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21
매영설이 깨어난 것은 피리 소리 때문이었다.
삘리리리.
특별막사 안에서 은은히 울려 퍼지는 피리 소리.
매영설은 그 소리를 듣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한쪽 구석에서 자신을 강제로 데려왔던 사내가 피리를 불고 있었다.
‘천마음이다!’
매영설이 깜짝 놀라며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천마음은 천마령(天魔鈴)과 함께 교주의 신분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징표였다.
물론 그 얼굴이 가장 확실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백엽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지휘부 고수들을 제외한 일반 무사들은 특히 더 그랬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 무사들은 교주를 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매영설은 운이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있었다.
십 년 전이지만 백엽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으니까.
“교주님을 뵙습니다!”
매영설이 침상에서 내려와 오체투지를 하려 했으나, 백엽이 그녀를 제지했다.
매영설은 백엽의 무형지기 때문에 그대로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네가 천마살수 제66조 조장 매영설이냐?”
“네. 교주님.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매영설이 벅차오르는 감동을 억누르고 무심히 물었다.
살수는 원래 무정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다만 막사 밖에 적들이 있으므로 최대한 소리를 죽였다.
백엽이 미소를 지었다.
“음파를 차단했으니 일부러 조용히 말할 필요는 없다. 아직 반시진 정도 시간이 남았다. 여유를 가져라.”
“네. 교주님.”
매영설이 침상에서 고개를 계속 숙인 채 대답했다.
“너와 상의할 일이 있다. 일단 우리 쪽 사람부터 소개해주지.”
백엽이 밖으로 전음을 보내자, 생사신의와 성녀가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교주님. 치료가 끝났습니까?”
“그렇소. 신의가 다시 한번 살펴주시오.”
“네.”
생사신의가 매영설의 맥을 짚었다.
매영설은 막사 밖에서 감시하던 수적 두 명이 난데없이 들어와 놀랐으나, 이내 그들 역시 백엽처럼 역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완전히 치료되었습니다. 역시 교주님의 내공 치료는 놀랍군요. 뺨과 어깨 등 외상 역시 완벽하게 아문 것 같습니다. 다쳤다는 표시가 전혀 없습니다.”
“아!”
매영설이 탄성과 함께 자신의 뺨을 만졌다.
백엽이 자신의 뺨을 쓰다듬던 기억이 나서 얼굴이 붉어졌다.
성녀가 품속에서 동경을 꺼내 주었다.
“이걸로 보도록 해요. 흉터가 말끔하게 사라졌네요. 정말 아름다운 얼굴이에요.”
“감사합니다.”
허겁지겁 동경을 받은 매영설이 자신의 얼굴을 봤다.
평생 지울 수 없을 것 같았던 흉터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교주님. 치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영설이 거듭 고개를 숙였다.
“불편한 점은 없느냐? 운공을 해보아라.”
“네.”
매영설이 가부좌를 한 채 운기조식을 했다.
아무리 치료가 되었다고는 하나 스스로 운공을 하는 것만큼 상태를 정확하게 아는 방법은 없었다.
다만 시간이 많지 않은 점을 고려해 최대한 빨리 일주천을 했다.
“내공이······ 반갑자 정도 증가한 것 같습니다.”
매영설이 의아해했다.
몸이 이전보다 가볍다고는 느꼈다. 하지만 내공이 삼십 년이나 늘어난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생사신의가 미소를 지었다.
“천마단(天魔丹)을 복용시켰군요. 매 조장. 축하하네.”
“아!”
매영설이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천마단은 천마신교 최고의 영단으로 역대 교주들만이 그 제조방법을 알고 있었다.
비록 여러 알 복용은 안 되지만, 한 알만으로 곧바로 반갑자 내공을 증진할 수 있었다.
이는 치료 후 허약해진 신체를 튼튼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어, 매영설은 곧바로 이전보다 강해진 전투력을 갖게 된 것이다.
“감사합니다. 교주님. 충성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상황이 급박해 복용시킨 것이니 마음에 둘 필요 없다. 싸움이 벌어져 이곳을 탈출할 상황이 되면 네가 짐이 되어서는 안 될 게 아니냐?”
“당연합니다. 절대 짐이 되지 않겠습니다.”
“아직 멀었다. 하지만 자질이 우수하니 내게 무공을 배우게 되면 일취월장할 것이다.”
“아! 교주님께서 직접 무공을 가르쳐주신다는 겁니까?”
매영설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명을 받고 작은 공을 세우긴 했으나, 그 상으로 교주에게 직접 무공을 배우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게다가 아직 백엽은 제자를 두지 않고 있었다.
‘그래. 그저 한두 가지 무공을 가르쳐주시는 것이겠지. 내가 감히 교주님을 사부님으로 모실 생각까지 하다니.’
매영설이 다시 냉정함을 유지했다.
하지만 백엽의 다음 말은 그녀의 귀를 의심케 하기에 충분했다.
“이제부터 너는 나를 사부님으로 불러도 좋다.”
“아!”
매영설이 말을 잇지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성녀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매 조장. 뭘 하고 있어요? 어서 교주님께 구배지례를 드리세요.”
“아, 네.”
매영설이 침상에서 내려와 백엽을 향해 절을 했다.
“사부님을 뵙습니다.”
“그래. 앞으로 설아라고 부르겠다.”
“네.”
“설이 네가 나의 첫 번째 제자가 된 것은 여기 있는 생사신의와 성녀가 증인이 되어줄 것이다.”
매영설이 입을 떡 벌렸다.
신분이 높다고 생각했지만 두 사람이 생사신의와 성녀였을 줄이야.
하지만 그녀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자신의 신분 역시 그들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을.
교주의 제자, 그곳도 대제자 신분은 교내에서 장로급 대우를 받게 되는 것이다.
백엽이 그런 그녀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설이가 십 년 전 그 아이였을 줄이야. 어쩐지 이름이 낯설지 않더라니.’
백엽이 눈을 빛냈다.
그가 매영설을 구해준 사실을 기억해낸 것은 바로 그녀의 손목에 있던 작은 흉터 때문이었다.
당시 매영설은 마적에게 죽임을 당하기 전 발버둥을 치다가 그만 손목을 베였다.
백엽은 마적떼를 몰살시킨 후 그녀에게 응급 치료를 해줬으나 당시에는 의술이 부족해 작은 흉터가 남게 되었다.
백엽이 이번에 치료 도중 그 흉터를 발견했고, 곧바로 십 년 전의 일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의 아쉬움 때문에 이후 생사신의에게 의술을 배우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백엽이 담담히 말했다.
“너를 제자로 받은 것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 십 년 전의 얼굴이 아직 남아 있구나.”
“아!”
매영설이 그제야 모든 사실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다.
“기억하고 계셨군요. 교주님.”
“그렇다. 처음 네 이름을 듣고 낯설지가 않았지. 얼굴을 보고 더욱 그랬고. 그러다가 네 손목에 나 있던 흉터를 보고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었다. 이제는 그 흉터 역시 없어졌지만 말이다.”
“아!”
매영설이 자신의 오른쪽 손목을 쳐다봤다.
백엽의 말대로 손목의 흉터 역시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감사합니다. 교주, 아니 사부님. 그래도 옛 추억을 되살릴 수 있는 흉터였는데 시원섭섭하네요.”
“그래. 이제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막사 밖에 나가서 할 일에 대해 논의해보도록 합시다.”
백엽이 생사신의와 성녀를 쳐다봤다.
매영설 또한 아직 살수 조장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흥분을 가라앉혔다.
적이 삼천 명이나 있는 호랑이 소굴에 있는 그들이었다.
자칫 잘못하면 빠져나가지 못할 수도 있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사균 그자를 죽이는 데 실패했고, 이제 곧 막사 밖으로 나가면 설이를 죽이려고 할 것이오.”
“교주님께 복안이 있는 것 같네요.”
성녀의 말에 백엽이 미소를 지었다.
“잠시 생각해봤는데 무작정 천혈방 놈들과 싸울 수는 없을 것 같소. 동정수로채를 어느 정도 장악하기 전까지는 말이오. 그래서 지부장 대행이라는 이복승 그자를 공략해야 할 것 같소.”
“어떤 식으로 말인가요?”
성녀의 물음에 백엽이 자기 생각을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 정도 행동 계획을 세웠을 무렵.
막사 밖에서 간수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다 되었소. 어서 계집을 끌고 나오시오.”
“알겠소.”
백엽이 매영설을 데리고 막사 밖으로 나왔다.
생사신의와 성녀가 뒤따른 것은 물론이었다.
백엽이 매영설을 데리고 처형대 위로 다시 올라오자, 군웅들이 술렁였다.
개중에는 놀라는 사람도 많았는데 매영설의 미모 때문이었다.
흉터가 사라지고 내공 상승으로 피부까지 좋아지자 그 미모가 매우 돋보였다.
감탄성과 함께 아쉬워하는 사람도 많았다.
“저렇게 아름다운 계집을 죽여야 한다니.”
“그래도 지부장을 죽였으니 어쩔 수 없지.”
“곽유란 저 사람은 좋았겠군. 그래도 계집의 몸을 차지했으니.”
군웅들이 너도나도 한마디씩 했다.
총관이 말했다.
“곽 무사. 계집을 두고 내려가시오. 우리가 묶겠소.”
“그럴 수는 없소.”
백엽이 담담히 말했다.
그러면서 한 손으로 잡고 있던 매영설을 성녀에게 넘겨주었다.
매영설은 이미 혈도를 풀었지만, 일부러 계속 제압당한 척했다.
“무슨 뜻이오? 계집을 처형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오?”
총관이 언성을 높였다.
지부장 대행 이복승 또한 자리에서 일어나 분노를 표시했다.
“곽 무사. 지금 뭐 하자는 것이오?”
“나는 진실을 밝히고 싶을 뿐이오. 지부장 대행께 묻겠소? 무엇 때문에 조도생 지부장을 암살하라고 지시했소?”
“뭐라고? 내가 무슨 지시를 내렸다는 말이냐?”
이복승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백엽은 냉담했다.
“이미 계집이 실토했소. 그대가 지부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암살을 지시했다고.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살수들에게 일부러 가짜 마교 무공 흔적을 남기게 했다는 것이오. 그대의 죄를 마교 쪽에 덮어씌운 셈이지. 죄상이 드러났는데 할 말이 있소?”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어서 저자를 제압하라.”
이복승이 수하들에게 명을 내렸다.
그가 부릴 수 있는 천혈방 무사는 천여 명.
매영설과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은 바로 간수장과 부간수장이었다.
두 사람 역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 제일 먼저 움직였다.
“곽 무사. 어서 비키시오. 계집은 우리가 인수하겠소.”
“못하겠다면?”
“그러면 부득이 무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소.”
간수장과 부간수장이 백엽 앞으로 다가왔다.
당장에라도 합공을 가할 태세였다.
하지만 자신들의 실력을 아는지 위협만 하고 실제 공격은 가하지 않았다.
“모두 한통속이었군. 나를 죽여 입막음할 생각이냐? 좋다. 이렇게 된 이상 나도 물러서지 않겠다. 계집 역시 이제 내 소유이니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진실을 폭로하는 대가로 목숨을 살려주기로 약속했으니까. 무엇보다 이제 내 여자가 되었으니 감히 건드린다면 절대 용서치 않겠다. 이건 천혈방주가 와도 달라지지 않는다.”
백엽이 말을 한 후 우수를 한번 흔들었다.
순간 간수장과 부간수장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그대로 쓰러져 즉사했다.
매영설로부터 그들 두 사람이 직접 고문을 가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곧바로 심맥을 끊어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천혈방 무사들이었다.
이복승이 발끈했다.
“뭣들 하느냐? 어서 저놈과 계집을 죽여라. 저놈을 돕는 자들도 예외가 없다.”
“흥! 살인멸구를 하려 하다니! 죄가 없다면 천혈방주가 도착한 후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어떠하냐?”
백엽이 전혀 위축되지 않고 소리쳤다.
추측하기 힘든 내공이 담겨 있어 공격하기 위해 다가오던 천혈방 무사들이 주춤했다.
이복승이 옆에 있던 식객들을 쳐다봤다.
그들은 천혈방 총단에서 급파된 고수들로 모두 다섯 명이었다.
하나 같이 절정고수로 혹시라도 영웅회 쪽에서 기습 공격을 가해올 것에 대비한 무력 자원이었다.
이복승이 그들을 쳐다본 이유는 명확했다.
과연 그들이 백엽을 제압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한데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설마 나를 의심하는 것이오?”
“그건 아니오. 하지만 저자는 동정수로채 소속이니 저쪽에서 해결하도록 하는 게 좋겠소.”
식객 중 대표로 보이는 죽립인 한 명이 말했다.
죽립을 깊게 눌러쓴 그는 몸 전체가 한 자루 검처럼 예리한 기도를 뿜어내고 있었다.
“파검객(破劍客)의 의견이 그러하다니 따르겠소.”
이복승의 말에 군웅들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파검객이라면 무림백대고수가 아닌가.”
“절정고수 중에서도 상급에 해당한다고 들었는데, 천혈방 식객으로 있었다니!”
“엄청난 고수가 있었군.”
군웅들이 앞다투어 말을 뱉어냈다.
무림백대고수.
이 넓은 무림 천하에 무공으로 백 위 안에 든다는 것.
그것은 말이 쉽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 단적인 예로 무림인 절대다수가 자신의 주위에 그런 백대고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
군웅들의 시선이 차츰 사균에게 모였다.
사균이 급히 말했다.
“부채주 권한으로 곽유 저놈을 본 수채에서 퇴출하겠소. 죽이든 살리든 알아서 하시오. 이제 저놈과 우리 동정수로채는 아무런 상관이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