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64
“으으······.”
“사부님. 정신이 드세요?”
“설아. 성녀. 신의. 내가 얼마나 정신을 잃고 있었소?”
“······.”
백엽의 물음에 세 사람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백엽이 의아하게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불새에 의해 숲이 상당 부분 타 버렸지만, 여전히 보존된 부분이 대부분이었다.
백엽 일행이 있는 곳은 화염으로부터 보존된 부분으로, 일부러 자리를 옮긴 것 같았다.
“철상자는?”
“저기 있어요.”
매영설이 바위 옆에 놓여있는 철상자 하나를 가리켰다.
이전 관문에 있었던 상자보다 좀 더 길쭉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상자를 열어보지 않았느냐?”
“열리지 않는 상자예요. 사부님이 깨어나시기만 기다렸어요.”
“사실대로 말해라. 내가 얼마나 정신을 잃고 있었느냐?”
백엽이 안색을 굳히며 물었다.
철상자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문득 불새를 제거한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놀라지 마세요. 석 달이 지났어요. 이번 관문에서만요.”
“석 달?”
백엽이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성녀와 생사신의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사실인 것 같았다.
“아!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다니.”
백엽이 탄식했다.
이전 관문에서 보낸 시간까지 합하면 백일이 넘기 때문에 그동안 악양 무림의 판도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최대한 빨리 이곳을 나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휴우!”
백엽이 심호흡한 후 몸 상태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사실 극마의 경지에 오르게 되면 자체 회복의 기능이 있었다. 그 때문에 내상 회복의 가능성 또한 컸다.
하기야 마지막에 불새에게 당한 타격은 매우 심각했었다.
그나마 미세하게 남아있던 호신강기로 몸에 불이 붙는 것을 막을 수 있었지만, 내부 장기가 크게 흔들리고 말았던 것이다.
다만 천마조의 출현과 불새의 죽음으로 기뻐서 좀 더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관문 돌파가 성공하자 긴장이 풀려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도 무려 석 달이나 지났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게 사실이었다.
백엽은 가부좌하고 천천히 운공을 시작했다.
천마신공으로 일주천을 시도한 것이다.
불새 공격을 당하기 전에도 사흘간 조심스럽게 회복운공을 해 약간의 성과를 거둔 바 있었다.
이제 몸이 회복되었다면 완전한 운공도 가능할 터.
하지만 이내 백엽은 운공을 중단해야 했다.
“왜 그러세요?”
매영설의 물음에 백엽이 쓴웃음을 지었다.
“내상이 고착화 되었다. 자체 회복력과 청룡주의 도움으로 주화입마는 면했지만, 이제는 천마신공 역시 운기할 수 없게 되었다.”
“아!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사부님 내상은 이제 영원히 고칠 수 없는 건가요?”
“그럴 수도 있겠지. 신의가 한번 봐주시겠소?”
“네.”
생사신의가 백엽의 맥을 짚었다.
매일 진맥을 했지만 이렇게 깨어난 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어떻소?”
“으음······.”
생사신의가 안색을 굳혔다.
쉽게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아 상태가 심각한 것 같았다.
“말씀해보시오. 정확한 상태를 알아야 대책을 세울 수 있지 않겠소?”
“불새 공격이 치명적이었습니다. 청룡주와 자체 회복력으로 주화입마는 면했으나, 내상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아마도 한시진 안에 그 팔대무공에 걸맞는 심법을 연마하지 않으면······.”
생사신의가 침통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백엽이 담담히 물었다.
“심법을 연마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단 말이오?”
“그건 아닙니다. 다만 다시는 내공을 연마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단전이 더는 불균형을 이겨내지 못하고 파괴되면······.”
“무공이 폐쇄된다는 이야기로군. 주화입마는 면했는데 무공 폐쇄라.”
“아직 확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청룡주도 여전히 갖고 계시니 다른 결과도 있을 수 있습니다.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고맙소. 하지만 사실 내 생각도 신의와 다르지 않소. 이제 남은 것은 심법의 창안인 것 같소. 그것도 한시진 이내에.”
백엽이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무림인에게 있어 내공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내공이 없으면 절대 고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무형검의 경지에 도달하면 그 내공 유무도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되나, 그렇다고 아예 내공이 없는 것과는 달랐다.
무형검의 경지에서도 기본 내공은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백엽의 경우는 억울한 면이 있었다.
애초에 팔대무공 중 하나인 무명신장을 펼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었다.
“모두가 내 탓이오. 그나마 한시진이란 시간이 주어졌으니,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소. 그 전에 철상자부터 한번 살펴보겠소.”
백엽이 담담한 표정으로 철상자를 향해 걸어갔다.
그나마 기본 체력은 회복되었는지 이전처럼 다리가 후들거리지는 않았다.
철상자는 매영설의 말대로 열리지 않았다.
뚜껑도 없어 상자 전체가 일체로 되어 있었다. 상자의 재질 역시 보통 철이 아니었다.
“만년한철도 이보다 단단하지는 않을 것 같군. 성녀와 신의 두 분도 시험해보았소?”
“네. 내공을 극도로 끌어올려 봤지만 끄떡도 없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성력으로도 열 수 없었어요.”
“사부님. 혹시 그 비수로 시험해보는 건 어떨까요?”
매영설의 말에 백엽이 소맷속에 넣어두었던 비수를 꺼냈다.
바로 목책을 뚫어 통로를 냈던 그 비수였다.
하지만 비수 역시 상자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혹시 몰라 성녀와 생사신의에게 비수를 빌려줘 시험해봤지만 마찬가지였다.
“비수가 날카롭지가 않아서가 아니라 철상자 재질과 상극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내공을 실어도 힘의 집중이 어렵습니다.”
생사신의가 비수를 돌려주며 말했다.
“알겠소. 석 달간이나 실패한 것을 단숨에 될 수는 없겠지. 일단 상자를 여는 것은 유보하고 심법 창안에 매진해야겠소. 이제 정말 시간이 없는 것 같으니까.”
“네.”
성녀와 생사신의, 매영설이 굳은 안색으로 물러나 호법을 서기 시작했다.
심법 창안은 운기조식처럼 고도의 집중을 필요로 하므로 혹시 모를 외부의 방해를 방지하려는 것이다.
백엽은 가부좌하고 눈을 감았다.
다시 묵상하려는 것이다.
‘이제 믿을 것은 깨달음뿐이다. 마음을 비우면 반드시 길이 열릴 것이다.’
* * *
내공을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것.
무공 폐쇄라고도 할 수 있는 사태를 맞이하게 될 백엽의 마음은 의외로 평온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한시진.
하지만 금세 그 반인 반시진이 지나버렸다.
심법의 창안은 조금도 진척이 없었다.
백엽은 심법 창안에 대한 조바심을 버리고 최근 몇 달간의 삶을 돌이켜봤다.
특히 미혼진에 들어오기 전 가족과의 만남이 그 주요 대상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가족을 찾게 되었지만 아직 그 진정한 행복을 누리지는 못한 게 사실이었다.
가장 큰 이유는 천혈방을 비롯한 흑도들의 악양 무림 공격이었다.
그래서 지존회란 조직도 만들어가면서 동분서주했고 급기야 이렇게 미혼진까지 발동시키게 된 것이었다.
‘지금 무공 폐쇄가 문제가 아니다. 무공 폐쇄가 되면 이곳에서 영원히 빠져나가지 못할 공산이 크다. 그렇게 되면 부모님과 동생들을 더는 볼 수 없게 되겠지.’
백엽이 가족들을 떠올렸다.
특히 어머니 장씨부인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지난 삼십 년 동안 아들을 만날 날만 기다리다가 화병까지 얻었던 그녀를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아렸다.
백엽이 자신도 모르게 목에 걸고 있던 옥패를 꺼냈다.
모자옥패였다.
모옥패와 자옥패가 하나로 합쳐진 옥패.
옥패를 보면 어머니 얼굴이 더 또렷해질까 해서 꺼내 본 것이었다.
한데 내공을 거의 사용하지 못해서인지 옥패 표면에 새겨진 문양이 잘 보이지 않았다.
백엽이 쓴웃음을 지으며 옥패를 눈앞에 갖다 댔다.
바로 그때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하고 눈을 빛냈다.
옥패에 가느다란 금이 가 있었던 것.
그제야 백엽은 옥패가 불새의 불덩이 공격에 따른 충격을 완화해준 사실을 깨달았다.
옥패의 재질은 비범했고 이 또한 청룡주처럼 보호 기능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불덩이 공격이 워낙 강해 금이 가고 만 것이었다.
백엽이 안타까운 마음에 금이 간 부분을 매만졌다.
복구 기능이 탁월한 성녀에게 나중에 부탁해 원상회복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한 바로 그때.
옥패의 갈라진 틈 사이로 뭔가가 걸렸다.
무슨 천 같은 것이었는데 그 끝을 잡고 뽑아보니 매미 날개보다 얇은 양피지 하나가 나왔다.
‘이게 뭐지?’
백엽이 의아해하며 양피지를 펼쳐봤다.
한눈에 봐도 심오한 법문이 가득했다.
백엽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첫 줄에 적혀 있는 제목이었다.
백엽이 제목 아래를 보니 자신이 익혔던 팔대무공 명칭이 적혀 있었다.
“아! 어찌 이런 일이!”
백엽이 탄성과 함께 법문을 읽어내려갔다.
그 결과 그가 바란 대로 팔대무공의 근본이 되는 심법이 맞았다.
무엇보다 그 심법의 원리가 팔대무공과 정확하게 연결되었다.
‘어머님께서 모자옥패를 동방에서 온 상인에게서 샀다고 하셨지. 무명비급을 저술하신 무명노승도 동방 분이었으니 그렇게 연결이 되는구나. 옥패에 비밀이 있고 그 비밀을 풀게 되면 큰 힘을 얻게 된다고 하셨는데, 그 힘이 바로 이 무명심법 같군. 대충 읽어봤지만 바로 무형검의 토대가 되는 심법이 확실하다.’
백엽이 눈을 빛내며 무명심법 구결을 암기하기 시작했다.
천마속독술을 익혀 독파와 동시에 이해가 되는 그였지만 워낙 심오해 세 번이나 읽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백엽은 서두르지 않았다.
미약하게라도 무명십법의 운공을 일주천만 하면 무공 폐쇄는 면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갈증이 난 목에 한 모금 물을 넣어주는 것으로, 이후부터는 회복만이 남는 것과 비슷했다.
백엽이 차분한 마음으로 무명심법을 운공했다.
얼마 후 일주천에 성공한 그가 미소를 지었다.
그야말로 무공 폐쇄 직전에 화를 면했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무명심법은 총 구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지금 백엽이 도달한 것은 가장 기초적인 일층이었다.
백엽이 무엇보다 기뻐한 것은 바로 천마진기의 회복이었다.
무명심법의 부재가 천마신공까지 얽어매고 있었기에 그 의미가 매우 컸다.
다시 말해 천마진기를 이전 수준까지 완전히 회복할 수 있었다.
이전 내공의 회복 역시 시급했었는데 그것이 해결된 것이다.
‘천마신공과 무명심법은 서로 충돌하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서로 보완 작용을 할 것이다. 다만 두 심법 중 더욱더 기본이 되는 것은 이제 무명심법이 될 것 같구나.’
백엽이 가부좌를 풀고 천천히 일어섰다.
성녀와 생사신의, 매영설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시한부 같았던 한시진이 모두 지났기 때문에 다들 그 결과가 궁금한 것 같았다.
백엽이 담담히 말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좋소. 운이 좋아 무공 폐쇄를 피할 수 있었소.”
“아! 그럼 심법을 창안하신 겁니까?”
“창안이 아니라 발견했소. 무명심법이라는 것인데, 다음에 자세히 말해주겠소.”
“아! 경하드립니다.”
“축하드려요. 사부님.”
“하늘이 도왔군요.”
생사신의, 매영설, 성녀가 매우 기뻐했다.
백엽이 말했다.
“이제 철상자만 열면 될 것 같소. 아까 조금 생각해봤는데, 혹시 이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소.”
백엽이 품속에서 열쇠 하나를 꺼냈다.
바로 첫 번째 관문에서 얻은 것이었다.
“아! 하지만 상자에 열쇠 구멍이 없는데요?”
매영설의 말에 백엽이 미소를 지었다.
“진정한 열쇠는 구멍이 필요 없는 법이지.”
백엽이 열쇠를 들고 철상자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