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
프롤로그
오전 11시 12분.
원래라면 일을 해야 할 시간.
스물일곱의 건실한 청년, 박현수는 곰팡이가 잔뜩 슨 반지하 원룸에 누워 있었다.
냄새나는 이불과 땀 자국이 고스란히 나 있는 베개는 몇 달은 빨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박현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누가 볼 것도 아니고.
박현수는 그저 현재 상황이 답답할 뿐이었다.
“시발…… 자리 없다고 빠꾸시키는 건 너무하잖아.”
박현수는 헌터를 보조해 주는 서포터였다.
목마르다면 물을 바치고, 배고프다면 식사를 대령하고, 어깨 아프다면 주물러 줘야 하는.
말이 좋아 서포터지, 그냥 따까리였다.
간혹 악질 헌터를 만나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처맞는.
포탈에 진입할 수 있는 인간 중 피라미드 가장 아래에 속한 하층민.
그런데도 헌터로 각성하지 못한 사람들이 서포터를 하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돈을 많이 버니까.
그만큼 경쟁이 엄청났다.
박현수가 한창 일할 시간에 백수처럼 집에 드러누워 있는 이유가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항상 함께하는 헌터가 있었다.
한데 오늘은 괜찮은 사람을 구했다면서 박현수를 돌려보냈다.
불과 1시간 전의 일이었다.
“젠장. 앞으로 날 계속 안 써 주는 거 아니야?”
그럼 생활이 막막해졌다.
돈을 많이 번다고 해도 일을 못 나가면 그냥 백수였다.
“병원비…… 이번 달 병원비 며칠 안 남았는데.”
박현수는 부모가 없었다.
하지만 남동생이 하나 있었다.
남동생은 의식불명이었다.
모두 엿 같은 포탈과 몬스터의 등장 때문이었다.
대혼란의 시기는 고작 2년 전에 일어났다.
박현수는 그때 부모를 잃고, 동생은 지금까지 혼수상태에 빠져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2년째, 남동생을 살리기 위해 박현수는 개처럼 일했다.
한 달 병원비 천만 원.
말도 안 되는 액수였지만, 혼란한 세상에서 보험을 찾는 건 불가능했다.
박현수가 한 달 버는 돈은 많을 땐 천백, 적을 땐 천도 안 되었다.
상위 서포터들은 그보다 훨씬 벌지만, 박현수에겐 해당 사항 없음이다.
그마저도 지금 끊길 기세였다.
“그냥 죽을까?”
또래에 비하면 남부럽지 않을 상황이지만, 박현수에겐 답이 없는 상황.
왜 나는 헌터로 각성하지 못했을까.
신은 정말 나를 버렸나?
박현수는 한숨을 내쉬며 손으로 눈을 가렸다.
“신이 있었다면 애초에 지구가 이 꼴 나진 않았겠지.”
있더라도 인간을 싫어하는 신이 분명하리라.
박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로 다가갔다.
생수도 거의 떨어졌는데.
한숨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다 밑에서 찰박! 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아까 흘린 물이었다.
몸이 뒤로 기울어졌다.
“우와아악!”
급히 냉장고를 잡았다.
하지만 냉장고는 단칸의 작은 사이즈였고, 들어 있는 내용물은 거의 없어 무척 가벼웠다.
성인 남성의 무게를 버틸 수 있을 리 만무.
쿠당탕!
냉장고와 함께 박현수가 엎어졌다. 다행히 냉장고에 깔리는 건 면했다.
그는 엉덩이를 문지르다 곧 멍한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점점 커지는 눈과 함께 비명을 내질렀다.
“이게 뭐야아아아아!”
냉장고 자리의 벽면에 구멍이 나 있었다.
그것도 아주 큰.
* * *
십만대산 깊은 곳에 위치한 십만(十萬) 마교인들의 터전, 천마신교.
강자존(强者尊)의 논리에 따르는 그곳은 매일 싸움이 끊이지 않으며, 유혈이 낭자하는 곳이다.
그곳의 정점.
천마신교의 교주인 천마(天魔)는 강자존의 논리에 따르자면 이곳의 최강자였다.
그것도 역대 최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중원 무림은 그를 두려워해 사시사철 십만대산을 경계하고, 대부분의 새외는 마교 앞에 무릎을 꿇었다.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그가 바로 천마(天魔) 천경이었다.
그런 천경은 현재 생사가 오가는 병에 걸려 있었다.
의원들이 온갖 영약을 달여 그의 병을 치료해 보려 했으나 어떤 것도 효과를 보지 못했다.
날이 갈수록 앙상해지며, 혈색은 창백해져 갔다.
마교에서 제일 뛰어난 의술을 지닌 마선(魔仙) 유룡이 고개를 저었다.
“어려울 것 같습니다.”
“포기하겠다는 것인가!”
마교 최고 장로 권마(拳魔)가 내공을 실은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천마전이 흔들릴 정도로 대단한 기파였다.
유룡은 겁에 질렸지만, 불가능한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목숨으로 죄를 갚겠습니다.”
“빌어먹을!”
권마가 한숨을 내쉬었다.
천경은 이런 식으로 죽어선 안 된다.
만약 그의 죽음이 중원과 새외에 알려진다면 한바탕 난리가 날 것이다.
여러모로 갑갑한 미래를 앞둔 상황.
허공에 누워 있던 천경은 그들을 보며 귀를 후벼팠다.
현재 천경은 분명 시체처럼 깡마른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다.
하지만 허공에 떠 있는 것도 분명 천경이었다.
사실 천경은 두 명이었던 것인가?
당연히 아니다.
천경은 현재 유체이탈을 한 상태였다.
이유 따윈 모른다.
며칠 전에 눈을 떴더니 이런 상태가 되어 있었다.
그는 새끼손가락 끝에 붙어 있는 커다란 귓밥을 후~ 불었다.
천경이 깍지 낀 손을 베개 삼아 드러누웠다.
유체이탈을 한 이후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뭐라도 할 수 있으면 이렇게 심심하진 않을 것이다.
천마전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좀 괜찮을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이곳을 벗어날 수 없었다.
육체로 돌아가지지도 않고.
짜증이 나서 그냥 자려고 했는데, 자는 것도 불가능했다.
자는 것만 불가능한가?
먹는 것도, 싸는 것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왜 본좌는 말년에 이런 엿 같은 경험을 하는 거지?”
현재 그의 나이 백 하고도 스물일곱.
사람치곤 엄청나게 오래 살았다.
약 백여 년 전, 천경은 천마동이란 곳에서 폐관 수련을 한 적이 있었다.
대충 십 년 정도 지냈는데, 그때가 생각날 정도였다.
천경이 벌떡 일어나 바닥으로 착지했다.
처음엔 그대로 바닥을 뚫고 들어가 당황스러웠는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해내었다.
할 게 너무 없어 영혼으로 움직이는 방법을 완전히 터득한 것이다.
그는 뒷짐을 지고 자신의 육체 앞으로 걸어갔다.
고놈 참 못생겨졌다.
주변에서 심각한 얼굴을 하는 것들이 왜 저러는지 이해가 갈 정도로.
천경이 답답함에 고개를 저었다.
창가로 걸어갔다.
십만대산의 가파른 만장단애를 보며 답답함을 좀 풀 생각이었다.
그가 창가 앞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
쿠웅!
천장에서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른 녀석들은 못 들었는지, 일관성 있게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시 십만대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쿠웅!!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천경이 인상을 찌푸리며 천장 쪽으로 떠올랐다.
무슨 소린지 알아낼 작정이었다.
그 순간.
갑자기 거대한 인력이 천장에서부터 시작되어 영혼체인 그를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천경은 두 손을 말아 쥐고 내공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 했다.
천장에 엄청난 크기의 검은 구멍이 생겼다.
수백 개의 검은 촉수가 그의 몸을 옭아맸다.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했지만 영혼체 상태론 저항하는 게 불가능했다.
빌어먹을!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천경은 자신의 육체를 보았다.
손을 뻗었다.
당연히 닿을 리 없었다.
그렇게 천경의 영혼은 검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누구세요?”
[……너는 누군데?]천경은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젊은 남자를 보았다.
박현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