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50
수백 척의 배가 악양 포구에 나타난 것은 해질 무렵이었다.
저녁노을을 받으며 포구에 정박한 배들 위에서 무사들이 한둘씩 내리기 시작했다.
오만여 명에 달하는 그들은 바로 장강수로십팔채의 수적들이었다.
수채 열여덟 곳에서 골고루 파견된 그들은 각 수채당 삼천여 명의 무사들이 모여 도합 오만여 병력을 자랑했다.
그들을 이끄는 수장은 장강수로십팔채의 총채주 장강대왕(長江大王)이었다.
장강수로십팔채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수채인 용왕채(龍王寨)의 채주이도 한 그는 원래 강호를 떠돌던 낭인무사였다.
어느 날 기연을 만나 절세고수가 된 그는 전격적으로 용왕채에 들어가 승승장구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불과 몇 년이 되지 않아 용왕채주까지 된 그는 각 수채의 채주들까지 굴복시켜 총채주가 된 것이었다.
그의 목표는 장강에 국한되지 않았다. 장강을 넘어 육지까지 그 세력을 넓히는 것.
그것은 비단 장강대왕뿐만 아니라 모든 수적들의 꿈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그 꿈이 실현되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번에 악양 무림을 장악하게 되면 그 일부를 할당받아 장강수로십팔채의 지부를 세우게 될 것이었다.
동정수로채가 백엽에 의해 궤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진격을 멈추지 않은 이유이기도 했다.
아니 오히려 장강대왕은 동정수로채의 궤멸을 반기기까지 했다.
동정수로채가 관할하던 수역까지 모두 장강수로십팔채가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드디어 악양에 도착했군. 장강선생(長江先生)! 녹림칠십이채 무사들은 언제 도착할 것 같소?”
“산길이 험해 조금 늦는 것 같지만 오늘 밤을 넘기지 않을 겁니다. 넉넉잡고 내일 새벽까지 기다렸다가 날이 밝는 대로 영웅보로 진격하시면 될 겁니다.”
장강수로십팔채 총군사 장강선생의 말에 장강대왕이 득의한 미소를 지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포구 공터에 빠른 속도로 막사들이 세워지고 있었다.
오늘 밤 수적들이 머물 거처였다.
배에 계속 타고 있어도 되지만 녹립칠십이채 무사들과 합류하기 위해 뭍으로 올라온 그들이었다.
“지휘 막사에서 각 채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그럽시다.”
얼마 후 도착한 지휘 막사에는 열일곱 명의 수채주들이 장강대왕을 기다리고 있었다.
놀랍게도 장강수로십팔채의 채주들이 모두 모인 것이었다.
작전 회의 참석자는 장강대왕과 장강선생을 비롯하여 모두 열아홉 명.
그야말로 핵심 중의 핵심만 모인 셈이었다.
한편 그들 외에 막사 안에는 네 명의 무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용왕채 소속 수적들로 그 무공이 대단히 높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장강사수(長江四秀)라 불리는 자들로 용왕채의 호법신분을 지니고 있었다.
맡은 임무는 작전 회의 전용으로 사용되는 지휘 막사의 관리였다.
그 때문에 수적들이 포구에 내리기도 전에 가장 먼저 뭍으로 올라와 막사를 치고 채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이 될 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리 은신술을 펼쳐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백엽 일행에 의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백엽은 천마초혼술으로 그들의 기억을 읽은 후 그 내용을 성녀, 생사신의, 매영설 세 사람에게 전이대법으로 전해주었다.
이후 네 사람 모두 장강사수로 역용했고, 그 시체들이 생사신의에 의해 깨끗하게 소멸되었음은 물론이었다.
장강사수 중 한 명이 되어 사각형 모양의 막사 중 한 방향에 서 있던 생사신의가 백엽에게 전음을 날렸다.
「교주님. 저자가 바로 장강대왕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합시다. 듣다 보면 녹림왕이나 신비 세력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오.」
「네. 교주님.」
생사신의가 전음을 보낸 후 다시 한번 기의 갈무리를 했다.
그 이유는 최대한 기도를 드러내지 않기 위함으로 수채 채주들의 무공이 예상보다 훨씬 뛰어나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반면 백엽은 장강대왕을 제외하고 자신의 적수가 없음을 알고 한시름 놓고 있었다.
그가 본 장강대왕은 천혈방주보다 훨씬 무공이 뛰어난 절정고수였다.
‘기연을 만나 절세고수가 되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이미 어느 정도 반박귀진의 경지까지 이르렀다. 자칫하면 나 역시 백합 이내에 쓰러뜨리기 힘들겠군. 만약 녹림왕마저 이곳에 온다면 절대 두 사람의 합공을 허용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백엽이 눈을 빛내며 장강대왕의 기도를 살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그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는 바로 신비 세력이었다.
그의 경험에 의하더라도 드러난 고수보다 숨은 고수가 더 위험했다.
‘지금 이자들을 처치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신비 세력의 정체부터 확실히 밝혀야 한다.’
백엽이 숨을 고르는 동안.
장강대왕 주재의 작전 회의가 시작되고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바로 장강선생이었다.
원래 장강의 한 낚시꾼에 불과했던 그는 어느 날 기서를 발견해 일약 책사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소문을 들은 장강대왕이 찾아갔고, 장강선생이 그를 주군으로 모시게 된 것이었다.
“먼저 지금까지의 상황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들 잘 알다시피 천혈방과 동정수로채 병력은 몰살당했습니다. 천혈방 악양지부 지하시설이 붕괴하는 바람에 그만 천혈방주와 동정수왕을 비롯한 이만여 명의 무사들이 죽임을 당하고 말았지요. 비록 형산파 무사 천여 명을 폭사시키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그 대가치고는 참혹했습니다.”
장강선생의 말에 채주들이 안색을 굳혔다.
천혈방과 동정수로채의 최후가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용왕채에 이어 두 번째 규모를 자랑하는 적수채(赤水寨) 채주가 말했다.
“정말 천혈방주와 동정수왕이 죽었습니까? 아무리 지하시설이 붕괴하였다고 해도 도저히 믿기 어렵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지하시설이 완전히 붕괴하였는데 어찌 살아날 수 있겠습니까? 아, 물론 반선(半仙)들께서 돌아가기 전에 한 번 조사해보신다고 하니 어쩌면 생존자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겁니다.”
장강선생의 말에 백엽이 눈을 빛냈다.
‘반선들? 혹시 그자들이 신비 세력인가?’
백엽이 궁금해했으나 그렇다고 직접 물어볼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하지만 불감청 고소원이라.
적수채주가 곧바로 그들에 대해 질문을 했다.
“반선들께선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이번에 우리를 기습 공격하려 했던 백호당 놈들을 궤멸시켜 주신 점에 대해 감사를 드리고 싶은데, 원체 신출귀몰한 분들이라 얼굴을 뵙기가 힘들군요.”
“반선들은 저 역시 딱 두 번 뵈었을 뿐입니다. 총채주께서도 마찬가지시지요?”
“그렇소. 장강선생. 반선들께서는 가히 신선이라 할 수 있는 분들로, 그분들이 우리 뒤를 봐주시고 있어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오. 이번에 그분들의 힘이 확실하게 증명되었으니 앞으로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오.”
장강대왕의 말에 각 채주들이 안도감과 두려움이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이는 장강대왕 역시 마찬가지였다.
반선들이 나타난 것은 불과 며칠 전이었다.
동정수로채 지원을 망설이고 있던 그에게 한밤중 자칭 반선이라는 자들이 세 명 나타났다.
그들을 살수로 오인했던 장강대왕은 당연히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불과 한 수만에 제압된 장강대왕이었다.
그가 어이없어하자 반선들은 해치려고 온 게 아니라 후원을 해주기 위해서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출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권고했다.
목숨이 경각에 달한 장강대왕이 그 제의를 수락한 것은 물론이었다.
반선들은 그를 풀어주며 향후 최소 한번은 기습 공격을 막아주겠다고 약속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번 백호당 공격이었던 것이다.
참고로 반선들은 녹림왕과도 만났으며, 똑같은 제의를 했고 실제 이번에 청룡당 무사들의 기습 공격을 막아준 바 있었다.
녹림왕과 동맹을 맺고 전서구를 자주 교환해왔던 장강대왕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후 녹림왕과 함께 반선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던 차였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어 각 채주들의 궁금증은 극에 달한 상태였다.
“총채주님. 반선분들이 이번에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셔서 정말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우리를 공격한 백호당 일만 무사의 힘은 그야말로 막강해 능히 우리 병력과 양패구상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쉽게 격퇴하다니 정말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일만 무사를 거의 전멸시키는데 반선들께서 열 분도 채 나서지 않았다는 게 사실입니까?”
“그렇소. 그분들의 무공은 가히 신의 경지에 달해 솔직히 반선 한 분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오.”
“아!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무림맹 놈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누구에게 당했는지 모르고 있다면서요?”
“그렇소. 그 때문에 신비 세력으로 불리는 모양이오.”
“그분들의 진정한 의도를 모르는 것은 총채주님도 마찬가지가 아닙니까?”
“그렇긴 하오. 하지만 이미 나와 녹림왕은 반선들을 스승으로 삼았소. 그분들이 무림 장악에 욕심이 없는 것은 확실하니, 충실하게 그분들의 뜻에 따르기만 하면 우리의 대업 역시 앞당겨질 것이오. 그 정도만 알고 있으시오. 나와 녹림왕 역시 더는 잘 모르고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분들이 계속 우리를 도와주시겠지요?”
“무림맹 총단에서 복수를 위해 대거 병력을 파견할 것이 걱정되는 것이오?”
“네. 지금은 놈들도 충격을 받아 허둥대겠지만 결국 복수를 시도할 겁니다. 반선분들께서 그 점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없으셨소. 이전에 최소한 한 번 정도는 도와줄 테니 이후에는 알아서 하시라 말씀하긴 했소. 볼일이 있어 잠시 강호에 나왔지만, 조만간 중요한 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도 하셨소. 그러면서 장강수로십팔채와 녹림칠십이채가 중원 무림을 장악하기를 바란다고 하셨소.”
“으음, 정말 바람과 같은 분들이군요. 마음대로 오셨다가 떠나신다니, 역시 신선들인 것 같습니다. 우리를 도와주는 대가로 바라는 게 없었습니까?”
“있었소. 다만 지금 밝히는 것이 적절치 않은 것 같소. 확실한 것은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그분들이 무림 장악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오. 그것만은 믿고 있어도 좋소. 나와 녹림왕은 그분들의 현신을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장차 흑도 통일을 넘어 무림 통일 대업의 발판으로 삼기로 했소. 우리는 그저 최선을 다하면 될 것이오. 반선들께서도 우리보고 스스로 강해지라고 하셨소. 그래야 나중에 무림을 통치할 때 이상향을 건설할 수 있다고.”
“이상향 말씀입니까?”
“그렇소. 사실 말이 나왔으니 좀 더 설명해주자면 반선분들의 목표는 바로 무림 이상향을 만드는 것이오. 다만 그분들은 서약 때문에 직접 무림을 통치하지 못하고 부득이 대리자를 세워야 하는데, 그 대리자로 나와 녹림왕이 선정된 것이오.”
“아! 그러면 향후 우리가 무림을 장악한 후 그분들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겠군요.”
“그렇소. 어떻게 말하다 보니 그분들의 조건을 거의 다 말하게 되었구려. 반선분들께선 몇 가지 조언을 하실 거라고 하셨소. 쉽게 말해 무림을 다스리는 원칙 같은 것인데, 우리는 그 원칙을 따르기만 하면 될 것이오. 무림 통일을 위해서는 앞으로 몇 번은 더 도움을 받아야 할 터. 그 정도 약속을 하는 것이 뭐가 어렵겠소? 그 문제는 이 정도로 이야기합시다. 반선분들의 일차 지원은 끝난 것 같고, 최소한 악양 무림은 우리 손으로 차지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이까짓 악양무림은 우리 병력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좋소. 본격적으로 계획을 세우도록 합시다.”
장강대왕이 영웅보 공략 계획에 대해 채주들과 논의하기 시작했다.
백엽이 안색을 굳혔다.
‘반선들의 무공이 정말 대단한 것 같구나. 녹림왕까지 굴복한 게 사실이라면 나 역시 상대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자칫하면 무림 통일 대업은 고사하고 본교의 존립마저 위태로워질 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