 익힌 무공을 모두 연마했고 천마령을 비롯한 내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강탈했소.”
“어찌 그런 일이······.”
생사신의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천마의 말은 계속되었다.
“당시 나는 내공을 쓸 수 없어 반격을 못 하고 결국 절벽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소. 하지만 그 직전에 놈에게 타격을 가했는데, 그것은 바로 놈이 내 몸속의 천마진기마저 빼앗아 가기에 순간적으로 진기를 역천시켜둔 것이었소. 아마도 놈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상당 기간 기억을 잃었을 것이오. 아니지. 어쩌면 아직 자신이 누군지 알 수 없을지도 모르지.”
“교주님께서도 기억을 잃으셨단 말입니까?”
“그렇소. 계곡에 떨어진 나는 모든 기억을 잃었지만, 본능적으로 운공요상을 했소. 그리고 며칠 전 극적으로 깨달음을 얻어 이전 무공을 모두 회복한 것이오. 그렇게 계곡에서 나오자마자 서장무맹이 본교 총단을 공격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부리나케 달려와 서장무맹주를 제압한 것이오. 이제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소?”
“네. 한데 교주님을 공격한 그자는 누구입니까?”
“그자는 바로 영웅맹주 백무명이오. 가증스럽게도 놈은 내게서 빼앗아 간 천마령을 이용해 마지막에 본교마저 장악하려는 것 같소.”
“영웅맹주가 확실합니까?”
“그렇소. 놈은 내가 모를 줄 알겠지만 확실하오. 하지만 당분간 이 사실은 비밀에 부칠 것이니 여기 있는 분들만 알고 계시기 바라오. 조만간 놈이 남하를 마치고 이곳 십만대산에 오면 그때 음모를 밝히고 처단할 생각이오.”
“아!”
“아!”
생사신의와 백무명이 일제히 탄성을 터뜨렸다.
특히 백무명은 다른 의미의 탄성이었다.
‘지금 이 자의 말이 과연 사실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 힘들다. 그나마 당장 백천 무사로서의 나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니 그 점은 다행이군.’
백무명이 혼란스러운 마음을 달래며 눈을 빛냈다.
천마가 신선계 평등반선 이야기까지 하는 것을 보니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느낌이 좋지 못했다.
무엇보다 비슷한 기억을 자신도 갖고 있어 더욱 혼란스러운 게 사실이었다.
“백 무사는 따로 할 말이 있소? 그래도 본교의 부교주 신분인데 할 말이 있으면 해보시오.”
“그럼 앞으로 영웅맹과 전투를 벌이실 생각입니까?”
“그렇소. 백무명 그자가 본교를 장악할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찌 그대로 당할 수 있겠소? 지금까지 놈이 본교를 이용했다면 이제는 우리가 놈을 이용할 때요. 다시 말하지만 놈이 이곳 십만대산에 들어오는 날이 놈의 제삿날이 될 것이오.”
“셩녀께서도 같은 생각입니까?”
“······.”
성녀가 대답 대신 안색을 굳혔다.
아무래도 그녀 역시 천마의 말을 완전히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사실 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다만 영웅맹주를 만나게 되면 그가 천마령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볼 생각이에요. 그가 천마령을 가지고 있다면 교주님 말씀이 맞는다고 봐야 하겠지요.”
“그럼 서장무맹과의 동맹 체결은 어떻게 된 겁니까?”
백무명이 화제를 돌렸다.
천마의 진위에 대해서는 좀 더 숙고할 필요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천마와 영웅보 대공자의 관계 역시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천마가 말했다.
“아, 그 부분은 내가 해명하겠소. 사실 원래는 서장무맹 놈들을 모두 제거할 생각이었소. 감히 본교 총단을 공격한 놈들을 어찌 살려두겠소?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놈들 병력을 이용해 영웅맹을 공격하는 게 더 낫겠다는 판단이 섰소. 서장무맹주는 나의 말에 복종해야 하니 영웅맹주가 이곳에 도착하면 서장무맹 병력으로 영웅맹 놈들을 모조리 제거할 생각이오.”
“그럼 신선계 흑반선들은 어떻게 처리할 생각입니까?”
“흑반선들의 무공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초월했기에 가능하면 타협할 생각이오.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가를 들어보고 어느 정도 들어주면 되지 않겠소? 칠마종 종주들이 모두 사라져 그들도 나밖에 대안이 없을 것이오. 그런 의미에서 이미 흑반선들과 척을 진 영웅맹주를 우리가 제거하면 좋은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오. 백 무사. 미안하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검과 손에 끼고 있는 반지를 잠시 살펴볼 수 있겠소?”
“검과 반지 말입니까?”
백무명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혹시 몰라 지존검과 지존환에 비술을 펼쳐 더욱더 평범하게 보이도록 해두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직접 보자고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렇소. 내가 쓰던 것들과 비슷해서 말이오. 나는 지금까지 영웅맹주 그놈이 내 검과 반지를 빼앗아 간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백 무사의 검과 반지도 매우 비슷하구려.”
“제 검과 반지는 평범한 겁니다.”
백무명이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지존검과 지존환을 천마에게 주었다.
꺼림칙 하기는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주지 않을 수도 없었다.
“으음, 평범해 보이나 보통 검과 반지가 아니군.”
천마가 지존검과 지존환을 살펴보며 눈을 빛냈다.
백무명이 내공을 끌어올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혹여 발생할 수 있는 천마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천마는 순순히 지존검과 지존환을 돌려주었다.
“잘 봤소. 비슷하긴 하나 내 검과 반지는 아닌 것 같소.”
“감사합니다.”
백무명이 고개를 숙였다.
“백 무사. 아니 이제는 백 부교주라 불러야겠군. 또 질문이 있으면 하시오.”
“으음, 그럼 한 가지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교주님께서 영웅맹주 그자에게 공격을 당했다고 생각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그자의 얼굴을 봤습니까?”
“암습을 당해 놈의 얼굴은 보지 못했소. 내가 알기로 영웅맹주가 기억을 잃을 때 얼굴까지 훼손되어 인피면구를 쓰고 다닌다는데 얼굴을 봤다 한들 어찌 구별할 수 있겠소? 내가 그자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따로 있소.”
“그게 뭡니까?”
“지금 밝히는 것은 곤란하오. 나중에 놈을 내가 직접 제거할 때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오. 다만 한 가지만 가르쳐준다면 놈은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오.”
“인간이 아니라고요?”
“그렇소. 그자는 이 세상에서 존재해서는 안 되는 자요. 나머지는 차차 알게 될 것이오. 피곤할 테니 다들 처소로 가서 쉬도록 하시오.”
“명을 따르겠습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 * *
부교주 처소로 돌아온 백무명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천마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는 예상과 너무 달랐다.
차라리 자신을 몰아세워 공격이라도 가했다면 반격을 가해 의문을 풀었겠지만 그는 시종 호의적이었다.
역용의 진위를 더욱 확실히 알려면 손으로 만져봐야 하는데 그럴 기회를 포착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게다가 잠깐 만났지만 천마가 가짜라고 의심할만한 사항은 발견하지 못했다.
‘천마신교 교주로서 오랫동안 생활해본 느낌은 확실했다. 그런 느낌은 아무나 낼 수 없는 게 맞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내가 그를 공격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내가 왜 그를 공격한단 말인가. 그것도 그가 신선계에서 나와 공력을 잃고 있을 때를 기다려 공격을 가했다니. 뭔가 이상하다. 게다가 서장무맹과의 관계도 수상하고.’
백무명이 좀 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서장무맹 병력을 최대한 빨리 소탕하기 위해서라도 천마의 진위를 밝혀야 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뾰족한 수는 없었다.
‘무작정 그를 제압할 수도 없고, 아무래도 영웅맹주로서 그와 직접 겨뤄봐야 진실을 알 수 있겠구나. 한데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그의 말은 무슨 뜻일까.’
백무명이 안색을 굳혔다.
천마와의 대결은 사실 그렇게 걱정되지 않았다.
그의 적수는 흑반선회주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으로, 물론 그렇다고 천마의 무공 수준을 정확히 알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천마가 한 말이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아까부터 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심마구나. 그가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내 마음에 박혔다. 인간이 아니라면 대체 뭐라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