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29
“어서 들어오십시오.”
“감사합니다.”
백엽이 영웅보 호위무사의 안내를 받아서 간 곳은 바로 대청이었다.
대청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
“잠시 여기서 기다려주십시오. 곧 보주님과 대부인, 그리고 아가씨들이 오실 겁니다.”
“알겠습니다.”
백엽이 담담히 말했다.
기다리는 동안 그는 한쪽에 놓여 있는 동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쳐다봤다.
지존회주 곽유와는 또 다른 얼굴이 거기에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내 진짜 얼굴을 드러내게 되었구나. 삼십 년 전 납치되자마자 독물에 담겨 내 본얼굴이 완전히 훼손되고 새 얼굴이 되었었지. 그리고 그 얼굴로 삼십 년을 살아왔다. 하지만 극마의 경지에 오른 이후 진짜 얼굴을 찾았고 이제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내게 되는구나. 가족을 찾지 못했으면 절대 드러내지 않았을 내 얼굴을.’
백엽이 잠시 회한에 잠겼다.
지금 그의 얼굴은 생사신의와 성녀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십년 전에 매영설이 봤던 백엽의 본얼굴이라는 것도 사실은 진짜 본얼굴이 아니었던 셈이었다.
굳이 구분한다면 지금 보이는 모습이 원천 얼굴이라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당시 납치되었던 일천여 예비 살수 모두 자신의 진짜 얼굴이 훼손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완벽한 역용술을 익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정통적인 방법으로 역용술을 익히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터득하기도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바로 독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칠백 년 전 천마신교의 고수 중에는 역용술로 유명한 천면마인(天面魔人)이란 자가 있었다.
그는 평생 천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었으며, 역용술의 일인자였다.
그가 말년에 터득한 비법이 바로 독으로 역용술을 익히는 것이었다.
그가 만든 천면독(天面毒)을 얼굴에 뿌리면 원천 얼굴이 사라지고 새 얼굴이 생성되는데, 이 얼굴을 하게 되면 적은 내공으로도 쉽게 역용이 가능했다.
게다가 그 역용이 완벽해 어떤 고수라도 역용 사실을 알 수 없었다.
물론 한계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다섯 살 미만의 아이에게만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가장 좋은 것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갓난아기로 백엽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그 때문일까.
백엽은 열 살 무렵까지는 자신의 얼굴이 원래 그런 줄 알았다.
신기한 것은 천면독으로 바뀌었던 새 얼굴도 제법 준수했다.
그 때문일까.
원천 얼굴이 훼손된 것을 알고서도 큰 미련은 없었다.
가족이 몰살당했다고 믿고 있었기에 진짜 얼굴이 필요 없었다.
무엇보다 극마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는 한 진짜 얼굴을 회복할 수 없다는 사실도 한몫했다.
하지만 가족이 살아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상황은 달라졌다.
‘다행이군. 옥패만으로는 확실한 믿음을 주지 못할까 걱정스러웠는데······.’
백엽이 자신의 얼굴을 다시 쳐다봤다.
확실히 백운목을 닮아 있었다.
장씨부인을 닮은 구석도 있었지만, 역시 아들이라서 그런지 부친과 비슷했다.
‘내가 천마신교 교주라는 사실이 절대 드러나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최대한 무공을 숨기는 수밖에 없겠군. 극마의 경지에 달해 외부에서 내 무공의 근원을 알 수 없겠지만 혹시 모른다. 무공을 사용하더라도 정파 무공을 사용해야 가장 안전하다.’
백엽이 자신이 알고 있는 무공들을 떠올렸다.
사실 그는 살아있는 무공비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교주비고에 있던 수없이 많은 무공을 모두 익혔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천마대장경에 수록되어 있던 천마속독술(天魔速讀術) 덕분이었다. 천마속독술을 익히면 어떤 비급이라도 한 번만 보면 곧바로 암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천마속독술의 진정한 가치는 그 이해력의 제고에 있었다.
아무리 많은 무공을 알고 있어도 이해를 못 하게 되면 아무 소용이 없는 법.
독파와 동시에 이해가 되기 때문에 따로 연습해볼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다만 예외가 있다면 바로 천마대장경 상의 무공이었다.
천마속독술 또한 천마진기가 토대가 되기 때문이었다.
백엽이 지금 떠올리고 있는 무공은 매우 오래된 비급에 수록되어 있던 것들이었다.
비급의 저자는 바로 동방에서 온 무명노승(無名老僧)이란 자였다.
비급의 이름 또한 무명비급이었다.
교주비고에 비치되어 있던 그 무명비급을 백엽이 발견한 것은 교주가 된 후 처음으로 교주비고에 들어갔을 때였다.
이미 천마대장경 상의 무공을 익혔던 때라 다른 무공은 시시해 보였지만 무명비급은 예외였다.
모두 합해 팔대무공에 불과했지만 그 심오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백엽은 곧바로 그 전 내용을 암기했다.
천마속독술 덕분으로 이해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전에 사용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바로 팔대무공의 근본이 되는 심법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비급의 분실을 우려한 무명노승이 그 심법만은 일부러 적어 놓지 않은 것 같았다.
천마대장경 상의 무공보다 어쩌면 더 뛰어날 수도 있는 무공이었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러지 않고 욕심을 내어 무리하게 연마하면 주화입마 될 가능성이 무척 컸다.
그렇게 기억 한 편에서 지웠던 무공이 지금 떠오른 것은 그것이 동방 무림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무명비급을 처음 읽어봤을 때 그런 의문을 가지긴 했었지. 내가 극마의 경지에 도달하면 팔대무공을 무리 없이 펼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나중에 한 번 시험해봐야겠구나.’
백엽이 생각에 잠시 잠겼을 때.
인기척이 나며 대청 안으로 사람들이 들어왔다.
바로 백운목과 장씨부인, 백여희, 백여옥 네 사람이었다.
그들은 매우 흥분된 표정이었다. 가장 들떠 있는 사람은 바로 장씨부인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신중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동방에서 온 공자가 무조건 장씨부인의 방에서 발견한 서신에 적힌 공자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장씨부인은 이미 예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급한 마음에 그녀의 손에는 모자옥패가 들려 있었다.
백엽이 서신과 함께 남겨둔 자옥패와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모옥패 이렇게 두 옥패가 합쳐진 것이었다.
원래 두 옥패를 서로 부딪히게 되면 하나로 합쳐지며 금빛 모양의 연꽃 환영이 피어오르게 되는데, 그러한 변화를 확인한 것이다.
“내가 영웅보주 백운목이오. 나를 보러 오셨소?”
백운목의 말에 백엽이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의 얼굴이 드러났다.
백운목의 젊은 시절을 빼닮은 그의 모습을 보자 장씨부인이 달려와 손을 잡았다.
“아들아! 정말 네가 돌아왔구나.”
장씨부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아직 약간의 이성은 있는지 백엽을 끌어안지는 않았다.
백운목이 물었다.
“공자가 바로 부인의 방에 옥패와 서신을 남긴 동방공자(東邦公子)요?”
“네.”
백엽이 담담히 말했다.
이미 한번 격동의 순간을 맞이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침착할 수 있었다.
“귀하가 정말 내 아들이란 말이오?”
“틀림없는 것 같아요. 아버님 얼굴을 빼닮았어요. 어머님 얼굴도 보이고요.”
백여희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하지만 아직 확신할 수는 없는 상황.
자옥패가 유력한 증거였지만 옥패를 발견한 사실이 새어나갔을 수도 있었다.
“어떻게 옥패를 가지고 있었는지 설명을 해줄 수 있겠소?”
“네.”
백엽이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미리 준비해둔 이야기로 그 내용은 사실 간단했다.
납치되었던 자신을 동방의 한 법사가 구해줬으며, 이후 함께 동방으로 건너가 그의 제자가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삼십 년이 지나 사부였던 법사가 돌아가시자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중원으로 오게 되었고, 때마침 영웅보에 들르게 되어 옥패의 출처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아! 그렇다면 위령제 때 공자도 있었단 말이오?”
“네. 군웅 속에서 모든 광경을 봤습니다. 사부님께 들은 이야기도 있고 해서 제 신분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사부께서 뭐라고 하셨소?”
“악양 외곽에 버려져 있던 저를 발견했다고 하셨습니다.”
“아! 그때 조금만 찾아봤다면 우리가 아이를 잃어버린 사실을 알 수 있었을 텐데······.”
백운목이 안타까워했다.
백엽이 담담히 말했다.
“사부님께선 그 사실을 전혀 모르셨을 겁니다. 그저 하늘에서 제자를 보내주셨다고 생각해 저를 데리고 곧바로 동방으로 복귀하셨지요. 그때는 먹을 것이 없어 아이를 버리는 경우도 흔했으니까요.”
“아! 어찌 그런 일이. 한데 버려져 있었다고 했소? 우리는 마교 놈들이 납치해갔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저도 의아합니다. 제 생각이지만 마교에서 납치했다가 자질이 형편없어 그냥 버리고 간 게 아닌가 합니다.”
“무공을 배우지 못했소?”
“사부님께 배우긴 했습니다만 자질이 부족하여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백엽의 말에 백운목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을 한 자루 차고 있긴 했으나, 어쩐지 장식용 같았다. 몸 전체에서 어떤 기도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부를 모셨다는 말에 내심 기대했던 백운목이 실망했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모두가 내 잘못이다. 이렇게 살아 돌아온 것만 해도 기적 같은 일이다. 나중에 보주 자리를 맡게 되더라도 여희와 여옥이 보필을 해줄 것이니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장씨부인이 말했다.
“우리 아들이 틀림없어요. 생김새도 그렇고 무엇을 더 확인하겠어요? 무엇보다 옥패를 가지고 있었으니 더 이상 볼 것도 없어요.”
“진정하시오. 사실 내 이런 날이 올 줄 알고 한 가지 물건을 준비해두었소.”
백운목이 품속에서 작은 병 하나를 꺼냈다.
백여희가 깜짝 놀랐다.
“아버님. 그것은 친자를 감별하는 혈병(血甁)이 아닌가요?”
“그렇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 이 혈병에 피를 넣고 흔들면 하나로 합쳐지게 되지. 동방공자. 한번 시험해보겠소?”
“네. 저도 확실한 것을 원합니다.”
“좋소. 하늘의 뜻을 알아봅시다.”
백운목이 손가락 끝에 피를 내어 한 방울 혈병에 담았다.
장씨부인 역시 한 방울 담았다.
이제 남은 사람은 백엽.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도 떨리는 마음이었다.
만에 하나 잘못될 확률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이기도 했다.
백엽이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천천히 손가락을 따서 피 한 방울을 혈병에 떨어뜨렸다.
바로 그 순간.
혈병에 모여든 피가 빠른 속도로 합쳐지는 것이 아닌가.
원래 백운목과 장씨부인의 피는 서로 섞이지 않고 있었다.
부부지간이지만 그래도 혈연관계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백엽의 피가 섞이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일체가 되었다.
“하하하! 내 아들이 확실하구나. 백아!”
“백아!”
백운목과 장씨부인이 백엽을 얼싸안았다.
억제했던 눈물이 제대로 터졌다.
그동안 눈물을 거의 흘리지 않았던 백운목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백여희와 백여옥 역시 눈물을 흘렸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백엽은 애써 눈물을 참았지만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분을 느꼈다.
제대로 된 가족 상봉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해후의 기쁨을 만끽할 여유가 없었다.
바로 천혈방과 동정수로채의 공격이 임박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이곳으로 오기 전 백여희가 보호진을 발동시키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너무 부족했다.
“아들아! 네 이름이 무엇이냐? 백아는 아명으로, 아직 진짜 이름도 지어주지 못했구나.”
“따로 이름이 없었습니다. 옥패 때문에 백씨로 추정은 했었지만, 그저 동방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그랬구나. 그렇다면 백동방(白東邦)이 어떠하냐?”
“좋습니다. 아버님.”
“이제 방이라고 불러야겠구나. 방아. 이제 이 어미는 소원이 없다. 내 말을 잘 들어라. 지금 즉시 보를 떠나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거라. 무공도 변변찮은 네가 이곳에 있다가 죽게 되면 그 얼마나 비통한 일이겠느냐?”
“아닙니다. 어머님. 함께 하겠습니다.”
“아니다. 네 마음만 받겠다. 방이 네가 직접 우리를 찾아오지 않고 서신과 옥패만 남긴 것도 다가올 전투가 두려웠기 때문이 아니냐?”
“아닙니다.”
“너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라도 와줬으니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방아. 이 옥패를 받아라. 이제 이 모자옥패는 하나가 되었으니 너를 지켜줄 것이다. 삼십 년 전 너를 낳고 이 옥패를 동방에서 온 상인에게서 우연히 사게 되었는데, 그게 다 네가 동방과 인연이 있어서 그랬던 것 같구나. 그때 그 상인이 말했었다. 이 모자옥패에는 엄청난 비밀이 있다고. 그 비밀을 풀면 큰 힘을 얻게 될 거라고 했지.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나는 믿고 있었다. 여희야. 네 오라비를 보 밖에 있는 안전한 곳에 데려다주어라. 우리가 이 전쟁에서 살아남는다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네. 오라버니. 어서 가요. 시간이 없습니다. 놈들이 언제 쳐들어올지 몰라요. 포위라도 당한다면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가요.”
“가지 않겠습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영웅보 대공자답게 보를 지키겠습니다.”
“하하하! 역시 내 아들이다! 겁쟁이가 아니었어! 좋다. 우리는 가족이니 생사를 함께 하자.”
백운목이 껄껄 웃었다.
백엽 또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있는 한 영웅보는 건재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