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224
십뇌반선이 은둔곡에 다시 돌아온 것은 열흘 만이었다.
최소 사흘 안에는 돌아오겠다는 그의 약속보다 길어졌지만 백엽 일행은 동요하지 않고 기다렸다.
“죄송합니다. 신선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은둔반선들이 모여서 회의를 여느라 늦었습니다.”
십뇌반선의 말에 백엽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어떻게 결론이 났습니까?”
백엽이 말을 한 후 살짝 기대감을 표시했다.
옆에 있던 성녀, 생사신의, 매영설 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십뇌선생이 담담하게 말했다.
“중지를 모은 결과 우리 은둔반선회는 중립을 지키기로 했습니다.”
“아!”
예상과 다른 답변에 백엽이 탄식했다.
하지만 여러 상황을 생각할 때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결과가 그렇게 나왔다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군요. 제가 모르는 특별한 상황 변화가 있었던 겁니까?”
“으음, 솔직히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백반선회와 동맹 체결에 긍정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저께 대마신회주가 직접 와서 우리 회주님과 동맹 참여 문제를 놓고 일대일 대결을 벌이게 되었지요.”
“아, 그럼 회주께서 대마신회주에게 패해 동맹을 포기하게 되었다는 겁니까?”
“네. 향후 우리 은둔반선회를 흑반선회와 대마신회에서 건드리지 않겠다는 전제가 붙긴 했지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안타깝군요. 놈들이 약속을 지키리라 생각하시지는 않지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최소 일 년이란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최근 백 회주의 무공이 비약적으로 상승해 놈들과 대적해볼 만하다고 내부 판단을 내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계의 주인인 마제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인 게 사실이라······.”
십뇌반선이 백엽을 보기가 미안한지 다소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마계의 주인이 마제라는 인물입니까? 그가 마계에서 가장 강한 자입니까?”
백엽이 급히 질문을 던졌다.
동맹이 이루어지지 않은 대신 평소 궁금해하던 사실에 대해 한가지라도 더 듣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네. 원래 천계와 마계 이야기는 반선끼리도 잘 하지 않지만, 동맹 체결을 기다리고 계셨을 여러분께 죄송한 마음이 커 제가 아는 대로 말씀드리지요. 혹시 나중에라도 동맹을 맺을 수 있을 테니까요.”
“흑반선회나 대마신회에서 은둔반선회를 공격할 때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때가 되면 백반선회나 우리 모두 놈들에게 당해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는데 너무 이기적인 발상이군요.”
매영설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십뇌반선이 흠칫했으나 애써 무심한 척했다.
“일대일 대결에서 우리 회주께서 승리를 했다면 동맹은 반드시 체결되었을 겁니다.”
“그게 아니지요. 대마신회주의 무공이 엄청나다고 들었는데 이미 패배를 예상하고 일대일 대결 제의를 받아들였겠지요. 결론적으로 사부님의 능력을 못 믿어 그런 게 아닌가요?”
“하하하. 솔직하게 말씀드리지요. 열흘 전쯤 백 회주께서 마탑 주위에 갔다가 그냥 돌아오신 일이 있으시지요?”
“그렇습니다. 어떻게 그 사실을 아셨습니까?”
“대마신회주가 통천마경(通天魔鏡)을 보여주더군요.”
“통천마경이라 하심은?”
백엽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통천마경은 마계의 법보 중 하나로 침입자의 모습을 담아둘 수 있는 효능이 있습니다. 평소 통천마경은 마탑 주위를 감시하고 있는데, 백 회주께서 마기를 뚫으려다가 실패하고 그만 돌아가시는 모습이 담겨 있더군요. 그 모습을 보고 우리 회주님을 비롯해 많은 은둔반선들이 백 회주님의 능력에 의구심을 느낀 게 사실입니다. 요컨대 백 회주께서 흑반선회주 정도는 상대할 수 있으나, 대마신들의 상대는 되지 못한다고 결론 내린 것이지요. 동맹을 맺게 되면 즉시 전면전을 벌어야 하는데 백 회주의 능력이 그 정도라면 승산이 없다고 봤습니다. 차라리 일 년 정도의 유예기간을 갖고 힘을 기르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우리 회주께서 대마신회주와의 대결에 앞서 패배를 예상했다는 매 소저의 지적은 부인할 수 없겠군요. 이상이 우리가 동맹 체결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아, 그리고 이건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것이지만 꼭 말씀드릴 일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말씀해주십시오.”
“대마신회주의 말에 의하면 조만간 대마신회에서 직접 백반선회 총단을 공격할 거라고 하더군요. 혹시 모르고 계셨습니까?”
“네. 대마신회주의 그 말은 언제 들으신 겁니까? 그저께입니까?”
“네.”
“흥! 그런 정보는 최대한 빨리 말씀해주셔야지요. 은둔반선회 분들이 너무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는 것 같아 실망이에요.”
매영설이 언성을 다시 높였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백엽이 담담히 말했다.
“지금이라도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동맹 문제는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혹시 하실 말씀이 또 있으십니까?”
백엽이 은둔반선회의 도움에 대한 집착을 버린듯한 말을 하자 십뇌반선이 흠칫했다.
“으음, 한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긴 합니다. 정말로 마탑의 마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곳으로 돌아오신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마기가 비록 강했지만 못 뚫을 정도는 아니었지요. 통천마경에 제 모습이 어떻게 비쳤는지는 모르겠지만, 동맹 체결을 앞두고 전선을 확대하는 게 아닌 것 같아 속히 돌아온 겁니다. 아, 물론 마탑 주위에 깔린 마기가 별것 아니란 뜻은 아닙니다.”
“아, 역시 그랬군요. 한데 혹시 마탑에 간 이유가 사방주 때문입니까?”
“네. 알고 계셨군요. 대왕 늑대 그놈을 제거하면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사방주가 마탑과 요성에 있을 가능성이 큰 것 같아서 일단 마탑에 가봤었지요.”
“역시 그랬군요. 사실 이건 극비사항인데 백 회주께서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군요. 그 전에 한가지 약속을 해주시겠습니까?”
“무슨 약속인지는 몰라도 도의에 합당하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드리겠습니다.”
“하하하, 역시 호탕하시군요. 다른 게 아니라 나중에 우리 은둔반선회가 공격을 받으면 도와주십사하는 겁니다. 면목은 없지만 대신 중요한 사실 하나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혹시 사방주와 관련한 겁니까?”
“역시 보통 분이 아니시군요. 맞습니다. 사방주 두 개를 이미 갖고 계시니 혹시라도 나머지 두 개를 마물왕과 요괴왕(妖怪王)에게서 빼앗게 된다면 사라진 은둔반선기(隱遁半仙旗)를 찾으십시오. 은둔반선기를 찾아 무상봉(無上峰) 위에 꽂으시면 신선계에 있는 모든 은둔반선들이 백 회주님의 명을 따르게 될 겁니다.”
“은둔반선기는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무상봉은 어디에 있지요?”
“그건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상고밀약에 의해 은둔반선들은 은둔반선기 주인의 명을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은둔반선회주님도 마찬가집니까?”
“네. 은둔반선기가 나타나면 은둔반선회주 자리도 자동으로 은둔반선기 주인에게 넘어가지요. 무엇보다 지금은 은둔반선회에 가입한 은둔반선들이 원래 인원의 십 분지 일도 안 되는데, 은둔반선기 주인의 명에는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따라야 합니다. 따라서 그 힘은 가히 마계와도 견줄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겠군요. 은둔반선 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수도에 전념한 분들이 나타나실 테니까. 하지만 은둔반선기를 찾는 게 정말 어려울 것 같군요. 어디에 있는지 짐작도 되지 않고 말입니다.”
“하지만 백 회주님이라면 가능할 것 같아 이렇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솔직히 우리 은둔반선들이 일 년의 시간을 번다고 해도 놈들을 상대할 힘을 기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백 회주님께 기대를 걸어보는 겁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네. 중요한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다들 무운을 빌겠습니다.”
십뇌반선이 포권한 후 신선운을 타고 사라졌다.
“사부님. 십뇌반선 저분이 은둔봉으로 돌아가신 것 같은데 차라리 쫓아가서 그 위치를 파악해두는 게 어떨까요? 운이 좋으면 은둔반선회주라는 분과도 만나 말씀을 나누실 수도 있잖아요? 은둔반선기의 주인이니 하는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황당하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차라리 마탑에서 사부님이 무공이 약해 돌아온 게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면 혹시라도 은둔반선회주의 마음을 돌릴 수 있지 않을까요?”
매영설의 말에 백엽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마탑에서 내가 한 행동의 의미는 은둔반선회주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생각하기에 내가 마탑의 마기 정도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뚫어야 마계와 싸울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겠지. 그러기 때문에 지금 가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은둔봉의 위치 또한 마찬가지다. 은둔봉이라 해서 고정된 봉우리가 아니라 은둔반선 지휘부가 있는 봉우리가 바로 은둔봉이 되기 때문에 조만간 그 위치가 다시 바뀔 것 같구나.”
“교주님 말씀이 옳아요. 대마신회주의 말이 맞는다면 백반선회 총단이 위험하니 속히 등선봉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성녀의 말에 백엽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씀이오. 태양반선이 내게 신선전음을 보내오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직 공격을 받지 않은 것 같지만, 이제 약속한 석 달 기한이 다가오고 있으니 등선봉으로 가서 백반선들과 앞으로의 상황을 논의하는 게 좋겠소.”
백엽의 말이 끝난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은둔곡 주위에 검은 기운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십뇌반선을 보내기 위해 금단선진을 해제한 상태라 그 기운을 막을 방어 수단이 없었다.
성녀와 생사신의, 매영설이 안색을 굳히며 주위를 둘러봤다.
“사부님! 침입자들이에요!”
“알고 있다. 모두 그대로 있으시오.”
백엽이 담담히 말했다.
그러는 동안 검은 연기는 어느새 은둔곡 안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한데 그 연기의 모양이 보통 연기와는 달랐다.
마치 눈사람처럼 군데군데 뭉쳐있었다.
백엽이 검은 연기를 향해 말했다.
“어서 모습을 드러내시오. 혹시 대마신들이오?”
“후후후! 그렇다. 역시 소문대로 무공이 뛰어나구나. 우리 정체를 알아내다니!”
음산한 목소리와 함께 연기가 흩어지며 인영들이 나타났다.
흑의를 입은 그들은 모두 나이를 알 수 없는 노인들이었다.
그 수는 모두 열두 명.
그렇게 많은 수는 아니나 음산한 기운만으로 보는 이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후후후! 우리는 대마신회 소속으로 십이마객(十二魔客)이라 한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의 말이었다.
그는 십이마객의 수장으로 마계에서는 일마객(一魔客)이라 불리는 대마신이었다.
“나는 중원무맹주이자 백반선회주인 백엽이라고 하오. 무슨 일로 우리를 찾아온 것이오?”
“회주께서 백엽 네놈을 체포해 오라고 명을 내리셨다. 원래 우리 중 한두 명만 오면 되지만 최근 네놈의 무공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는 말이 있어 이렇게 십이마객 모두가 온 것이다. 너는 영광으로 알아야 할 것이다.”
“나는 영광으로 생각하지 않소. 아무튼 대마신들의 실력을 파악할 좋은 기회인 것 같구려.”
“네놈이! 흑반선회주를 이겼다고 기고만장한 것 같은데, 우리 대마신은 한 명 한 명이 흑반선회주와 맞먹는 무공을 지니고 있다.”
“오호! 그럼 내가 지금 흑반선회주 열두 명과 싸우게 되는 셈이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어떻게 하겠느냐? 순순히 우리를 따라가겠느냐? 아니면 팔 하나를 잃고 개같이 끌려가겠느냐?”
“나는 그대들을 따라가지 않을 것이며 팔을 잃지도 않을 것이오.”
“맹랑한 놈. 그래도 백반선회주라고 제법 용기가 있구나. 하지만 지금쯤 백반선회 총단은 초토화되었을 것이다. 회주님께서 직접 대마신들을 이끌고 가셨으니까. 천여 명밖에 안 되는 놈들이 어찌 당해낼 수 있겠느냐?”
“그건 약속 파기가 아니오?”
“약속은 흑반선회주가 했지 우리 대마신회가 한 것이 아니다.”
“그대의 말이 사실이라면 천계에서 대응이 있을 것이오.”
“곧 신마대전이 발발할 것인데 어찌 천계의 눈치를 보겠느냐? 순순히 따라갈 마음이 없어 보이니 어쩔 수가 없군. 외팔이가 된 후 우리를 원망하지 마라.”
“말이 너무 많소. 어서 시작합시다.”
[제72장] 은둔반선 4백엽과 십이마객의 대결.
이 대결이 의미하는 바는 사실 매우 컸다.
그도 그럴 것이 개개인이 흑반선회주와 맞먹는다는 대마신 열두 명의 합공을 백엽이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일까.
일각 이상 서로 대치 중인 백엽과 십이마객을 보면서 성녀, 생사신의, 매영설 세 사람은 극도로 긴장한 표정이었다.
그들 역시 대마신들을 처음 보는 상황.
대마신 특유의 음산한 분위기가 마음까지 서늘하게 하고 있었다.
물론 음산하다고 해서 십이마객이 색마라는 것은 아니고 음기 또는 한기가 강하다고나 할까.
마치 어둠 속에서 수백 년 수련한 무사처럼 온몸 전체가 차가운 얼음과도 같았다.
십이마객의 우두머리 일마객이 말했다.
“제법이군. 백엽 네놈이 이 정도 무위를 가지고 있는지 정말 몰랐다. 회주께서 네놈의 무공이 급상승해 미리 싹을 잘라야 한다고 하신 까닭이 있구나. 회주님의 우려대로 우리 중 두세 명만 왔으면 오히려 우리가 당할 뻔했다. 다행히 십이마객 전부가 왔으니 너로서는 지극히 운이 없다고 할 수 있겠구나.”
“무엇이 운이 없다는 말이오? 자꾸 쓸데없는 이야기만 늘어놓을 거면 내가 먼저 공격을 하겠소.”
“후후후! 언제 우리가 네놈의 선공을 막은 적이 있었느냐? 다만 사전 기세 대결에서 네놈이 의외로 잘 버텨 한마디 했을 뿐이다. 하지만 실전에서는 우리 십이마객의 합공이 펼쳐질 것이니 네놈은 절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합공을 가하는 순간 우리 마력은 다섯 배 이상 올라갈 테니까.”
“힘은 원래 하나요. 그 하나를 억지로 몇 배 이상 불린다고 해도 그것은 껍데기일 뿐이오. 오히려 원래 가지고 있던 힘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것이오.”
백엽이 지존검을 비스듬히 세웠다.
바로 그때였다.
백엽을 에워싸고 있던 십이마객이 일제히 들고 있던 검으로 검강을 날렸다.
쏴아아.
검은 기류가 폭풍처럼 쏟아지며 백엽의 전신을 덮쳐갔다.
마기가 워낙 강해 마치 해일과도 같았다.
마계 특유의 마력이 포함되어 있어서인지 그 위압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백엽으로서는 피할 공간도 없었다.
사방에서 검강이 밀려오고 있었다.
머리 위도 마찬가지였다.
거대한 바위 같은 강력한 검은 기류가 빠른 속도로 백엽의 머리를 짓이겨 놓을 듯 떨어져 내렸다.
백엽으로서는 무조건 대적해야 할 상황.
하지만 백엽은 미동도 없었다.
일마객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혹여 환술을 쓸 생각이라면 접는 것이 좋을 것이다. 우리가 펼친 마신검강은 환영과 실체를 확실하게 구별하니까. 오히려 제대로 반격도 못 하고 죽게 될 것이다.”
“······.”
백엽이 대답 대신 지존검으로 원호를 그렸다.
바로 마물들을 떼죽음으로 몬 지존검기였다.
동심원 모양의 검기가 확장되며 마신검강과 부딪혔다.
꽈아아앙.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은둔곡 전체가 흔들렸다.
동시에 거대한 흙먼지가 시야를 방해했다. 성녀, 생사신의, 매영설 세 사람은 갑자기 백엽과 십이마객 모두 사라지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교주님!”
“사부님!”
백엽을 부르는 소리가 뒤섞이는 가운데 먼지가 사라지며 결과가 드러났다.
한 사람.
백엽이 여전히 지존검을 비스듬히 든 채 서 있었다.
반면 십이마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사부님! 어떻게 된 건가요?”
매영설이 백엽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들은 마계로 돌아갔다.”
“놈들이 도망간 건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역시 소문대로 대마신들의 무공이 대단하구나. 비록 승리했지만 도주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아무래도 지금 수준으로도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 같구나.”
백엽이 안색을 굳혔다.
하지만 내상을 입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아직 사방주를 다 모으지 않아서 그럴 거예요. 사방주를 모으고 남은 신선술까지 모두 익히면 지존천선의 힘을 완전히 흡수할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때가 되면 반드시 지성자가 되실 수 있을 거예요.”
“녀석. 세상일이 모두 뜻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냐? 일단 모두 등선봉으로 갑시다.”
“네.”
“네.”
* * *
다시 찾은 등선봉은 한 마디로 폐허나 다름없었다.
동굴 대부분이 무너져 내렸고 백반선들은 어디로 갔는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십이마객 그놈들 말대로 총공격을 받은 것 같아요.”
성녀가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백엽과 생사신의, 매영설 역시 안색이 굳어 있었다.
특히 백엽의 놀라움은 컸다.
공격을 받게 되면 태양반선이 자신에게 신선전음을 보내게 되어있었는데, 지금 보니 그럴 시간도 없었던 것 같았다.
“사부님. 백반선들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아요? 어떻게 된 걸까요? 설마 모두 돌아가신 것은 아니겠지요?”
“지금은 알 수 없다. 십이마객 말대로 대마신회주가 직접 나섰다면 백반선들을 아예 가루로 만들 수도 있었겠지. 천계의 도움을 받아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으면 좋겠구나.”
백엽이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백반선회 총단이 공격을 받은 것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는 백반선회의 회주가 아니던가.
회주 자리를 받아들였을 때는 그 책임도 감수하겠다는 의지도 표현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의 마음이 착잡한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성녀가 말했다.
“교주님. 아직 실망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원래 외부 공격으로 초토화가 되면 그 시신들이 남게 마련이에요. 하지만 여러 동굴이 무너지긴 했으나 시신은 단 한 구도 보이지 않는 것으로 봐서 운이 좋으면 살아 있을 수도 있을 거예요. 문제는 신선강시 삼십만 구 또한 사라졌다는 거예요.”
“나 또한 그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소. 하지만 백반선들과 달리 삼십만 강시는 놈들이 데려간 것으로 짐작되오.”
“놈들이 마계로 데려가서 다시 강시로 만들려는 걸까요?”
“아마 그럴 것이오. 강시 제조 능력은 흑반선들보다 마계가 더 뛰어날 터. 절대강시를 만들고 있다고 하니 어쩌면 그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오. 다만 정확하게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정보가 없는 것이 답답하구려.”
“사부님. 혹시 신마대전이 발발한 게 아닐까요?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대마신회라고 해도 흑반선회주가 한 약속을 파기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럴 가능성이 크다. 신마대전이 발발하지 않았다면 천계에서 백반선회 총단이 이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쪼록 백반선들의 목숨만은 무사했으면 좋겠구나.”
“교주님.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제 생각에는 무림도 안전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신의께선 흑반선회가 무림을 침공했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백반선회 제거를 대마신회에서 맡은 이상 흑반선회는 이 기회를 노려 무림 침공을 단행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최소한 칠십만 강시는 무림에 보냈을 것 같습니다.”
“으음, 일리가 있소. 확인이 필요할 것 같소.”
“무림으로 돌아가실 겁니까?”
“그렇소. 다행히 지난 며칠간 특수이동 대법의 경지가 매우 높아져 여러분을 데리고 무림으로 이동할 수 있을 것 같소. 가서 아무 일도 없으면 나 혼자라도 다시 신선계로 올 수 있으니 지금 바로 가도록 합시다.”
“알겠습니다.”
“네.”
성녀와 생사신의, 매영설 세 사람이 고개를 숙였다.
무림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들도 내심 바라던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 성과도 없이 돌아가는 셈이라 다들 마음이 무거워 보였다.
백엽이 미소를 지었다.
“큰 성과 없이 복귀하게 되었으나 그래도 성녀와 신의, 설이 세 사람을 구해낸 셈이니 그 점은 매우 기쁘게 생각하오. 일단 낙양으로 돌아가겠소. 특수이동 대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데려가는 것은 처음이라 실수가 있을 수 있으니 다들 내공을 일으켜 몸을 보호하시오.”
“네.”
“네.”
성녀, 생사신의, 매영설 세 사람이 다시 대답한 바로 그 순간.
백엽의 몸에서 금빛 기운이 흘러나와 그를 비롯한 네 사람의 몸을 감쌌다.
백엽 일행의 몸이 연기처럼 사라진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스스스.
* * *
사흘 후. 낙양 중원무맹 총단 취의청.
사흘 전 전격적으로 복귀한 중원무맹주 백엽 주재로 작전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백엽의 귀환은 백여희, 백운목 등 그의 가족은 물론이고 많은 중원무맹 무사들의 환영을 받았다.
특히 천마신교 무사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는데, 이는 바로 성녀와 생사신의, 매영설을 구해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백엽으로부터 신선계 상황을 들은 무사들은 다들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천만다행으로 아직 흑반선회의 무림 칭공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조만간 있을 가능성이 매우 컸기 때문이었다.
중원무맹 총군사 신분으로 그동안 맹을 잘 관리해온 백여희가 말했다.
“맹주님 명으로 지난 사흘간 흑반선이나 신선강시에 대해 조사해봤으나 아직은 놈들이 무림에 등장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다행이오. 하지만 놈들은 언제든 공격을 개시할 능력을 지니고 있소. 절대 방심하지 말고 경계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오.”
“네. 맹주님. 한데 정말 놈들이 무림을 침공할까요? 신마대전이 발발한 게 사실이라면 흑반선회 측에서 무림보다는 마계 쪽을 지원할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요?”
“물론 총군사 말대로 일단 무림은 안전할 수 있소.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 안전이라는 것이 우리 무림인들의 무공을 두려워해서겠소? 신마대전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얻은 어부지리에 불과할 것이오. 다시 말해 일시적인 평화에 불과하오. 게다가 내가 생각하기로는 흑반선회주 그자는 무림 통치에 대한 야심이 매우 커 지금과 같은 좋은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오.”
“좋은 기회라 하심은 백반선회 총단이 무너지고 천계마저 마계와의 전투 때문에 우리 무림을 돌봐줄 여력이 없기 때문인가요?”
“그렇소. 물론 아직 신마대전 발발이 확실한 것은 아니나 당분간은 어떤 외부의 도움 없이 우리 힘만으로 무림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오.”
백엽의 말에 작전 회의에 참여한 중원무맹 지휘부 고수 이백여 명이 사뭇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성녀가 말했다.
“가장 유력한 것은 놈들의 수족으로 변해버린 칠십만 강시로 우리 무림을 침공하는 경우예요. 물론 그 중 상당수를 천계와 싸우는 마계 쪽에 지원 병력으로 보낼 수도 있겠으나, 신선강시 만 구만 무림에 보내도 천하가 쑥대밭이 될 거예요.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화산장문인 매화검선이 말했다.
“일단 신선계 상황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불명확합니다. 신마대전 발발도 그렇고, 백반선들의 생사도 그렇고, 듣고 보니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맹주께서 만나셨던 천계선녀께서 다시 나타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주면 좋으련만 그분도 소식이 끊겼다고 하시고. 맹주께선 복안을 가지고 계십니까?”
“좋은 지적입니다. 안 그래도 며칠 더 무림 상황을 보다가 다시 저 혼자서 신선계로 가볼 생각이었습니다.”
“맹주님 혼자서 말입니까?”
“네. 다른 분은 솔직히 함께 가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게 현실입니다. 성녀의 경우 예외이긴 하나 아직은 한계가 있지요. 그래서 사흘을 더 기다려보고 흑반선회의 준동이 무림에 보이지 않는다면 저 혼자서 다시 신선계로 가볼 생각입니다. 그렇게 알고 모두 전투태세를 갖춰주시기 바랍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중원무맹 무사들 모두가 신선계로 출정을 나갈 수도 있을 테니까요.”
“우리 무사들의 무공이 놈들과 비교해 현저하게 약해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힘이 약하다고 외부 지원만 바란다면 절대 우리 자신을 지킬 힘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안되면 진법의 힘을 빌려서라도 놈들과 싸우는 방법이 있으니 제가 따로 연락을 보낼 때까지 실력 배양에 힘써주십시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번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무림은 멸망할 수도 있을 겁니다. 놈들은 그럴만한 힘이 있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걸고 놈들과 싸울 준비를 해야 할 겁니다. 다들 아시겠습니까?”
“명심하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중원무맹 지휘부 고수들이 일제히 대답한 바로 그때였다.
취의청 안으로 무사 한 명이 급히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요?”
백여희의 물음에 예의 무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지금 총단 쪽으로 무수히 많은 강시들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정탐대 무사들의 보고에 의하면 그 수가 칠십만에 달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