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39
악양 북쪽 변두리 쪽에 오래된 장원이 하나 있었다.
영웅보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으나, 주위에 인가가 거의 없어 사람들의 왕래가 뜸했다.
하지만 장원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컸다.
소문에 의하면 이 장원은 수백 년 전 황궁의 황족이 지은 것으로 유사시 적의 침입에 대비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워낙 인적이 드문 곳이라 주위에 사는 사람들 역시 자세한 사정은 잘 몰랐다.
지존장원에 사람들이 드나든 것은 며칠 전부터였다.
처음에는 열 명 정도에 불과했다.
바로 천마살수들로 살수들의 특성상 은밀하게 활동해 외부에서 볼 때 그 움직임이 쉽게 간파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틀 전 백여 명의 무사들이 지존장원에 들어오자 장원 내부가 조금씩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물론 장원 주위에 쳐진 결계 때문에 여전히 외부에서 볼 때는 조용했다.
폐장원과 다를 바 없어 주위의 이목을 끌지는 않았다.
다만 음식과 필요 물품 등의 조달을 위해 몇 명이 장원 밖으로 나가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 지존장원이 외부로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라 할 수 있었다.
“정식으로 지존회 창설을 공식화한다는 말씀이니까?”
“그렇소. 일종의 개파라 할 수 있소.”
백엽의 말에 방 안에 모여있던 중인들이 안색을 조금 굳혔다.
지존장원 장주 처소 지존각에 모여있는 그들은 바로 백엽과 성녀, 생사신의, 매영설 이렇게 네 사람이었다.
새벽에 영웅보에서 밀담을 나눴던 그들이 날이 밝자 지존장원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백엽 혼자 외부 동향을 감시한다는 명목으로 출타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백여희에게 영웅보를 잘 지키라는 말을 남기고 백엽은 영웅보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머지 세 사람과 함께 지존장원으로 온 것이었다.
어느새 지존회주 곽유의 얼굴을 하고 있는 백엽은 가장 먼저 지존장원에 있던 천마살수와 지존회 무사들을 만났다.
천마살수들로부터 무공 지도를 받고 있던 지존회 무사들이 환호한 것은 물론이었다.
사실 그들은 백엽이 보이지 않아 내심 걱정을 하고 있던 차였다.
백엽은 그들을 치하하고 본격적인 작전을 짜기 위해 장주 처소로 온 것이었다.
첫 질문을 던졌던 생사신의가 다시 물었다.
“공식적으로 지존회를 알리게 되면 이곳의 위치가 놈들에게 파악이 됩니다. 놈들이 지금 눈에 불을 켜고 우리 지존회 거처를 알아내려고 하고 있는데 감당이 되겠습니까?”
“신의는 놈들이 총공격을 가해올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오?”
“네. 당연합니다. 천혈방주 그자는 당한 것보다 몇 배로 갚아주는 성격을 지닌 것으로 파악됩니다. 부상자가 섞여 있다고는 하나 이만 병력이라면 단숨에 이곳으로 쳐들어올 가능성이 큽니다.”
“성녀의 생각은 어떻소?”
“글쎄요. 한번 호되게 당한 적이 있어 놈들도 경거망동은 하지 못할 겁니다. 함정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제 생각에는 총공세보다는 별동대 형식으로 수천 정도 병력을 보낼 가능성이 더 큰 것 같습니다.”
“설아. 네 생각은 어떠하냐?”
“저요?”
매영설이 화들짝 놀랐다.
아직 이런 자리에서 자신의 의견을 밝힐 자격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교주의 대제자 신분을 잊지 않고 있는 그녀였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에는 불가피한 것 같습니다. 지존회 무사들의 외부 출입을 언제까지 금할 수도 없을 테니까요. 악양 성내에 가족이 있는 무사들도 있을 텐데 계속 숨어 있기만 하면 불만 역시 생길 겁니다. 무엇보다 장원 주위에 결계가 쳐져 있으니 놈들도 쉽게 공략을 못 할 것이고, 우리가 계속 승리를 거두면 일반 흑도들이 투항을 해올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일리가 있구나. 앞으로 작전 회의에 최대한 참석하도록 해라.”
“네. 감사해요.”
매영설이 얼굴을 붉혔다.
백엽을 사부로 모신 것만 해도 꿈같은 일인데 칭찬까지 받게 되자 매우 기쁜 것 같았다.
백엽이 담담히 말했다.
“내가 지존장원을 드러내려는 것은 설아 말대로 세력을 좀 더 키우기 위해서요. 지난번 전투에서 악양 일반 흑도 대부분이 몰살되었으나, 아직 여전히 많은 흑도 무사들이 있는 게 사실이오. 물론 당장은 어렵겠지만 장기적으로 지존회를 키워야 전체 흑도무림을 장악할 수 있소.”
“큰 그림을 그리고 있으시군요. 저는 악양 무림을 보호해주는 것으로 그칠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그랬소. 하지만 어차피 싸움은 확대될 것이오. 당장 며칠 안에 장강수로십팔채와 녹림칠십이채가 무사들을 이곳 악양으로 보낼 것이오. 설아. 무엇 때문이겠느냐?”
“그야 화산파와 형산파 무사들이 다시 지원무사들을 보낼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 흑도 통일을 명분으로 내세운 그들이 그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이곳을 포기할 리가 없지.”
“하지만 화산파와 형산파 무사들만으로 놈들을 막아낼 수 있을까요? 아무리 일당백이라고 하지만 병력 면에서 너무 큰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좋은 지적이다. 하지만 화산파와 형산파가 개입하면 다른 문파들 역시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다. 영웅보에 와룡대원들도 있으니 더욱더 그렇다. 결국, 무림맹 총단에서도 지원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느냐?”
“글쎄요. 세력을 확대하면서 기회를 노려 놈들을 섬멸해야겠지요.”
“신의의 생각은?”
“저도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떠오르지 않는군요. 당장 우리 거처를 드러내면 놈들이 수천이라도 공격해올 것이고, 그에 따른 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성녀의 생각은 어떠하오?”
“교주님 생각부터 듣고 싶군요. 이미 계획이 서 있으신 것 같아 들어보고 보완할 게 있으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좋소. 하지만 나 역시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소. 일단 우리 거처를 드러낸 후 놈들의 반응을 살필 생각이오. 그 후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하면 되지 않겠소? 다만 놈들이 총공격을 가해올 때 그 수와 관계없이 일거에 놈들을 섬멸할 기회를 잡을 수도 있을 것이오.”
“오!”
“아!”
생사신의와 성녀가 탄성을 터뜨렸다.
매영설은 아직 영문을 몰랐지만 자신도 아직 모르는 비밀 계획이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성녀가 말했다.
“이곳 지존장원의 구조와 기관에 대해 교주님께서 잘 알고 계신다면 그 계획에 저도 동의해요. 하지만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비상 계획인 것 같으니 최대한 놈들을 많이 유인해야 할 거예요.”
“물론이오. 운이 좋아 놈들의 지원병력이 오기 전에 천혈방과 동정수로채 병력을 섬멸하면 의외로 상황이 빨리 끝날 수도 있을 것이오.”
백엽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였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매영설이 물었다.
“그 비상 계획이란 게 무언가요? 혹시 놈들을 유인해서 장원 내에 설치된 기관을 발동시키려는 건가요?”
“차차 알게 될 것이다. 때가 되면 모두에게 알려주겠소.”
백엽이 말을 한 바로 그때.
방안으로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는 바로 천마살수 제66조 부조장 진국동이었다.
이전에 백엽에게 보고할 때는 복면을 쓰고 있었으나, 지금은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기야 백엽은 이미 천마살수들의 얼굴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매영설이 조원들의 이름과 얼굴, 특징 등을 자세히 보고했던 것이다.
다만 진국동을 포함하여 아직 다른 천마살수들은 백엽이 영웅보 대공자임을 알지 못했다.
“교주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가시지요.”
“그렇게 하지. 자, 모두 나갑시다.”
“네.”
* * *
지존장원 연무장.
그곳에는 이번에 새롭게 지존회 무사가 된 백여 명이 줄을 맞춰 앉아 있었다.
원래는 서 있어야 했으나 백엽의 지시로 각자 운공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 모두 제대로 된 심법을 배운 것은 아니었다.
어떤 이는 진기토납법으로 진기를 돌렸으며, 아예 심법을 몰라 명상으로 마음을 안정시키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철탑은 후자의 경우로 맨 앞에 앉아 있었다.
백엽 일행이 나타나자 지존회 무사들이 앉은 자세 그대로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회주님을 뵙습니다.”
“회주님을 뵙습니다.”
“다들 수고가 많소. 그럼 아까 예고한 대로 여러분의 내공을 보강하는 작업을 하겠소. 영단을 복용한 후 각자 익힌 심법이나 운기토납법을 운공해 약효를 몸 전체로 퍼지게 하시오. 흡수가 매우 빠르고 안전한 영약이니 절대 어렵지 않을 것이오. 질문이 있는 사람은 하시오.”
“회주님! 질문 있습니다.”
손을 든 사람은 바로 철탑이었다.
보통 사람 두 배 되는 체구 때문에 어디서나 돋보이는 그였다.
“말하시오.”
“심법이나 운기토납법을 전혀 배우지 못해 설명해주신 대로 명상만 했습니다. 그래도 영약의 효과를 볼 수 있습니까?”
“그렇소. 내가 그대들에게 복용시킬 보양단(補陽丹)은 사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흡수되는 것이오. 다만 운공을 하게 되면 그 속도가 빨라지기에 권유하는 것이오. 그대 이름이 무엇이오?”
“철탑입니다.”
“철 무사의 몸이 워낙 커서 특별히 내가 기의 인도를 해주겠소. 다른 사람들 역시 내가 보고 영약 흡수가 잘되도록 도와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감사합니다. 한데 보양단을 먹게 되면 정말 내공이 높아집니까?”
“그렇소. 기본 이십 년은 확실할 것이오. 다만 그 효과를 체감하는 데는 개인차가 있을 것이오. 그럼 바로 시작하겠소. 모두 고개를 들고 입을 벌리시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지존회 무사들이 입을 벌렸다.
백엽이 품속에서 약병 하나를 꺼낸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약병 안에는 백여 개의 단약이 들어있었다. 백엽이 뚜껑을 열고 내공을 가하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약병 안에 들어있던 단약들이 마치 날개가 달린 듯 날아올라 지존회 무사들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닌가.
꿀꺽.
꿀꺽.
지존회 무사들이 단약을 삼키고 곧바로 운공에 들어갔다.
대부분 곧바로 단전 부위에 뜨거운 기운을 느꼈다.
백엽이 직접 봐주고 있는 철탑의 입속에는 특별히 보양단 세 알이 들어갔다.
이는 철탑이 천부적인 신력을 타고났기 때문으로, 백엽은 천마진기를 통해 그의 내공을 단번에 일갑자 정도 올려주기로 했다.
‘운이 좋은 친구로군.’
백엽이 철탑의 등에 있는 명문혈을 통해 간접 운공을 하며 눈을 빛냈다.
간접 운공이란 고수가 대신 운공을 해주는 것으로 단기간에 내공을 높일 때 매우 유효했다.
물론 이후에는 스스로 운공을 해야 하나, 그에 따른 준비도 되어 있었다.
바로 백엽이 스스로 창안한 기초 심법을 지존회 무사 전원에게 가르쳐 주기로 한 것이었다.
심법의 이름은 자연심법(自然心法)이라 했다.
무공을 배우기 위해 지존회에 들어온 사람이 대다수인지라 무사들이 기뻐한 것은 물론이었다.
비록 매영설처럼 직전제자가 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들이 목격한 백엽의 무공 수준을 생각할 때 기대가 되는 게 사실이었다.
특히 이 자연심법은 기존의 심법과도 상충하지 않는 특징이 있어 부담도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철탑의 내기를 인도해준 백엽이 무사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본격적으로 영약 흡수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