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19
매영설.
처형대에 묶인 그녀는 자신을 탐욕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는 철혈맹 무사들을 힘겹게 봤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몸이었지만, 그래도 죽기 전에 치욕을 당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여인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이었다.
이미 간수장과 부간수장으로부터 처형 전에 어떤 꼴을 당하는지를 수없이 들은 그녀였다.
쳐녀 귀신을 면하게 해준다는 해괴한 이유였지만, 당자자인 그녀로서는 정조를 잃는 일로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깨끗하게 죽는 것이 소원이었다.
하지만 혈도가 제압당해 있어 그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악몽이다. 이 모든 게 꿈이었으면······.’
매영설이 절망 어린 심정으로 자포자기할 때.
천혈방 악양지부 총관의 말이 들렸다.
“영웅 여러분. 이 계집을 처형하기에 앞서 흑도의 전통에 따라 쳐녀 귀신을 면하게 해주실 분을 결정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와아아.
군웅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다들 기대하던 순간이었다.
게다가 매영설의 미모는 의외로 천하절색이었다.
뺨에 흉터가 있었으나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날씬하면서도 굴곡진 몸매가 모든 것을 압도했다.
옷이 피에 젖은 것 또한 몸매를 더 드러내고 있었다.
“어서 시작하시오! 어떤 식으로 진행할 것이오?”
군웅 중 한 명이 큰 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총관이 단상에 앉아 있는 동정수로채 부채주 사균(沙均)을 가리켰다.
“사 부채주께 저 계집에 대한 우선권을 드리고자 합니다. 동정수로채 영웅들을 이끌고 본방에 오신 데 대한 선물이기도 합니다. 다만 흑도 전통에 따라 도전자를 한 분 받으셔야 합니다.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허허허. 이 나이에 무슨 계집이 필요하겠소? 하지만 천혈방과 본 수채의 협력을 기념하는 의미로 흔쾌히 받아들이겠소.”
사균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단상 앞으로 나왔다.
말은 그렇게 해도 수적들이 부녀자를 납치해오면 그중 가장 미인은 자신이 먼저 취하는 희대의 색마로 유명했다.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천혈방이기에 이런 우선권을 준 것이었다.
총관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도전자를 정하겠습니다. 도전자는 원하시는 분 중에서 무공이 가장 강한 분을 한 명 뽑도록 하겠습니다.”
총관의 말에 군웅들이 술렁댔다.
원래 공개 처형 전 이런 특이한 행사는 주최 측에 상당한 정도의 융통성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지금과 같은 우선권 제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재미가 없으므로 따로 도전자를 선발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저 계집을 원하는 분은 지금 비무대 위로 올라오십시오.”
총관이 단상 아래 마련된 비무대를 가리켰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선뜻 올라오는 사람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손님 접대의 의미가 짙어 천혈방 무사들은 아무도 올라오지 않았다.
동정수로채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채주가 우선권을 가졌는데 감히 이에 도전할 사람이 있겠는가.
남은 것은 일반 흑도들이었다.
그들은 그 출신이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그 확장성 때문에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형식적이긴 하지만 도전자를 받는 것도 실질적으로 그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 또한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이유는 바로 사균의 무공 때문이었다.
여인의 음기를 이용한 일종의 색공을 연마한 그는 비록 비무라 해도 상대를 잔혹하게 죽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 악명을 듣지 못한 사람 역시 상당했다. 무엇보다 매영설의 미모가 너무 큰 유혹이었다.
젊은 낭인무사 한 명이 비무대 위로 올라서자, 덩달아 십여 명이 나섰다.
다들 얼굴에 짙은 색기가 흐르는 것이 아무래도 색공을 연마한 것 같았다.
이처럼 색공을 익힌 자들에게 매영설은 사실 절대로 놓쳐서 안 되는 영약과도 같았다.
처음에는 그들 또한 단순히 미색에 놀랐다가 그 절대음기를 느끼게 되었고 더는 주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비록 사균의 무공이 고강하다고 하나 이런 자리에서까지 거침없이 살수를 펼칠 거로 단정할 수도 없었다.
“이제 더 없습니까? 모두 열다섯 분이군요. 대진표상 한 분 더 계시면 좋겠습니다.”
총관의 말에 군웅들이 술렁였다.
그때 동정수로채 수적들이 모인 곳에서 한 명의 수적이 비무대로 올라왔다.
삼십 대로 보이는 험상궂은 인상의 사내였다.
허리에는 낡은 검 한 자루를 차고 있고, 별다른 기도도 느껴지지 않았다.
천여 명의 수적 중 한 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동정수로채 수적들에게는 그의 행동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균이 우선권을 가진 상태에서 그가 나선 것은 분명한 하극상인 것이다.
하지만 규칙상 저지할 수도 없었다.
사균이 인상을 찌푸렸다.
보는 사람이 없었다면 당장 쳐 죽였을 것이었다.
한편 비무대로 올라온 사내는 바로 백엽이었다.
매영설을 구출할 기회를 엿보던 그가 마침내 나선 것이다.
“동정수로채 소속 곽유(郭劉)라고 합니다.”
백엽이 자신이 역용한 사내의 이름을 밝혔다.
얼마가 될지 모르겠지만 당분간 이 이름으로 지내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를 저지하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백엽 일행이 소속된 제10조 조장이 발끈했다.
동정수로채는 대장선을 제외하고 원칙적으로 한배에 탈 수 있는 인원 100명을 일 개 조로 편성하는데, 조장은 선장과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조장의 권력은 막강했다.
수채 본거지에서는 채주와 부채주, 그리고 장로들의 지시를 받게 되지만 일단 항해를 하게 되면 무소불위인 것이다.
명을 듣지 않으면 즉결처분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난데없이 백엽이 비무대 위로 오르자 극도로 분노한 그가 소리쳤다.
“곽유! 어서 내려오지 못하겠느냐? 부채주님. 용서하십시오. 저놈이 미쳤나 봅니다.”
조장이 사균을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사균을 따라 제1차 지원부대를 이끌고 온 동정수로채 장로 한 명이 말했다.
“어서 처리하게. 죽여도 좋네.”
“네. 장로님.”
명을 받은 조장이 등에 멘 거대한 감산도를 꺼내 들고 비무대 위로 올라왔다.
비무대 위에 서 있던 도전자 후보들이 일제히 옆으로 물러났다.
백엽은 담담한 모습 그대로였다.
조장이 당장에라도 도를 내리칠 듯하면서 소리쳤다.
“죽고 싶지 않으면 내려가자. 혹시 술을 처먹었나? 부채주님께 진상된 선물을 네놈이 탐내다니 어이가 없구나.”
“조장님이 무슨 상관입니까? 저는 규칙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지부장 대행님. 제가 잘못한 겁니까?”
백엽이 오늘 대회 주최자인 이복승을 쳐다봤다.
이복승이 난감해하다가 급히 사균에게 전음을 날렸다.
「사 부채주님. 어차피 졸개에 불과하니 첫판에서 떨어질 겁니다. 그냥 내버려 두시지요. 제까짓 게 어쩌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럴 리도 없지만, 혹시 도전자로 채택되면 제가 놈의 목을 베겠습니다. 오히려 제가 죄송합니다. 얼굴도 모르는 녀석인데 계집의 미모를 보고 환장한 것 같습니다.」
사균이 전음을 보낸 후 제10조 조장에게 말했다.
“그대로 두게. 이왕 올라왔으니 자신의 한계를 느끼도록 해주는 것도 좋겠지. 어디까지나 우리는 손님이니까 순리대로 풀도록 하세.”
“명을 받들겠습니다.”
조장이 백엽을 한번 노려본 후 비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백엽은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이후 벌어진 대결은 일대일 대결이었다.
총 16명이 무작위로 조를 짜서 대결을 벌이는 것으로, 흑도 비무의 특징상 상대를 죽여도 상관없는 생사결이었다.
다만 비무대 밑으로 떨어지면 패배한 것으로 간주하기로 해 완전한 생사결은 아니었다.
맨 마지막으로 올라와 마지막 비무조가 된 백엽은 대기석으로 갔다.
도전자 한 명당 두 명의 조력자를 둘 수 있는 비무 규칙상 두 명의 수적이 백엽 옆으로 왔다.
바로 생사신의와 성녀였다.
두 사람 역시 사균을 비롯한 수적들의 싸늘한 시선을 받았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교주님. 어쩌실 계획입니까? 도전자로 뽑혀 사균 저자까지 상대하실 겁니까?」
「그렇소. 신의. 더 좋은 계획이 있소?」
「그건 아닙니다. 문제는 사균까지 이겼을 경우지요. 어차피 이겨도 종국에는 살수 조장을 처형대로 다시 보내야 한다는 것은 아시고 계시겠지요?」
「물론이오. 다만 매 조장을 처형대로 보내는 일은 없을 것이오.」
「계획이 있으시군요.」
「계획은 따로 없소. 힘으로 밀어붙일 생각이오. 성녀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일단 사균 저자를 반드시 죽이셔야 합니다. 그러면 수적들이 동요할 것이고, 일부는 교주님 휘하로 들어올 겁니다. 저희가 바람을 잡겠습니다. 이후 매 조장 처형에 반대하시면 천혈방과 대치할 수 있을 겁니다.」
「나와 생각이 비슷하군.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정 안되면 살계를 열어 아예 이곳에 있는 놈들의 씨를 마르게 하겠소.」
「그건 좋지 못합니다. 지금으로서는 동정수로채부터 장악한 후 천혈방과 싸우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동정수로채주가 오는 모레까지 대치 상태를 이어가십시오.」
「동정수왕(洞庭水王)이 오기를 기다려 놈을 죽이라는 것이오?」
「네. 동정수로채만 장악하면 삼천 병력을 얻게 되는 셈이니 흑도 분열을 조장하는 단초로 삼을 수 있을 겁니다.」
「알겠소.」
백엽이 전음을 날린 후 비무대 위를 쳐다봤다.
벌써 대결이 시작되고 있었다.
예상대로 피를 튀기는 싸움이었다.
정파처럼 서로 봐주는 경우는 없었다.
봐주다가 혹시 자신이 죽거나 다칠 수도 있으므로 처음부터 살수를 펼치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하지만 덕분에 시합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다.
백엽이 첫 번째 시합에 나선 것도 금세였다.
“동정수로채 소속 곽유와 살인검객(殺人劍客)의 대결이오.”
와아아.
물의를 일으킨 백엽이 나서자 오히려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동정수로채 수적들은 사균의 눈치를 보느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한 분위기 때문일까.
지금까지 암암리에 수백 명의 부녀자를 납치해 간살한 살인검객이 말했다.
“어디 가나 꼭 튀는 놈이 있지요. 제가 수로채 영웅들을 대신해서 저놈을 처단해드리겠습니다. 죽여도 되겠지요?”
“물론이오!”
제10조 조장이 기뻐하며 화답했다.
총관이 인상을 찌푸렸다.
“잡담은 그만하고 준비하시오. 북소리가 울리면 대결을 시작하시오. 비무대 밑으로 떨어지면 패배로 간주하겠소. 생사결이니 죽여도 좋소.”
둥둥둥.
북소리가 울리자 먼저 공격을 가한 사람은 바로 살인검객이었다.
부녀자의 음기를 흡수해 내공이 고강해진 그는 군웅들 앞에서 자신의 검법을 자랑하고 싶었다.
슈우욱.
일직선으로 빠르게 나아가는 쾌검.
오직 일초에 불과하지만 지금까지 실패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살인검초였다.
살인검객의 검이 백엽의 목을 꿰뚫기 직전.
가만히 서 있기만 하던 백엽이 옆으로 신형을 움직여 검을 피한 후 곧바로 앞으로 나아갔다.
스스슷.
비무대 위를 미끄러지듯이 움직이는 그의 모습은 마치 유령과도 같았다.
살인검객이 피하려고 했으나 가공할 기세에 압도되어 꼼짝도 하지 못했다.
거대한 해일 앞에 속수무책이라고나 할까.
무심한 표정의 백엽이 우수를 뻗어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우두둑.
목뼈가 부러진 살인검객이 고개를 옆으로 꺾고 허물어졌다.
쿵.
너무나 빠르고 간단한 한 수.
군웅들이 일시 적막에 휩싸였다가 생사신의와 성녀의 박수를 시작으로 함성이 쏟아졌다.
와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