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22
무림문파에서 퇴출이란 보통 파문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냥 내쫓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자파 무공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려고 단전을 폐하거나 사지 근맥을 자르는 것이 그 예다.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는 때는 그저 자파 무공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는 것으로 그치는 경우도 있긴 했다.
물론 그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엄한 벌칙이 가해지지만 그나마 가장 운이 좋은 경우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정파의 경우에 한하며, 흑도의 경우 대부분 예외 없이 더욱더 엄한 규율이 있었다.
가장 가벼운 경우가 손가락을 자르는 것인데, 암흑가 조직의 경우 아예 손목을 자르는 경우도 많았다.
수적의 경우는 더욱더 심했다.
지금 군웅들의 관심사는 과연 동정수로채에서 백엽을 아무 벌도 가하지 않고 내쫓는가였다.
하지만 사균은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이복승이 당황해하며 물었다.
“우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겁니까? 제가 알기로 동정수로채에 몸담았다가 나오려면 왼팔을 잘라야 한다던데 잘못 알고 있었던 겁니까?”
“원칙은 그렇지만 그것 역시 재량입니다. 채주님께서 안 계시는 지금 제가 마음대로 저자의 팔을 자르기는 힘들 것 같군요.”
“그게 아니고 곽유 저자의 무공이 부담되어서 그러는 것이 아닙니까?”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본 수채 무사들이 저자에게 당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죽은 무사들은 천혈방 소속이니 알아서 처리하십시오. 우리가 저자를 보호하지 않겠다고 해준 것만 해도 성의를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으음······.”
이복승이 안색을 굳혔다.
간수장과 부간수장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사균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가 다시 파검객에게 전음을 보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곽유 저놈의 무공이 너무 높아 우리 희생이 매우 커질 것 같은데, 그렇다고 지원을 온 동정수로채에게 계속 강요를 할 수도 없고 진퇴양난이오.」
「내가 처리하겠소. 본방의 체면이 걸린 일이라 그냥 내버려 두면 나중에 방주께서 질책하실 것이오. 한데 정말 지부장 암살과는 아무 관계가 없소?」
「그대 역시 조사에 참여하지 않았소? 지부장님 암살은 마교 악양 분타의 독단적 소행이라는 잠정 결론을 내린 것도 그대가 아니오?」
「그렇긴 하오. 마교 무공은 확실했으니까. 사실 지부장 대행께서 어떤 식으로든 가담했다면 내가 이미 간파했을 것이오.」
「믿어줘서 고맙소. 아마도 저놈이 계집의 미모에 넘어가 이 짓거리를 벌이는 것 같소. 계집을 품어보니 죽이기가 아까운 것이지. 하지만 이렇게 무도하게 나올 줄이야. 어서 처리해주시오.」
「알겠소.」
파검객이 고개를 끄덕인 후 백엽을 향해 말했다.
“귀하는 천혈방 무사 두 명을 아무 이유 없이 죽였소. 본인은 식객으로 그냥 두고만 볼 수 없소. 생사결을 제의하오.”
“좋소.”
백엽이 담담히 말하며 비무대 위로 올라섰다.
파검객 역시 비무대 위로 천천히 걸어갔다.
무림백대고수라는 위명에 맞게 매우 침착한 걸음걸이였다.
군웅들이 긴장하며 두 사람의 대결을 기다렸다.
한 명은 절정고수로 알려진 음양서생을 일장에 죽인 자요, 한 명은 말로만 듣던 무림백대고수였다.
만일 백엽이 파검객을 이긴다면 무림백대고수의 영예는 백엽이 이어받게 될 것이었다.
백엽과 파검객의 대치가 시작되었다.
삼장 거리를 둔 두 사람.
둘 중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발검 역시 아무도 하지 않았다.
백엽이 눈을 빛냈다.
‘파검객의 명성은 익히 들었는데, 이 정도로 고수일줄은 몰랐군. 역시 백대고수에 들만하다. 죽이기에는 아깝군. 본교로 들어왔으면 능히 장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실력이다.’
백엽이 잠시 생각에 잠겼을 때.
파검객이 천천히 검을 뽑았다.
묵빛의 검신이 드러났다.
“어서 그대도 검을 뽑으시오.”
파검객의 말에 백엽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소.”
“이런 건방진! 나를 모욕하는 것이냐?”
파검객이 발끈하며 검을 수직으로 세웠다.
순간, 검이 흐릿해지며 십여 개로 늘어나는 게 아닌가.
군웅들이 경악한 것은 물론이었다.
“분검술(分劍術)이다!”
“절정고수라 해도 쉽게 펼칠 수 없다는 분검술을 보다니!”
“대단하군!”
군웅들이 크게 술렁일 때.
검의 숫자는 모두 열여덟 개로 불어났다.
그 검들이 백엽을 부채꼴 모양으로 에워쌌다.
“이래도 검을 뽑지 않겠느냐?”
파검객이 소리쳤다.
백엽이 인상을 찌푸렸다.
‘평소에는 조용하다가도 자존심을 건드리면 광기를 나타낸다더니. 천혈방에 몸을 의탁한 것도 광기 때문에 무고한 사람을 여럿 죽였기 때문이라는 보고서 내용이 맞는 것 같구나.’
백엽이 천마신교에서 매년 수정 보완해서 편찬해내는 강호인명록을 떠올렸다.
강호인명록에는 무림의 주요 고수들에 관한 신상과 무공 특징 등이 수록되어 있었다.
파검객은 무림백대고수에 들어가기 때문에 당연히 한 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백엽은 파검객이 평소 친분이 있던 자와 술을 마시다가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듣고 광기가 발동해 지인의 일가족을 몰살시켰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무공이 강해서 수하로 삼으려 했는데 안 되겠군. 저러한 광기는 쉽게 고칠 수 있는 게 아니다.’
백엽이 우수를 천천히 들어 주먹을 쥐었다.
금빛 기운이 그의 주먹을 감싸며 보호막 같은 것을 형성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파검객을 자극했다.
“주먹으로 내 검을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좋다. 최소 백여 초는 생각했는데, 일초로 죽여주마.”
파검객이 검을 수평으로 내렸다.
순간, 본검을 제외한 열일곱 개의 검이 일제히 수평으로 기울며 빠른 속도로 백엽을 향해 날아갔다.
슈우욱! 슈욱!
백엽은 주먹을 쥔 채 그대로 서 있었다.
어서 피하든지 해야 했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이 무모해 보였다.
반면 분검들은 벌써 검기까지 뿌리고 있었다.
검기들을 막아내도 그다음 분검들의 공격이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진짜 무서운 것은 바로 파검객이 여전히 쥐고 있는 본검이었다.
그의 독문 절기로 무수히 많은 고수를 저승으로 보낸 파검십팔식(破劍十八式)의 정수가 마지막 본검에 담겨 있었다.
파검식이 본검까지 검초를 뿌린 그 순간.
백엽의 오른 주먹에서 거대한 권영이 나타났다.
주먹을 감싸고 있던 금빛 기운이 권의 형태를 띠면서 방패처럼 부풀어 오른 것이었다.
당장 무서운 기세로 쏟아져 오던 검기들이 권영에 부딪히면서 콩 볶는 소리를 냈다.
타타타탁.
검기에 이어 분검들이 부딪혔지만 권영을 뚫지 못하고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파검객은 전혀 놀라지 않고 본검으로 백엽의 가슴을 찔러왔다.
그리고 그 공격이 얼핏 주효한 듯했다.
권영을 돌파했던 것이다.
그때였다.
백엽이 왼 주먹을 벼락같이 들어 올려 검을 쳐냈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파검객의 검이 그대로 두 동강 났다.
만년한철이 가미되어 절대 부러지지 않는다는 애검이 부러지자, 파검객이 매우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파파파파파.
비무대 바닥이 쓸리며 고랑이 깊게 파였다.
백엽이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으로 치솟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단숨에 파검객의 머리 위로 떠 오른 그가 빠르게 하강하며 오른 손바닥으로 천령개를 내리쳤다.
퍽.
수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파검객의 머리가 박살 나며 그대로 허물어졌다.
백엽이 강수를 쓴 것은 순간적으로 강호인명록 상의 내용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당시 파검객은 광기로 지인들 가족을 몰살시켰는데, 이후 후환을 두려워해 외지에 나가 있던 지인의 어린 자식들까지 모조리 죽였다는 내용이었다.
머리가 완전히 박살 난 파검객의 상태는 실로 처참했다.
또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무림백대고수를 이런 식으로 압살할 수 있는 고수가 무림에 과연 몇 명이나 있겠는가.
하지만 모두가 두려워할수록 백엽을 어서 빨리 죽여야 할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복승이었다.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백엽을 그대로 둘 수 없는 것이다.
이복승이 품속에서 지부장패를 꺼내 들었다.
그 패는 죽은 조도생이 사용하던 것으로 천혈방주가 직접 하사한 것이라 천혈방 무사라면 누구나 따라야 했다.
“천혈방 무사들을 들어라. 모두 총공격해서 곽유 저놈을 죽여라. 놈은 본방의 무사들과 식객을 죽였다. 동정수로채에서도 쫓겨났으니 도와줄 사람도 없다. 비록 놈의 무공이 고강하나 천마가 아닌 한 천 명이나 되는 무사들을 막아내지 못할 것이다. 총공격하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천혈방 무사들이 일제히 대답하며 백엽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잠시 백엽의 무공을 두려워했으나 자신들의 압도적 병력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기실 천하의 많은 고수가 이런 식으로 죽임을 당했다.
백 명도 아니고 무려 천 명이었다.
움츠러들 필요가 전혀 없었다.
백엽은 여전히 담담했다.
다만 이복승이 조금 전 천마를 언급해 속으로 흠칫했을 뿐이었다.
생사신의와 성녀 역시 크게 걱정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초조한 기색을 보이는 사람은 바로 매영설이었다.
지금이라도 백엽 곁에 가서 함께 공격을 막아내고 싶었다.
성녀가 그녀의 손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좀 더 무공을 보여줘야 앞으로 세력을 모으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조무래기들은 아무리 많아도 교주님을 상대할 수 없답니다.」
「네. 성녀님.」
매영설이 전음으로 대답한 바로 그때.
천혈방 무사 백여 명이 백엽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각자 병장기를 들고 무작정 공격을 가한 것이다.
백엽이 소매를 흔들어 우모침을 날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한 번에 백여 발을 날릴 수 있는 암기로 이전 영웅보에서 위력을 발휘한 바 있었다.
피피피픽.
“으윽!”
“크윽!”
비명과 함께 백여 명이 그대로 썩은 짚단처럼 쓰러졌다.
군웅들이 놀라서 보니 하나같이 혈도가 찍혀 있지 않은가.
천혈방 무사들이 기겁하며 주춤했다.
백엽이 작정한 듯 다시 우모침을 날렸다.
이번에는 연발이었다.
백엽의 소매 안에는 우모침 백여 발이 들어있는 작은 통들이 있었다. 내공을 일으켜 그것을 터뜨리면 우모침들이 날아가는 식이었다.
그 세기와 속도는 백엽의 내공에 기반하기 때문에 바늘보다 작은 침이라고 해도 그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게다가 그 날아가는 위치 또한 정교하게 조종할 수 있어 죽일 수도 있고 혈도만 찍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저번 영웅보에서처럼 동시에 단전을 파괴해 무공을 폐쇄할 수도 있었다.
지금은 혈도만 찍어 그중 가장 가벼운 공격에 해당했다.
피피피픽.
천혈방 무사 이백여 명이 또다시 혈도를 찍혀 쓰러졌다.
무려 삼백 명이 눈 깜박할 사이에 제압당한 것이다.
이복승이 놀란 표정으로 뒤로 물러났다.
옆에 있던 식객 네 명 역시 안색을 굳힌 채 서로를 쳐다봤다.
백엽이 무심히 말했다.
“마지막 경고다. 천혈방주가 올 때까지 휴전하는 것이 어떠하냐? 그것도 싫다면 더는 봐주지 않고 몰살시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