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24
영웅회 특사단의 규모는 백여 명 정도였다.
삼천여 명이 모여 있는 적진 한가운데 대담하게 온 그들은 다소 비장한 표정이었다.
흑도 무사들이 보고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식사가 거의 마무리 되려던 때라 잠시 막사 안에 들어갔던 무사들도 모두 나왔다.
백엽을 비롯한 지존회 무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연스럽게 삼천 흑도 중 한 일파로서 위치하게 되었다.
특사단 면면을 살펴본 백엽이 안색을 굳힌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도 그럴 것이 특사단의 대표로 보이는 사람 중에 여동생 백여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 옆에는 화산파 악완과 고해풍의 모습도 보였다. 아무래도 이들 세 사람이 특사단을 이끌고 온 것 같았다.
백엽은 급히 다른 고수들이 있는지 살펴봤다.
그들 세 사람의 무공만으로 긴급 상황에 대비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특사단을 공격하지 않는 것이 오래된 무림 관례이긴 하나, 그것 역시 백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흑도의 경우 반드시 지켜진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엽은 기도가 범상치 않아 보이는 세 사람을 발견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로 노인들이었다.
‘복장으로 봐서 화산파 장로 같군. 미리 선발대로 온 것인가.’
백엽이 한숨을 돌렸다.
화산파 장로라면 고수 간의 대결에서 크게 밀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우려되는 점은 천혈방과 동정수로채가 총공격을 가해 아예 특사단 전체를 몰살시키려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되면 그의 계획도 대폭 수정되어야 할 것 같았다.
한편 특사단의 나머지 무사들은 기존 영웅회 소속으로 최소한 조장급으로 보였다.
이복승이 특사단을 보고 껄껄 웃었다.
“하하하. 여러분이 어떻게 이곳까지 온 것이오? 투항하러 온 것이오? 아무튼, 반갑소이다. 안 그래도 우리 역시 특사단을 보내려 했소. 환영하는 바이오.”
이복승의 말에 팽팽해졌던 긴장감이 다소간 풀어졌다.
사실 아무리 흑도라고 해도 천혈방같이 소속 무사가 많은 곳은 형식적이나마 무림 관례를 잘 지키는 편이었다.
특히 천혈방 세력 확장의 많은 경우가 협박을 통해 투항을 받아 이루어진 것이라 특사들을 죽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특사단 수석 대표로 온 백여희 또한 그 점을 알고 온 것 같았다.
“무림맹 부군사 백여희라고 해요. 이복승 지부장 대행님이신가요?”
“그렇소. 역시 듣던 대로 미인이시구려. 여자 제갈량으로 명성이 자자한 백 소저를 만나게 되어 영광이오. 어떻게 오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소?”
“그야 무모한 전쟁을 막기 위해서지요.”
“하하하! 뭐가 무모하다는 것이오? 세 치 혀로 전쟁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오. 그대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오직 투항뿐이오. 그러니 어서 돌아가서 항복을 결정하고 다시 오시오. 기한은 모레 우리 방주님께서 삼만 무사들을 이끌고 오실 때까지요.”
“최후통첩 기간이 변경된 것인가요?”
“그렇소. 안 그래도 오늘 대회를 마치고 통보를 하려고 했었소. 투항 외에는 다른 선택은 없으니 당연히 협상도 없소. 또 하실 말씀이 있소?”
“좋아요. 어차피 평화 협정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일단 싸우게 되면 양패구상할 확률이 높다는 것만 명심하세요. 그리고 최종 승리는 우리 영웅회의 것이라는 것도.”
“후후후! 혹시 화산파와 형산파를 믿는 것이오? 오! 그러고 보니 화산파 고수들을 데리고 온 것 같구려. 어디 보자. 저기 저자는 화산신룡 고해풍인가? 으음, 저들 세 사람은 화산파 장로쯤 되겠군.”
“안목이 대단하시군요. 그럼 이미 우리 영웅보에 화산파 매화검수들이 도착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신가요?”
“매화검수 삼백 명이 벌써 도착했다는 말이오?”
이복승이 안색을 굳혔다.
정보에 의하면 매화검수 역시 천혈방주와 마찬가지로 모레 도착할 예정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백여희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추측하신 대로 이분 공자님은 화산신룡 고해풍 공자이시고. 이분 소저는 화산옥녀 악완 소저세요. 그리고 이분들은 화산파 장로분들이세요. 평화협정을 맺지 않는다면 아마도 오늘 밤 당장 전투가 시작될 수도 있을 겁니다.”
“겁주지 마라. 우리는 삼천 병력이다. 모레 본방 삼만 무사와 동정수로채 이천 무사가 오지 않아도, 네놈들 이천 병력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매화검수 삼백 명이 추가되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과연 그럴까요? 한데 왜 형산파 무사 천 명은 뺐지요?”
“형산파 놈들까지 도착했다는 말이냐?”
“네. 형산파 장문인께서는 이미 며칠 전부터 악양 인근에 대기하고 있으시다가 조금 전 무사들을 이끌고 본보에 도착하셨어요. 이래도 승리를 자신하시나요?”
“그렇다. 떨거지 같은 네놈들을 어찌 두려워하겠느냐? 또 할 말이 있느냐?”
이복승이 물러서지 않고 말했다.
무공은 비록 약하지만, 화술에서는 그렇게 밀리지 않는 것 같았다.
백엽이 다시 안색을 굳혔다.
‘여희의 의도를 잘 모르겠군. 어차피 평화협정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 같은데······’
백엽이 성녀를 쳐다봤다.
성녀가 즉시 전음을 보냈다.
「제 생각에 영웅회 쪽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일종의 허장성세(虛張聲勢)이지요.」
「그럼 화산파와 형산파 무사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말이오?」
「네. 아무래도 사정이 있어 지연되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아예 취소되었을 수도 있고요. 자세한 것은 조사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특사단의 목적은 시간을 벌기 위해서로 추측이 됩니다.」
「으음, 어쩌면 영웅회 쪽에서 오히려 기습 공격을 우려해 정보를 교란하려는 것일 수도 있겠군. 하지만 지원병력이 늦어지는 것이 천혈방 쪽과는 관계가 없다면 대체 무슨 이유이겠소? 혹시 본교 무사들이 움직인 것인가?」
「그럴 가능성도 배제 못 합니다. 분타 무사들은 교주님의 지시가 없으면 화산파나 형산파를 공격하지 못하지만, 칠마종(七魔宗)은 다릅니다. 반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그들의 오랜 전통이니까요. 교주님의 확실한 명이 있어야 마지못해 철수할 겁니다.」
‘칠마종이라······.’
백엽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교주가 된 이후 그의 가장 골칫거리가 바로 칠마종이기 때문이었다.
칠마종은 천마신교 휘하세력 중 가장 대표적인 일곱 개 문파를 뜻하며, 그들의 힘은 천마신교의 숨겨둔 힘이기도 했다.
정마대전 발발 시 최종 승리를 거두기 위해 꼭 필요한 세력으로, 그들의 힘을 모두 합치면 천마신교 전체와 맞먹을 정도였다.
하지만 개별 종파의 개성이 너무 강해 완전한 통제는 하지 못하고 있었다.
굳이 예를 든다면 무림맹과 구대문파의 관계라고나 할까.
다만 선대의 묵계를 통해 무림 일통의 대업을 위해서 천마신교를 돕기로 되어 있는 점은 긍정적인 요소였다.
백엽이 칠마종의 종주들을 만난 것은 딱 한 번이었다.
십 년 전 교주 취임식 때로 전대 교주와 친분이 두터웠던 그들은 백엽을 향해 형식적인 충성 맹세만 하고 돌아갔다.
이후 십 년간 칠마종 역시 힘을 비축하고 있었다. 백엽은 정마대전에서 승리를 거두기 위해 그들의 힘이 꼭 필요하므로 지금까지 그 어떤 간섭도 하지 않았다.
한데 이번에 병력을 움직인 게 사실이라면 보통 문제가 아닌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정마대전이 발발할 수 있겠구나. 정파 입장에서는 본교와 칠마종을 동일시할 테니까. 아직 확실한 사실이 아니니 너무 초조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겠군.’
백엽이 마음을 다스렸다.
칠마종의 움직임에 대해서는 오늘 밤이라도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은 영웅회 특사단이 무사히 돌아가는 것이 중요했다.
백엽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백여희와 이복승의 입씨름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서로 자신들의 힘이 강하다는 주장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백여희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좋아요. 말이 통하지 않는 것 같으니, 천혈방주께서 오시면 직접 담판을 짓도록 하지요. 오늘은 이만 가보겠어요.”
백여희가 말을 한 후 특사단을 이끌고 돌아가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상황을 지켜보던 광도객이 말했다.
“잠깐만. 올 때는 마음대로 왔지만 갈 때는 그럴 수 없다. 백여희라고 했나? 너는 이곳에 남아야 한다.”
“흥! 특사를 이런 식으로 대하는 것이 그 잘난 천혈방의 방식인가요? 앞으로 천혈방은 특사를 보낼 생각이 없는 것 같군요.”
백여희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대꾸했다.
광도객 역시 흥분하지 않았다.
천혈방 악양지부로 파견 온 오대식객 중 파검객은 이미 백엽에게 죽은 상황.
이제 사대식객이 되었지만 그중 선임이 바로 자신이었다.
게다가 이러한 긴급 상황 시에는 천혈방 무사들에 대한 지휘권 일부가 자신에게 넘어오게 되어 있었다.
이복승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터라 반대하지 않았다.
“광도객께서 고견이 있으시군요. 저 계집을 잡아놓으려는 이유가 궁금하오.”
“하하하! 그저 사심이 생겨서 그렇소. 나는 천혈방도도 아니고 일개 식객에 불과하니 그러한 사심을 갖는 게 무림의 관례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지 않소?”
광도객이 말을 한 후 이복승에게 전음을 날렸다.
「백여희 저 계집만 잡아두면 앞으로의 싸움에 있어서 매우 유리해질 것이오. 지략이 뛰어난 년이니 절대 그대로 보내서는 안 될 것이오.」
「무슨 말인지 알겠소. 특사는 건드리지 말라는 방주님의 명이 있었지만, 사적으로 좋아해서 잡아둔다고 하는데 누가 뭐라 하겠소? 방주님께서도 나중에 아시면 칭찬하실 것이오.」
이복승이 비릿한 미소를 지은 후 말했다.
“하하하! 백 소저가 마음에 드신다니 당연히 놓쳐서는 안 되겠지요. 하지만 백 소저 역시 특사 신분이니 이렇게 합시다. 일대일 대결을 펼쳐 누구든 광도객을 꺾으면 보내주는 것으로. 어떻소? 이것도 무림 관례에 어긋나오?”
“흥! 억지를 부리는군요.”
백여희가 코웃음을 쳤으나 이미 천혈방 무사들이 특사단을 에워싸고 있었다.
보다 못한 고해풍이 나섰다.
“광도객이라고 했소? 내가 상대해주겠소.”
“후후후! 화산신룡 그대 같은 애송이는 나의 적수가 되지 못하오. 처음부터 화산파 장로분들이 나서야 할 것이오.”
“허튼 소리하지 마라. 이름도 없는 네놈은 내가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고해풍이 분노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웅보로 온 이후 아직 자신의 명성을 떨칠 기회가 없었다.
광도객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좋다. 하지만 대결을 하기 전에 규칙을 정해야지. 내가 무한정 싸울 수는 없지 않겠느냐? 백 소저. 이런 경우는 무림 관례가 어떻게 되오?”
“흥! 당신이 무도한 짓거리를 하고 있으니 설령 비무를 받아들이더라도 최소 다섯 고수는 상대해야 할 것이다.”
“나 혼자서 다섯 명을? 속 보이는 제의로군. 하지만 수락하겠다. 누구든 좋다. 다섯 고수를 차례대로 격파하면 백여희 네년은 이곳에 남아서 내 첩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고해풍! 어서 비무대에 올라라. 정정당당히 겨뤄보자.”
광도객이 경공을 펼쳐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백여희가 뭐라 할 사이도 없이 고해풍이 검을 뽑아 들고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일검에 죽여주마. 당연히 생사결이겠지?”
고해풍의 말에 광도객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다. 하지만 너무 시간을 끌면 곤란하니 비무대 밑으로 떨어지면 패배하는 것으로 하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