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53
“간덩이가 부었구나!”
장강대왕이 고함을 지르며 들고 있던 검을 빠르게 찔러왔다.
슈우욱.
실로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의 쾌검식.
누가 봤다면 백엽이 암습을 하지 않고 여유를 부린 것이 잘못된 판단이라고 확신할 정도였다.
실제 백엽은 반격을 가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장강대왕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의 쾌검식은 스스로 판단하기에 무림 최고라 자부할 정도였다.
다만 초식이 너무 연마하기 어려워 약간 부족한 면이 있었는데, 최근 그 약점마저 보완할 수 있었다.
실로 수십 년간 연구한 결과물이었다.
장강대왕의 검이 백엽의 목을 꿰뚫기 직전.
백엽이 몸을 옆으로 틀었다.
검날이 살짝 비켜나가는 순간이었다.
장강대왕이 흠칫하는 순간 백엽이 앞으로 미끄러지듯이 다가와 우수를 비스듬히 세워 목을 가격했다.
우두둑.
장강대왕의 목뼈가 부러지며 그대로 즉사했다.
“크윽!”
장강대왕이 눈을 부릅뜨고 쓰러졌다.
백엽이 오른 손바닥을 그의 머리 위에 대고 천마초혼술을 펼쳤다.
이 천마초혼술은 죽은 지 한시진 이내 펼쳐야 그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장강대왕의 주요 기억을 모두 읽어낸 백엽이 이번에는 자신의 얼굴을 변형시키기 시작했다.
한데 그 얼굴은 바로 장강대왕의 것이 아닌가.
그랬다.
백엽이 처음부터 노린 것은 바로 장강대왕을 죽이고 그로 행세하는 것이었다.
다만 천마초혼술의 경우 상대의 무공이 강할수록 기억 흡수가 어려운 약점이 있었다.
특히 급습을 당해 죽었을 경우가 그 대표적이었다. 백엽이 일부러 그에게 공격을 가할 시간을 준 주된 이유이기도 했다.
“휴우! 미리 무형지기로 기혈을 교란하지 않았다면 어려운 싸움이 될 뻔했다.”
백엽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일방적인 싸움으로 보였지만 미리 무형의 올가미를 장강대왕에게 씌운 것이 주효했다.
하지만 워낙 긴박한 상황이라 장강대왕은 죽는 순간까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의 쾌검식이 백엽에게 통하지 않았던 이유이기도 했다.
검의 속도는 문제가 없었지만 그 기세가 둔화하여 백엽이 쉽게 피할 수 있었다.
장강대왕의 시체는 백엽이 삼매진화로 완전히 태워버렸다.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백엽은 비로소 막사 밖에 있는 무사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총채주님.”
무사가 막사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의아해했다.
“장강일을 찾는 것이냐?”
“네.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들어왔다. 다만 조금 전 내가 은밀히 그 역시 지존장원으로 보냈다.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게 은신술을 펼친 채 가도록 해 너희들이 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 네.”
경계 무사가 조금의 의심도 없이 수긍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장강사수 중 첫째인 장강일의 무공은 자신들이 따라갈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경계 무사들의 조장인 그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 못내 부끄러운 표정이었다.
“지금 가서 장강선생과 각 채주들을 이곳으로 데려와라. 긴급회의를 열어야겠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무사가 막사 밖으로 나가자, 백엽은 조용히 장강대왕의 기억을 되새겼다.
천마초혼술이 펼쳐지면 곧바로 대부분의 기억을 파악할 수 있게 되지만, 희미한 기억도 있어 곰곰이 떠올려야 할 필요가 있었다.
백엽이 지금 찾고 있는 것은 바로 반선들과 관련된 것이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반선이나 신선계와 관련된 것은 전혀 없었다.
‘천마초혼술로도 파악이 안 되는 기억이라니. 반선들이 미리 이런 상황을 생각하고 특수 조치를 취한 것인가.’
백엽이 눈을 빛냈다.
일단 장강대왕을 제거하는 데 성공해 한 시름 놓은 그였다.
다만 조금 전 장강대왕을 죽이는데 사용한 내공의 소모가 조금 지나쳤다.
겉보기에는 너무나 쉬워 보였지만 그야말로 필생의 공력을 사용한 때문이었다.
특히 무형지기를 사용해 상대를 옭아매는 데 많은 공력이 소모되었다.
‘지금 이 상태에서 녹림왕까지 제거하는 것은 무리가 따를 것 같다. 지존장원에서 소식이 올 때까지 최대한 휴식을 취해야 할 것 같군. 다만 그 전에 자체 분열을 유도해야 한다.’
백엽이 잠시 생각에 잠겼을 때.
장강선생과 장강수로십팔채 각 채주들이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장강선생의 말에 백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모두 앉으시오.”
“네.”
장강선생과 채주들이 착석하자, 백엽이 말했다.
“조금 전 장강일이 내게 보고한 내용 때문에 그대들을 불렀소.”
“장강일은 어디에 갔습니까?”
“지존장원으로 보냈소. 아무래도 장강사수 전부를 보내는 것이 확실할 것 같아서 은밀히 가보도록 했소.”
“잘하셨습니다. 장강사수의 합공이라면 그 어떤 고수도 제압할 수 있지요. 한데 장강일이 뭐라고 했습니까?”
“녹림왕이 나를 제거할 거라고 했소. 우연히 녹림칠십이채 채주들이 하는 말을 들었는데, 이번에 악양 무림을 장악한 후 나를 죽이고 우리 장강수로채를 흡수하려 한다는군.”
“이런 쳐죽일 놈들이!”
“그게 정말입니까?”
장강선생과 채주들이 하나같이 놀라며 분노했다.
“그렇소. 하지만 사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오. 장강선생 역시 예상했으리라 믿소.”
“물론입니다. 하지만 녹림왕 그자가 너무 노골적으로 우리를 흡수하려 하는군요. 아마도 반선들께서 지존회주를 처리해준다고 하니 눈에 보이는 게 없는가 봅니다.”
“고정하시오. 사실 반선들께서 나와 녹림왕을 서로 경쟁시켰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소. 이제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녹림칠십이채 놈들이 우리를 제거하고 각 수채를 차지하려 한다면, 우리가 선수를 치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식으로 말이오? 솔직히 고수들의 수만 보면 우리가 약한 게 사실이지 않소?”
“천혈방과 동정수로채 두 곳과 힘을 합쳐야지요.”
“좋은 생각이오. 그들 역시 녹림왕의 흡수 대상일 테니까. 장강선생이 지금 가서 상효통과 동정수왕에게 나의 의사를 전달하시오. 녹림왕이 우리를 제거하려 하니까 서로 힘을 합치자고 말이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장강선생이 막사 밖으로 나갔다.
백엽은 채주들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 후 그들마저 막사 밖으로 보냈다.
장강대왕의 기억을 흡수해 채주들의 의심을 사지는 않았으나 혹시 몰라서였다.
다시 홀로 남게 된 백엽이 눈을 빛냈다.
‘일단 지존장원 소식을 기다린다.’
* *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시진이 다 되어가도록 지존장원 소식을 알아보러 갔던 성녀와 생사신의, 매영설 세 명은 아무 소식이 없었다.
무슨 일이 생겼으면 매영설 혼자 돌아오라고 했던 백엽 또한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무 일이 없으면 다들 지존장원에 있으라고도 했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한 면도 있었다.
아무도 돌아오지 말라고 한 것은 오히려 이번 기회를 역이용하기 위해서였다.
무사들을 지존장원 쪽으로 향하게 해 그곳에서 승부를 보려는 목적이었다.
백엽이 다시 지휘부 회의를 열려는 찰나.
매영설이 복귀했다.
그녀는 곧장 백엽이 머물고 있는 막사로 들어왔다.
그녀가 장강대왕으로 역용해 있는 백엽을 알아본 것은 바로 특수 천리향 덕분이었다. 매영설은 어렵지 않게 백엽이 머물고 있는 막사까지 찾아올 수 있었다.
“사부님입니까?”
“그렇다. 설아. 내가 장강대왕 그자를 죽이고 총채주로 행세하고 있다. 어서 말해보아라. 지존장원은 무사하더냐? 음파를 차단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게······.”
매영설이 침통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백엽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문제가 생긴 것을 직감한 것이다.
매영설이 어렵게 말을 했다.
“신의와 성녀, 그리고 제가 지존장원에 도착했을 때 결계는 그대로였어요.”
“아! 결계가 뚫리지 않았구나. 한데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이냐?”
“장원 안으로 들어가 보니 지존회 무사들이 모두 쓰러져 있었어요. 성녀 말씀으로는 막대한 음공에 당한 것 같다고 하셨어요.”
“아! 무사들의 상태는?”
“열 명 정도를 제외하고 모두 숨이 끊어져 있었습니다. 심맥이 끊긴 것 같았어요.”
매영설이 침통한 표정으로 자신이 본 광경을 설명해줬다.
죽은 사람은 거의 모두 이번에 새롭게 지존회 무사가 된 백여 명의 일반 흑도들이었다.
보양단을 먹여 내공을 이십 년 정도 높여놓았지만 그런 보람도 없이 어이없게 몰살당한 셈이었다.
“어찌 그런 일이!”
백엽의 안색이 굳어졌다.
불길한 예감이 그대로 적중한 것이다.
비록 신입 지존회 무사들과의 교류가 그렇게 깊은 것은 아니었으나, 그들은 백엽을 믿고 들어온 무사들이었다.
한데 전멸했다고 하니 그 책임감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반선들의 소행이었느냐?”
“그건 잘 모르겠어요. 성녀님 말씀으로는 아무래도 반선들이 결계를 뚫지 못하자 밖에서 음공을 펼친 것 같다고 하셨어요. 두 분은 지금 생존자들을 치료하고 있어요.”
“생존자는 누구냐? 천마살수들이냐?”
“네. 내공이 높은 천마살수들은 모두 숨이 붙어 있었어요. 성녀께서 성력으로 급히 고비를 넘기게 해주셨지요.”
“천마살수 외에 생존자는 없었느냐?”
“한 명 있었습니다. 철탑이라고 덩치 큰······.”
“알고 있다. 내가 특별히 일갑자 내공을 넣어줬지. 그게 그를 살렸구나. 하지만 무사들 대부분이 죽었으니, 내 책임이 크다.”
백엽이 애써 마음을 진정했다.
교주가 된 이후로 수하들의 희생을 가장 안타까워하던 그였다.
“반선들은?”
“우리가 갔을 때 그런 자들은 보이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음공을 펼친 후 곧바로 떠난 것 같아요. 시간이 많았으면 결계 역시 뚫렸을 가능성도 커요. 이상입니다.”
“으음, 타격이 너무 크구나. 전사한 무사들의 무공이 그렇게 높은 것은 아니었으나, 앞으로 미래가 기대되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당하다니.”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으음, 설이 네 생각은 어떠하냐?”
“제가 뭘 알겠습니까? 다만 반선들에 대한 복수는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다시 나타난다면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여기 있는 적들을 모두 지존장원으로 데려가 사부님께서 생각하신 계획을 그대로 밀어붙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유인 작전 말이냐?”
“네. 겉으로 봐서는 지존장원의 피해를 알 수 없을 테니 놈들을 그곳으로 유인해서 기관을 작동하는 겁니다. 우리는 이제 소수에 불과하니 따로 비상 출구를 통해 빠져나가면 될 겁니다. 화약이 매설되었으면 그것을 터뜨리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겁니다.”
“화약은 아니다. 장원 전체에 일종의 미혼진이 설치되어 있지. 상고시대 진법이라 일단 가동이 되면 십만 병력이라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설아. 일단 너는 장원으로 돌아가서 지존회 무사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부상자들을 지하 비밀장소로 옮기도록 해라. 비밀장소는 성녀에게 이미 가르쳐줬으니 말만 전하면 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나는 이곳에 있는 놈들을 모두 모아 지존장원으로 가겠다. 어서 서두르도록 해라. 요컨대 시신을 수습하는 즉시 지하 비밀장소에 몸을 숨기면 된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사부님. 몸조심하세요.”
매영설이 고개를 숙인 후 막사 밖으로 나갔다.
그녀 역시 장강사수 중 막내인 장강사(長江四)로 행세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매영설이 지존장원으로 돌아가자, 백엽은 무사를 시켜 장강수로채, 녹림칠십이채, 천혈방, 동정수로채 지휘부 모두가 참여하는 연석회의를 열도록 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