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36
푹.
여의공자의 검이 백엽의 등을 파고들었다.
그의 기습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승리에 도취한 백엽이 이를 피할 시간이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공격에 성공한 여의공자가 껄껄 웃었다.
“하하하! 네놈도 별수 없구나. 내가 기습을 가한 것은 바로 네놈이 간자이기 때문이다.”
여의공자가 검을 뽑았다.
하지만 곧바로 쓰러질 것 같은 백엽은 그대로였다.
그러고 보니 등에서 피도 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분명 검이 깊숙이 박혔었는데 상처도 하나 없었다.
백엽이 천천히 신형을 돌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으으······ 네놈이!”
여의공자가 흠칫하며 뒤로 물러났다.
순간, 그가 들고 있던 검의 검신 부위가 그대로 가루가 되어버렸다.
정확히 백엽의 등에 파고들었던 부분이었다.
그제야 중인들이 알 수 있었다.
여의공자의 검이 백엽의 호신강기 때문에 가루가 되었다는 것을.
하지만 내공이 실려 있어 잠시 그 형태를 이루고 있었을 뿐이었다.
“네놈이 또 사술을 부리다니! 죽여주마!”
묵묵히 서 있는 백엽을 대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일까.
여의공자가 장풍을 날렸다.
쏴아아.
산공독에 중독되었다는 그의 변명이 무색할 정도로 강력한 장력이었다.
하지만 백엽의 몸에 도달하기도 전에 그 장세는 깨끗이 사라져 버렸다.
백엽이 무형지기를 이용해 장력을 해소한 것이다.
저벅저벅.
백엽이 천천히 걸어 여의공자에게 다가갔다.
무형의 압박을 느낀 여의공자가 다시 또 물러났다.
“나를 어찌할······ 셈이냐?”
“생각 중이오. 비겁하게 등 뒤에서 암습을 하는 그대가 무림맹주의 자제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구려. 하지만 힘에는 힘으로 대하는 것이 강호의 법칙. 아무리 생각해도 그대를 용서하기 힘들 것 같소.”
백엽이 우수를 가볍게 흔들었다.
순간, 여의공자가 털썩 주저앉았다.
다리가 풀려 무릎을 꿇은 것이다.
백엽이 빠르게 다가와 그의 머리 위에 손을 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이미 여의공자의 혈도는 찍혔기 때문에 피할 방도도 없었다.
그 모습에 중인들이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지금 상태에서 백엽이 여의공자의 천령개를 내리치면 즉사할 것이 뻔했다.
하지만 설마 무림맹주 아들을 죽이겠냐는 생각이 대부분이었다.
그 때문일까.
아직 아무도 여의공자를 도우려는 사람이 없었다.
안색이 창백해진 여의공자가 말했다.
“날 죽일 셈이냐?”
“먼저 죽이려 했던 사람은 바로 그대였소. 내가 그대를 죽여도 강호 관례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오.”
“으으······ 네놈이 그만한 배짱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죽으면 아버님께서 너는 물론이고 영웅보 전체를 몰살시킬 것이다. 그래도 상관없으면 네 마음대로 해라.”
“끝까지 망나니짓이구려. 그대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살려주려고 했으나, 협박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살려줄 수 없게 되었소. 다만 이미 제압된 상태임을 고려해 무공 폐쇄로 그치겠소. 이래도 맹주께서 책임을 물으실 거로 생각하시오?”
백엽이 손을 내려 여의공자의 단전을 향해 나아갔다.
내공이 실린 그의 움직임에 파공성까지 들렸다.
사색이 된 여의공자가 급히 소리쳤다.
“잠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오?”
백엽이 여의공자의 단전 바로 앞에서 손을 멈췄다.
“내가······ 잘못했다. 무공 폐쇄는 절대 안 된다. 용서해다오.”
“용서는 내 아버님께 받으시오. 영웅보를 멸시했으니 사죄를 하시오. 그러면 나 역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겠소.”
“알겠다. 보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여의공자가 말을 한 후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백엽보다는 백운목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이 쉬운 모양이었다.
혹여 백엽이 여의공자를 해칠까 봐 가슴 졸이던 백운목이 말했다.
“용서하고 말고가 있겠소? 우리를 돕기 위해 와룡대원들을 이끌고 와주셨으니 그것만으로 다른 것은 이해할 수 있소. 방아. 여의공자의 혈도를 풀어드려라.”
“네. 아버님.”
백엽이 우수를 한번 흔들자 여의공자의 혈도가 풀렸다.
몸이 자유로워진 여의공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 역시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무서운 놈.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내가 아니다. 방심하고 있을 지금이 기회다.’
여의공자가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내면서 슬쩍 소매를 들어 올렸다.
소매 속에 감춰 두었던 암기를 발사하기 위해서였다.
그 암기는 절대암기로 상대가 누구든 무조건 죽일 수 있는 것이었다.
무림맹주인 부친이 그에게 준 것으로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고수를 만났을 때 사용하라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다.
암기의 이름은 탈명표라 했다.
사실 이 탈명표는 천하에 열 개밖에 없는 것으로, 지금까지 탈명표를 피한 고수는 아무도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탈명표 자체에 공력이 담겨 있기 때문으로, 어떤 호신강기도 뚫을 수 있는 효능이 있었다.
다만 단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유일한 단점이었다.
암기가 날아가는 동안 그 안에 담겨 있던 공력이 소모되기 때문이었다.
‘이놈에게 탈명표를 사용하는 것이 아깝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오늘 일이 강호에 퍼지면 내 어찌 얼굴을 들고 지낼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탈명표로 놈을 죽인 후 뒷수습은 아버님께 맡기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여의공자가 결심한 후 백엽을 향해 다가갔다.
두 손을 여전히 수평으로 든 상태였는데, 외부에서 보기에는 포권을 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실제 여의공자의 계획 또한 그러했다.
포권을 하는 척하면서 탈명표를 날릴 생각이었다.
다만 성공 확률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서 거리를 좁히고 있는 것이다.
“백 공자. 그대에게도 정식으로 사과하고 싶소. 조금 전 암습을 했던 것은 명백한 내 실수요. 순간적으로 정신이 나갔던 것 같소. 앞으로 나 대신 대원들을 잘 이끌어 주시오. 나는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와룡대에서 완전히 나가겠소.”
“부대주 자리도 맡지 않겠다는 것이오?”
“그렇소. 내가 있어 봤자 백 공자의 지휘에 방해가 될 것이오. 차라리 맹의 총단으로 돌아가 아버님께 악양 무림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을 촉구하고자 하오.”
“편한 대로 하시오. 언제 떠날 것이오?”
“지금 바로요. 그럼 그때까지 대원들을 잘 부탁하오.”
여의공자가 고개를 숙였다.
백엽 역시 포권을 하며 고개를 조금 숙였다.
바로 그때였다.
여의공자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탈명표를 발사했다.
아니 발사하려 했다.
한데 소매에 들어가 있던 탈명표가 어느새 가루가 되어 있지 않은가.
여의공자가 깜짝 놀랐으나 내색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어찌 이런 일이!’
여의공자가 백엽의 얼굴을 쳐다봤으나 그는 태연한 표정이었다.
‘설마 이놈이 또!’
의구심이 강하게 들었으나 직접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런 그를 백엽이 쳐다보며 눈을 빛냈다.
‘탈명표를 가지고 있는 것을 일찍 파악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구나. 정말 영악한 놈이다. 무림맹주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정말 그만두지 않았을 텐데······.’
백엽이 쓴웃음을 지었다.
여의공자를 여러 번 살려둔 것은 물론 가족들 때문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여의공자를 죽일 생각은 없었다.
무공폐쇄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약 여의공자의 무공을 폐쇄한다면 그의 부친인 무림맹주가 어떤 식으로든 복수를 해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한편 여의공자는 자신이 한 말 때문에 더는 영웅보에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나. 떠난다고 했으니 곧바로 물릴 수도 없고.’
여의공자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백엽이 담담히 말했다.
“여의공자. 다시 생각해보니 공자께서 본보에 머무는 것이 더 좋을 듯하오. 지원 촉구는 전서구로도 할 수 있으니까 말이오. 다만 와룡대 지휘는 본 공자가 알아서 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 같으니, 공자께서는 조금 전 말씀대로 개인적으로 활동하시오. 물론 이번 전쟁이 끝나고 악양에 평화가 온 후에는 대주 자리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이오. 어떻소?”
“으음, 알겠소. 하기야 내가 이곳에 있어야 놈들도 함부로 공격해오지 못할 것이오.”
“하하하. 정확하게 보셨소. 공자를 건드리면 맹주님께서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니까. 그럼 그렇게 정리한 것으로 합시다.”
“알았소.”
여의공자가 착잡한 표정으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비록 일시적이긴 하나 졸지에 와룡대주 자리에서 물러나 개인 신분이 된 것이었다.
백여희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아버님. 여의공자님를 본보의 식객으로 모시는 게 어떻겠어요?”
“좋은 생각이다. 여의공자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저도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여의공자가 마지못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식객은 달리 빈객으로도 불리며 형식적이나마 그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 여러모로 편리했다.
백여희가 백엽에게 전음을 보냈다.
「오라버니. 잘 참으셨어요. 앞으로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여의공자는 최대한 건드리지 마세요. 저런 행실을 고치지 못하면 스스로 몰락할 테니 내버려 두세요.」
「알겠다. 하지만 계속 금도를 넘으면 그때는 어쩔 수 없이 손을 써야겠지. 무한정 참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백엽이 전음을 보냈을 바로 그때.
대청 안에 영웅보 무사 한 명이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천혈방의 특사단이 대문 앞에 도착해 있습니다.”
“으음, 모두 몇 명이냐?”
“스무 명 정도입니다. 천혈방 식객들이라고 합니다.”
“으음, 그 정도 인원이라면······.”
백운목이 백여희를 쳐다봤다.
백여희가 말했다.
“들여보내세요. 진법 때문에 대병력이 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특사단을 보낸 것 같아요. 일단 그들의 말을 들어보고 그에 따른 대책을 세우면 될 거예요.”
“방이 네 생각은?”
백운목이 이번에는 백엽을 쳐다봤다.
원래는 물어보지 않았을 테지만 이제 임시 와룡대주가 되었기에 사정이 달랐다.
“저 또한 같은 생각입니다. 스무 명의 식객들로 전면전을 벌이려고 온 것은 아닐 겁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여봐라. 어서 그들을 이곳으로 데려와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 * *
천혈방 특사단의 수는 무사의 보고대로 모두 스무 명이었다.
한데 하나같이 기도가 뛰어난 것이 아무래도 절정고수들 같았다.
절정고수.
말이 쉬워 절정고수이지 무림을 통틀어도 그 수가 결코 많은 것은 아니었다.
그 때문일까.
대청 안으로 들어온 그들은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들 중 대표로 보이는 흑의노인 한 명이 말했다.
“우리는 방주님의 명을 받아 여러분께 최후통첩을 하러 온 특사단이오. 어느 분이 영웅회주이시오?”
“나요. 귀하는 뉘시오?”
“하하하. 나는 천혈방에서 식객으로 지내고 있는 천지노인(天地老人)이라고 하오.”
“천지노인이라면? 무림백대고수 안에 들어있는 그 천지노인이오?”
“그렇소. 백대고수 안에 들어간 지는 벌써 삼십 년이 넘었소.”
천지노인의 말에 중인들이 술렁였다.
그도 그럴 것이 천지노인은 악명이 자자한 전대고수였던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비정한 인물로 유명했다.
무공은 무림십대고수 후보에도 몇 번 오를 정도로 고강했다.
따로 소속 문파는 없이 천하를 떠도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놀랍게도 천혈방의 식객으로 있었던 모양이었다.
참고로 그는 볼일을 보느라 본대보다 조금 늦게 악양에 도착했다. 그 결과 백엽 역시 그를 처음 봤다.
백엽이 안색을 조금 굳혔다.
‘보통 고수가 아니다. 상대하기 껄끄러운 본교의 원로원 고수들 수준 같군. 나머지 식객들도 엄선된 자들이다. 어쩌면 예상과 달리 영웅회 지휘부 고수들을 제거하기 위해 왔을 수도 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