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7
악완의 치료까지 마친 백엽이 배정된 객방에 들어간 것은 삼경 무렵이었다.
선천진기 치료에 이어 악완의 해독 치료까지 바쁘고 힘든 하루였다.
그나마 영웅보 측의 배려로 객당에서 가장 좋은 귀빈실을 배정받을 수 있었다.
“푹 쉬세요.”
악완의 치료까지 기다려줬던 백여옥이 직접 방으로 안내한 후 돌아갔다.
백엽이 그녀를 향해 흐뭇한 미소를 지은 것은 물론이었다.
언니인 백여희와 두 살 차이라고 하지만 왠지 백여옥을 대하는 것이 편한 그였다.
‘막내라서 그런지 하는 행동이 다 귀여워 보이는군.’
친근감 있게 웃던 백여옥의 얼굴이 떠올랐다.
당돌하게도 그녀는 백엽에게 대뜸 무공을 가르쳐 달라고 졸라댔었다.
어차피 한 달은 영웅보에 머물러야 하니 간단한 무공이라도 가르쳐달라는 부탁이었다.
백엽은 대답 대신 담담한 미소만 지었을 뿐이었다.
백여옥이 실망하며 돌아갔지만, 백엽은 벌써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었다.
‘내가 언제까지 이곳에 머무를 수는 없으니 한 사람이라도 무공이 높아지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무공이란 단번에 높아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지금 배워서 천혈방과의 싸움에서 도움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
침상 위에서 가부좌하고 운기조식을 하며 백엽이 오늘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위기의 순간도 있었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큰 수확은 가족을 만났다는 것이었다.
부모님과 두 여동생.
단출하긴 하지만 생전 처음 느껴본 감정들이었다.
아쉬운 점은 아직 모친과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어머님의 병은 아마도 마음의 병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생사신의라면 치료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서둘러 전서구를 보내야겠군. 하루 사이로 운명이 갈라질 수 있으니까.’
백엽이 빠르게 일주천을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창밖은 깜깜했다.
백엽이 우수를 들자 창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가 묵고 있던 방은 5층으로 맨 꼭대기였다.
백엽이 창밖으로 날아간 것은 순식간이었다.
휙휙.
한 마리 새처럼 밤하늘을 날아가는 그.
너무 빨라 그림차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천마무영비(天魔無影飛)라는 경공술이었다.
이 천마무영비는 천마부동심을 기초로 해서 펼칠 수 있는 것으로 제1대 천마 이후 백엽이 처음으로 터득한 바 있었다.
오랜만에 밤하늘을 날아가는 백엽은 야경을 감상하며 눈을 빛냈다.
‘그러고 보니 이곳 악양이 내 고향이구나. 그것을 지금까지 생각을 못 했다. 고향이라······.’
인근 야산으로 날아가는 그가 감회어린 표정을 지었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그야말로 지옥 같은 수련을 했던 그였다.
천여 명의 살수 후보 중 살아남은 사람은 백엽이 유일했다.
경쟁에서 뒤처진 자는 어김없이 죽임을 당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야 했다.
인간은 극도로 긴장된 순간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천마신교 살수 훈련은 그러한 의도된 분위기를 조성했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살수 후보들은 영약 등 보상을 받았고, 그들은 점점 강해졌다.
하지만 당시 천마신교주가 원한 것은 단 한 명의 천하제일살수였다.
자신을 대신해 무림맹의 어떤 고수라도 쉽게 살해할 수 있는 특급살수.
그것은 중원 무림 제패를 위해 꼭 필요한 비장의 무기였다.
그렇게 이십 년간의 훈련이 끝나고 백엽은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태어나자마자 온갖 약물에 담겨 신체를 단련시켰기 때문에 인생 자체가 훈련이었다.
특급살수가 된 후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바로 당시 천마신교주를 만나는 일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교주가 내리는 술을 마셔야 했다.
교주와 부교주, 총군사, 장로 등 교의 지휘부 고수 백여 명이 보는 앞에서 성스러운 술, 즉 천마주(天魔酒)를 마셔야 했다.
백엽은 그 천마주가 치명적인 독으로 마시게 되면 평생 교주의 충복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거리낌 없이 마실 생각이었다.
이미 충성을 강요하는 고독이 들어간 음식과 물을 이십 년간이나 먹고 있어 도리가 없었다.
살수 교관들은 굳이 그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살수 후보들이 모두 납치되어 왔기 때문에 힘을 갖게 된 후 탈출할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출생기록 조작을 통해 정파 무림에 대한 복수심을 끝없이 주입했다. 그것만으로 안심하지 못해 고독을 몸에 넣어 교를 배반할 시 언제든 죽일 수 있게 해두었다.
하지만 고독의 경우 무공이 초절정에 이르면 내공으로 태워 없앨 수 있는 게 문제였다.
당시 백엽은 초절정 직전에 도달해 있었다.
매일 몸 상태를 점검받았기 때문에 교주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파 무림의 고수들을 손쉽게 제거하려면 확실한 초절정 고수가 되어야 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천마주였다.
천마주의 재료는 공청석유로 거기에다가 제1대 천마가 직접 제조한 독약이 배합되어 있었다.
그래서 천마주를 복용하게 되면 그 술을 준 자와 심령적으로 연결되어 평생 복종해야 했다.
만약 배신하면 그 마음만으로 온몸이 타들어 가 죽고 만다.
심령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술을 준 사람이 죽기 전까지는 그 올가미를 벗어날 수 없었다.
거부하면 아직 고독을 스스로 제거할 능력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죽임을 당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교주를 만나기 전날 밤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겨났다.
이십 년간 거처로 사용했던 동굴을 마지막으로 살펴보던 때였다.
천마주를 마시게 되면 강호에 나가 살수행을 해야 했기에 이제 그 동굴을 떠나야 했다.
정든 곳이었다. 혹시 빠트린 소지품이 없나 해서 샅샅이 살펴본 그는 동굴에 비밀석실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의 무공이 초절정에 근접하지 않았다면 절대 발견할 수 없는 곳이었다.
비밀석실 안에 들어간 그는 뜻밖의 비급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천마신교를 창시한 제1대 천마가 죽기 직전 남긴 비급이었다.
비급의 이름은 천마대장경(天魔大藏經).
역대 교주들이 익힌 천마의 무공들이 모두 수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죽기 직전 깨달은 심득으로 창안한 무공들이 추가되어 있었다.
특히 극마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비결이라 할 수 있는 천마부동심에 대한 상세한 주석이 인상적이었다.
백엽이 주목한 것은 바로 천마대장경 부록에 수록된 천마주에 관한 내용이었다.
제조방법은 차치하고 그 특징이 백엽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것이었다.
절대복종하는 수하를 만들려면, 그 전에 천마주에 자신의 피를 섞어야 했다.
피가 섞인 천마주를 마신 자는 피의 주인에게 심령적으로 종속되어 평생 충성을 바쳐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위험부담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천마주를 마신 자가 그 안에 든 특수독을 해소하면 오히려 당하는 쪽은 피의 주인이 된다는 점이었다.
일시적으로 공력의 절반을 잃게 되는데, 그 정도라면 백엽에게 승산이 있었다.
게다가 천마주를 마시게 되면 공청석유 성분으로 인해 공력이 급격히 증가하여 몸속에 들어있는 고독을 곧바로 태워 없앨 수 있었다.
백엽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사실 그는 자신을 납치해온 최종 책임자라 할 수 있는 교주에 대한 반감이 무척 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족쇄 때문에 그의 충복이 되려 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유일한 길이었다.
하지만 누가 한평생 남의 노예가 되어 사람을 죽이고 싶겠는가.
상황이 달라지자 백엽은 고민했고 결국 모험을 택했다.
백엽은 천마주의 독을 해독하는 방법을 터득한 후 다음날 교주를 만나러 갔다.
이미 교주 외에 백엽보다 뛰어난 무공을 지닌 자가 교내에 없다는 것이 객관적인 평가였다.
하지만 고독에 중독된 터라 여차하면 손쉽게 제거할 수 있었다.
고독을 발동시키는 방법은 교주는 물론이고 교관들과 일부 장로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백엽을 경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막강한 공력을 얻을 수 있는 천마주를 마시는 것을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놀랍게도 그날 백엽을 처음 보게 된 교주는 축하를 해주며 천마주를 하사했다.
이미 자신의 피를 섞어 주술이 걸려 있는 상태였다.
백엽은 단숨에 마셨다.
곧바로 반응이 왔다.
원래대로라면 동공이 풀리며 석 달간 실혼인(失魂人)으로 살아야 했다.
석 달이 지나면 새로운 영혼이 들어오는데 이지를 상실한 충성스러운 살인 기계가 되어 있을 것이었다.
천마대장경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절대 알 수 없었을 내용이었다.
천마주의 독을 해소한 백엽은 초절정 수준으로 증가한 공력으로 몸속의 고독까지 해소했다.
거의 동시였다.
일이 잘못된 것을 알게 된 교주가 흠칫했으나 이미 공력의 절반을 잃은 상태였다.
일시적이긴 하나 그것은 치명적이었다.
백엽은 곧바로 교주를 향해 날아갔고 검으로 그의 심장을 찔렀다.
교주가 비명과 함께 도주한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실수였다.
힘을 숭상하는 천마신교의 분위기상 패배하고 도주한 교주를 지지할 고수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물론 교주에게 충성했던 상당수의 고수가 백엽을 공격했다.
그 결과는 처참했다.
서른 명 가까운 고수들이 백엽에게 당해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절대적인 무위에 놀란 몇몇 장로들이 그를 교주로 옹립하자, 대세는 백엽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그날은 백엽이 천마신교주가 된 날로, 무림에서는 이날을 ‘마교 살수의 변’이라 부르기도 했다.
당시 도주했던 교주의 행방은 아직도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십 년이나 지났기에 당시 은신했다가 결국 죽었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한편 뒤늦게 소식을 듣게 된 무림맹 측은 이를 반겼다.
숙청된 천마신교 세력이 대부분 강경파로 정파 무림인들을 대거 학살한 자들이기 때문이었다.
죄 없는 양민들도 많이 희생당했기 때문에 원성이 자자했었다.
교주가 된 백엽은 전격적으로 체제 정비에 들어가는 한편 무공 수련에 매진했다.
천마대장경 외에도 교주비고에는 역대 교주들의 무공과 그동안 획득한 정파 무공 등 수만 가지가 넘는 무공이 있었다.
백엽은 그 모든 무공을 섭렵했다.
그렇게 십 년이 지난 후 비로소 극마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그동안 천마신교는 백엽의 명에 따라 무림맹과의 충돌을 최소화하고 힘을 비축하는 데 주력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당당하게 무림맹에 선전포고까지 한 백엽이 출정식 전날에 전격적으로 공격계획 유보를 지시한 것이니, 무림맹 측에서 의심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백엽이 경공을 펼치면서 이러한 과거의 일들을 빠르게 회상했다.
문제는 앞으로의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 정리되지 못한 마음이었다.
‘일단은 어머님부터 치료하는 게 급선무다.’
휘우웅.
어느새 거센 바람이 부는 야산 한 봉우리 위에 올라선 백엽이 품속에서 피리 하나를 꺼냈다.
삘리리리.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상당히 멀리까지 퍼져가는 음률.
천마대장경에 수록된 음공으로 천마음(天魔音)이라고 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달빛 속을 헤치고 멀리서 한 마리 새가 빠르게 날아왔다.
온몸이 붉은 털로 덮인 독수리 크기의 새.
백엽이 그 새를 보고 미소지었다.
“천마조(天魔鳥)! 네 녀석이 멀리 가지 않았었구나. 전달할 것이 있다.”
백엽이 양피지를 꺼내 내용을 적은 후 천마조의 발에 묶었다.
“성녀에게 전달하면 알아서 처리할 것이다.”
끼루룩.
백엽의 말을 알아들은 것인가.
천마조가 고개를 한번 끄덕인 후 남쪽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바로 십만대산이 있는 방향이었다.
‘천마조 저 녀석의 금제가 풀려 원래 크기를 회복하면 등에 타고 단번에 총단에 갔다 올 수 있었을 텐데······.’
백엽이 아쉬워할 때.
스스슷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모두 열 개의 그림자.
복면을 쓴 자들이었다.
그들은 백엽 앞에 도착한 후 일제히 오체투지를 하며 고개를 조아렸다.
“교주님을 뵙습니다!”
“교주님을 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