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46
천혈방과 동정수로채 무사들이 지하시설에 매몰되어 전멸했다는 소식은 빠르게 악양성 내로 퍼졌다.
영웅회 무사들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었고, 숨죽이며 상황을 지켜보던 양민들 역시 매우 기뻐했다.
이제 새롭게 악양 무림이 재편될 일만 남은 것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장강수로십팔채와 녹림칠십이채 무사 십만이 악양성 인근까지 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정확하게 말해서 장강수로십팔채 수적 오만여 명과 녹림칠십이채 산적 오만여 명이었다. 각각 수로와 육로를 통해 오늘 중 도착할 예정이라고 했다.
영웅회로서는 승전의 기쁨을 누릴 사이도 없이 작전 회의를 열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작전을 통해 영웅회 역시 큰 피해를 봤다.
물론 영웅회 무사들의 직접적인 피해는 아니고 지원병력인 형산파 무사들의 피해였다. 하지만 몰살당해 그 후유증은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특히 놈들의 지원병력이 대거 입성 직전이라 더욱더 그랬다.
“악 소저. 화산파 병력은 언제 도착할 수 있겠소?”
백운목의 물음에 취의청에 앉아 있던 지휘부 고수 백여 명의 이목이 악완에게 쏠렸다.
악완이 안색을 굳혔다.
“죄송해요. 갑자기 연락이 끊겨서 저도 잘 모르겠어요.”
“연락이 끊겼다는 것은 이곳으로 오는 도중 놈들의 공격을 받았다는 뜻이 아니겠소? 여희 네 생각은 어떠하냐? 무림맹 악양지부에서는 뭐라고 하더냐?”
“지부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전서구로 연락을 취해왔는데 오늘 아침부터 갑자기 끊겼다고 해요. 이게 전서구 문제인지 아니면 실제 화산파 무사들이 공격을 받았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어요.”
“만약 공격을 받았다면 어디 소행으로 생각하느냐? 천혈방과 동정수로채는 아닐 것 같고 말이다.”
“제 생각에는 녹림칠십이채 쪽일 가능성이 커요. 이동 경로가 겹칠 수 있으므로 미리 손을 썼을 수도 있어요. 화산파에서 보낸 무사들이 천여 명 정도로 추정되는데, 녹림칠십이채 무사 오만여 명 중 별동대를 조직해 보냈다면 충분히 저지할 수 있지요.”
“으음, 그게 사실이라면 놈들이 이번에 형산파만 노린 것이 아니라 화산파까지 노린 것이구나.”
“네. 만약 오라버니가 지하에 숨어 있던 놈들을 발견해 제거하지 않았다면 우리 역시 형산파 무사들과 같은 꼴이 되었을 거예요.”
백여희의 말에 중인들이 안색을 굳혔다.
형산파에 이어 화산파까지 당했다면 그야말로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중인들의 시선이 백엽에게 쏠렸다.
백엽은 아까부터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었다.
천마폭잠공의 후유증 때문에 다소 안색이 창백해져 있는 그였다.
그도 그럴 것이 천마폭잠공을 펼치면 원래 한 달 정도는 운공요상을 해야 했다.
그렇게 해도 주화입마의 위험이 큰 편인데,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한 채 이렇게 작전 회의에 참석해 있는 것이다.
다만 불행 중 다행으로 청룡주 덕분에 최악의 경우는 모면했다.
주화입마의 위험에서는 완전히 벗어나 지금은 조용히 앉아서 운공을 하는 중이었다.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백엽이 담담히 말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화산파 무사들이 무사히 도착할 수도 있고, 놈들의 지원병력이 철수할 수도 있지요. 당황하지 말고 차분히 대책을 세우는 것이 필요할 듯합니다.”
“네 말대로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솔직히 화산파 무사들이 도착해도 걱정은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놈들의 병력이 너무 많다. 십만 명이 뭐냐? 마교의 십만 정예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 많은 병력을 우리가 막아내는 것은 역부족이 아니겠냐? 여희야. 맹에서 추가 지원병력을 보내준다는 말은 없느냐?”
“네. 원래는 형산파와 화산파 무사들이 도착하면 다른 문파 역시 지원 무사들을 보내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이번에 형산파 무사들이 폭사하는 바람에 그것도 어려울 것 같아요.”
“으음, 범 장문인은 형산으로 돌아갔느냐?”
“네. 범 공자, 형산선생 두 분과 함께 가셨어요. 그나마 절반의 병력을 형산에 남겨두고 왔으니 천만다행이었지요. 이제 형산파 지원은 기대하기 어려울 거예요.”
“하기야 우리 때문에 그렇게 되었으니 다시 지원 요청을 할 면목이 없긴 하지.”
백운목이 안색을 굳혔다.
잠자코 있던 백여옥이 말했다.
“자신들 욕심을 차리려다가 그렇게 된 면도 있으니, 우리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긴 하다만 그런 이야기는 하지 말아라. 형산파에서 들으면 화를 낼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래, 그보다 어서 화산파 소식이 와야 할 텐데 걱정이구나. 방이가 쳐 놓은 결계 덕분에 당장은 큰 걱정이 안 드는데, 이러다가 놈들에게 포위를 당하지나 않을지······.”
백운목이 우려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을 때.
영웅보 무사 한 명이 취의청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화산파 장문인 매화검선께서 무사들을 이끌고 도착하셨습니다.”
“하하하! 그게 정말이냐? 어서 연무장으로 모셔라.”
“네.”
* * *
매화검선 악송인(岳宋仁).
그는 한 마디로 신화적인 인물이었다.
별호에 검선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는 것만 봐도 그의 무공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정확한 무공 수위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평생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화산에서 수련에 매진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그는 평범한 화산제자였다.
가문 역시 한미했다.
하지만 그 자질을 인정받아 전대 장문인의 제자로 들어갔고, 전대 장문인이 죽자 곧바로 장문인 자리를 이어받았다.
그의 자하신공은 이미 극에 달해 적수가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현 무림맹주와 비교해도 그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거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하지만 그는 장문인이 된 후 더욱더 수련에 매진해 그동안 몇몇 무림공적을 처치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 무위를 드러내지 않았다.
특히 당시도 자신의 무위를 완전히 드러낸 것이 아니라 진정한 실력은 사실 오리무중이었다.
그랬던 그가 전격적으로 외부 지원에 나선 것이다.
이는 백운목과의 오랜 우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번에 삼십 년 만에 돌아온 영웅보 대공자와도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 호사가들의 추측이었다.
다만 지금은 위급한 시기라 사적인 일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는 상황.
형산파와 마찬가지로 천여 명의 무사들을 데리고 온 그는 영웅회 무사들의 열화와 같은 환영을 받았다.
데리고 온 무사들도 보통 무사들이 아니었다.
소문대로 삼백 명의 매화검수가 모두 도착했고, 나머지 무사들도 초보들이 아니라 중견급 무사들이 상당수를 차지했다.
참고로 화산파 전체 무사 수는 속가제자까지 합치면 만 명이 넘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하하! 어서 오게. 검선. 오랜만이네.”
백운목이 매화검선의 손을 잡으며 기뻐했다.
매화검선 역시 기쁜 표정이었다.
“운목. 오랜만일세. 한데 우리 사이에 무슨 검선인가. 그냥 송인이라고 부르게.”
“무슨 소리! 세상 사람들이 다 자네를 매화검선이라 부르며 추앙하는데 내 어찌 예외를 둘 수 있겠나? 사실 나는 맹주님보다 자네의 무공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네. 자하신공을 대성했다지?”
“운이 좋았네.”
매화검선이 미소를 지었다.
여러모로 다급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수천 명의 무사가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여유를 갖는 그들이었다.
그런 모습이 무사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사기를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무작정 사담만 나눌 수는 없는 노릇.
양측 주요 인물들에 대한 통성명에 앞서 궁금한 점을 백운목이 물어봤다.
“연락이 끊겼다고 해서 다들 걱정했네. 도중에 혹시 놈들의 습격을 받았나?”
“그러하네. 새벽에 놈들이 매복 공격을 가해왔었지.”
“어떤 놈들이 감히!”
“녹림왕이 보낸 별동대였네. 오백 명 정도였는데, 곧바로 물리칠 수 있었네.”
“아! 다행이군!”
백운목을 비롯한 영웅회 무사들이 기뻐했다.
말은 쉽게 했지만 화산파 무사들을 기습 공격할 정도면 보통 실력의 무사들을 보냈을 리 없는 것이다.
특히 녹림왕 휘하에는 고수들이 즐비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완전히 다 파악된 것은 아니나 오백 명 정도의 별동대라면 웬만한 문파 하나는 쉽게 멸문시킬 수 있었다.
매화검선과 함께 화산파 무사들을 이끌고 온 화산파 태상장로 천진자(天眞者)가 말했다.
“놈들은 살수 훈련을 받은 고수들로 하나같이 일류 이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장문인께서 직접 놈들을 몰살시켰지요. 덕분에 본파 무사들의 피해는 전혀 없었습니다.”
“오!”
“아!”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매화검선의 무공 수위가 제대로 드러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비록 전언에 불과하지만 화산파 무사들의 멀쩡한 몸 상태가 천진자의 말이 사실임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대단하군. 역시 검선이군. 천군만마를······.”
백운목이 말하는 도중 주춤했다.
갑자기 형산파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형산파 장문인 범적이 왔을 때도 천군만마 이야기를 했다가 나중에 형산파 무사들이 몰살당했기 때문이었다.
“왜 그러는가?”
“아! 아닐세. 형산파 무사들이 생각나서. 우리 소식은 들었나?”
“물론이네. 놈들의 기습 때문에 답장을 못 했을 뿐이네. 형산파 무사 천여 명이 폭사 당한 것은 애석한 일이네. 하지만 이만 명이 넘는 병력을 한 번에 지하에 매몰시킨 전과는 놀라울 따름이네. 누가 삼십 년 만에 돌아온 내 사위인가?”
매화검선의 말에 다들 놀라면서도 백엽을 쳐다봤다.
놀란 것은 곧바로 백엽을 사위로 불렀기 때문이었다.
백엽이 포권을 하면서 담담히 말했다.
“백동방이라고 합니다. 악 장문인을 뵙습니다.”
“하하하. 자네였군. 사위라고 불렀으면 자네는 나를 장인어른이라고 불러야 맞지 않나?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무사히 돌아왔다니 나 역시 기쁘네.”
매화검선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감사합니다. 다만 악 소저와는 천천히 서로 알아보기로 했으니 그렇게 아시면 되겠습니다.”
“하하하. 좋네. 역시 젊은이들이라 합리적이군. 하지만 방심하지 말게. 내 딸을 탐내는 곳이 한둘이 아니니까. 조만간 자네 실력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날이 기대되는군.”
“명심하겠습니다.”
백엽이 공손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그 역시 속으로는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정마대전이 벌어지면 가장 먼저 죽일 자 중 항상 거론되던 사람이 바로 이자 매화검선이었다. 역시 보통이 아니구나. 어쩌면 무림맹주보다 강할 수도 있겠다.’
백엽이 매화검선의 기도를 살폈으나 자하신공 때문인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았다.
‘자하신공을 대성한 게 사실이라면 극강의 자하강기로 한 번에 수백 명을 살상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지. 별동대 오백 명을 몇 수만에 전멸시킨 것인지 궁금하군.’
백엽이 눈을 빛냈다.
아직 무림 통일 대업이라는 목표를 버리지 않은 그였다.
정마대전이 벌어지면 실제 매화검선의 수급을 베는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하지만 부친과 악완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 가능성은 급격히 줄어들고 있었다.
‘최소한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의 목숨을 쉽게 끊을 수는 없겠지. 하지만 앞일을 누가 있어 알겠는가.’
답답함이 느껴지긴 했지만, 지금은 공통의 적이 있어 어느 정도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늘 어디서든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할 수밖에. 스스로 당당하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