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02
훈수 두는 천마님 100편
꼭두각시 인형, 보르도가 소멸하자 그가 다스리던 영역에 거대한 빛의 출렁임이 발생했다.
박현수는 갑작스러운 이상 현상에 내력을 일으켜 몸을 보호했지만, 다행스럽게도 빛은 그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다.
오히려 거짓된 놀이동산을 모조리 지워 버리고 황토의 땅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고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여긴 일단 공략됐네요.”
박현수는 변화하는 대지를 보며 양손을 감은 건틀렛과 어깨를 타는 이음쇠를 확인했다.
“할리?”
-응.
역시 기분탓이 아니었다.
할리의 목소리는 아직 앳된 감이 있긴 했지만, 확실히 성숙해져 있었다.
처음이 어린아이 같았다면, 지금은 중학생 정도 되는 느낌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할리는 요 한 달 동안 거의 잠만 잤다.
깨어 있는 시간은 하루에 5분도 채 안 되었다.
이유를 물어도 졸리다는 말과 함께 바로 잠들었다.
-그냥 졸렸어. 이유 없이 졸렸는데, 이제는 졸리지 않아.
할리 본인도 왜 그랬는지 알지 못하는 듯했다.
박현수는 할리의 상태 창을 열었다.
등급 : AA+(MAX S)
능력 : 소유자가 원하는 형태로 반지가 변형합니다. 변형 형태에 따라 부여되는 효과가 달라집니다. 단계가 높아질수록 변형하는 범위가 늘어납니다.
설명 : 죽음 속에서 외로이 태어난 영혼이 고통에서 몸부림치다가 은인을 만나며 진정한 자신을 일깨웠습니다. 더 이상 죽음에 얽매이지 않게 된 영혼은 은인과 함께 지금까지 죽여 온 생명을 위해 새로운 생명을 지키고자 합니다.
(최근 형태 : 건틀렛 – 파괴력과 관통력이 신체 능력의 70%만큼 증가합니다.)
(등급이 낮아 오래 유지할 수 없습니다.)
(레클레로의 목걸이를 흡수했습니다.)
(레클레로의 목걸이 효과로 ‘인력(引力)’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인력 : 원하는 대상을 끌어당길 수 있습니다(단 사용자의 능력과 인력은 비례합니다).
‘할리가 진화했어.’
성장기 아이처럼 자나 싶더니, 진화를 위한 순서였던 모양이다.
이렇게 보니, 할리에게 너무 무관심했던 게 아닌가 싶었다.
“미안하다, 할리.”
-뭐가?
“그냥 미안해.”
-싱거워. 히히.
웃음소리는 여전했다.
건틀렛이 핏빛을 뿌리며 다시 반지 형태로 돌아갔다.
반지는 두 개의 링이 겹쳐 있는 형태로, 중앙에 육각형의 붉은 보석이 박혀 있었다.
박현수는 반지가 약간 멋있다고 생각했다.
“아, 바로 출발하죠.”
체력은 충분하다 못해 여유가 넘쳐났다.
박현수는 곧장 옆 영역으로 이동했다.
* * *
“정신 차려!”
“이봐, 잭! 대체 뭘 하는 건데?”
“대장 괜찮으세요?”
1부대의 여대원들은 갑자기 벌어진 사태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부대의 남대원들이 뭐에 홀린 사람처럼 바닥에 엎어져 실실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부대 지휘관인 타케시와 동급의 헌터 질 로드먼은 의식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의 저항력이 A급 헌터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아서였다.
“후우……. 너흰 괜찮은가?”
“네, 저흰 괜찮은데, 갑자기 다들 왜 이러는 거예요?”
“정신 공격이다. 누군가 매혹을 걸고 있어.”
질 로드먼은 식은땀을 흘리며 매혹의 근원지를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강력한 매혹은 그의 정신력마저 고갈시킬 정도였다.
“일단 정신 방벽부터 치죠.”
여대원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오색 빛을 뿜어내는 전격을 방출했다.
전격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커다란 둥근 막을 형성했다.
그러나 한 번 매혹에 걸린 이들은 쉽게 깨어나지 못했다.
“매혹이 너무 강력해요.”
다행인 건 타케시와 질 로드먼이 어느 정도 여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매혹의 근원을 없애야 해.”
“이거 아무래도 잘못 들어온 것 같아. 2부대나, 3부대가 여길 맡았어야 해.”
모드와 칭란이 이끄는 2부대나, 하유락이 이끄는 3부대라면 차라리 상황이 더 나을 것이다.
남녀 비율은 모든 부대에 남자가 7할 정도로 더 많지만, 각각 칭란과 하유락이 있어 매혹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다.
“우리 둘에게 정신 방벽을 걸어 준다면 얼마나 유지할 수 있지?”
“글쎄요.”
여대원이 잠깐의 고민을 거치고 대답을 내놓았다.
“두 분이라면 30분 정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방벽을 유지하면서?”
“네.”
“그렇게 해.”
“설마 두 분이서 하시려고요?”
타케시의 명령에 여대원이 눈을 크게 떴다.
두 명의 S급 헌터를 약화할 정도로 강력한 매혹을 사용하는 적이었다.
거기다 이곳은 미지의 영역.
어떤 위기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데, 30분이라는 제한 시간을 두고 움직이는 건 자살 행위에 가까웠다.
“저희도 같이…….”
“자네들은 저 녀석들을 지켜 줘야지.”
타케시는 따라나서겠다는 여대원들을 말렸다.
“하지만.”
“우리 둘이 움직이는 게 나아. 속전속결로 매혹의 근원을 파괴하고 오겠다.”
질 로드먼의 능력이라면 빠르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S급 헌터가 둘이었다.
S급 헌터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전력인데 둘이라면, 단순히 두 배가 아니었다.
특히 타케시와 질 로드먼은 가장 많은 합을 맞춰 온 파트너기도 했다.
“다녀오지.”
두 사람이 막 떠나려 할 때였다.
“지휘관님! 저길!”
여대원 하나가 다급한 목소리로 불러세웠다.
타케시는 고개를 돌려 뒤를 확인했다.
저 멀리서 빛의 기둥이 하늘 높이 솟구치고 있었다.
“박현수다.”
“한 곳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군. 우리도 더 늦기 전에.”
“그러지.”
질 로드먼이 검은 구멍을 열었고, 두 사람은 그 안으로 사라졌다.
남아 있는 대원들은 두 사람의 무사 복귀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 * *
다음 영역은 초고속 주파였다.
왜인지, 이번엔 기분 나쁜 목소리처럼 영역을 관리하는 존재가 없었다.
그렇다고 영역의 몬스터들이 약한 건 아니었다.
모두가 최소 B등급 이상의 포탈에 서식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강력했다.
다만, 상대가 박현수였을 뿐이다.
오염된 대지가 황색으로 물들며 빛의 기둥이 한 번 더 솟구쳤다.
“후우. 이번엔 쉬웠다.”
[예전이라면 쩔쩔맸을 만한 놈들이 꽤 있었는데, 많이 크긴 했군.]“그때의 제가 아니니까요. 그리고 할리도 있고.”
-히히.
박현수는 양손의 건틀렛을 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2단계가 된 할리는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공격력이 20% 증가한 효과 덕분이었다.
‘그런데, 내 공격력은 몇이야?’
능력이나, 아이템이 주는 공격력 증가 효과는 분명 체감이 될 정도였지만, 정작 자신의 공격력은 알지 못했다.
물론 수치로만 모른다뿐이지, 어느 정도로 강한지는 나름 객관적으로 판단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잘하고 있나?”
박현수는 육안으론 보이지 않지만, 반대편에서 싸우고 있을 공략대를 떠올렸다.
전원이 A급 이상에 부대마다 S급 헌터가 최소 하나씩 붙어 있으니 큰 걱정은 되지 않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스승의 말처럼, 아직 그가 해야 할 일이 마무리된 건 아니었다.
“걱정도 팔자십니다.”
놀이동산도, 몬스터가 잔뜩 있었던 이곳도, 솔직히 말해서 크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
게임 부분이 조금 짜증 났지만, 문자 그대로 짜증이었을 뿐 문제없이 모두 클리어했고, 목소리 주인으로 추정된 꼭두각시 인형 역시 어렵지 않게 죽였다.
나머지도 큰 걱정이 안 되었다.
‘혹시 여기가 아닌 건가?’
천경의 운명이 끝나는 장소가 분명 이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것치고 난이도가 쉬워.’
난이도가 쉽다는 말은 천경의 운명이 걸린 것치고 쉽다는 것이지, 정말 쉽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였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 다른 헌터였다면 꽤 고생했을 것이다.
-출발!
“그래, 출발하자.”
박현수는 반지를 가볍게 쓰다듬곤 다음 영역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굉장히 먼 거리에서 박현수를 지켜보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결국엔 이렇게 될 예정이었나.”
어째서인지, 턱시도를 입고 있지 않은 론드벨이었다.
그는 자조적인 표정으로 하늘을 보았다.
“배신의 대가인가.”
그는 자신의 고향 아리스를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그 시절, 론드벨은 지금은 모두의 기억에서 잊힌 12번째 국가 ‘막스’의 왕이었다.
그리고 막스는 아리스를 팔아넘긴 대가로 모두의 기억에서 소멸했다.
그들의 신인 마레의 기억에서조차도.
“대가가 죽음이라면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
론드벨은 오래전 자신의 친구였던 파울을 떠올렸다.
느만을 도와 어떻게든 아리스를 구하고 싶었던 파울은 론드벨의 손에 죽었다.
세간에는 전장에서 죽었다고 알려졌지만, 그 전장에서 론드벨이 파울을 죽인 것이다.
왜?
도저히 군세를 이길 것 같지 않았으니까.
적어도 자신의 백성만큼은 살리고 싶었으니까.
“이곳에서, 지금까지 지은 죄의 벌을 받겠다.”
전신에서 폭발적인 기운이 솟구쳤다.
“그러나 벌을 받기 전에, 네가 정말 이 세계를 구원할 구세주인지 시험하겠다.”
잊힌 12번째 아리스의 왕 론드벨.
그는 한때 ‘배틀 마스터’라는 이명을 지녔던 싸움의 신이었다.
* * *
“슬픈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거짓말하지 않아도 된다.”
룩은 슬픈 눈으로 창밖을 모든 드레스의 여인을 보았다.
나이트의 수족이었던 여인과 닮은 그녀의 이름은 헤레.
론드벨의 동생이자, 박현수에게 죽임을 당한 나이트의 수족 아이잔의 언니였다.
그녀 역시 막스 일족으로, 배신자의 낙인이 찍혀 군세에서 노예처럼 살고 있었다.
“슬픕니다.”
“너도 그곳에 가고 싶으냐?”
“예, 가고 싶습니다.”
헤레는 해선 안 되는 말들을 연달아 뱉었다.
원래라면 엄벌에 처했겠지만, 룩은 웃기만 할 뿐 그녀에게 벌을 내리지 않았다.
지금 상황이야말로 그녀에게 주어진 끔찍한 형벌일 테니까.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허락한다.”
“왜 모두를 버리신 겁니까? 킹의 뜻입니까?”
룩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소파 뒤로 목을 넘겼다.
그는 폰들의 제약을 감당하고 있지 않았다.
지금 감당하고 있었다면 이렇게 여유로운 티타임을 즐기고 있지 못할 것이다.
“쓸모가 없지 않나?”
“……제 오라버니처럼요?”
“네 오라버니는, 굳이 따지자면 다른 방향으로 쓸모가 없었지. 그의 능력은 출중하다 못해 차고 넘치지만, 사상이 글러 먹지 않았나.”
헤레가 입술을 깨물었다.
턱을 타고 피가 흘러내렸다.
“주인을 버린 개는 내쳐야 옳은 거지.”
“그렇……군요.”
마음 같아선 저자의 목을 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게 한이었다.
노예란 그런 것이다.
주인에게 반항할 수 없고, 순종적으로 굴 수밖에 없다.
만약 최대한으로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녀의 오라비인 론드벨처럼 될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살 이유가 있을까?
‘부럽구나, 아이잔.’
박현수에게 목이 비틀려 죽었지만, 그녀는 분명 행복했을 것이다.
“그럼 폰들의 제약은 무엇이 감당하고 있는지요?”
“글쎄.”
룩이 기분 나쁘게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방을 떠나며 그녀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죽고 싶으면 그렇게 해. 너도 이제 쓸모를 다했으니까.”
쾅-
문이 닫혔다.
쓸모가 다했으니 죽어도 된다.
헤레는 의문을 갖지 않았다.
그는 전장에 있을 오라비를 떠올리며 옆에 놓인 장식용 검을 뽑았다.
그리고 심장을 찔렀다.
* * *
“또 만났네?”
박현수는 무시무시한 투기를 뿜고 있는 론드벨을 보았다.
일전에 만났을 땐 그는 살기가 전혀 없었지만, 지금은 누구보다도 자신을 죽이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알고 있어요.’
아이리스의 숲에서 만났을 때 짧지만 손을 섞어 본 결과, 자신의 하수가 절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심지어 살기까지 없었으니, 본 실력을 낸다면 승부를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도 한 달 전과 비교하면 저도 꽤 강해졌다고 자부하거든요.’
지금은 다르다.
폐관 수련은 박현수를 분명 한 단계 위로 끌어올렸다.
그때처럼 짧은 공방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박현수.”
그때, 론드벨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오며.
“내 이름은 론드벨. 전사다!”
자신의 이름을 소개함과 동시에 돌진해 오기 시작했다.
“미친!”
황소 같은 돌진에 박현수는 급히 뒤로 물러나며 흑강기를 일으켰다.
쾅!!
두 개의 주먹이 충돌했다.
밀린 건 박현수였다.
그러나 론드벨의 돌진력에 밀린 것일 뿐, 힘에서 차이가 난 건 아니었다.
박현수는 뒤로 발을 끌며 자세를 잡았다.
“인사치곤 과한데?”
“네가 구원자가 될 수 있는지, 나 론드벨이 시험해 주마!”
투기와 함께 거대한 기운이 폭발했다.
피부가 찌릿찌릿 저렸다.
박현수는 긴장감 가득한 상황 속에서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투쟁심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좋아, 좋아!”
단전이 꿈틀거리며 내공이 휘몰아친다.
그의 눈에 검은 귀화가 타올랐다.
의념이 열리고, 천마신회류가 마나를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그때 마무리하지 못한 승부, 여기서 지어 주마!”
“와라!”
두 전사가 서로를 향해 뛰어올랐다.
거대한 기운이 허공에서 격렬하게 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