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20
“도전자를 결정하는 최종 시합이오. 동정수로채 소속 곽유와 음양서생(陰陽書生) 두 분은 비무대에 오르시오.”
와아아.
군웅들의 함성과 함께 백엽과 음양서생이 삼장 정도 사이를 두고 대치했다.
각각 세 번의 시합을 모두 승리하고 올라온 고수들이었다.
무엇보다 기대를 모으는 것은 두 명 모두 상대를 일격에 죽였다는 점이었다.
백엽은 세 명의 상대 모두 목뼈를 부러뜨렸다.
음양서생은 자신의 독문 절기인 음양신장(陰陽神掌)으로 상대를 피떡으로 만들었다.
강호에서의 위명은 단연 음양서생이 독보적이었다.
색공을 익힌 것으로 알려진 그는 일정한 거처 없이 천하를 떠도는 낭인무사였다. 그 무공이 매우 높아 절정고수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한데 그런 그가 갑자기 매영설 쟁탈전에 등장한 것이다.
사실 처음 그가 비무대 위로 올라왔을 때 음양서생인 것을 알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검푸른 빛의 음양신장은 강호에 널리 알려져 있어 금세 정체가 드러났다.
음양서생 역시 자신의 신분을 속이지 않고 처음 댄 가명 대신 진짜 별호를 밝혔다.
“후후후! 수적치고는 대단한 무공을 지녔더군. 하지만 노부의 상대는 되지 않네. 지금이라도 기권하면 목숨은 살릴 수 있을 걸세. 이만한 일로 목숨을 건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
음양서생의 말에 군웅들이 술렁였다.
겉으로 봐서는 사십 대로 보였는데, 노부라는 말이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하기야 음양서생이란 별호가 유명세를 치른 지도 벌써 수십 년째였다.
그에 대한 소문은 두 가지.
첫째는 무공이 매우 고강하다는 것.
둘째는 색공을 상승무공으로 승화시켰고, 이를 위해 적어도 천여 명의 부녀자를 희생양으로 삼았을 거라는 추측이었다.
하지만 그는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 그 때문에 무림공적으로 지정되지도 않았다.
다만 음기가 뛰어난 미인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그였다. 여인이라면 음양서생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백엽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음양서생이 처형대에 매달려 있는 매영설을 보며 눈을 빛냈다.
‘괜찮은 미인이 없나 한번 구경 왔을 뿐인데, 저런 절대음녀가 있었을 줄이야. 저년의 음기를 흡수하면 필생의 숙원이었던 음양신공(陰陽神功)을 대성할 수 있다. 음양신공만 대성하면 다가올 철혈대회에서 녹림왕을 꺾고 철혈맹주가 될 수도 있으리라.’
음양서생이 미소를 지었다.
그의 나이 올해 백 살이었다.
젊게 보이는 것은 부녀자 천여 명의 음기를 흡수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익힌 음양신공은 대성할 때까지 끝없이 여인의 음기를 필요로 하는데, 이제 거의 막바지에 달해있었다.
‘저년 하나면 충분하다. 고생 끝의 낙이라더니 이제야 내가 목표한 음신(陰神)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구나.’
음양서생이 우수를 천천히 들었다.
백엽의 무공 경지를 알 수 없어 음양신장을 극성으로 발출할 생각이었다.
백엽은 아무 말도 없었다.
하지만 이전에 음양서생에 관해 보고를 받은 적이 있긴 했다.
‘음양서생이 익힌 음양신공이 원래 본교 무공이라고 했던가. 대성하게 되면 놀라운 위력을 보인다고 했지. 쉽게 볼 상대는 아니다. 최소한 본교 장로급 고수다.’
백엽이 자세를 바로 했다.
그 역시 상대를 경시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선공을 가한 사람은 바로 음양서생이었다.
쏴아아.
검푸른 빛의 광채가 장심에서 쏟아져 나오며 삽시간에 백엽의 전신을 보자기처럼 감쌌다.
음양서생이 이전 비무에서 상대했던 장력과는 천지 차이인 위력이었다.
이 대결의 승자와 대결해야 하는 사균의 안색이 급격히 굳어졌다.
군웅들 역시 매우 놀라며 백엽의 반격을 기대했다.
하지만 백엽은 그대로 서 있을 뿐이었다.
음양서생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구성의 음양신장을 네놈이 어찌 막을 수 있겠느냐? 아마도 가루가 될 것이다. 벌써 기세에 눌려 얼어붙은 것을 보니 내가 너무 과대평가했구나.’
사균과의 시합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음양서생이 살짝 후회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실력을 완전히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백엽이 우수를 들어 장력을 날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분명 음양신장이 가슴을 강타하기 직전이었는데, 그의 우수가 어느샌가 올라와 있었다.
백엽이 날린 금빛 장력이 음양신장을 무력화시키고 앞으로 뻗어 나간 것은 순식간이었다.
음양서생이 매우 놀라며 자신의 최대절기인 음양신공을 발출했다.
음양신공은 내공으로 다른 무공의 기반이 되지만, 자체 공격으로도 사용할 수 있었다.
바로 음양강기였다.
절정고수 이상만 발출이 가능하다는 강기 무공이 펼쳐진 것이다.
공 모양의 강기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백엽이 날린 장세를 막았다.
군웅들이 경악할 때.
꽈앙 하는 폭음과 함께 비무대 전체가 급격히 흔들리며 먼지구름이 일었다.
“크윽!”
비명과 함께 급히 십여 걸음 물러난 사람은 바로 음양서생이었다.
비무대 끝까지 도달한 그는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렸다. 그것도 잠시 두 손을 허공에 대고 허우적거리던 어느 순간 칠공에서 피분수가 솟구치며 허리가 꺾였다.
우당탕.
비무대 밑으로 떨어져 대자로 뻗은 그를 총관이 급히 확인해보니 이미 숨진 후였다.
다시 이어지는 침묵.
생사신의와 성녀가 박수를 보내자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
“정말 대단하다!”
“엄청난 위력이었다!”
“미쳤군!”
찬사가 쏟아졌다.
솔직히 같은 흑도로 분류되긴 했지만, 음양서생은 다들 꺼리는 인물이었다.
그가 나타나면 반드시 미인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그 미인이 자신의 가족이 안될 거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겠는가.
“곽유의 승리요!”
총관이 정식으로 승리 선언을 하자 환호성이 다시 터져 나왔다.
이제 남은 것은 백엽과 사균의 대결.
“곽 무사. 휴식 시간이 필요하오?”
총관의 물음에 백엽이 담담히 말했다.
“필요 없소. 바로 시작했으면 좋겠소.”
그의 말에 군웅들의 시선이 사균에게 모였다.
사균이 안색을 굳히고 있다가 돌연 껄껄 웃었다.
“허허허. 곽유라고 했나? 이제까지 실력을 숨긴 것이냐?”
“그렇습니다. 부채주님.”
백엽이 깍듯하게 대답했다.
어쨌듯 아직은 대외적으로 상관이기 때문이었다.
총관이 물었다.
“사 부채주님. 바로 상대하시겠습니까?”
“아니오. 곽유 저 친구에게 계집을 양보하겠소.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이미 늙어 계집에 대한 흥미를 잃었소. 무엇보다 이곳으로 오기 전 채주님께서 우리 무사들의 단합을 강조하셨소. 한데 내 어찌 수하와 싸울 수 있겠소? 그것도 어차피 처형해야 할 계집을 놓고 말이오. 곽유는 들어라. 네 녀석의 무공이 가상하니 상으로 저 계집을 주겠다. 실컷 즐겨라. 모레 채주께서 오시면 너를 본 수채의 장로로 추천하겠다.”
“으음······.”
예기치 못한 사태에 백엽의 안색이 조금 굳어졌다.
‘이게 다 음양서생 때문이다. 혹시라도 음양신공을 대성했을까 우려되어 내 실력을 드러냈는데, 사균 저자가 겁을 집어먹었구나. 동정수왕이 오게 되면 그때야 나를 제거하려 할 것 같군.’
백엽이 당황했으나 지금 상황에서 무조건 사균을 죽일 수도 없었다.
성녀를 쳐다보니 그녀가 급히 전음을 보내왔다.
「교주님. 감사하다고 하세요. 기회는 또 있을 겁니다.」
백엽이 희미한 미소를 지은 후 사균에게 고개를 숙였다.
“부채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사죄도 드립니다. 제가 너무 건방졌습니다. 하극상을 저지른 셈이니 벌을 내려주십시오.”
“아니다. 너 같은 인재가 본 수채에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구나.”
사균이 표정을 밝게 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여간 쓰라린 것이 아니었다.
누가 봐도 자신이 겁을 먹고 물러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놈! 두고 보자. 채주님과 장로들이 전부 도착하면 네놈은 죽은 목숨이다.’
“감사합니다. 부채주님.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백엽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총관이 말했다.
“상황이 또 이렇게 되는군요. 사 부채주님의 양보로 저 계집의 소유권은 곽 무사에게 돌아갔다는 것을 선언합니다.”
와아아.
짝짝짝.
백엽이 군웅들에게 포권했다.
어찌 되었든 흑도 무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준 것은 사실이었다.
이제 그를 일개 수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사정이 있어 실력을 숨기고 일시 수적으로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총관이 말했다.
“이제 저 계집을 데리고 특별막사로 가서 마음껏 즐기시오. 다만 한시진 후 다시 데려와 처형대에 묶어야 할 것이오.”
“알겠소.”
백엽이 고개를 끄덕인 후 매영설에게 다가갔다.
매영설은 감기는 눈을 억지로 뜨고 모든 시합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혹시나 했던 구출 작전도 없었고, 결국 험상궂은 사내가 최종 우승을 차지해 자신의 몸을 취하기 직전이었다.
‘어떻게든 치욕을 당하기 전에 자진해야 한다.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이미 살아남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그녀였다.
‘아혈만 풀리면 즉시 혀를 깨물고 자진한다. 그러려면 이자를 잘 구슬려야겠구나.’
매영설이 벌써 코앞으로 다가온 백엽을 쳐다봤다.
침을 뱉고 싶었지만 아혈이라도 풀기 위해서는 참아야 했다.
억지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아예 말도 못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아혈을 풀어달라는 의사표시 자체를 할 수 없었다.
‘큰일 났구나. 이대로 당해야 한단 말인가.’
매영설이 또다시 절망할 때 백엽이 그녀를 한 손으로 품에 안았다.
백엽은 무심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군웅들이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짝짝짝.
“잘해보시오!”
“기가 막힌 계집인데 아깝군!”
“꼭 죽여야 하나?”
군웅들이 떠들어대는 가운데 백엽은 매영설을 안고 특별막사로 들어갔다.
생사신의와 성녀가 막사 밖에서 경계를 섰다.
총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영웅 여러분! 지금부터는 휴식 시간으로 음식과 술이 나갈 겁니다. 다들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와아아.
* * *
백엽이 매영설을 한 손으로 안고 막사 안으로 들어갈 때 그녀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수치심을 느꼈다.
이제 막사 안에 두 사람만 남게 되면 그 이후의 일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한데 매영설은 백엽의 품 안에서 실로 이해하기 힘든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는 그게 무엇인지 몰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아! 이 느낌은 바로······ 교주님······.’
그랬다.
놀랍게도 그녀는 십 년 전 마적 떼로부터 자신을 구해주던 백엽을 느낀 것이다.
정확하게 말해서 그때 상황을 떠올린 것으로 두려움에서 해방되던 그 느낌이었다.
체취도 아니었고 그 어떤 뭔가도 아니었지만 마음을 편히 하게 하던 그것.
그것은 신뢰였다.
십 년 전 살수를 지원한 것도 그러한 마음을 다시 찾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녀는 곧바로 극심한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을 범하려는 험상궂은 사내에게서 교주를 느꼈다는 그 사실 자체에 분노한 것이다.
그것은 또 다른 부끄러움이었다.
지난 십 년간 소중히 간직한 어떤 신념 같은 것이 무너지고 있었다.
‘아! 어찌 이런 일이······.’
매영설이 망연자실해 할 때.
백엽은 그녀를 침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대뜸 손으로 그녀의 왼쪽 뺨을 쓰다듬는 것이 아닌가.
각오는 했었지만 실제 닥치니 매영설은 앞이 캄캄했다.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또 한 번의 이율배반적인 느낌이 있었다.
검상으로 인해 쓰라렸던 뺨의 통증이 서서히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백엽은 내공을 일으켜 매영설의 뺨에 난 흉터를 완벽히 제거한 다음 명문혈을 통해 내공을 넣어주기 시작했다.
그의 내공 치료는 내외상을 함께 치료하는 효능이 있었다.
매영설의 몸은 고문으로 인해 최악의 상태였기에 서둘러야 했다.
자칫 늦어지면 후유증이 생길 수 있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지 않고 치료부터 한 이유였다.
매영설은 몸과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과 함께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