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28
상효통의 호통에도 피리 소리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 출처를 모르는 이상 소리를 제거할 수는 없었다.
다만 당장 무사들의 몸에 어떤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천혈선생이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무시하고 바로 떠나시지요. 독성이 없는 일종의 심리전 같습니다. 떠나려 하면 놈이 실체를 드러낼 겁니다.”
“알겠소. 모두 그대로 출발하라!”
상효통이 명을 내린 순간.
괴이한 음향과 함께 삼천 무사들의 시체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크크크!”
“낄낄낄!”
시체가 움직인다는 것.
그것은 아무리 무림인이라고 해도 소름이 돋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것도 조금 전 자신들이 죽인 사람들이었다.
괴성과 함께 두 팔을 벌린 채 천천히 몸을 세우고 있는 삼천여 구의 시체들.
“헉! 귀신이다!”
“저럴 수가!”
유독 귀신을 겁내는 무사들 수백 명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지휘부 고수 대부분은 시체들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방주님! 강시입니다!”
천혈선생이 소리쳤다.
천혈방과 동정수로채 무사들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도 그럴 것이 전투에 있어 강시의 의미는 가볍지 않았다.
강시들은 대부분 도검불침의 몸에 가까우므로 그 파훼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큰 피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강시들을 조종하고 있는 피리 주인을 찾아내 제거하면 되겠지만, 흔적을 전혀 못 찾고 있는 상황.
어쩔 수 없이 직접 강시들을 제거해야 했다.
상효통이 소리쳤다.
“겁낼 것 없다! 강시들을 모조리 제거하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삼만 대군의 위력 때문일까.
천혈방 무사들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강시들을 주저 없이 공격하기 시작했다.
강시들의 움직임이 생각보다 느렸기 때문에 공격은 매우 쉬웠다.
파파팍.
푸푸푹.
수천 개의 병장기가 강시들의 몸에 박혔다.
강시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병장기 역시 관통을 하지 못하고 강시 몸에 일부만 들어갔을 뿐이었다.
오히려 한번 박힌 병장기들은 다시 뽑히지도 않았다.
동정수로채 무사들 역시 공격에 가담했으니 똑같았다.
무사들이 당황할 때.
피리 소리의 곡조가 높아졌다.
삘리리리.
“크크크!”
“낄낄낄!”
강시들이 괴성과 함께 두 팔을 통해 붉은 기류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마치 연기가 수평으로 빠르게 번져나가는 모양이라고 할까.
붉은 기류에 닿은 무사들이 비명과 함께 그대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상효통, 동정수왕 등 지휘부 고수들이 보니 쓰러진 무사들의 시신이 마치 화골산에 당한 듯 급격히 녹아내리는 것이 아닌가.
“이놈들이!”
분노한 상효통이 일장을 날려 강시 한 구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퍽 소리와 함께 머리 부분이 완전히 날아간 강시.
몸뚱이만 남은 강시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앞으로 나오며 두 팔을 휘저었다.
붉은 기류가 오히려 더 진하게 분출되며 한꺼번에 대여섯 명의 무사들이 쓰러졌다.
본격적인 지옥도가 펼쳐진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피리 소리가 더욱 높아졌고, 그에 따라 강시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무사들 사이에 파고든 강시들이 무차별적으로 살수를 펼쳤다.
붉은 기류에 조금 스친 무사들마저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어찌! 이럴 수가!”
상효통이 장풍을 날려 강시 몇 구의 머리통을 날리며 한탄했다.
천혈선생이 말했다.
“방주님! 목이 없는 놈들의 사지도 잘라버리십시오.”
“알겠소!”
천혈방주가 장풍을 날려 목 없는 강시들의 사지까지 가루로 만들었다.
몸통만 남은 강시는 그제야 한 차례 몸을 부르르 떤 후 쓰러졌다.
움직임을 멈춘 강시는 푸른 연기를 내며 그대로 녹아내렸다.
강시의 종말이었다.
천혈선생이 소리쳤다.
“강시들의 목과 사지를 분리해라. 그것이 놈들의 약점이다!”
지시를 받은 천혈방 무사들이 일제히 강시들의 목과 사지를 공략했다.
하지만 여전히 일반 무사들의 공격은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사망자는 속출했다. 어느새 강시에게 죽은 무사들의 수가 수천 명에 달했다.
반전이 일어난 것은 천혈방주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백대식객와 삼십육장로, 그리고 십대봉공의 가세 덕분이었다.
그들은 강시들의 약점을 파악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본격적으로 공격에 가담한 것이었다.
푸푸푹
퍼퍼퍼퍽.
강시들의 목과 사지가 터지거나 잘려나갔다.
하지만 강시의 수가 워낙 많았다.
강시들이 무력화되는 만큼 일반 무사들의 사망자도 속출했다.
연무장이 한눈에 보이는 전각 지붕 위에 은신술을 펼치며 피리를 불던 백엽이 눈을 빛냈다.
‘애초 제대로 천마강시로 만들었다면 완벽한 도검불침이 되었을 텐데 아쉽군. 그나마 놈들이 삼천 구의 시신을 만들어줘 제법 큰 타격을 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곧바로 영웅보를 공격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랬다.
천마은잠술(天魔隱潛術)을 펼친 채 상황을 지켜보던 백엽은 천혈방 무사들이 영웅보로 진격하려 하자 강시술을 펼친 것이다.
사실 강시술은 계획에 없던 것이었다.
하지만 상효통과 동정수왕이 무공을 잃은 수하들을 폐기하는 일이 벌어졌고 백엽이 이를 이용한 것이었다.
강시술은 천마독의 효능 중 하나였다. 천마독에 중독되었다가 어떤 이유로든 죽게 되면 그 시신은 한 시진 내에 강시로 부릴 수 있었다.
다만 이는 불완전한 것이었다.
완벽한 강시라 할 수 있는 천마강시를 만들려면 처음부터 천마독으로 죽여야 했다.
하지만 천마강시의 제조방법이 매우 어렵고 천마독 역시 부족했다.
‘가지고 있던 천마독을 거의 다 사용해서 걱정이 많았는데, 그나마 운이 좋았다. 최소 만 명 정도의 병력 감소가 있을 것이다.’
백엽이 비명으로 가득한 연무장을 쳐다봤다.
고수들의 가세로 강시들이 빠르게 제거되고 있었지만, 무사들의 피해도 계속 이어졌다.
사망자만 만 명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고수들의 반격 또한 거셌다.
특히 십대봉공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식객과 장로들보다 그 무공이 한 수 위로 보이는 그들은 절정고수 중에서도 상급이었다.
하나같이 나이를 추측하기 힘들 정도의 노인들이었는데, 그 무공들이 대단했다.
백엽조차 지금 상태에서 그들과 붙게 되면 승리를 자신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무래도 전대고수 같구나. 강시술을 펼치는 바람에 성녀단의 효능을 제대로 흡수할 시간이 없었다. 더는 무리다. 그래도 최소한 하루 정도의 시간을 번 것 같군.’
백엽이 몸을 일으켰다.
어느새 마지막 강시가 몸통만 남은 채 쓰러지고 있었다.
천혈방과 동정수로채 무사 중 사망자 역시 만여 명.
동정수로채 무사들이 뒤로 물러나 있어 사망자 대부분은 천혈방 소속이었다.
피리 소리를 멈춘 백엽이 경공을 펼쳐 연무장을 벗어났다.
그가 향하는 곳은 바로 영웅보였다.
강시로 인해 큰 타격을 받은 적들이지만, 이후 행보를 확신할 수 없기에 일단 영웅보에 가보려는 것이었다.
‘지존장원 쪽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나중에 연락만 취하면 된다. 문제는 영웅회 쪽인데 어떤 식으로 도움을 줘야 할지 고민이구나.’
한 마리 비조처럼 날아가는 백엽이 눈을 빛냈다.
그의 표정은 비교적 담담했으나 아쉬움도 배여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흑도 세력을 대거 흡수하려던 최초 계획이 아직은 큰 효과를 내지 못했다.
‘천혈방주와 동정수왕이 예상보다 일찍 오지 않았다면 최소한 일반 흑도 천여 명을 수하로 거둘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백 명이라도 순수 흑도를 거뒀으니 일단 그것만으로 만족해야겠군.’
* * *
“지금 뭐라고 했느냐? 천혈방주가 도착했다고?”
“네. 아버님. 놈들이 곧바로 이곳으로 진격해올 수 있으니 대책을 서둘러야 해요.”
영웅보 취의청.
백운목 주재로 긴급하게 열린 작전 회의에 영웅회 지휘부 고수 백여 명이 참석해 있었다.
그들은 조금 전 복귀한 백여희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백엽의 활약으로 삼천 흑도 무사들이 전멸한 이야기에 환호한 것도 잠시였다. 천혈방주의 도착 소식에 다들 우려하는 표정이었다.
“큰일 났구나. 화산파와 형산파 무사들이 철수하는 바람에 지원 병력도 전혀 없는데, 이천 무사로 어찌 삼만 병력을 막아낸다는 말이냐? 그 지존회주 곽유라는 사람이 확실히 우리를 돕겠다고 했느냐?”
“네. 서로 협조하기로 했어요.”
“지존회주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그건 몰라요. 거처가 따로 있는 것 같았는데, 그것까지는 파악하지 못했어요.”
백여희의 말에 중인들이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충의문주 번약수가 말했다.
“거처도 모르고 우리 운명을 그자에게 맡길 수는 없소이다. 내가 보건대 지존회주란 그자는 흑도 통일을 목표로 하는 절대고수인 것 같소. 그가 특사단을 도왔다고 하나 그건 구실일 뿐이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백 부군사를 이용했을 뿐이오. 무엇보다 흑도 인물을 어찌 믿을 수 있겠소?”
“지존회주는 믿을만한 인물로 보였어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자기 거처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말이오?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 어떤 지원도 없다고 생각해야 하오.”
“으음, 번 문주의 말씀이 옳소. 좋은 방도가 있는 분은 말씀해주시오.”
백운목이 지휘부 고수들을 쳐다봤다.
대부분 위령제에 참석했던 고수들이었다.
악양 무관연합회 회장인 제왕무관주 반초(潘初)가 악완에게 물었다.
“악 소저. 화산파 대공자와 장로분들의 상태는 어떻소?”
“비록 중상을 입었으나 목숨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다만 회복을 하려면 열흘 정도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깝구려. 절세고수였던 백엽 공자도 떠났고, 놈들을 상대할 고수가 너무 부족한 것 같소이다. 백 부군사의 견해를 듣고 싶소.”
“시급한 것은 놈들의 공격을 막아내는 거예요. 중과부적이라 전면전은 불가능하고 이곳에서 버티면서 상황이 좋아지길 바라야겠지요.”
“이천 무사로 삼만 병력을 어찌 막아낼 수 있겠소? 상황이 좋아진다는 말씀은 화산파와 형산파에서 다시 지원 병력을 보내는 것을 뜻하는 것이오?”
“네. 마교가 화산파와 형산파를 노리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다시 지원을 해주실 거예요. 여기서 버티는 문제는 우리 무력으로는 불가능하고 보호 진법을 펼칠 수밖에 없을 듯해요.”
“보호진이라? 그래. 여희 네가 진법에 일가견이 있었지?”
백운목이 반색했다.
어떻게든 전면전을 피하면서 외부 지원을 기다리고 싶었던 그로서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네. 총군사님께 보호진을 하나 배운 게 있어요. 운이 좋으면 놈들을 하루 이틀 정도 막아낼 수 있을 거예요.”
“그거라도 어디냐? 어서 설치해라.”
백운목이 조바심을 냈다.
“걱정하지 마세요. 진은 어제 미리 설치해뒀어요. 발동만 하면 돼요.”
“진이 발동되면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냐?”
“네. 파훼가 되기 전까지는 그렇지요. 다만 고수들은 막아내지 못할 거예요.”
“우리 편 무사들은?”
“진의 생문을 열어주면 대문을 통해 들어올 수 있을 거예요. 내부에서 조작할 수 있어요.”
“어서 발동해라. 놈들이 지금에라도 들이닥칠 수 있으니까.”
“네. 하지만 정탐 무사들을 보내 놈들의 동태도 파악해야 할 것 같아요. 제 생각에 지존회주께서 그냥 돌아가지 않고 놈들을 좀 더 괴롭혔을 것 같은데, 그 상황을 알아야겠어요.”
“당연하다. 어서 서둘러라.”
“네. 아버님.”
백여희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영웅보 무사 한 명이 취의청 안에 다급하게 들어왔다.
“보주님. 동방에서 왔다는 공자 한 분이 오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