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0
훈수 두는 천마님 9편
대기실엔 두 여자가 허탈한 얼굴로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이민아와 하유락이었다.
그들은 불과 10분 전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헛웃음을 흘렸다.
“애송이가 제법 당돌하네.”
“동감이에요.”
이민아가 앞에 놓인 계약서를 보았다.
사인 되어 있지 않은 빈 계약서.
레드 라이온 길드 가입 계약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계약서가 아무런 쓸모도 못 한 채 책상에서 뒹굴고 있었다.
하유락은 박현수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말을 떠올렸다.
‘바로 결정하기 어렵군요. 그리고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할 길드가 있을 수도 있고. 보류하겠습니다. 나중에 뵙도록 하죠. 아, 연락은 언제든 주셔도 됩니다. 제 전화번호는 다 아실 것 같으니까.’
“하!”
하유락의 짧고, 경박한 웃음소리에 이민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몸값을 높여 보겠다, 이건가?”
협회와 레드 라이온을 제외하면 다른 길드는 그냥 쓰레기나 다름없었다.
한국 내에 레드 라이온과 자웅을 겨를 수 있는 길드는 네 군데가 있지만, 사실 언론의 구색 맞추기일 뿐, 그 격차는 하유락의 존재만으로 압도적인 차이가 있었다.
“설마 협회의 대리인과 레드 라이온의 수장을 앞에 두고 그런 모험 수를 던질 줄이야.”
이민아는 자존심이 꽤 상한 모양이었다.
아닌 말로, 이대로 양쪽이 모두 빠지면 박현수에게 제대로 엿을 먹일 수 있었다.
하지만.
‘저 여자가 순순히 그렇게 해 줄 리가 없지.’
독점 공략권을 따냈다면 이제 세력을 제대로 불릴 타이밍이다.
A급 헌터라면 기를 쓰고 붙잡으려 할 터.
자신 앞에선 그러자고 해 놓고 뒤에서 박현수에게 접근해 계약을 체결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손해를 보는 건 결국 협회가 된다.
그리고 상부에 욕을 먹는 건 자신일 테고.
이민아는 머리가 아파 왔다.
‘A급……. 그것도 잠재력이 꽤 되는 헌터라면. 그래, 까짓거 자존심이 밥 먹여 줘?’
협회는 이제 수성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짜증 나는 일이지만, 박현수의 계획대로 휘둘려 줄 수밖에.
그리고 그건 하유락 또한 마찬가지였다.
“난 이만 가 보지.”
풍성한 적발이 출렁이며 떨어졌다.
이민아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러시던가요.”
“까칠하기는.”
하유락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이민아를 보았다.
이민아는 새침한 얼굴로 고개를 휙 돌았다.
“하하하!”
하유락의 몸이 불꽃에 휩싸였다.
그대로 한 줌 재가 되어 사라졌다.
“여전히 괴물 같은 능력이네.”
이민아는 이마에 주름이 한 줄 더 추가될 것 같았다.
* * *
박현수는 협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의 얼굴엔 약간의 만족이 떠올라 있었다.
“제가 원했던 방향과는 거리가 멀지만, 어찌 됐건 저한테 좋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잖아요.”
[쯧쯧. 그 요염한 처자한테 좋은 모습으로 남았을 텐데, 그건 별로 아쉽지 않으냐?]“스승님은 생각보다 여자를 엄청나게 밝히시네요.”
[여자 안 밝히는 남자가 어디 있더냐?]“그건 맞는 말이지만, 전 여자보다 제가 잘 되는 게 우선이거든요.”
동생을 위해서라도.
박현수는 그 말을 입에 담진 않았다.
“그리고 여자 때문에 계약했다는 꼴도 웃기잖아요?”
천경은 그런 박현수를 노골적으로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부담스럽게 쳐다봐요?”
[잘했다.]“예?”
[네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을 했다. 계약했어도 괜찮았겠지만, 너는 방금의 일로 자신의 가치를 올린 거다.]여자 어쩌고 하던 양반이 갑자기 이렇게 말하니 당황스러웠다.
박현수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뭐 잘못 드셨어요?”
천경이 이마를 때리기 위해 손바닥을 휘둘렀다.
박현수는 그 공격을 집중해서 쳐다봤다.
하나둘 스텝으로 뒤로 몸을 빼며, 몸을 오른쪽으로 틀었다.
따악-!
“끄악!”
[한심한 놈. 고작 그따위 수준으로 피해 보려고 한 거냐? 만 년은 이르다 이 녀석아. 껄껄껄!]“젠장…….”
박현수는 울상을 지으며 천경을 보았다.
뭐가 그리도 좋은지 시원하게 웃고 있다.
박현수가 한숨을 내쉴 때 천경이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
[본좌의 제자라면, 언제까지고 누군가의 밑에 있어선 안 된다.]천경은 천마다.
십만대산의 주인이자, 천하에서 가장 강대한 세력이었던 천마신교의 교주였다.
그에게도 분명 약하던 시절이 있었다.
패배했던 전적도 있고, 목숨을 구걸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천경은 모든 역경을 이겨냈다.
그는 최강이 되었고, 최후에 모든 걸 발밑에 무릎 꿇렸다.
그것이 목숨을 위협한 난적이라 할지라도.
그러니 그런 자신에게 배웠다면 적어도 누군가를 무릎 꿇릴지언정, 평생을 무릎 꿇고 살아선 안 되었다.
박현수는 처음엔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의 눈을 바라볼수록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았다.
박현수가 웃으며 답했다.
“물론이죠. 사상 최강의 밑에서 배울 테니, 저 역시 사상 최강이 될 겁니다. 사상 최강의 위엔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녀석. 엎드려 절 받기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구나?]“돌아가서 식사나 하시죠! 하하!”
[하하하! 요 녀석이!]“으아악!”
박현수의 머리에 큼지막한 혹이 생겼다.
* * *
푸석푸석하던 땅 위로 물이 가득 차올랐다.
대홍수의 그 날이 재연되듯, 세상엔 온통 물밖에 없었다.
강준혁은 물속에서 사지를 움직이며 허우적댔다.
분명 물속인데 몸이 위로 떠 오르지 않았다.
영원히 이곳에 구속된 것처럼.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도저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주변을 보았다.
시체가 된 길드원들이 피를 뿜으며 수면 위로 떠 오르고 있다.
그리고.
――――――――――――――!
굉장히 빠른 무언가가 시체 하나를 물고 사라졌다.
A급 헌터인 강준혁조차 제대로 쫓지 못할 속도였다.
‘끝이야.’
B등급이라고 생각했던 포탈.
기존의 협회 공략대가 실패해 거저먹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포탈과 달랐어도, 등급이 B가 나왔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 B등급 포탈을 여유롭게 공략할 수 있는 정도만 소집해 진입했다.
‘안일했고, 멍청했어. 우린 준비를 철저히 해야 했었어. 아니……. 철저히 했다고 해도 과연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강준혁은 이곳을 공략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이곳은 공략 불가의 영역이었다.
A등급 포탈?
웃기는 소리.
A급 헌터 둘이라면, A등급 포탈을 공략하진 못해도 어느 정도 감당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감당은커녕,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지금은 그저 가만히 있다가 일방적으로 당한 꼴이었다.
‘길드장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인 건, 시체로라도 발견되지 않았다.
‘믿어볼 건 길드장의 고유 능력밖에 없어.’
A급이지만, 능력만큼은 S급에게도 밀리지 않는 오대호의 고유 능력.
퍼버버버벙!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연쇄적으로 뭔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강준혁은 숨이 막히는 와중에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으아아아!”
오대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준혁아아아!”
그가 강준혁을 불렀다.
동시에 수십 명의 오대호가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오대호들은 끊임없이 분열해 강준혁을 향해 다가왔다.
퍼버버벙!
꾸르르륵!
작은 터짐과 함께 하얀 물거품이 사방으로 번졌다.
“잡아!”
목소리는 수면 위에서 들렸다.
강준혁은 이를 악물고 오대호 중 하나의 손을 붙잡았다.
꾸르륵-!
한계다.
“견뎌!”
다시 퍼버벙 터지기 시작했다.
아래에서 위로 밀어내듯, 오대호의 ‘분신’들이 두 사람을 위로 끌어올렸다.
끈덕지게 달라붙으려는 물이 거짓말처럼 떼어졌다.
그렇게 수면 위로 올라오는 데 성공했다.
“푸하!”
파란 하늘이 보였다.
끝없이 분신을 만들어 내고 있는 오대호도 보였다.
능력을 과도하게 사용한 탓인지 안색이 파리했다.
“타, 탈출해야 한다. 여기 있다간 죽어.”
“어떻게, 쿨럭쿨럭! 크으…… 어떻게 된 일이에요?”
“말할 시간 없어. 이곳은 공략 불가다. 빨리 포탈을 찾아서 돌아가야…….”
오대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으적-!
강준혁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아…….”
그것은 커다란 뱀이었다.
뱀은 입을 다 벌리지도 않고, 오대호의 상반신을 그대로 뜯어갔다.
강준혁은 멍한 얼굴로 그 광경을 지켜봤다.
오대호의 하체가 무릎을 꿇었다.
분신들이 일제히 사라졌고.
“꾸르륵!”
강준혁은 물속에 빠졌다.
그곳에서 커다란 일자 눈과 마주쳤다.
‘모두 죽을 거야.’
포탈 개방까지 앞으로 이틀.
그때가 되면 이 괴물 뱀이 세상 밖으로 뛰쳐나온다.
* * *
[마지막 측정에서 무엇을 느꼈나?]“움직임입니다.”
말한 대로, 천경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박현수를 수련장으로 끌고 갔다.
박현수는 조금만 쉬자고 투덜거렸지만, 천경에게 있어서 그 정도는 앙탈에 불과했다.
지금까진 박현수의 수준에 맞는 적들과 싸웠기에 움직이는 법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레벨 6, 라이칸스로프와의 결전에서 박현수는 움직이는 법을 몰라 패배했다.
움직이는 법을 안다고 라이칸스로프를 쓰러트렸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일방적으로 당하진 않았으리라.
“스승님.”
[말해 보거라.]“움직이는 법이란 게 정확히 뭡니까?”
박현수는 격투기나, 무술 같은 걸 배워 본 적 없었다.
그래도 아예 모르는 건 아니었다.
복싱의 위빙이나, 스텝은 그도 어릴 적에 텔레비전으로 몇 번 봐서 기억은 하고 있었다.
“네.”
[움직이는 법이란 쉽게 말해서 상대를 잘 때리고, 잘 피하게 해 주는 거다.]“잘 피하고, 잘 때리게?”
[본좌를 공격해 봐라.]박현수는 거절 한 번 않고 벌떡 일어났다.
[……스승을 공격하라는 말에 빨리도 일어나는구나.]“어차피 다 피하실 거잖아요.”
박현수는 팔을 빙빙 돌리며 대답했다.
천경은 그런 제자가 못마땅했다.
“하하. 어쩔 수 없는 일 아닙니까?”
[오냐. 어쩔 수 없이 본좌도 노력 좀 해 보마.]“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요.”
[닥치고 오너라.]박현수는 자세를 취하고 천경을 공격했다.
당연히 한 대도 맞지 않았다.
어떤 궤도로 주먹을 찌르고, 발을 차올려도 천경은 여유롭게 모두 피할 뿐이었다.
먼저 지친 건 박현수였다.
“허억, 허억.”
체력 측정에서도 지치지 않았던 그인데, 천경을 어떻게든 때려 보겠다고 내공까지 일으켰다.
천경은 의기양양하게 제자를 보며 말했다.
“모, 모르겠어요. 저는 전력을 다했는데.”
[움직일 줄 모르기 때문이야. 너는 지금까지 본좌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을 뿐이다. 그러니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지.]그 말대로.
공격을 피하는 법과 공격을 하는 법 모두 천경의 지시하에 움직였었다.
자체적으로 움직인 건 많지 않았다.
그마저도 허락을 받거나 아주 기본적인 움직임이었다.
“곱절이나요?”
[쉽게 생각해라. 움직이는 법을 배운다면, 본좌가 시키는 대로 더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을 것 아니냐?]박현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최대한 쉽게 지시를 내리지만, 라이칸스로프처럼 재빠르고, 변칙적인 적에겐 통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천경의 지시를 박현수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오오. 이름이 뭔데요?”
[잘 듣거라. 그 이름은 바로.]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초월급 스킬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박현수는 단전에 잠들어 있던 내공이 부글부글 끓는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