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23
“무슨 뜻이냐?”
이복승이 의외로 응대를 해줬다.
백엽이 말했다.
“나 또한 흑도이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죽은 조도생 지부장의 사인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을 뿐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나를 모함한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냐?”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계집의 폭로에 의하더라도 이복승 그대에게서 직접 명을 받은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 말은 혹시라도 누군가가 지부장 대행을 사칭해서 명을 내린 것일 수도 있다는 뜻이겠지.”
“아! 그 말을 왜 이제야 하는 것이오?”
이복승이 돌연 안색을 바꾸며 표정을 밝게 했다.
옆에 있던 식객 광도객(狂刀客)이 급히 전음을 날렸다.
「어쩌자는 것이오? 놈을 봐주겠다는 것이오?」
「그게 아니라 방주님을 기다리자는 것이오. 모레 삼만 병력이 도착하면 놈도 끝장일 것이오. 그러지 않고 지금 끝까지 싸우면 승패를 가늠하기 힘드오. 현실을 인정해야 하오. 저 괴물 같은 놈이 작정하면 정말 몰살당할 수도 있소. 놈도 방주님을 두려워해 우리 무사들을 죽이지 않고 혈도만 찍은 것으로 판단되오.」
「알겠소. 좀 더 두고 보다가 정 안 되면 우리 네 명이 합공을 가하겠소. 저놈도 내색은 하지 않지만 이미 내공 소모가 극심할 것이오. 승산은 충분하오.」
「고맙소. 모레 동정수왕이 오면 방주께서 손쓸 필요도 없이 알아서 저놈을 처리할 수도 있을 것이오. 조금만 참으시오.」
이복승이 전음을 날린 후 백엽에게 다시 말했다.
“나에 대한 오해가 있었던 것 같으니 그대 말대로 잠시 휴전하겠소. 기한은 방주께서 오실 때까지요. 다만 그때까지 이곳을 떠날 수 없소. 그렇게 할 수 있겠소?”
“나는 조건을 가하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한 번 더 나를 위협하면 너부터 죽이겠다.”
백엽이 우수를 들어 이복승을 가리켰다.
순간, 이복승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아, 알겠소. 알아서 하시오. 하지만 모레까지 매일 이곳에서 대회가 열리니 다른 곳에 갈 필요는 없을 것이오. 내 처지도 이해해주시오.”
이복승이 진땀을 흘렸다.
실제로 조금 전 숨이 막히는 것을 느낀 그였다.
백엽이 말했다.
“좋소. 정 그렇다면 내가 양보하겠소. 다만 여기 머무는 동안 허튼수작을 부리면 가만있지 않겠소. 아, 그리고 저들의 혈도는 곧 저절로 풀릴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고맙소. 이쯤에서 봉합하도록 합시다. 정파 놈들과의 전면전을 앞두고 우리끼리 싸워서야 되겠소?”
이복승이 최대한 자제하며 말했다.
광도객이 옆에서 전음을 날렸다.
「잘 참으셨소. 지금 보니 저자가 조금 단순한 구석이 있는 것 같소. 지부장 대행 말씀처럼 이 모든 게 저 계집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면 급히 처리할 필요는 없을 듯하오. 방주님 성격에 어쩌면 계집을 넘겨주고 수하로 삼으려 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다만 철저히 감시해 저놈이 지부를 벗어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오.」
「물론이오. 상황을 봐서 꼭 방주님께서 오시기 전이라도 놈을 제거할 방법을 강구해야 할 듯하오.」
「알겠소. 사실 우리로서는 최대한 빨리 죽이는 게 최상이오. 동정수로채 사 부채주 역시 같은 생각일 것이니, 나중에 한 번 상의를 해보도록 하시오. 나 또한 대책을 마련하겠소. 너무 서두르지 말고 놈의 장단을 맞춰주면서 방심을 유도합시다. 그러면 반드시 허점이 있을 것이오.」
광도객이 전음을 날렸을 때.
생사신의가 말했다.
“주공. 이제 주공의 본의를 영웅들께 밝히시지요.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우리 악양 흑도 역시 영웅회처럼 독립적인 지역 연합세력을 구축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천혈방은 우리를 이용만 하고 토사구팽할 겁니다. 아직 정식 맹주도 뽑지 못한 철혈맹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지존회(至尊會)를 결성하고, 주공께서 회주를 맡아주시길 바랍니다. 내 의견에 동의하는 분은 어서 무릎을 꿇으시오. 여러분도 보셨다시피 우리 주공께서는 천하제일 무공을 지니셨소. 흑도 통일, 아니 나아가 무림 통일의 대업을 이루실 분이오.”
생사신의의 말에 군웅들이 크게 술렁였다.
털썩.
생사신의와 성녀, 매영설이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동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생사신의가 내공을 끌어올려 소리쳤다.
“지존회 무사가 되고 싶은 사람은 어서 무릎을 꿇으시오. 지금 충성을 맹세하는 사람은 주공께서 특별히 무공을 전수해줄 수도 있을 것이오.”
그의 심후한 내공에 압도된 것일까.
무공 전수에 대한 욕심 때문일까.
조금씩 동요를 보이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부분 일정한 소속이 없는 낭인무사들이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정파에서 받아주지 않아 반강제적으로 흑도로 분류되던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천혈방이나 동정수로채처럼 악행을 저지른 적도 없었다.
털썩. 털썩.
한 명 두 명.
무릎을 꿇는 사람이 나타났다.
비록 천혈방 눈치를 보느라 행동에 옮기지 못한 사람이 훨씬 많았지만, 그래도 백여 명이나 되었다.
천여 명의 일반 흑도 중 일할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백엽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생사신의의 선창으로 새롭게 지존회 무사들이 된 그들이 소리쳤다.
“지존회주님을 뵙습니다!”
“지존회주님을 뵙습니다!”
* * *
지존회 창설은 실로 전격적이었다.
물론 지존회란 이름을 생사신의가 단독으로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백엽과 성녀, 생사신의 세 사람이 향후 독자적인 흑도 세력 결성을 대비해 지어놓은 바 있었다.
하지만 이런 혼란스러운 시기에 창설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새롭게 지존회 무사들이 된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백엽의 무공에 탄복해 휘하로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당장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들도 몰랐다.
오히려 나중에 천혈방이나 동정수로채의 공격을 받게 되지 않을까 벌써 우려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그들을 안심시키는 역할은 생사신의와 성녀가 맡았다.
일단 이복승에게 양해를 구해 연무장 한쪽 구석에 지존회 무사들이 머물 수 있는 영역을 확보했다.
천혈방주가 올 때까지 머물게 될 막사도 마련했다.
그 위치는 백엽이 매영설을 치료했던 특별막사 바로 옆이었다.
마침 저녁 식사 시간이라 지존회 무사들끼리 따로 모여 상견례를 했다.
생사신의와 성녀는 장부를 마련해 그들의 신상에 대해 기록했다.
어느 정도 무사들의 명단이 파악되자, 생사신의가 말했다.
“다시 한번 여러분의 지존회 가입을 축하드립니다.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지존회의 본거지가 따로 있습니까? 이곳에서 계속 머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덩치가 보통 사람 두 배 정도 되는 젊은 사내의 질문이었다.
낭인무사 출신으로 이름은 철탑(鐵塔)이라 했다.
타고난 신력에 비해 무공은 아직 변변치 못한 그는 상승무공에 대한 열망이 대단했다.
그 때문일까.
지존회에 들어오면 무공을 배울 수도 있다는 말에 제일 먼저 무릎을 꿇은 그였다.
생사신의가 미소지었다.
“물론입니다. 오래된 장원이지만 한 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매우 넓은 곳이니 거처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혹시 월봉은 있습니까?”
이번에는 얼굴이 길쭉하게 생긴 중년 무사의 질문이었다.
“물론입니다. 다른 문파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을 겁니다. 안심해도 좋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전각이 주어질 것이며, 월봉 또한 보장됩니다. 아무 걱정 없이 무공을 연마하면서 우리 회주님이 꿈꾸시는 대업에 참여하시면 됩니다.”
생사신의가 고개를 돌려보니 마침 백엽과 매영설이 특별막사 안에서 나오고 있었다.
정리되는 동안 두 사람은 막사 안에 들어가 휴식을 취했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또다시 오해했지만, 백엽은 개의치 않았다.
사실 그냥 쉬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짧은 시간 동안 백엽은 매영설에게 무공 하나를 가르쳐줬다.
한빙지(寒氷指)라는 지법이었다.
천마대장경에 수록된 무공 중 하나로 여인만이 배울 수 있는 특징이 있었다.
다만 천마단을 복용한 사람만 익힐 수 있는데, 매영설은 이미 복용한 바 있었다.
매영설이 매우 기뻐하며 구결부터 암기했다.
비록 당장 실전에 사용하기는 어려웠으나, 백엽에게 직접 무공을 배웠다는 그 사실 자체가 그녀를 감동시켰다.
“회주님 나오십니다.”
생사신의의 말에 지존회 무사들이 포권으로 예를 취했다.
백엽이 역시 포권으로 답하며 말했다.
“자, 다들 식사하면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시오. 어디까지 이야기 한 것이오?”
“명부 작성을 끝내고 본회의 총단에 대해 가르쳐줬습니다.”
“지존장원(至尊莊園) 말이오?”
“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지금 바로 그곳으로 거처를 옮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생사신의가 공개적으로 질문을 했다.
지존회 무사들이 보는 자리에서 문파의 일을 의논한다는 자체가 수하들에 대한 신뢰를 의미했다.
“이미 저들과 약속했으니 그대로 이곳에 있는 게 좋겠소. 그보다 지휘 체계 마련이 시급한 것 같소.”
“인선을 지금 하실 겁니까?”
“그렇소.”
백엽이 지존회 무사들을 한 차례 쳐다본 후 입을 열었다.
“일단 회주는 내가 맡기로 했으니 그 부분은 말할 필요 없고, 총관 자리에 지존신의(至尊神醫) 그대를 임명하겠소.”
“감사합니다.”
생사신의가 고개를 숙였다.
짝짝짝.
지존회 무사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연무장에 흩어져 식사하고 있던 다른 문파 무사들의 시선이 몰렸으나,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다음은 총군사 자리로 자비선자(慈悲仙子)께서 맡아주시오.”
“네.”
성녀가 꾀꼬리 같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갑자기 본인의 목소리를 낸 것인데, 무사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백엽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사실 자비선자는 여인이오. 어서 역용을 풀도록 하시오.”
“네.”
성녀가 우수를 들어 얼굴을 만지니, 순식간에 다시 얼굴이 바뀌었다.
평범하게 생긴 여인의 모습이었다.
물론 이 얼굴 역시 역용을 한 것으로, 총군사 지위에 맞게 다소 나이가 있어 보이게 했다.
이제 남은 사람은 매영설이었다.
조금 전 특별막사에서 무공을 전수하면서 상의한 결과 그녀는 지존회의 총순찰을 맡기로 했다.
“총순찰을 맡게 된 매설(枚雪)이라고 해요.”
매영설이 자신의 이름 중 한자를 빼고 가명을 댔다.
짝짝짝.
박수가 쏟아졌다.
조금 전 있었던 생사신의와 성녀에 대한 박수 소리보다 훨씬 컸다.
백엽이 쓴웃음을 지었다.
여전히 무사들이 자신과 매영설 두 사람 사이를 오해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 그런 조짐이 보였다.
“사모님을 뵙습니다.”
“사모님을 뵙습니다.”
졸지에 백엽의 부인이 된 매영설이 얼굴을 붉혔다.
백엽이 웃으며 말했다.
“아직 내 처가 된 것은 아니니 총순찰로 부르도록 하시오. 또 한 가지 밝힐 것은 이번에 총순찰이 나의 직전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이오. 설이 너도 내 제자답게 처신을 잘하도록 해라. 알겠느냐?”
“네. 사부님.”
매영설의 대답에 지존회 무사들이 의아해했으나 굳이 질문하지는 않았다.
철탑이 말했다.
“회주님. 한가지 아뢸 게 있습니다.”
“말해보아라.”
“아까 보니 이복승 그자가 무슨 흉계를 꾸밀 것 같았습니다. 혹시 천혈방 놈들이 오늘 밤이라도 기습 공격을 가해올 가능성이 없을까요?”
“좋은 지적이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막사 주위에 이미 결계를 쳐놨으니 외부 사람은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아!”
“오!”
탄성이 터져 나왔다.
결계는 진법 중에서도 최고의 경지였다. 한마디로 보이지 않는 벽이라 할 수 있었다.
결계가 쳐지면 보호받는 사람은 출입이 자유롭지만, 외부인은 허락 없이는 절대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무사들이 놀랐으나 아까 보여줬던 백엽의 무위를 떠올리며 수긍했다.
매영설이 웃으며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천하제일 무공을 지니신 분이세요. 여러분은 걱정하지 말고 맡은 임무에 충실하면 될 거예요.”
“알겠습니다. 총순찰님.”
“명을 받들겠습니다.”
지존회 무사들이 일제히 대답할 때.
대문을 지키던 천혈방 무사 한 명이 급히 연무장으로 들어왔다.
“지부장 대행님. 영웅회 특사단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