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60
“사부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인데······.”
매영설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성녀와 생사신의 역시 안색이 굳어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미혼진이 발동된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처럼 순간적으로 모든 경관이 달라질 줄은 몰랐던 것 같았다.
“정말 순간이동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군요. 이런 진법이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어요.”
성녀 역시 당혹감을 토로했다.
생사신의가 말했다.
“교주님께서는 이 미혼진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미혼진 설치 방법에 대해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알긴 알고 있소. 하지만 그 변화와 파훼 방법은 전혀 모르오. 다만 아는 것은 한번 미혼진에 갇히면 총 다섯 개의 관문을 돌파해야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 정도요.”
“다섯 개의 진 말씀입니까?”
“그렇소. 이 미혼진의 정식 이름은 오행미혼진(五行迷魂陣)이라 하오. 진마다 오행의 기운이 하나씩 들어가 있는데, 이 모두를 돌파해야만 탈출할 수 있소. 게다가 환상 진법의 일종이라 수십만 명도 가둘 수 있는 특징이 있소. 우리 역시 이왕 갇혔으니 빠른 속도로 탈출하는 것이 최선이오.”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되나요?”
매영설의 물음에 백엽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그대로 있어선 절대 탈출할 수 없다. 진법 설치 방법을 유추해서 생각해보면 어떻게든 한 방향을 잡고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무슨 수가 생겨도 생기는 것이지. 이대로 머물러 있기만 하면 결국 목이 말라 죽거나 굶어 죽게 될 것이다. 시간은 무한정으로 흘러갈 테니까.”
“하기야 아무리 고수라고 해도 물은 먹어야 살 수 있지요. 사부님 뜻대로 따르겠습니다.”
“그래. 이왕 들어왔으니 정신만 차리면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진의 구조는 내가 알고 있으니 적절히 임기응변하면 다른 사람보다 훨씬 유리할 것이다.”
“네. 한데 어느 방향으로 가실 겁니까? 그게 중요할 것 같은데······.”
생사신의의 물음에 백엽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사방이 허허벌판이니 아무래도 첫 관문은 오행 중 토(土)에 해당할 것 같소. 토는 그 방향이 중(中)이니 아무 쪽이나 가도 될 것 같구려.”
백엽이 돌을 하나 주워 높이 던졌다.
허공으로 솟았던 돌이 땅에 떨어지며 한 방향으로 데구루루 굴러갔다.
바로 서쪽이었다.
“토생금(土生金)이라. 흙이 쇠를 낳으니 금(金)을 뜻하는 서쪽도 좋겠군. 상생(相生)의 도에 일치하니 무리가 없을듯하오.”
백엽이 오행과 관련 최대한 긍정적인 해석을 한 후 서쪽으로 걸어갔다.
성녀와 생사신의, 매영설이 묵묵히 뒤따랐다.
바람은 적당히 불었으며 더우면서도 춥고 어떤 때는 온화했다가 선선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토의 특징인 사계(四季)와 일치했다.
하지만 서쪽으로 향할수록 조금씩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 빈도가 늘어났다.
금의 계절인 가을로 다가가는 느낌이었다.
다만 종일 걸어가도 주위 경관은 똑같았다.
허허벌판은 여전히 끝을 알기 힘들 정도로 넓었다.
“사부님. 벌써 지치는 것 같아요. 해가 질 기미도 보이지 않고 무작정 걸어가기면 하도 될까요?”
“이제 곧 변화가 생길 것이다. 아무래도 한꺼번에 십이만이나 되는 병력이 들어와 미혼진 역시 과부하가 걸려 장애물 생성이 조금 늦어지는 것 같다.”
“그건 좋은 것 아닌가요? 아니지. 물과 음식이 없어 오히려 불리하겠군요.”
매영설이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방이 확 트인 벌판이라고 하지만 언제 어떤 공격을 당할지 몰랐다.
그 때문일까.
성녀와 생사신의는 백엽의 양옆에서 극도의 경계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더 갔을까.
하루의 시간이 지났다고 느꼈을 무렵.
갑자기 지반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한 흔들림이었다.
“모두 중심을 잡으시오!”
백엽이 소리치며 검을 뽑았다.
순간, 대지가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백엽 일행이 있던 곳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동시적으로 발생한 일이었다.
“앗! 저기 보세요!”
매영설이 한 손으로 뭔가를 가리켰다.
정면이었는데, 갈라진 땅 사이에서 뭔가 거대한 것이 나오고 있었다.
한데 그것은 두더지가 아닌가.
집채만 한 크기의 괴물 두더지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백엽 일행을 향해 다가왔다.
한데 그러한 두더지가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무려 백여 마리의 괴물 두더지가 나타나 백엽 일행을 품자 형태로 완전히 포위하고 말았다.
갈라진 대지 때문에 피할 공간이 없었던 백엽 일행이 각자의 병장기로 전투태세를 갖췄다.
백엽이 말했다.
“저놈들을 격퇴하는 것이 첫 번째 관문인 것 같소. 신의께서 먼저 일장으로 한 놈을 공격해보시오.”
“알겠습니다.”
생사신의가 곧바로 좌장을 날렸다.
쏴아아.
거대한 경력이 맨 앞에 있던 두더지의 몸통에 그대로 작렬했다.
꽝.
가히 절정고수 중에도 상급이라 할 수 있는 막강한 장력이었다.
하지만 소리만 요란할 뿐 두더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공격을 받은 두더지가 콧김을 내뿜으며 생사신의를 향해 몸을 날렸다.
거대한 덩치의 놈이 그대로 생사신의를 위에서 눌러버리려는 의도 같았다.
“조심하세요!”
매영설이 급히 소리쳤다.
생사신의 역시 흠칫하며 피하려 했으나, 옆에는 갈라진 대지 때문에 생긴 끝을 알 수 없는 구덩이가 있었다.
가히 무저갱이라 할 수 있어서 한번 그 안에 빠지면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대로 당할 수는 없는 노릇.
생사신의가 다시 좌장을 날려 두더지의 몸통을 가격했다.
파팡.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두 배는 더 강한 장력이었다.
하지만 두더지는 이번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고 그대로 생사신의의 몸통 위로 떨어져 내렸다.
“아차!”
생사신의가 다급성을 터뜨렸으나 이미 피하기에는 늦었다.
고작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호신강기를 두텁게 하는 것뿐이었다.
성녀가 성력을 발출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백색 섬광이 번쩍하더니 생사신의의 몸 위로 떨어져 내리던 두더지가 뒤로 튕겨 날아갔다.
쿵.
“성녀. 갈라진 땅바닥부터 복구하시오!”
“네.”
성녀가 백색 섬광을 뿌리자, 벌어졌던 대지들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실로 놀라운 위력이었다.
하지만 성력에 당해 날아갔던 두더지는 큰 타격을 받지 않은 듯 다시 다가오고 있었다.
문제는 두더지가 그놈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백여 마리의 두더지 중 한 놈에 불과했다.
아직 관망세를 보이고 있었지만 처음 공격을 개시한 두더지가 죽기라도 한다면 떼거리로 공격할 기세였다.
백엽이 소리쳤다.
“성녀! 성력으로 계속 놈들을 튕겨 낼 수 있겠소?”
“그건 무리예요. 반시진 정도만 가능할듯해요.”
“사부님. 저도 도울게요.”
매영설이 소매 속에 숨겨둔 암기들을 날렸다.
파파파팍.
암기들이 두더지 몸에 그대로 박혔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가죽을 완전히 뚫지 못한 듯 두더지의 움직임을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생사신의가 장력을 날렸다.
성녀 역시 성력을 분출했다.
파파팡.
생사신의의 장풍에도 까딱없던 놈이 성력에 다시 뒤로 튕겨 나갔다.
하지만 곧바로 몸을 일으켜 다가오는 놈이었다.
그 회복력이 조금 전보다 강해졌다.
성녀의 안색이 굳어진 이유였다.
“놈의 회복이 빨라져 반시진은 고사하고 일각도 막아내지 못할 것 같아요.”
“으음, 고작 한 마리에 이렇게 고전을 하다니!”
백엽이 안색을 굳혔다.
사기를 위해 아직 자신이 내상을 입은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은 그였다.
그 때문에 최대한 다른 사람이 먼저 관문을 돌파해주기를 바랐다.
자신이 먼저 나설 경우에 자칫 내상이 더 심해져 주화입마에 빠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었다.
실제 매영설은 몰라도 생사신의와 성녀의 경우 높은 무공을 지니고 있어 기대를 해볼 만했다.
하지만 결과는 지금과 같이 기대 이하였다.
생사신의와 성녀의 무공이 낮다기보다 관문 속에 나타난 괴수의 힘이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괴물 두더지.
백엽은 놈들을 단순한 괴수로 보지는 않았다.
다시 말해 실체를 지닌 괴수가 아니라 환영진 속의 환영으로 보았다.
환영이란 허상을 말한다.
실제 존재하지 않는 대상인 것이다.
백엽이 주화입마의 위험을 무릅쓰고 두더지를 향해 공격을 가하려다가 눈을 빛냈다.
‘허상을 향해 공격을 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예상보다 훨씬 관문 돌파가 어렵지만, 힘보다는 머리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
백엽이 정신을 집중했다.
비록 뜻하지 않은 내상을 입었지만 정신만은 멀쩡했다.
‘그렇다. 오행진의 성격을 잘 생각해야 한다. 오행진 중 토진(土陣)에 해당하니, 상극(相剋)의 원리에 따라 목극토(木剋土)가 중요하다. 즉, 나무가 흙을 이긴다. 나무는 청룡에 해당하니, 청룡주로서 놈들을 제거할 수 있지 않을까?’
백엽이 품속에서 청룡주를 꺼냈다.
단순히 내공으로 승부를 보게 되면 기껏해야 한 번의 공격만 가능할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내상을 입어 활용 가능한 범위가 줄어든 내공의 일부만 사용해서는 승산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관문은 이제 겨우 처음이었다.
앞으로 네 개의 관문이 더 있을 것이기에 신중해야만 했다.
다행히 청룡주에 실을 수 있는 내공은 일부라도 충분할 가능성이 컸다.
청룡주 자체가 내공 증폭의 역할도 수행하기 때문이었다.
백엽이 왼손으로 청룡주를 들고 있던 바로 그 순간.
예의 두더지 한 마리가 맹렬하게 돌진해왔다.
집채만 한 덩치의 두더지가 마치 화살처럼 밀려오는 모습은 가히 공포 그 자체였다.
백엽은 전혀 위축되지 않고 청룡주에 내공을 실어 앞으로 내밀었다.
순간 붉은 광채 한 줄기가 직선으로 뻗어 나와 두더지의 머리에 그대로 작렬했다.
퍽.
수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두더지의 이마에 구멍이 크게 하나 뚫렸다.
“케에엑!”
괴성과 함께 두더지가 십여 장이나 튕겨 날아가 발버둥 치다가 이내 초록색 화염에 싸이며 소멸하였다.
“아!”
“오!”
성녀와 생사신의, 매영설이 탄성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제 겨우 한 마리를 제거한 것에 불과했다.
남은 마리는 여전히 백여 마리.
예상대로 놈들이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덩치가 워낙 커서 놈들이 동시에 움직이니 그야말로 거대한 장벽이 다가오는 것 같았다.
“모두 내 뒤에 서시오!”
백엽이 소리치자, 성녀, 생사신의, 매영설이 급히 그의 뒤로 숨었다.
백엽이 내공을 끌어올려 청룡주에 실었다.
내상을 입은 관계로 그야말로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의 양이었다.
‘확률은 반반이다. 이번에 실패하면 진 속에 영원히 갇힐 가능성이 크다.’
백엽이 청룡주를 앞으로 내밀었다.
청룡주에서 나온 붉은 광채가 동심원 모양으로 확대되며 다가오고 있던 두더지들을 그대로 덮쳤다.
콰콰콰쾅.
엄청난 폭음이 벌판 전체를 채웠다.
눈이 부실 정도의 붉은 광채에 백엽 일행은 잠시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들리는 괴성들.
백여 마리 두더지들의 절규였다.
환영에 불과하지만 너무나도 처절했다.
이윽고 눈을 떴을 때 그들이 본 광경은 실로 놀라웠다.
두더지들이 모두 소멸하고, 그 자리에 철상자 하나만 놓여 있었다.
백엽이 한숨을 돌린 후 천천히 걸어갔다.
무리하는 바람에 다리가 후들거렸으나 분명히 승자의 걸음걸이였다.
백엽이 철상자를 들고 그 뚜껑을 열었다.
열쇠.
기이한 재질로 인해 은은한 금빛이 흐르는 열쇠 하나가 상자 안에 들어있었다.
백엽이 열쇠를 꺼내 손에 쥔 바로 그 순간.
운무와 함께 주위 경관이 다시 달라지기 시작했다.
스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