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35
백엽과 여의공자의 대결 결과는 실로 믿기 힘든 일이었다.
백엽의 승리가 공식적으로 선언되었지만, 문제는 여의공자의 승복 여부였다.
공식 승리 직전 사술을 사용했다며 불복했던 그가 아니었던가.
중인들의 시선이 여전히 여의공자에게 쏠리는 이유이기도 했다.
백여희가 물었다.
“여의공자께서는 이번 대결의 결과를 승복하시나요?”
“승복할 수 없소.”
여의공자가 고개를 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단순히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악완에 대한 자신의 연정까지 포기해야 했다.
“설마 아직도 제 오라버니가 사술을 썼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렇소. 그러지 않고 내가 질 리가 없소.”
“사술은 없었어요. 정당한 대결이었고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이 목격했어요. 실망이군요. 여의공자께서 한 입으로 두말하시는 분이라니. 그래서 약속한 조건을 들어줄 수 없다는 건가요?”
백여희가 여의공자를 몰아세웠다.
여의공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사실 백엽이 사술을 썼다고 주장했으나 그 역시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재대결을 원하오. 다시 붙어서 그래도 내가 패배하면 깨끗이 승복하겠소. 정말 실력대로 승부가 났다면 한 번 더 겨뤄도 결과가 같지 않겠소?”
“억지를 부리고 계시다는 것을 본인이 제일 잘 아시겠지요? 승부는 이미 났어요. 강호인이라면 약속을 지켜야 하는 법. 와룡대를 계속 이곳 영웅보에 주둔하고, 악 소저에 관한 관심도 영원히 거두셔야 할 거예요.”
“후후후!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만약 약속을 어기게 되면 여의공자는 앞으로 강호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거예요. 정당한 승부에서 이렇게 터무니없는 재대결 요구를 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나요? 나중에 맹주님께서 이 사실을 알면 뭐라고 하실까요?”
“말씀이 너무 지나치시오.”
여의공자가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자신을 옹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였다.
와룡대 무사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왔다.
“제갈세가 제갈륜(諸葛倫)이라고 하오. 이번 대결의 결과에 대해 본인 역시 의문이 있소.”
“제갈 공자시군요. 무슨 의문이 있다는 것이지요?”
백여희가 안색을 굳혔다.
제갈륜은 이전에 자신과 함께 부군사 후보까지 올라간 인물이었다.
결국 두 사람 중 최종 선발된 사람은 백여희였지만, 제갈륜의 그녀에 대한 감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하하하. 백 부군사께서는 조금 전 대결이 공평했다고 하셨는데, 내가 보기에 그렇지 않소. 잘 생각해보시오. 여의공자는 일차 대결로 영웅보 장로 네 분과 겨뤘소. 하지만 백 공자는 황보 공자 한 명과 겨뤘소. 그 사실만으로 공정한 대결이 아닌 것이오.”
“하지만 그것은 여의공자께서 수락한 대결이었어요. 이제 와서 그것을 문제 삼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나요?”
“하하하. 물론이오. 그냥 승부를 겨룬 것이 아니라 장로들과의 승부에서 여의공자께서 원인 모를 내상을 입었기 때문이오. 그것은 아마도 중독일 가능성이 크오. 여의공자. 제 말이 틀렸습니까?”
“아! 제갈 공자의 말씀을 듣고 나니 이제야 알겠소. 장로들과의 대결을 마치고 몸에 기운이 없어지고 이상했는데 아무래도 독에 당했던 것 같소. 특수한 독이라 그런지 알아차리기 어려웠는데, 백 공자와 대결을 벌일 때 그만 내공 발현에 치명적인 문제가 생기고 말았소. 그러지 않았다면 승리는 내 것이었을 것이오.”
“역시 그랬군요. 백 부군사. 일차 대결에서 중독이 되었다면 이차 대결 역시 무효가 되는 게 옳지 않겠소? 설마 비무에 독을 사용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보주께 여쭤보겠습니다. 친선 비무에서 독을 사용하는 것이 허용됩니까?”
“으음, 친선 비무에서 독을 사용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오. 독은 아무리 가벼운 것이라도 살수에 속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오.”
백운목이 안색을 굳히며 대답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친선 비무, 그것도 같은 편끼리의 대결일 경우 독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물론 독을 사용했다고 해서 무조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사전 양해가 없었다면 재대결을 주장할 근거는 충분했다.
백여희가 말했다.
“호호호. 친선 비무에서 독을 사용하면 최소한 재대결의 사유가 되는 것은 맞아요. 하지만 본보의 장로들이 독을 사용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나요? 정말 어이가 없군요.”
“하독 여부는 사실 밝혀내기 매우 어렵소. 하지만 여의공자께서 산공독에 당한 증상을 느꼈고, 산공독의 경우 그다음 대결에서 그 위력이 드러나는 게 보통이오. 결론적으로 재대결의 사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하오. 하지만 재대결 역시 쉬운 일이 아니오.”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요?”
“여의공자의 몸이 아직 회복이 덜 되었기 때문이오. 지금은 괜찮아 보일지 몰라도 다시 내공을 사용하게 되면 똑같은 결과가 나타날 것이오.”
“흥! 갈수록 궤변이군요. 그래서 어쩌자는 건가요? 재대결도 못 하고 약속도 못 지키겠다는 건가요?”
“그렇지는 않소. 사실 여의공자께서도 독에 당했다는 증명을 하기 매우 어렵소. 그렇다고 패배를 완전히 받아들이기도 어려우니, 일단 대결을 무효로 하되 조건 중 하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소. 물론 향후 나머지 하나의 조건을 두고 재대결을 벌이게 될 것이오.”
“무슨 조건부터 들어준다는 건가요?”
“그건 여의공자께서 결정하실 일이오.”
제갈륜의 말에 여의공자가 눈을 빛냈다.
‘제갈 공자가 계책을 써서 나를 돕는구나. 잘된 일이다.’
여의공자가 담담히 말했다.
“무릇 영웅이란 공사를 구분해야 하는 법. 적들이 눈앞에 있는 마당에 어찌 여러분의 위기를 모른 척할 수 있겠소? 내 비록 산공독에 당해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일단 조건 중 하나인 와룡대 주둔을 승낙하겠소. 악 소저와 관련한 사적인 일은 차후로 미루도록 하겠소. 보주님. 제 생각이 어떻습니까?”
“으음, 나보다 내 아들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소.”
백운목의 말에 중인들의 시선이 백엽에게 집중되었다.
누가 봐도 억지라고 생각되었지만, 그 결정권은 백엽에게 있는 것이다.
백엽이 담담히 말했다.
“수락하겠소. 다만 지금 이 시각부터 와룡대원들은 본 공자의 지휘를 받아야 하오. 기한은 당금의 위기를 해소할 때까지요. 어떻게 하겠소?”
“그게 무슨 소리요? 우리가 백 공자 밑으로 들어가라는 것이오?”
제갈륜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다른 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여의공자가 비무에서 패해 자존심이 상한 그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웅보 정도는 자신들의 사문에 비해 한참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이번 전투에 참여하려는 것도 영웅회를 도우려 하기보다 명성을 떨치려는 목적이 더 컸다.
하기야 여의공자가 가자고 해서 무조건 이곳으로 올 그들이 아니었다.
백엽이 태연히 말했다.
“그대들이 요구하는 것이 억지가 아니라면 본 공자가 요구하는 것 또한 억지가 아닐 것이오. 여의공자가 직접 대답하시오. 그대가 대주 지위를 내게 임시 맡기는 것은 가능할 거로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네놈이 정말!”
여의공자가 분노했다.
당장에라도 공격을 개시할 태세였으나 끝내 출수는 하지 못했다.
그도 이제 느끼고 있는 것이다.
백엽의 무위가 자신보다 훨씬 위라는 것을.
제갈륜이 여의공자에게 급히 전음을 보냈다.
「고정하십시오. 대주님.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오?」
「백 공자가 우리 대원들 모두를 이기면 대주 자리를 넘기겠다고 하십시오. 악양 무림의 평화가 올 때까지 한시적으로 말입니다.」
「대원들 모두 말이오?」
「네. 놈이 제아무리 강해도 우리 대원들의 전체 합공을 막아내지는 못할 겁니다. 놈이 패할 것이니 파혼 조건 역시 다시 거시면 될 겁니다.」
「고맙소. 이번 일이 잘되면 나중에 아버님께 제갈 공자를 부군사로 추천하겠소.」
여의공자가 전음을 보낸 후 말했다.
“백 공자. 좋소. 그대가 와룡대원 전체를 제압하면 기꺼이 대주 자리를 넘기겠소. 그대가 몸담은 영웅보 역시 무림맹 소속이니 임시 와룡대주 자격은 충분할 것이오. 다만 그대가 패하면 즉각 파혼해야 할 것이오. 어떻소? 용기가 없으면 수락하지 않아도 좋소.”
“받아드리겠소. 다만 이번에도 딴소리하면 안 되니 서명을 하도록 하시오.”
“하하하. 알겠소. 역시 화통하구려.”
여의공자가 수락하자 중인들이 웅성거렸다.
백여 명의 와룡대원들 모두를 상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백엽이 말했다.
“여희야. 네가 여의공자의 서명을 받아라. 절차상 다른 문제는 없겠지?”
“네. 제가 증인을 서도록 하지요. 만약 오라버니가 승리하면 임시 와룡대주가 되실 거예요.”
“그럼 여의공자는?”
“특별한 사정 때문에 대주 자리를 넘겨주게 되면, 그 대주는 부대주 지위를 얻게 되지요. 최종 인사 처리는 나중에 맹주님께서 결정해주실 겁니다.”
백여희가 말을 한 후 양피지 한 장에 서명을 받았다.
서명을 한 사람은 여의공자였다.
대원들 역시 중인들 앞에서 단체 포권을 함으로써 맹세를 했다.
서명과 맹세가 끝나자 남은 것은 대결 방식이었다.
제갈륜이 말했다.
“대결 방식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그대들이 원하는 바에 따르겠소.”
“하하하. 대단한 자신감이오. 좋소. 대결 방식은 이전과 똑같소. 먼저 쓰러지는 쪽이 지는 것이오. 우리는 순차적으로 또는 합동으로 백 공자를 공격할 것이오. 그래도 되겠소?”
“물론이오. 바로 시작합시다.”
백엽이 자세를 바로잡았다.
제갈륜을 비롯한 와룡대원 백여 명이 비무 공간으로 나왔다.
워낙 사람이 많아 비무 공간이 대원들로 가득 찼다.
백엽이 말했다.
“한 수에 그대들 모두의 혈도를 제압할 것이오. 방어를 하든 선공을 가하든 마음대로 하시오.”
백엽이 말을 한 후 두 손을 들었다.
대원들 역시 내공을 끌어올리며 대결 준비를 했다.
백엽의 말을 허풍으로 생각하는지 맨 앞에 서 있던 대여섯 명부터 공격할 태세였다.
이번에도 사회를 맡은 번약수가 소리쳤다.
“시작하시오!”
둥!
북소리와 함께 백엽이 지풍을 날렸다.
지풍은 모두 열 가닥.
열 손가락 모두를 사용한 십지풍(十指風)이었다.
십지풍은 보통 내공으로는 펼칠 수 없는 상승 지법이었다.
한데 백엽이 날린 지풍 열 가닥이 공중에서 다시 분화되어 순식간에 백여 개로 불어나는 것이 아닌가.
와룡대원들이 흠칫하며 피하려 했으나 이미 늦은 후였다.
파파파파팍.
콩볶는 소리와 함께 와룡대원들 백여 명이 모두 쓰러졌다.
중인들이 깜짝 놀라서 보니 이미 그들 모두 마혈이 찍힌 상태였다.
다들 입을 쩍 벌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와아아!
짝짝짝!
“정말 대단하다!”
“최고다!”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가운데, 백엽이 다시 지풍을 날려 대원들의 혈도를 풀어줬다.
백여희가 말했다.
“뭘 하고 있나요? 여러분의 임시 대주세요. 인사를 올리도록 하세요.”
“대주님을 뵙습니다.”
“대주님을 뵙습니다.”
와룡대원들이 마지못한 표정으로 포권을 했다.
“당분간 여러분의 지휘를 맡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하오.”
백엽이 포권으로 답례한 바로 그때였다.
그의 뒤에 있던 여의공자가 검을 뽑아 그대로 등을 찔러왔다.
슈우욱.
“죽어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