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239
다람쥐 쳇바퀴 돌듯 아무리 나아가도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미혼진의 위력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백엽이 여러 방법으로 미혼진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애초 통로 자체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큰일이다. 벌써 하루가 다 되어 간다. 하루 안에 전체 통로를 개설하지 못하면 통로 자체가 붕괴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백엽이 안색을 굳혔다.
벌써 같은 곳으로 돌아오는 것만 열 번째였다.
게다가 그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제는 원래 신선계 쪽 입구로 돌아가고 싶어도 그 길이 사라졌다.
이제 남은 시간은 대략 한시진 정도.
백엽으로서는 결단이 필요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계속 나아가면서 진을 파훼할 수 있는 기관을 찾는 방법은 효과가 없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이전에 금마옥에서 포로들을 데리고 탈출할 때처럼 통로 안에 다른 새 통로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그곳이 어디냐 하는 것이지.’
백엽이 동굴 바닥에 가부좌하고 앉아 눈을 감았다.
‘그래 마음을 차분히 하고 생각해보자. 이전에 이와 비슷한 경우에 어떻게 길을 찾아냈는지를.’
백엽이 처음 신선계로 들어올 때를 떠올렸다.
그리고 얼마 후 한 가지 사실을 떠올랐다.
‘그래, 당시에도 그냥 돌아가려 하다가 지존환에서 나오는 소리로 새 통로를 발견했었지. 내가 왜 그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백엽이 눈을 뜬 후 지존환을 손을 대고 내공을 주입했다.
이전에는 저절로 진동음이 생겼지만 지금은 그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지존환의 특성. 그것은 뭐든 바라는 게 있으면 간절해야 한다는 것이지.’
백엽이 무림과 통하는 새 통로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내며 동시에 내공을 더욱더 끌어올렸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지존환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아! 정말 안되는 것인가. 원천 통로에 무슨 비밀이 있기에 이처럼 미혼진 하나를 돌파하기 어렵단 말인가.’
백엽이 탄식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망은 아니었다.
통로 전체가 붕괴해도 어떻게든 살아날 자신은 있었다.
하지만 원천 통로를 확보하지 못하면 당분간 중원무맹 무사들을 천계로 데려가는 일은 요원해질 게 분명했다.
‘이대로 실패인가.’
백엽이 안색을 더욱더 굳혔다.
이제 남은 시간은 불과 일각 정도.
백엽이 심호흡을 한 번 한 후 마음을 비웠다.
새 통로를 찾겠다는 집착을 버리고 최대한 마음을 편하게 했다.
‘그래, 하루라는 시간제한 때문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너무 조급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말자. 무집착이야말로 대도(大道)의 근본이 아니던가.’
백엽이 다시 눈을 감고 깊은 묵상에 잠겼다.
눈을 감은 것은 주위 환경을 모두 잊고 무아의 경지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그래, 이 느낌이다. 오랜만에 초연한 마음을 느끼게 되는구나.’
백엽이 엷은 미소를 지었다.
생각도 못 한 장소에서 또다시 한 단계 높은 깨달음에 도달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시간은 어김없이 흘렀다.
와르르릉.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이 다 지나가자 굉음과 함께 동굴 전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백엽은 미동도 없었다.
미로진 자체가 일종의 환영진임을 알고 있었기에 다만 호신강기를 두텁게 했을 뿐이었다.
그러한 호신강기도 자동으로 발현되는 것으로 백엽이 한 일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어쩌면 예상과 달리 이 자리에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으나 그 역시 개의치 않았다.
그보다 그는 더욱더 높은 깨달음을 향한 열망에 가득 차 있었다.
이러한 열망은 집착과는 다른 것으로 일종의 의지였다.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은 신념이라고나 할까.
‘마음이 굳건해지면 몸도 강해지는 법.’
굳이 의식하지 않았지만 지금 그의 몸은 마치 금강불괴와도 같았다.
그 때문일까.
동굴 천장이 무너지며 머리 위로 쏟아지는 바위 조각들도 그를 어쩌지 못했다.
호신강기에 닿기도 전에 모두 가루로 변했다.
하지만 쏟아져 내리는 잔해들 역시 끝이 없었다.
마치 백엽을 기어코 죽이고야 말겠다는 듯이 머리 위로 쏟아지는 바위들의 양과 크기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백엽이 눈을 뜬 것은 손에 끼고 있던 지존환이 폭발적으로 금빛을 발했을 때였다.
그야말로 강렬한 금빛이라 눈을 뜨자마자 다시 눈을 감아야 했지만, 백엽은 순간적으로 자신의 몸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특수이동 대법을 펼칠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와 다른 점은 자신의 몸이 한 줄기 연기처럼 변해 한 곳으로 들어간다는 점이었다.
한데 그곳이 다름 아닌 지존환이었다.
그동안 물건들을 저장해 두었던 지존환의 비밀스러운 공간에 백엽의 몸이 들어가고 만 것이었다.
백엽은 위기의 순간 지존환이 자신에게 대피 공간을 마련해준 것으로 생각하고 저항하지 않았다.
사실 금강불괴의 몸 상태를 유지해 지금까지 잘 버티고는 있었지만, 동굴 붕괴 역시 끝이 없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한데 그때 그를 품어준 것이 바로 지존환이었다.
지존환에 그의 몸이 완전히 들어갔다고 느낀 바로 그 순간.
그의 의식은 사라지고 말았다.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간 것일까.
백엽의 몸을 흡수한 지존환이 무너지고 있는 동굴 바닥의 틈 사이로 떨어진 것은 바로 얼마 후였다.
지존환이 스스로 삼장 정도 거리를 굴러가서 그 틈 사이로 추락한 것이었다.
그렇게 지존환이 구멍 속으로 사라진 바로 그 순간.
콰콰콰쾅 하는 폭음과 함께 동굴 전체가 그대로 내려앉고 말았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무게의 바위들이 내려앉아 거대한 돌무덤을 만들고 만 것이었다.
* * *
백엽이 정신을 차린 곳은 거대한 지하 광장이었다.
한 번에 수백만 명도 거뜬히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매우 넓었다.
“으으······.”
신음과 함께 눈을 뜬 백엽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지하 광장.
광장을 살펴볼 겨를도 없이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의 눈이 자신의 손에 끼어 있는 지존환으로 향했다.
‘분명 동굴이 무너지면서 이 지존환 속으로 들어갔던 것 같았는데······.’
백엽이 의아해했으나 어떻게 이곳까지 자신이 들어올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존환 속으로 들어간 즉시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무사하다는 자체가 기쁜 일이었다.
‘아마도 이번에도 지존환의 도움을 받은 것 같구나. 주어진 하루란 시간이 지났지만 이곳은 괜찮은 것을 보니 아무래도 새 통로와 연결된 곳 같다.’
시간제한이라는 압박에서 벗어났기 때문일까.
백엽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일단 이곳을 조사해봐야겠군. 과연 무림으로 통하는 통로가 있을지 궁금하구나.’
정신을 잃기 전 고도의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일까.
어딘지 모르게 초연한 느낌을 주는 그의 눈빛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심함을 잃지는 않았다.
생각 같아서는 운공을 통해 무형검 경지가 얼마나 더 높아졌는지 당장 확인하고 싶었지만 자제했다. 그가 천천히 지하 광장 곳곳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워낙 넓은 곳이라 전체를 둘러보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찾는 것은 원천 통로이기 때문에 광장을 둘러싼 벽 위주로 살펴봤다.
일단 전체적으로 봤을 때 광장은 원형으로 되어있으며 그 벽에는 어떤 통로도 없었다.
한마디로 거대한 광장에 백엽 혼자 갇힌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광장에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광장 정중앙에 집채만 한 바위 하나가 놓여 있었다.
백엽이 주목한 것도 그 바위였다.
바위 위치가 정중앙에 있는 것이 마치 기관장치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백엽이 평평한 바위 윗부분에 경공을 펼쳐 올라갔다.
그리고 가부좌하고 앉은 후 기파 탐지에 들어갔다.
바위 속에 뭔가 있는지 일단 기감으로 느껴보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특수 바위인지 아무런 특이점도 찾아내지 못했다.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인가.’
백엽이 고개를 갸웃한 후 다시 광장을 둘러싼 벽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백엽이 다소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실망감은 아니었지만 또 이전과 같은 상황에 부닥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집중하는 그였다.
‘이번 역시 아무래도 안배가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해답이 있는 게 아닐까.’
백엽이 지존환과 지존검, 지존비수, 지존선 등 가지고 있던 병장기와 물품을 하나하나씩 꺼냈다.
지존환에는 제법 많은 물건이 있었다. 그중에는 어제 천계를 출발하면서 얻게 된 무상도도 있었다.
무상도 속의 그림을 다시 한번 보던 백엽이 눈을 빛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림 속 지존천선이 서 있는 봉우리 모양이 지금 그가 앉아 있는 바위와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이 바위가 무상봉은 아니었으나, 백엽은 지존천선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에 주의했다.
태양을 바라보고 있는 지존천선.
백엽은 무상도 속의 태양 위치를 이곳 지하 광장에 대비해 보았다.
‘저쪽 정도 되겠군.’
백엽이 바위에서 내려와 광장 벽 한쪽으로 걸어갔다.
그림 속 태양의 위치와 같은 지점이었다.
‘내 직감을 믿어보자.’
백엽이 지존검으로 벽을 찔렀다.
깡.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아무 변화도 없었다.
오히려 광장 벽의 견고함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너무 무리한 생각이었나.’
백엽이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바위로 돌아왔다.
바로 그때였다.
지존검이 갑자기 우우웅 소리를 내며 검명을 토해냈다.
광장 벽을 한번 찔러서 검혼이 깨어났기 때문인가.
검명이 향하는 방향은 바로 바위였다.
‘아, 벽이 아니라 바로 이 바위였구나.’
백엽이 바위 위로 올라가 지존검으로 그 중간 부위를 찔렀다.
순간 쩍 하는 소리와 함께 바위가 두 동강 났다.
마치 기관이 작동하듯 바위가 둘로 갈라진 것이었다.
“아!”
백엽이 바위 사이에 놓여 있는 철상자를 보고 탄성을 터뜨렸다.
바위에 숨겨진 철상자.
지존검이 없었다면 절대 발견할 수 없으리라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철상자를 꺼냈다.
한데 아무리 해도 그 뚜껑이 열리지 않았다.
그래서 자세히 보니 상자 뚜껑에 열쇠 구멍이 두 개 있었다.
이를 본 백엽이 눈을 빛냈다.
‘혹시 황금열쇠?’
백엽이 급히 지존환에서 황금열쇠 한 쌍을 꺼냈다.
열쇠 중 하나는 악양 지존장원 미혼진 안에서 발견한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죽은 항윤량 장로의 몸속에서 발견한 것이었다.
엄청난 보물이 있는 장소와 관련 있다는 황금열쇠 두 개를 백엽이 주저 없이 상자 뚜껑에 있는 구멍에 집어넣었다.
철컥, 철컥.
열쇠들이 맞물리며 상자 뚜껑이 열렸다.
백엽이 기뻐하며 상자 안을 쳐다봤다.
상자 안에 들어있는 것은 오래된 비급 한 권과 한 장의 양피지였다.
백엽이 먼저 집어 든 것은 비급이었다.
비급 제목을 보니 다음과 같았다.
‘지존천선록이라면 혹시 지존천선님이 남기신 비급이 아닐까?’
백엽이 놀란 표정으로 비급의 내용을 읽어나갔다.
한데 예상대로 지존천선이 남긴 무공과 신선술들이 수록되어 있었다.
특히 백엽이 흑반선회주와 싸울 때 기억이 났던 지존천선장도 수록되어 있어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아!”
백엽이 매우 기뻐하며 천마속독술로 그 내용을 암기했다.
비급 특히 오래된 비급일수록 간혹 그 내용이 금세 사라지는 경우도 있으므로 서둘러 내용을 외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워낙 방대해 모든 것을 암기하는데 한시진이나 걸렸다.
‘정말 대단하군.’
백엽이 비급의 내용에 거듭 감탄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이미 익힌 지존천선장을 제외하고 다른 것들은 암기만 했을 뿐 이해가 전혀 되지 않았다.
아니 지존천선장 역시 그가 기억의 봉인이 해제되어 익힌 부분은 그야말로 기초적인 것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비급 전체의 수준이 너무 높았다.
이전에 익혔던 신선비급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있었다.
백엽의 안색이 조금 굳어진 이유였다.
‘무공과 신선술 수준이 너무 높아 단기간에 절대 배울 수 없을 것 같구나. 대부분의 무공이 지성자 수준을 요구하고 있다. 그나마 내가 기초 수준의 지존천선장을 연마한 것도 기억이 떠올라 겨우 배운 것 같군. 아무래도 지존천선께서 남긴 힘을 모두 내 것으로 만들어야 비로소 익힐 수 있을 듯하다. 일단 보관해두자.’
백엽이 지존천선록을 지존환 안에 넣어두었다.
이미 다른 물건들도 다시 지존환에 넣어둔 상태.
지존환에 넣어두지 않은 것은 지존검 정도였다.
‘이제 이 양피지를 볼까?’
백엽이 철상자 안에 남아 있는 양피지를 집어 들어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