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38
백엽과 천지노인.
두 사람의 대치가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열이 가려지고 있었다.
백엽은 태연했지만 천지노인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무형의 기세 대결에서 천지노인이 밀리고 있는 것이다.
백엽은 무형지기를 이용해 천지노인을 무형의 올가미로 완전히 묶어 버렸다.
지금 그가 고민하는 것은 천지노인을 어떻게 처리하냐는 것이었다.
‘패배하면 식객들을 데리고 떠나겠다는 저자의 말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차라리 이 자리에서 제거하는 것이 나을듯하군.’
백엽이 결심을 굳히고 좌장으로 장풍을 날렸다.
쏴아아.
평범해 보이는 장력이었다.
천지노인은 반격을 가하려 했으나 내공이 모이지 않았다.
단순히 기세에 눌린 것으로 생각했는데,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었다.
‘할 수 없구나. 잠력을 발동시킬 수밖에.’
천지노인이 선천진기를 일으켜 장력을 가까스로 피해냈다.
이는 백엽 또한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놈! 각오해라!”
천지노인이 허리에 찬 검을 풀어 그대로 휘두르자 검강이 기둥처럼 분출되었다.
무형의 올가미에서 벗어난 터라 기존 내공에다가 선천진기까지 합쳐진 엄청난 기세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천지노인의 열세를 확인하고 합공을 준비하던 음혈객이 재빠르게 음혈장을 날렸다.
“모두 합공하시오.”
음혈객의 말에 나머지 식객들이 일제히 백엽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거의 모두 절정고수들이라 영웅회 무사들이 막을 사이도 없었다.
“이놈들! 비겁하구나!”
백운목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식객들의 합공은 백엽을 향해 집중되었다.
다들 놀란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할 때.
정작 당사자인 백엽은 평온했다.
천지노인이 선천진기를 사용해 반격을 가해올 것을 예상치 못했으나 그렇다고 그가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니었다.
가장 먼저 그에게 당도한 것은 바로 천지노인이 날린 검강이었다.
마치 해일과도 같은 엄청난 기세.
그 범위 또한 넓어 양옆으로 피할 공간도 없었다.
무엇보다 가속도가 붙어 피할 시간이 없었다.
백엽의 몸이 수직으로 솟구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마치 천장에 줄에 달려 위로 올려진 것처럼 불쑥 그의 신형이 위로 올라갔다.
강기 공격과 아울러 나머지 식객들의 합공까지 피한 그가 허공에서 발을 휘저으며 앞으로 날아갔다.
그가 향한 곳은 바로 천지노인이 서 있는 지점이었다.
휙휙휙.
거세게 휘젓는 백엽의 발놀림에 근처에 있던 식객 대여섯 명의 몸이 폭죽처럼 터졌다.
퍼퍼퍽.
“으윽!”
“크윽!”
백엽의 발 주위에 거대한 경력의 회오리가 발생한 때문이었다.
중인들이 볼 때는 마치 물결이 갈라지듯 식객들의 몸이 터지며 길이 열렸다.
“이놈이!”
천지노인이 노성을 지르며 들고 있던 검을 백엽을 향해 날렸다.
그 빠르기가 보통이 아닌 것이 바로 비검술이었다.
비검술으로 검을 날리면 내공이 실려 화살보다도 빨라지는데, 상대가 이를 피하게 되더라도 검이 알아서 쫓아가게 된다.
이 비검술은 천지노인의 구명절기로 정식 명칭은 천지비검술(天地飛劍術)이라 했다.
향후 천혈방주을 죽이고 자신이 천혈방을 차지할 욕심을 품고 있던 그가 가장 아끼고 있던 무공이었다.
하지만 백엽은 허공에서 교묘하게 몸을 비틀어 이 비검마저 피해냈다.
비검이 방향을 선회해 뒷목을 노렸지만, 그보다 백엽의 발길질이 빨랐다.
순간적으로 공간을 접어 날아온 백엽의 발이 천지노인의 턱을 그대로 가격했다.
퍽.
수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천지노인의 처참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윽!”
중인들이 놀라서 보니 천지노인의 머리통이 박살 나 있었다.
턱뼈가 부서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예 머리 전체가 터진 것이었다.
비검 또한 그가 죽자 곧바로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곧이어 백엽이 착지한 순간.
음혈객이 그의 등 뒤에서 다시 음혈장을 날렸다.
음혈객 그는 식객들 중 천지노인에 이어 이인자로서 원래는 전대거마였다.
색공을 익혀 중년의 나이로 보였지만 이미 백 살이 넘은 노마였다.
원래 그는 천마신교에 투신하려 했으나 색공을 위해 간살한 부녀자가 너무 많아 입교가 거부되었다.
그때가 오십 년 전으로 이후 천하를 떠돌던 그가 최근 천혈방 식객으로 정착한 것이었다.
그가 지금 날린 음혈장은 자신의 원래 정체까지 탄로 날 것을 각오하고 필생의 공력을 담은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눈앞에서 자신보다 강한 천지노인의 처참한 죽음을 목도한 직후였다.
백엽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좌수를 뒤로 뻗어 일장을 날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꽝, 하는 폭음과 함께 음혈객의 신형이 빠르게 날아갔다.
대청 벽에 부딪힌 그는 칠공에서 피를 흘리며 그대로 즉사했다.
천혈방 식객들이 떼거리로 공격을 가해온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백엽이 싸늘한 미소와 함께 검을 뽑아 살초를 펼쳤다.
마치 양 떼 속의 호랑이라고 할까.
그가 식객들 사이를 파고들며 검을 휘둘렀다.
식객들이 반격을 가했으나 백엽의 보법이 워낙 신출귀몰했다.
마치 순간 이동술을 펼친 것처럼 흐릿한 잔영만 남길 뿐이었다.
반면 식객들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백엽의 검에서 눈부신 검광이 한번 일어날 때마다 한두 명이 쓰러졌다.
백운목이 직접 참전하려다가 그만둔 이유기도 했다.
푸화확.
색객들의 목과 가슴에서 뜨거운 피가 솟구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야말로 눈 깜박할 사이에 식객들 모두가 쓰러져 목숨이 끊어졌다.
이어지는 침묵.
백엽의 가공할 무위에 잠시 경악했지만 다들 기뻐했다.
백운목이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수고했다. 방아. 역시 내 아들이다.”
그 말을 시작으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
짝짝짝.
영웅회 무사뿐만 아니라 와룡대 무사들 역시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은 여의공자가 유일했다.
백여희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오라버니. 잘하셨어요. 어차피 놈들이 약속을 지킬 확률은 없었으니까요. 놈들도 우리 무력을 확인한 이상 쉽게 쳐들어오지 못할 거예요.”
“그래도 언제든 공격해올 수 있으니 방심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침 내가 사부님께 결계술을 배운 적이 있으니 지금 진법에 가미하면 당분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 결계는 상승진법의 일종으로 실제 구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들었는데, 오라버니가 익힌 거예요?”
“그렇다. 아버님. 지금 바로 여희와 함께 진법을 보완하고 오겠습니다.”
“허허허. 알겠다. 어서 가보거라.”
“네.”
* * *
밤늦게까지 백여희와 함께 영웅보 주위에 결계를 친 백엽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결계를 치는 데 시간이 걸린 것은 그 운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백여희는 진법의 기본 지식이 풍부해 금세 그 원리를 파악할 수 있었다.
사실 결계란 것도 진법의 일종이기 때문에 별다른 것은 없었다.
다만 일반 진법과 달리 돌멩이나 나뭇가지 등의 도구가 필요 없고 대신 설치하는데 막대한 내공이 필요했다.
이는 결계가 일종의 환술이기 때문으로 쉽게 말해 보이지 않는 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반 진법이 아니므로 외부 침입자는 아무리 진법 지식이 뛰어나도 그 파훼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결계 역시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만일 외부 침입자가 스스로 결계를 칠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면 오히려 더 쉽게 통과할 수 있었다.
그것은 힘이 센 사람이 육중한 문을 밀어서 열고 나갈 수 있는 것과 같았다.
참고로 결계는 따로 생문이 없었다. 내부에서 통로를 열어주는 방식은 결계 근처에 설치해둔 기관을 작동하는 것인데, 간단한 기관 발동만으로 원하는 지점에 출입문을 개방할 수 있었다.
그 주요 출입문 중 하나가 대문 앞이라는 것은 자연스레 추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역시 여희는 총명하단 말이야. 결계 운용 방법을 완전히 터득했다. 비록 아직 스스로 설치할 능력은 되지 못하지만, 초절정 고수가 오지 않는 한 영웅보 방어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백엽이 미소를 지으며 운공에 들어갔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천혈방 식객들과의 싸움으로 인한 피로감이 조금씩 밀려왔다.
‘천지노인과 음혈객 같은 고수들이 천혈방주 휘하에 들어가 있었다니. 천혈방주 그자의 진정한 능력 역시 내 예상을 뛰어넘을 수도 있겠구나. 방심해서는 안 되겠다.’
백엽이 문득 천지노인이 선천진기를 이용해 자신이 무형지기로 만든 올가미를 벗어났던 일을 떠올렸다.
‘역시 무형검에 도달해야만 안심할 수 있겠구나. 지금 실력으로는 칠마종 주인들의 합공을 막아내기 어렵다.’
백엽이 칠마종을 떠올리며 안색을 굳혔다.
교를 장악한 후 그들에 대한 걱정이 컸던 게 사실이었다.
한데 그 우려가 최근 며칠 동안 현실화하였다.
그들이 자신의 사전 승낙도 없이 병력을 움직여 화산파와 형산파를 압박한 것이다.
그 압박은 지금도 계속 중이었다.
성녀에게 시켜 칠마종 쪽에 철수 지시를 내리긴 했지만, 아직 그 답을 듣지 못한 상황이었다.
실제 칠마종 병력이 아직 철수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영웅회 자체의 분석이고 지금 그가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생사신의와 성녀였다.
천마조를 통해 그들에게 지금 자신의 상황과 행보를 알린 지금 특별한 일이 없다면 곧 두 사람이 이곳으로 올 것이었다.
참고로 천마조는 금제가 풀린 후 자체 능력으로 크기를 다시 줄여 백엽의 주위에서 항상 대기하고 있었다.
긴급한 상황이 되면 원래 크기로 회복해 사람을 태울 수 있게 된 것이 이전과 달라진 점이라 할 수 있었다.
‘으음, 생각보다 많이 늦는군. 삼경이 다 되었는데······.’
백엽이 창문 밖을 쳐다봤다.
그가 있는 곳은 원래 영웅보 대공자를 위해 마련된 전각이었다.
후원에 있는 여러 전각 중 백화전과 함께 가장 깊숙한 곳에 있어 백엽 또한 마음에 들었다.
전각의 이름은 잠룡전(潛龍殿).
백엽의 방은 잠룡전 삼층에 있었다.
백엽은 마음을 편히 하며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새벽 안개를 뚫고 몇 개의 인영이 창을 통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스스슷.
한데 그들은 바로 생사신의, 성녀, 매영설 세 사람이 아닌가.
보 주위에 진법과 결계가 쳐져 있었지만, 그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백여희가 쳐 놓은 진법의 파훼법을 백엽이 이미 보냈기 때문으로, 결계 역시 지존장원과 같은 원리라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가 해서 걱정했던 백엽이 기뻐했다.
“어서들 오시오.”
“교주님을 뵙습니다.”
“교주님을 뵙습니다.”
“사부님을 뵙습니다.”
세 사람이 백엽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원래는 오체투지를 해야 하나 백엽이 공개 석상이 아닌 한 간단하게 예를 표하라고 명했기 때문에 묵례로 대신한 그들이었다.
한편 생사신의와 성녀, 매영설은 백엽의 본얼굴을 보고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백엽이 천마조를 통해 보낸 서신에 지금의 얼굴을 그려놓았기 때문이었다.
매영설이 물었다.
“지금 모습이 사부님의 진정한 얼굴인가요?”
“그렇다. 원천 얼굴이라 할 수 있지.”
백엽이 천면독에 관한 설명을 간단히 해줬다.
“그건 그렇고 조금 늦게 온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것이오?”
백엽의 질문에 성녀가 대답했다.
“칠마종의 답변을 기다리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철수 지시에 대한 답변이 왔소?”
“네. 내일 새벽 병력을 물리겠다고 전서구가 왔습니다.”
성녀가 품속에서 양피지를 꺼내 보여줬다.
모두 두 장이었는데, 이번에 병력을 이동시킨 검마종과 도마종 종주가 보낸 서신이었다.
그 내용은 교주의 지시대로 병력을 철수하고 대기하겠다는 것으로 별다른 말은 없었다.
“역시 예상대로 검마종과 도마종이었군. 나의 지시에 대해 불만을 품을 가능성은 없겠소?”
백엽의 물음에 생사신의가 대답했다.
“지금쯤 자체 조사를 하고 있을 겁니다. 여러 가지 의구심이 생길 게 뻔하니까요. 칠마종은 서로를 믿지 못하니 집단 반발은 없을 겁니다.”
“그래야 할 것이오. 지금 상태에서 칠마종과 불화가 생기면 정말 골치 아파지니까. 지존회 무사들은 잘 지내고 있소?”
“네. 천마살수들이 그들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놈들이 지존장원 위치를 알아낼 가능성은?”
“아마 찾기 힘들 겁니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놈들이 이곳에 특사단을 보냈다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내가 모두 죽였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