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58
녹림왕과 동정수왕의 대결은 너무나 싱겁게 끝이 났다.
일장을 교환하자마자 동정수왕이 뒤로 대여섯 걸음 물러나 엉덩방아를 찧고 만 것이었다.
“녹림왕께서 승리하셨습니다.”
천혈선생의 말에 흑도 무사들이 박수를 보냈다.
짝짝짝.
녹림왕이 포권으로 인사한 후 직접 동정수왕에게 다가가 부축을 해줬다.
동정수왕이 말했다.
“배려를 해줘서 고맙소. 역시 소문대로 천하제일의 무공이오.”
“하하하! 과찬의 말씀이오.”
녹림왕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동정수왕은 그에게 있어 너무나 쉬운 상대였다.
“다음 대결은 장강대왕과 상효통 방주님 두 분의 대결입니다. 어서 나와주십시오.”
천혈선생의 말에 백엽과 상효통이 비무 공간으로 나왔다.
삼장 거리를 두고 맞선 두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서로를 쳐다봤다.
백엽은 태연한 표정이었다.
다만 속으로 한가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원래 출처를 알 수 없는 장풍으로 승부를 보려 했던 계획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아직 미흡하지만 장강대왕의 독문 장법인 장강풍파장(長江風波掌)을 펼친다면 나에 대한 의혹을 상당 부분 없앨 수 있을 것이다. 녹림왕은 어렵겠지만 상효통 저자는 장강풍파장으로 충분히 이길 수 있다.’
백엽이 결단을 내리고 두 손을 들었다.
상효통 역시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사실 아군끼리, 특히 전투를 앞둔 상황에서의 비무는 이처럼 서로 장력을 겨루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적수공권으로 격공 장력을 겨루게 되면 승패는 확연히 나타나지만 부상은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편 상효통은 백엽의 기도가 생각보다 강하자 처음부터 비장의 한 수를 쓸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
그가 사용할 무공은 마침 장법으로 천혈독장(天血毒掌)이란 것이었다.
장력 속에 극독을 살포한 것인데, 일종의 무형지독이기 때문에 상대는 독장임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게 된다.
독의 이름은 천혈독(天血毒)이라 했다.
이 천혈독은 상대의 호신강기를 전문으로 뚫고 들어갈 수 있으며, 일단 살포되면 그 어떤 경우에도 피할 수 없게 된다.
다만 그 연마가 어려워 상효통 역시 수십 년을 연구해 최근에야 겨우 성공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천혈독의 제조도 어렵지만, 그것을 장풍 속에 담아 소리 없이 상대를 중독시키는 그 방법이 가히 독보적이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상효통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천혈독에 당하면 내공이 전폐되고 사흘간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죽고 만다. 장강대왕 네놈에게 미안하지만, 이 방법 말고는 이길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가 없구나.’
“시작하십시오!”
천혈선생의 말에 상효통이 곧바로 천혈독장을 날렸다.
쏴아아.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평범한 장풍이었다.
백엽은 계획대로 장강풍파장을 날렸다.
쏴아아.
마치 도도한 장강의 물결처럼 경력이 중첩되며 그 세기가 강해졌다.
장강수로십팔채 수적들이 그 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장강풍파장이다!”
“역시 대단하군!”
꽈앙.
폭음과 함께 한 사람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윽!”
무사들이 보니 상효통이 동정수왕과 마찬가지로 뒤로 대여섯 걸음 물러나 엉덩방아를 찧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으으······ 어찌 이런 일이!”
상효통이 인상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하지만 이미 그의 패배는 확정적이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백엽을 쳐다봤다.
‘천혈독을 그렇게 쉽게 없애다니. 설마 장강대왕 저자가 초절정에 달했단 말인가.’
그랬다.
천혈독은 오직 초절정 고수만이 해소할 수 있었다.
그것이 유일한 한계라면 한계였다. 상효통이 상대의 무공 수준을 오판한 셈이었다.
백엽은 여전히 태연했다.
‘웬만한 독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잔꾀를 썼군. 죽일 수도 있었지만 잠시 목숨을 붙여줬다.’
“장강대왕의 승리입니다.”
천혈선생이 굳은 안색으로 소리쳤다.
자신이 모시는 상효통이 패배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상효통 역시 별다른 내상을 입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대단하오. 차후 기회가 있으면 다시 겨뤄보도록 합시다.”
상효통이 찌푸린 얼굴로 한마디 내뱉은 후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이제 남은 시합은 백엽과 녹림왕의 대결이었다.
“잠시 휴식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반시진 후 속개하겠습니다.”
천혈선생의 말에 백엽 역시 대기석으로 돌아갔다.
대기석은 승자만이 앉을 수 있는데, 맞은편 막사에는 녹림왕이 벌써 앉아 있었다.
녹림왕이 옆에 있던 녹림선생에게 전음을 날렸다.
「조금 전 대결을 어떻게 보시오? 장강대왕 저자가 내 상대가 되겠소?」
「무시 못 할 자입니다. 신공을 사용하는 것도 고려해야 할 듯합니다.」
「우주신공(宇宙神功)까지 펼치라는 말이오? 우주신공은 무림맹주나 천마를 상대할 때만 사용할 계획인데, 고작 저자에게 사용한다면 내가 손해가 아니겠소?」
「확실한 승리를 위해서는 우주신공이 필요합니다. 조금 전 상 방주가 펼친 장풍은 보통 독장이 아니라 천혈독장이라는 것으로, 그가 비밀리에 연성한 신공이었습니다. 총채주님의 명에 따라 그 사실을 알아내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무엇보다 천혈독을 해소하려면 그 무공이 초절정에 달해야 합니다. 한데 장강대왕이 천혈독을 해소했으니, 이미 초절정 고수에 도달한 듯합니다.」
「설마 그렇겠소? 나 또한 완전하게 초절정에 도달했다고 말하기 힘든데······.」
「물론 제가 오판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상 방주가 천혈독장을 완전히 연마하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야 합니다. 우주신공이라면 무림맹주나 천마라도 이길 수 있으니, 장강대왕 저자 역시 속수무책일 겁니다.」
「으음, 하기야 우주신공은 천하제일무공으로 지난 백 년간의 노력으로 겨우 완성할 수 있었소. 다만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 과연 초절정에 도달했는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오. 아무래도 장강대왕 저자에게 시험해볼 수밖에 없을듯하오. 다만 우주신공을 펼치면 상대는 반드시 죽고 마는데, 이후의 일을 감당할 수 있겠소?」
「오히려 더 좋지요. 나중에 암살하는 것보다 이렇게 정정당당하게 죽이는 것이 장강수로십팔채를 장악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겁니다. 다만 곧바로 흡수하려 하지 마시고, 나중에 악양 무림을 장악한 후 진행하십시오.」
「그동안 다른 총채주를 세우지 않겠소?」
「상관없습니다. 각 수채의 채주 중 한 명이 총채주가 될 것인데, 누가 되더라도 장강대왕만한 무공을 가지고 있지 못할 겁니다. 악양 무림을 점령한 후 제가 따로 계획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게다가 시간이 촉박하므로 실질적으로 총채주를 다시 뽑기도 힘들 겁니다. 그러니 아무 부담 없이 장강대왕을 죽이십시오.」
「알겠소.」
녹림왕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살기를 외부로 표출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난 백 년간 폐관 수련을 하면서 완성한 천하제일무공을 처음으로 선보인다는 생각에 설레는 표정이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우주신공으로 기필코 천하를 차지할 것이다. 내 무공과 반선들의 조력이 있는 한 나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다.’
* * *
휴식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백엽과 녹림왕은 아무 말도 없이 삼장 거리를 두고 마주 섰다.
두 사람 모두 절세고수답게 그 기도가 강하면서도 부드러웠다.
그 때문일까.
터질듯한 긴장감과 함께 마치 오래된 벗을 만난 것처럼 편안함도 느껴졌다.
‘위협적이군.’
백엽이 안색을 조금 굳혔다.
녹림왕의 우주진기(宇宙眞氣) 때문이었다.
우주신공을 익히게 되면 몸속에 쌓이는 이 우주진기는 백엽이 자주 사용하는 무형의 올가미와 비슷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공격을 개시하기 전 일종의 무형지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선제압.
이는 고수들 간의 대결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무공이 높을수록 싸움 전에 이미 승부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든다면 무공이 높은 고수들 간의 대결에서 본격적으로 싸우기도 전에 한 사람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이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한쪽의 절대 우세로 나타나는 경우는 그렇게 흔하지 않았다.
보통 대치 상태에 있다가 기세 싸움에서 밀리는 쪽이 먼저 공격을 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압박을 더는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는 대개 선공자의 패배로 귀결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는 법.
기세 대결에서 밀렸지만 진짜 싸움에서는 승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지금 기세 싸움에서 밀리고 있는 사람은 바로 백엽이었다.
녹림왕이 자신의 최고 절기를 아무 장애 없이 준비하고 있지만, 백엽은 아직 어떤 무공을 펼칠지 결정을 못 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백엽이 장강풍파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점이 컸다.
직전 대결에서 장강풍파장을 시범적으로 사용한 결과 의외로 놀라운 위력을 발휘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 때문에 이번에도 일단 장강풍파장을 준비했다.
미흡한 점이 많지만, 자신의 절대 내공으로 보충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기야 이번에도 장강풍파장으로 승리하면 더는 백엽을 의심할 사람이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장강풍파장으로 이자를 이길 수 없다. 반선들에게 제압이 되었다고 해서 쉽게 생각했는데, 이처럼 대단한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니. 혹시 백 년 폐관 수련으로 익힌 신공인가.’
백엽이 안색을 더욱더 굳혔다.
장강풍파장 준비를 거두고 다른 무공을 준비해야 했지만, 이미 사전 기세 대결이 시작되어 물러나기 힘들었다.
기운을 거두어들이는 즉시 틈을 보여 곧바로 패배할 것이 명확했다.
‘외통수에 걸린 것인가.’
백엽이 심호흡을 했다.
교주가 된 이후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었던 그였다.
그런 그가 패배를 직감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그냥 패배가 아니라 목숨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나를 죽일 생각이군. 지금 상태에서 틈을 메울 방법은 천마신공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내 정체가 드러날 공산이 크다.’
백엽이 갈등했다.
사실 그는 극마의 경지에 도달한 후 어떤 무공이든 그 특징을 숨길 수 있었다.
그동안 그의 무공이 어떤 부류인지 외부인이 전혀 알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처음부터 천마신공을 일으켰다면 상관이 없었지만, 장강풍파장을 거두어들이는 과정에서 천마신공의 특성이 드러날 가능성이 컸다.
이를 줄일 방법은 힘을 조절하는 것인데 상대가 고수라 최선을 다해야 승산이 있었다.
‘다른 무공이 전혀 없다는 말인가.’
백엽이 마지막으로 자신이 익힌 여러 무공을 떠올렸다.
동수를 이뤄도 상관없었다.
동수를 이룬 후 곧바로 천마신공으로 승부를 본다면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마무리를 지을 수 있었다.
‘그래, 무명비급에 수록된 팔대무공이 있었지. 그동안 바빠서 한번 시험해본다는 것을 잊었다. 무명신장(無名神掌)이라면 충분히 겨룰 수 있을 것이다.’
백엽이 눈을 빛냈다.
무명노승이 남긴 무명비급에 수록된 팔대무공.
자신이 판단하기에 유일하게 천마대장경 상의 무공과 견줄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제대로 된 심법만 발견하면 훨씬 뛰어난 위력을 발휘할 가능성도 컸다.
하지만 심법은 찾지 못했고, 다만 극마의 경지에 오른 지금 주화입마의 위험 없이 시전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문제는 한 번도 연습을 해보지 않았다는 것.
자칫 잘못하면 승리하더라도 후유증을 피하기 어려웠다.
‘직감을 믿자. 한 번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 게다가 천마신공과 달리 장강풍파장을 거두어들일 필요 없이 곧바로 펼칠 수 있는 장점도 있으니 모험을 해볼 만하다.’
백엽이 결단을 내린 바로 그 순간.
“시작하십시오!”
천혈선생의 목소리와 함께 녹림왕이 우주신공을 펼쳤다.
그의 장심에서 보라색 광채가 동심원 모양을 이루며 중첩적으로 날아왔다.
백엽이 무명신장을 날린 것은 그때였다.
쏴아아.
장엄한 금빛 장력이 그의 장심에서 분출되었다.
따로 무명신장과 맞는 심법이 없었지만 무명신장을 발출하는 즉시 그의 본신 내공과 결부되었다.
바로 천마진기였다.
다시 말해 천마진기가 무명신장의 토대를 이루었다.
꽈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한 사람의 신형이 실 끊어진 연처럼 뒤로 날아갔다.
무사들이 놀라서 보니 십여 장 뒤로 날아가 땅바닥에 쓰러진 사람은 바로 녹림왕이었다.
“으윽!”
신음과 함께 일어난 그는 상효통처럼 자신의 패배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면 백엽은 담담했다.
하지만 그 역시 목구멍까지 올라온 핏물을 계속 삼키고 있었다.
‘이겼지만 오히려 내상은 내가 입고 말았다. 겨우 주화입마는 면했지만, 역시 팔대무공은 그에 맞는 심법으로 펼쳐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 중요한 시기이니 절대 내가 내상을 입은 사실이 알려져서는 안 된다. 지금 녹림왕이 나를 공격하면 속수무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