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31
“공자께서 저의 정혼자셨군요.”
“만나서 반갑소. 나 또한 얼마 전에야 그 사실을 알았소.”
악완과 백엽.
작전 회의가 끝나자 두 사람은 따로 자리를 옮겨 차를 마시고 있었다.
객당에 마련된 응접실로 소수의 사람이 모여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이었다.
갑작스러운 백엽의 등장으로 매우 놀랐던 악완은 이제 많이 진정되었는지 차분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어찌 할 말이 없겠는가.
오히려 너무 많아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백엽에 대한 첫인상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서른 살로 자신과 열두 살이나 차이가 나지만 백엽이 워낙 동안이라 겉으로는 이십 대 중반 정도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다만 단둘이 있게 되자 서먹한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물론이었다.
특히 난감해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백엽이었다.
남자로서 분위기를 이끌어가야 하는데 막상 정혼자로서 악완을 대하는 것이 예상보다 쉽지 않았다.
물론 작전 회의 때의 상황도 예상을 벗어나기는 매한가지였다.
영웅보 대공자로서 뭔가 당금 상황에 대한 의견을 내고 싶었으나, 좀체 발언권이 주어지지 않았다.
중인들이 삼십 년 만에 집에 돌아온 자신에게 축하를 해주었지만, 무공이 변변찮아 보이자 중요한 결정 사항에 대해서는 관심 밖이 되고 말았다.
하기야 동방에 있다가 최근에야 중원으로 왔다는 그의 설명에 당금의 위기 상황을 타개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는 백운목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백엽을 공개적으로 소개하려는 목적이었지 그 이상은 바라지 않았다.
백엽은 영웅회의 방어 계획에 대해 몇 군데 개선점이 보였으나 결국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보직 역시 마찬가지였다.
평상시 같으면 백운목이 백엽에게 주요 보직을 줄 수도 있겠으나 무공이 약하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무 직책도 주어지지 않았다.
물론 백엽이 직책을 탐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당금 상황에 자신의 개입 여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일까.
작전 회의가 파할 무렵.
적당한 때에 자신의 무위를 어느 정도 보여줘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하지만 그 문제는 차치하고 지금 상황이 오히려 더 난제였다.
악완과 단둘이 있게 된 지금 혼인 문제에 대한 어떤 결론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백엽이 정혼 문제를 적극적으로 거론하지 않고 주저하자, 악완의 안색이 조금 굳어졌다.
타지에서 삼십 년이나 살아왔던 백엽의 혼인 여부가 궁금해진 것이다.
“혹시 이미 혼인을 하셨나요?”
어젯밤 백운목과 장씨부인으로부터도 들었던 질문이었다.
백엽은 사실대로 아직 혼인하지 않았다고 말했고, 백운목과 장씨부인은 매우 기뻐했다.
악완을 생각해서였다.
“아니오. 고아나 다름없고 무공도 변변찮은 나를 누가 관심을 두었겠소? 사실 악 소저의 명성은 동방에서도 들은 적이 있소.”
“아! 그런가요?”
악완이 반색을 했다.
자신의 명성이 동방에도 퍼져서가 아니라 백엽이 미혼이란 게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그렇소. 화산옥녀의 미모가 그렇게 뛰어나다고. 지금 보니 그 소문이 사실임을 알 수 있었소.”
“호호! 과찬이세요. 한데 저를 본 것은 위령제 때가 아닌가요?”
“아, 그렇구려. 처음 악 소저를 봤을 때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인 줄 알았소.”
“농담도 잘하시는군요.”
미인은 칭찬에 약한 걸까.
백엽이 자신을 띄워주자 악완이 싫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백엽이 담담히 말했다.
“우리의 정혼 문제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공자님 생각부터 듣고 싶군요.”
“으음, 사실 내게 정혼녀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놀랐소. 게다가 그 상대방이 바로 화산옥녀라는 사실에 더욱더 그랬소. 하지만 무공 실력도 변변찮은 내가 어찌 욕심을 내겠소? 나이도 많고 이룬 것도 없고, 무명소졸에 불과한 나에게 악 소저는 너무 과분한 상대요.”
“너무 겸손하시군요. 사실 저는 아직 마음의 결정을 못 내렸어요. 아마 공자님도 마찬가지일 것 같군요. 지금은 정혼 문제를 결론 내릴 때가 아니라 천천히 서로를 알아볼 때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지금 닥친 상황이 매우 위급하니 사적인 일은 나중으로 미루는 것이 좋을듯해요. 아, 그리고 공자의 나이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렇게 많은 나이도 아니고 생각보다 동안이시라.”
“하하하. 고맙소. 그럼 정혼 문제는 차차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하는 것이니 어떤 결론이 날지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오.”
“네. 저 역시 그게 가장 마음에 부담이 없을 듯하네요. 절 배려해주셨다고 생각할게요.”
“그렇게 생각해주니 오히려 내가 고맙소.”
백엽이 미소를 지었다.
지난 삼십 년간 정을 끊고 살아온 그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역시 혼인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가족을 찾게 되고 혼인 여부에 대한 질문을 계속 받게 되자 자연스럽게 생긴 고민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당금의 위기 상황 때문에 사적인 고민을 할 겨를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당분간 혼인에 대해서는 일절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겠군. 그 상대가 누가 될지 모르겠으나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내 마음속에 한 사람이 자리 잡을 것이다. 지금은 그때가 아닌 것 같다.’
혼인에 관하여 유보를 결정하자 그제야 마음이 편해지는 백엽이었다.
하지만 정혼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그나마 아직 악완의 나이가 많지 않은 점이 위안거리였다.
백엽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무사 한 명이 응접실로 들어왔다.
“악 소저님. 와룡대주께서 본보로 오셨습니다. 악 소저를 찾으셔서 보주님께서 모셔오라고 하셨습니다.”
“아! 여의공자(如意公子)께서 오셨다는 말씀인가요?”
“네. 와룡대원 백여 명을 데리고 지원을 오셨다고 합니다.”
“한데 왜 저를?”
“여의공자께서 악 소저가 이곳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맹주님의 허락도 받지 않고 지원을 결정하셨다고 합니다. 보주님을 비롯해 지휘부 고수들께서 그 감사의 표시로 악 소저가 얼굴이라도 비춰야 한다고 하셔서······.”
“네. 알겠어요. 먼저 가보세요. 지금 어디에 계시나요?”
“연무장에 모여 있습니다. 다들 무림맹주님의 자제분께서 직접 오신 것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무사가 밖으로 나가자 악완이 안색을 굳혔다.
백엽이 의아해했다.
“왜 그러시오? 무림맹주의 자제가 왔다는 것은 기뻐할 일이 아니오?”
“그건 맞는 말씀이지만 그곳에 가기 전 공자께 미리 이야기 드릴 것이 있어서.”
“뭔지 말씀하시오.”
“사실 이번에 위령제에 오기 전에 맹주님께서 제 아버님께 혼담을 넣으셨습니다. 위령제가 끝나게 되면 자동으로 파혼 상태가 되니 맹주님 자제분인 여의공자와 저와의 혼사를 추진하려 하셨던 것이지요.”
“으음, 그렇게 되었군요. 하지만 이해를 하오. 나야 이미 죽은 사람과 진배없었으니 말이오. 괘념치 마시오.”
“감사해요.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 여의공자가 혼사에 매우 적극적인 편이에요. 혹시라도 백 공자께 무례를 범하지나 않을까 염려가 돼요.”
“여의공자를 직접 만나본 적이 있소?”
“네. 세 번 정도 화산에 왔었지요. 그때마다 제게 관심을 보였고, 제가 몇 번이나 거절 의사를 표시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여의공자라면 후기지수 중 으뜸인데 왜 거절을 하셨소?”
“그야 백 공자님 때문이었지요. 정혼자가 있는 여인이 어떻게 다른 분과 혼인을 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파혼이 되면 그때 다시 이야기해보자고 마무리되었는데, 이번에 위령제 소식을 듣고 정식으로 매파를 보낸 것이지요. 기우일 수도 있으니 대비를 하시라는 뜻에서 미리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다행히 백 공자께서 영웅회에 별다른 직책을 맡고 계시지 않으니 여의공자와 마주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아요.”
“여의공자가 나의 무공을 시험해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오?”
“네. 어떤 식으로든 공자님을 망신 주려 할 거예요. 그러니 아예 그분과 마주치지 말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하하하. 그래도 본보에 온 손님이라 할 수 있는데 대공자로서 어찌 환영 인사도 안 하고 숨겠소? 아버님을 비롯해 많은 분이 계신 곳이니 그도 함부로 행동하지 않을 것이오. 함께 가봅시다.”
“네. 죄송해요. 다시 생각해보니 지금과 같은 위급한 시기에 여의공자 역시 사적인 감정을 앞세워 함부로 행동하지는 않을 것 같네요.”
“당연하오. 그리고 내가 비록 무공은 약하지만 어디서 남에게 맞고 지낼 정도는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이오. 와룡대와 관한 이야기는 동방에서도 자주 들었는데, 명문정파 출신이 아니면 들어가기 힘들다는 그 와룡대원들 면면을 보고 싶구려. 어서 갑시다.”
“네.”
악완이 여전히 굳은 안색으로 백엽과 함께 연무장으로 향했다.
‘나 때문에 백 공자께서 망신을 당하면 어쩌지? 정말 큰 일이구나.’
얼마 후 도착한 연무장에는 대대적인 환영 행사가 벌어지고 있었다.
막사에 있던 이천여 명의 영웅회 무사들이 일제히 나와 와룡대 무사들을 환영하고 있었던 것.
그도 그럴 것이 와룡대원들이 누구던가.
대부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출신으로 구성된 후기지수들의 집합체였다.
현 무림맹 지휘부 고수 대부분이 와룡대 출신인 것만 봐도 그들의 위상을 알 수 있었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와룡대원들의 가세로 얻을 수 있는 파급력이었다.
만약 이들이 혈천방과 동정수로채와의 싸움에서 죽거나 다친다면 그들의 사문에서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백운목과 백여희 등이 매우 기뻐한 것은 물론이었다.
무엇보다 현 와룡대의 대주는 무림맹주의 아들이었다.
슬하에 일남일녀를 둔 무림맹주는 자기 아들에게 무공을 아낌없이 전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 때문일까.
여의공자의 무공은 웬만한 장로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악완과 백엽이 연무장에 도착하자 여의공자가 매우 기뻐했다.
“하하하. 어서 오시오. 악 소저. 그대가 이곳 영웅보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대원들을 이끌고 왔소. 마친 인근에서 작전 수행 중이라 늦지 않게 올 수 있었소. 한데 이분은?”
여의공자가 백엽을 가리켰다.
백운목이 말했다.
“여의공자. 부끄럽지만 내 아들이오. 죽은 줄 알았던 내 아들이 삼십 년 만에 돌아왔소이다. 방아. 인사드려라. 차기 무림맹주로 유망한 여의공자이시다.”
“백동방이라고 하오.”
“좌무후(左武厚)요.”
여의공자가 백엽에게 다가와 손을 잡았다.
원래 포권으로도 족한데 악수를 청한 것이었다.
백엽이 손을 잡으니, 곧장 손바닥을 통해 한줄기 경력이 밀려왔다.
바로 여의공자가 내력을 밀어내어 백엽의 무공을 시험해본 것이었다.
‘너무 경솔하군.’
백엽이 속으로 짜증이 났으나 어쩔 수 없이 약간의 내공을 일으켜 응수했다.
순간, 여의공자가 급히 손을 떼는 게 아닌가.
“으으······.”
여의공자가 침음을 흘렸으나 그렇다고 대놓고 말을 하지 못했다.
‘이놈이! 무공이 변변찮다고 해서 내공을 일할도 채 사용하지 않았지만, 백면서생은 아니구나. 하지만 그 정도로는 어림없다. 기껏해야 일류일 테니까. 절대 네놈이 악 소저와 혼인하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