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37
백엽이 천지노인을 비롯한 천혈방 식객들을 쳐다보고 있을 때.
백운목이 안색을 굳히며 물었다.
“좋소. 천지노인. 그래 조금 전 최후통첩 운운하던데 어디 자세히 말씀해보시오.”
“하하하. 말 그대로요. 최후통첩을 이미 여러 번 했지만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 우리 특사단이 온 것이오.”
“서론이 너무 긴 것 같소. 어서 말해보시오.”
백운목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천지노인의 무공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이곳은 아군 진영이었다.
대청 안에 있는 영웅회 고수와 와룡대원 수는 대략 이백여 명.
여의공자와 백엽 같은 고수도 있었기에 위축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천지노인 역시 여전히 여유가 있었다.
“좋소. 간단히 말하겠소. 그대들에게 하루의 시간을 주겠소. 내일 아침까지 투항하지 않으면 전면전을 각오해야 할 것이오.”
“흥! 엄포를 하러 왔다면 그대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오. 투항은 절대 없소. 게다가 그대들은 지존회주에게 당해 일만이나 병력을 잃은 것으로 아는데, 그 수습을 할 시간도 부족한 것이 아니오?”
“하하하! 오해가 있는 것 같구려. 아, 물론 지존회주 그놈 때문에 본방의 무사들 피해가 막심한 것은 사실이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아직 이만 이상의 병력이 있소. 반면 그대들은 고작 이천여 명에 불과하오. 여기 있는 와룡대 무사들이 지원 왔다고는 하나 고작 백여 명뿐. 전면전이 벌어지면 어느 쪽에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시오? 혹시 영웅보 주위에 펼쳐 놓은 진법을 믿고 있다면 그것 역시 오산이오. 이까짓 진법은 반나절이면 파훼할 수 있소.”
“싸움은 병력이 많다고 무조건 이기는 것은 아니오. 계속 이야기해봤자 입만 아플 것 같으니 즉시 돌아가시오.”
백운목이 축객령을 내렸다.
괜히 이야기를 나눠봤자 사기만 떨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와룡대원의 합세를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보고에 의하면 막대한 타격을 입고 부상자도 많아 사흘 정도는 안전할 줄 알았는데, 당장 내일 아침까지 최종 시한을 받게 되니 긴장이 되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천지노인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어느 정도 공포감을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는 눈빛이었다.
“하하하. 벌써 축객령을 내리는 것이오? 이왕 이곳에 왔으니 여러분 중 몇 분께 지도를 받고 싶소. 그럴만한 용기가 있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소이다.”
“싸움이 시작되면 어차피 겨루게 될 것이오. 허튼소리 그만하고 어서 돌아가시오. 특사단이라서 봐주는 것이오. 사실 우리가 보낸 특사단에게 그대들이 한 짓을 생각하면 참기 어렵지만, 우리까지 똑같이 할 수 없어 보내주는 것이오.”
“하하하! 이백 명이 넘는 무사들이 고작 우리 스무 명을 겁내다니. 그대들이 스스로 버러지보다 못하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니, 우리도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겠소. 퇫!”
천지노인이 대청 바닥에 침을 뱉었다.
나머지 식객들 또한 낄낄 웃으며 따라 했다.
보다 못한 충의문주 번약수가 소리쳤다.
“이놈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좋다. 누구라도 좋다. 내가 상대해주마.”
“하하하! 용기 있는 분이 있었구려. 좋소. 진작 그랬어야지. 우리 역시 한 분을 내겠소.”
천지노인이 눈짓하자, 옆에 서 있던 음산한 눈빛의 중년 사내가 앞으로 나왔다.
“음혈객(陰血客)이라 하오. 귀하는 혹시 충의문주이시오?”
“그렇다. 내가 바로 번약수다.”
번약수가 허리에 찬 검을 풀었다.
그는 상대가 무명이라는 것을 알고 다소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누구도 음혈객이라는 별호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바로 시작합시다.”
음혈객이 양손을 수평으로 세웠다.
장력으로 승부를 볼 생각인 것 같았다.
번약수는 검을 비스듬히 들어 자신의 독문검법인 충의검법(忠義劍法)을 펼칠 준비를 마쳤다.
선공을 가한 사람은 바로 번약수였다.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면서 검을 열십자로 휘두르자 검광과 함께 검기 세 가닥이 분출되었다.
쉭쉭쉭.
품자 형으로 날아가는 검기들.
화살촉 모양의 검기들이 날아가는 속도는 매우 빨랐다.
중인들이 탄성을 터뜨린 것은 물론이었다.
최근 번약수의 무공이 극에 달했다는 소문이 악양 무림에 파다했는데 처음으로 그 선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실제 그의 무공 수준은 절정에 달한 것으로 보였다.
반면 음혈객은 처음 자세 그대로였다.
그의 두 손이 움직인 것은 검기가 코앞까지 도달했을 때였다.
그의 양손이 흐릿해지더니 깡깡 하는 소리와 함께 검기 두 가닥을 튕겨냈다.
나머지 한 가닥 검기는 몸을 옆으로 틀어 피했다. 동시에 그가 좌장으로 장풍을 날렸다.
쏴아아.
바로 그의 독문장법인 음혈장(陰血掌)이었다.
번약수가 흠칫하며 다시 검기를 뿌려 이를 막았다. 하지만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음혈장력이 검기를 뚫고 번약수의 복부를 강타했다.
“으윽!”
비명과 함께 뒤로 날아간 번약수의 신형이 대청 벽에 부딪히기 직전.
백엽이 무형지기를 날려 그 속도를 늦춰줬다.
쿵.
비록 속도가 늦춰졌지만,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번약수의 몸이 벽에 부딪힌 후 쓰러졌다.
충의문 무사들이 급히 그를 부축했으나 이미 중상을 입고 정신을 잃은 후였다.
만약 조금 전 백엽이 아무도 모르게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즉사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천지노인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이거 미안하게 되었소. 충의문주라면 악양 오대문파의 수장 중 한 분인데, 이렇게 무공이 약할 줄이야. 음혈객! 수고가 많았소. 정말 대단한 장력이었소.”
“과찬이오.”
음혈객이 포권을 하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다른 천혈방 식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반면 영웅회 무사들은 하나같이 침통한 표정이었다.
번약수가 누구던가.
자타공인 백운목과 함께 영웅회의 이대고수였다.
그런 그가 고작 천혈방 식객 중 한 명에게 일방적으로 패배한 것이다.
게다가 비록 목숨은 구했으나 중상을 입어 최소 석 달 이상은 요양이 필요했다. 중요한 시기에 전투력을 상실한 것이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재미를 봤는지 천혈방 특사단은 물러날 기미가 없었다.
천지노인이 말했다.
“또 다른 분은 없소? 설마 겁을 먹고 아무도 나서지 않는 것이오? 사내들이 맞소? 계집도 이러지 않을 것이오. 하하하!”
천지노인이 대놓고 비웃자 다른 식객들 또한 조소를 보냈다.
“하하하!”
“하하하!”
보다 못한 백운목이 소리쳤다.
“좋다. 내가 상대해주마! 천지노인 그대와 겨루겠다.”
백운목의 말에 중인들이 술렁였다.
특히 영웅보 무사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백운목의 무공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보에서 쫓겨난 백항보다 오히려 낮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겁도 없이 나선 것이다.
그것도 음혈객보다 무공이 더 강한 천지노인을 상대로.
당장 백여희가 만류했다.
“아버님. 저자들을 더는 상대하지 마세요. 계속 싸우는 것은 우리가 놈들의 계략에 말려들어 가는 거예요.”
“더는 모욕을 참을 수 없다. 비록 싸우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영웅회주인 내가 나서야 한다. 그것이 강호인의 숙명이다.”
백운목이 비무 공간으로 나왔다.
그의 표정은 비장했다.
그의 승리를 점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고 섣불리 말릴 수도 없었다.
백여희의 만류도 듣지 않았는데 누가 또 나서겠는가.
장씨부인 또한 창백해진 안색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백운목이 평소에는 조용하고 유약해 보이지만 한번 나서면 아무도 못 말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와룡대원들 역시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여의공자는 재밌는 구경거리가 생겼다는 듯 미소까지 지었다.
백여옥이 백엽에게 급히 말했다.
“오라버니가 어서 말려보세요. 아버님께서 다치실까 봐 겁이 나요.”
“걱정하지 마라.”
백엽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백운목을 유심히 쳐다봤다.
사실 그는 아직 백운목의 무공을 직접 견식한 적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있었다.
바로 자신처럼 외부에서 그 무공 수위를 잘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마치 반박귀진과 같은 경우인데, 백운목의 경우는 그 체질과 관련이 더 깊었다.
백엽 역시 그 체질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버님 역시 절정에 달하신 것 같구나. 물론 최근 절정의 범위가 넓게 인정되는 것이 무림의 추세라고는 하지만, 어느 정도 실력을 감추고 계시는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초절정에 근접하고 있는 천지노인을 이길 수 있을까? 천지노인의 무공은 천혈방주와도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인데······.’
백엽이 안색을 조금 굳혔다.
물론 정말 위험할 때는 무형지기로 부친을 도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전을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만큼 천지노인의 무공이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만약 백엽이 도움을 주기도 전에 백운목이 치명상을 입게 된다면 그것은 아마도 천추의 한이 되리라.
백엽이 여전히 망설이는 건은 백운목 역시 강호인이기 때문이었다.
숙명이라는 말까지 하면서 자발적으로 대결에 나선 사람은 어찌 무조건 막을 수 있겠는가.
숙고 결과 백엽은 잠시 지켜보기로 했다.
‘혹시 모른다. 아버님께 비장의 한수가 있을지······ 흥분한 듯 보여도 절대 무모한 분은 아니시니까.’
백엽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자신이 싸울 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이 긴장되었다.
천지노인이 말했다.
“하하하. 이거 의외요. 백 보주께서 직접 나서다니. 내가 상대할 사람은 솔직히 와룡대주인 여의공자일 줄 알았소.”
“흥! 나는 이제 와룡대주가 아니오. 대주 자리를 저기 있는 백 공자에게 물려줬소. 앞으로 와룡대와 관련한 일은 백 공자에게 물어보시오. 오! 가만히 생각해보니 천지노인 그대와 백 공자가 먼저 싸우는 게 좋을 것 같구려. 백 공자의 무공은 천하무적이니 천지노인 그대가 이기기는 무척 힘들 것이오.”
여의공자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천지노인이 백동방 저놈을 죽여주면 나로서는 가장 좋은 일이지. 양패구상해도 좋고 말이야.’
천지노인이 말했다.
“아! 와룡대주가 바뀌었다는 말이오?”
“그렇소. 임시이긴 하지만 그렇게 되었소. 게다가 그는 백 보주의 아들이기도 하니 대결을 하려거든 그와 하는 게 좋을 듯하오.”
“좋소. 어느 분이 백 공자이시오?”
천지노인의 말에 백엽이 담담히 말했다.
“본인이오. 백동방이라고 하오.”
“그대와 한 가지 조건을 갖고 대결하고 싶소. 그럴만한 용기가 있소?”
“무슨 조건이오?”
“그대가 패하면 와룡대원들을 데리고 악양을 떠나시오.”
“내가 이기면?”
“그대가 이기면 식객들을 데리고 악양을 떠나겠소. 인원도 백여 명으로 비슷하니 공평할 것이오. 아니지. 무공 면에서는 우리가 월등하니 그쪽이 더 유리할 것이오.”
“그 말을 믿을 수 있소?”
“물론이오. 나는 천혈방 식객들의 대표인 식객왕(食客王)이오. 식객들은 방주님보다 내 명을 우선하오. 어떻게 하겠소?”
“좋소. 아버님. 제가 먼저 이자를 상대해도 되겠습니까?”
“으음, 그렇게 해라. 혹여 네가 패하면 이 아비가 나서겠다.”
“후후후! 백 보주. 그대는 항복을 조건으로 나와 붙어야 할 것이오. 일단은 백 공자부터 꺾고 나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소.”
천지노인이 앞으로 나왔다.
백운목이 뒤로 물러나자 백엽이 삼장 거리를 두고 그와 마주했다.
“시작합시다.”
“좋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