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go home RAW novel - Chapter 99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백엽은 어느 순간부터 시간의 흐름도 잊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곳이 동굴 안이라는 사실 역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다만 동굴에 가득한 금빛 기운을 몸으로 흡수하고 있었는데, 이는 지존환의 작용 덕분이었다.
금빛 기운이 점점 압력으로 작용해 앞으로 나아가는데 장애가 되자 지존환이 그 기운을 흡수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백엽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그 기운은 내공도 아니고 뭔가 신비스러운 힘 같은 것이었다.
이렇게 되자 지금 백엽은 마치 운기조식을 취하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정화되고 있었다.
우주의 기운을 몸속으로 받아들여 대자연과 하나가 된다고나 할까.
그런 과정에서 백엽은 무수히 많은 생각을 했다.
기뻤던 일과 슬펐던 일, 그리고 분노했던 일.
그 모든 일이 마치 주마등처럼 머리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백엽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대자연 앞에 그 모든 감정은 모두 하나가 아닐까. 번뇌도 행복도 모두 생각하기 나름인 것을. 결국 모두 사라지는 것을. 무엇을 기뻐하고 슬퍼한단 말인가.’
평소 무공 연마를 통해 깨달았던 생사불이(生死不二)의 가르침을 몸소 체득하고 있다고나 할까.
의식과 무의식이 교차하는 그런 마음속에 기존의 깨달음이 더욱더 견고해지고 있었다.
‘생과 사가 둥근 수레바퀴처럼 시작과 끝을 잇게 되니 모든 것이 일체가 된다.’
깊은 깨달음 속에 그의 무공 역시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었다.
바로 그토록 고대하던 무형검의 경지에 들어서고 있었다.
특히 이번에는 이전처럼 잠시 맛만 보는 정도가 아니었다.
완벽하게 그 초입에 들어섰다고 할까.
백엽은 무척 기뻤지만 그렇다고 흥분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히 자신을 바라볼 뿐이었다.
관조(觀照).
조용한 마음으로 본질을 보자 비로소 진면목(眞面目)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 속에 거대한 힘이 간직되어 있다. 그것을 깨닫게 되면 비로소 무형검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백엽이 더는 벅찬 감격을 자제하기 어려워 잠시 눈을 감았다.
얼마 후 눈을 떴을 때 주위 환경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아! 이곳이 어디지?”
백엽이 의아해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도 그럴 것이 주위는 기이한 꽃과 나무로 가득했다.
마치 무릉도원이라고나 할까.
이름 모를 새가 날고 있고 짐승의 울음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나무 위로 올라가서 살펴보니 수없이 많은 봉우리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동서남북 사방이 다 그러했다.
거대한 산맥의 한 가운데 들어온 느낌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끝없이 펼쳐진 숲과 계곡이라니.
‘마치 다른 차원의 세계에 온 것 같구나. 환영진 안에 들어온 느낌이다. 그렇다면 혹시 이곳이 신선계?’
백엽이 눈을 빛내며 주위를 다시 한번 살폈다.
하지만 아직 새들과 짐승 울음소리 외에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백엽은 신비한 계곡 안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길을 따라 전진하기 시작했다.
이곳이 어디든 나아가다 보면 알게 될 것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나아갔을까.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본 그가 뭔가를 발견하고 매우 놀랐다.
구름 조각들이 유유히 허공에 떠다니고 있었는데, 그 위에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구름에 앉아 있는 사람도 있고 서 있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이 구름을 타고 날아간다는 것을 상상만 했지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라 백엽이 놀란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신선들인가? 아니지. 이곳이 환영진 안이라면 가능한 일이다. 침착하자.’
백엽이 계속 구름을 쳐다봤다.
구름 위에 있던 사람들 역시 백엽을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백엽을 발견하고도 그냥 무심히 지나갈 뿐이었다.
백엽은 당황했으나 이내 오히려 어떤 안도감을 느꼈다.
‘나를 자신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으로 생각하는구나. 이곳이 신선계라면 나를 같은 반선으로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이곳에 있는 반선들의 수가 내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는 이야기가 된다. 으음, 일단 나 역시 반선으로 행세하는 수밖에 없겠군. 침착하자. 이번에 기연을 얻어 꿈에도 그리던 무형검의 경지에 올랐으니 설사 반선들과 격돌하더라도 쉽게 패하지는 않을 것이다.’
백엽이 심호흡을 한번 한 후 계속해서 걸어갔다.
그렇게 얼마 더 가자 계곡에서 벗어나 제법 평탄한 길이 나타났다.
여전히 산길이었지만 많은 사람이 다니는 듯 길이 다져져 있었다.
‘일단 누구라도 만나서 이야기를 해봐야 할 텐데······.’
백엽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
길옆 바위 위에 한 노인이 눈을 감고 가부좌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흰 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온 전형적인 신선의 모습이었다.
백엽이 용기를 내서 그에게 다가갔다.
“저, 어르신.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무슨 일이오?”
노인이 눈을 뜨고 물었다.
놀라거나 귀찮아하는 표정 없이 다소 무심한 표정이었다.
“여기가 어딥니까?”
“길을 잃었소? 이곳은 조화봉(調和峰)아래요.”
노인이 가장 가까이 솟아나 있는 봉우리를 가리켰다.
‘이곳은 봉우리 이름으로 지명을 정하는가? 내게 적대적이지 않으니 좀 더 적극적으로 물어보자.’
백엽이 눈을 빛내며 다시 물었다.
“그렇군요. 한데 이곳 전체가 혹시 신선계라 불리는 곳입니까?”
“그렇소. 혹시 수련 중 심마를 얻어 기억에 문제가 생긴 것이오? 심처에서 홀로 수련하는 은둔반선(隱遁半仙) 같은데 상태가 심해 보이는구려.”
노인이 백엽의 아래위를 쳐다봤다.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백엽의 모습이 조금 마음에 걸리는지 그가 말했다.
“동안공을 익힌 것 같은데, 반로환동한 것이 아니라면 원래 나이에 맞는 얼굴로 다니는 게 좋을 것이오. 하기야 요즘 반선들은 젊은 얼굴로 역용하는 경우도 많긴 하지만 심마에 들었다면 그런 사소한 것도 다 장애가 된다오.”
“아, 제가 그럼 심마에 든 겁니까?”
“내가 보기에 그런 것 같소.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신선계를 가득 채운 신선지기(神仙之氣)를 흡수하게 되면 머지않아 제정신이 돌아올 것이오. 아무래도 우화등선(羽化登仙)을 욕심내어 다소 무리한 것 같은데, 신선주(神仙酒)를 마시면 좀 더 빨리 머리가 맑아질 것이오.”
노인이 허리에 달고 있던 호리병을 꺼냈다.
품속에 있던 술잔도 하나 꺼냈는데 거기에 술을 따라 백엽에게 건넸다.
“천년 묵은 신선주요. 한잔하시오.”
“감사합니다.”
백엽이 잔을 받아 단숨에 마셨다.
원래 기억을 잃은 적이 없어 신선주라는 것을 마셔도 효과가 없을 것을 알지만, 눈앞의 노인에게 물어볼 게 많아 의심하지 않고 마신 것이다.
한데 신선주를 마신 직후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
술기운이 독했기 때문인지 갑자기 머리가 핑 돌며 백엽이 정신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백엽이 아차 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노인이 백엽을 안고 오른손을 들자 구름 한 조각이 땅으로 내려왔다.
노인이 백엽을 안은 채로 구름에 올랐다.
“가자. 신선봉(神仙峰)으로.”
구름이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다시 허공에 떠오른 구름이 두 사람을 태운 채 어디론 가로 날아갔다.
* * *
“으으······.”
백엽이 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름 모를 동굴 안이었다.
나무로 된 침상에 누워있던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동굴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신선계에 들어오자마자 그 노인에게 신선주를 얻어 마시고 정신을 잃었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걸까?’
백엽이 급히 자신의 몸 상태를 살폈다.
몸에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다만 이것이 신선계에 들어오면서 무형검의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신선주를 마셨기 때문인지는 알기 어려웠다.
‘중독된 게 아니었나? 하기야 내 몸은 만독불침에 가까우니 중독이 될 리가 없지. 하지만 너무 방심했던 것 같다.’
백엽이 신선주를 마시고 쓰러졌을 당시를 떠올렸다.
사실 예의 노인이 신선주를 건넬 때 이상함을 느끼긴 했었다.
하지만 독에 강한 신체에다가 고대하던 무형검의 경지에 오른 직후라 자신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신선계에 관해 물어볼 게 많아 과감하게 마셨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으니, 노인이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컸다.
‘그래. 이곳은 강호가 아니라 신선계다. 내 비록 무형검의 경지에 올랐다고 하나 여전히 초보에 불과하다. 무형검 총 27단계 중 고작 1단계인 상선(上仙)에 겨우 올랐으니 마지막 단계인 지성(至聖)에 도달하려면 그야말로 까마득하다고 할 수 있지.’
백엽이 마음을 가다듬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 순간.
예의 노인이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허허. 깨어났는가?”
“아, 어르신. 어떻게 된 겁니까?”
“미안하네. 많이 놀랐는가?”
“네. 꼼짝없이 당한 줄 알았습니다.”
“독에 당한 것으로 생각했겠군.”
“네. 사실 독에 강한 몸이라 조금 방심을 했던 것 같습니다.”
“허허. 아닐세. 자네 몸이 만독불침인 것은 맞네.”
“그럼 그 신선주는?”
“자네 생각대로네. 신선주는 독이 아니네. 오히려 절세영약이라 할 수 있지. 다시 한번 미안하게 생각하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자네가 먹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그랬네.”
“아닙니다. 모든 게 제 불찰이지요. 오히려 영약이라서 그런지 몸이 이전보다 더 좋아진 것 같습니다. 다만 뭐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른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 앞으로 알 수가 있으니까. 궁금한 것이 있으면 말해보게. 그보다 먼저 자네가 이곳 신선계로 들어온 과정을 말해보게.”
“저에 대해서 조금도 모르십니까?”
“그러하네. 강호 무림에서 넘어왔다는 것만 예지력을 통해 알고 있을 뿐이네. 다만 오래전부터 자네 같은 무림인을 기다렸던 것은 사실이네. 마침 때가 되어 자네가 왔고 오래된 약속에 따라 신선주를 먹인 것이네. 아참, 나는 평등반선(平等半仙)이라고 하네.”
“아, 네. 저는 백엽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된 이상 숨김없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야 저도 궁금증을 풀 수 있으니까요.”
백엽이 한숨을 돌린 후 지금까지의 과정을 간단히 설명했다.
주로 반선들과 관련된 것 위주였는데 자신이 천마신교 교주라는 사실과 어릴 때 납치된 것까지 숨김없이 말했다.
평등반선의 예지력이 워낙 뛰어나 보여 숨긴다고 숨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밖에 워낙 다른 차원의 세계라 자신이 천마라는 사실을 밝혀도 놀랄 것 같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작용했다.
예상대로 평등반선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랬군. 사실 천안통(天眼通)을 통해 어느 정도 자네에 대한 것을 간파하고 있었네. 신선주를 마셔 정신을 잃게 한 또 다른 이유기도 하지. 미안하네. 나로서는 점검이 필요했네. 워낙 중요한 안배라 어쩔 수 없었네.”
“아닙니다. 불필요한 오해를 피할 수 있었으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네. 그럼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기억하게. 결론적으로 말해 자네는 천년 전 신마대전때 이미 안배된 사람이네. 아마도 자네는 우리 백반선(白半仙)들을 대표해 흑반선(黑半仙)들을 상대해야 할 걸세. 우리는 상고밀약(上古密約)에 의해 자네가 활동하고 있는 무림으로 갈 수가 없어서 말이야.”
“아,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찬찬히 설명해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평등반선이 미소를 지은 후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신선계의 유래와 특징, 그리고 백반선과 흑반선의 대립까지.
백엽은 경청했다.
그러면서 중간에 몇 번이나 놀랐다.
특히 흑반선들의 움직임이 너무나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마음의 부담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