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03
훈수 두는 천마님 101편
맞닿은 주먹에서 육안으로 보일 정도의 충격파가 발생했다.
서 있는 땅이 갈라지며, 두 개의 기운이 무섭게 충돌했다.
박현수는 주먹에서 느껴지는 찌릿함에 입술을 위로 비틀려 올렸다.
그는 주먹을 뒤로 슬쩍 빼며, 손바닥을 펼치곤 뱀처럼 론드벨을 손목을 휘감았다.
“흡!”
론드벨의 손에서 녹색 강기가 둥글게 터져 나왔다.
혀를 차며 손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론드벨이 땅을 박차고 맹공을 퍼부어 왔다.
박현수는 오로천을 사용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맹공을 여유롭게 흘러냈다.
의념으로 강화된 오로천은 기존보다 탈력의 효율을 극대화했다.
‘귀찮은 방어술이군.’
모든 공격을 흘려보낸다.
그냥 흘려보내는 것도 아니고 적절한 방어를 섞으며 교묘한 반격을 섞었다.
바로 지금처럼.
“칫.”
론드벨이 아래에서 턱을 노리고 주먹을 뻗어 올리는 순간, 박현수가 몸을 뒤로 흘리며 앞발을 내질렀다.
엽파의 묘리가 담긴 발끝엔 강철조차 조각낼 수 있는 절삭력이 담겨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박현수의 발이 턱 끝을 스쳤다.
몇 방울의 핏물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그대로 몇 차례 뒤로 뛰어 거리를 벌렸다.
“전보다 강해졌군.”
“강해져야만 하니까.”
박현수는 허공에서 가볍게 뛰며 대답했다.
두 영역을 거쳤지만, 그럴듯한 싸움은 하지 못해 몸이 덜 풀린 감이 없잖아 있었다.
한데 불과 1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공방에 모든 몸이 풀렸다.
그는 주먹을 반쯤 쥐곤 마보 자세를 취했다.
“와라.”
론드벨이 앞으로 뛰쳐나가며 ‘분열’을 사용했다.
그의 몸이 순식간에 수백 명으로 불어났다.
그때와 비슷한 상황.
박현수는 모든 론드벨의 손에 녹색 강기가 떠오르는 걸 보며 의념을 극한으로 개방시켰다.
동공이 축소되며 거대한 세계가 한눈에 사로잡혔다.
처음 각성했을 땐 익숙지 않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지만, 한 달이란 시간은 이를 다루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허리 뒤로 밀려난 주먹이 정면을 향해 직선을 그리며 올곧게 뻗어 나갔다.
론드벨이 눈을 부릅떴다.
‘이 기술!’
구름을 헤집고 파고 들어오는 일권은 정확히 그의 본체가 있는 곳을 향했다.
지난번에도 이 기술에 ‘로스트 헤븐’이 파훼 당했었다.
그때보다 더 빠르고, 정교하다.
그리고 사용된 기술이 그때보다 묵직했다.
분신이 일제히 소멸했다.
론드벨은 인상을 구기며 몸을 틀었다.
콰가강!!
권풍이 그의 뒤쪽에 있는 암벽을 무너트렸다.
“어쭈, 피해?”
“…….”
한 달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그때만 해도 충분히 이길 만하다고 판단했다.
‘성장이 빠르단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박현수는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 되었다.
이길 수 있을까?
‘아직까진 해봐야 안다.’
장담은 못하더라도 해볼 만한 싸움.
론드벨은 그렇게 판단했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과연 특이점이라 불릴 만하다. 하지만 그거론 아직 부족해.”
“뭐가 부족한진 모르겠지만, 방금 걸로 끝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실망할 뻔했잖아.”
검은 기운이 박현수의 몸을 타고 흘러나왔다.
마치 흑룡이 그의 몸을 휘감고 있는 듯했다.
‘전력으로.’
론드벨의 심장이 무섭도록 빠르게 펌핑되기 시작했다.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얼굴이 흉악해져 갔다.
투기와 살의로 이루어졌던 기세가 한층 난폭하게 진화했다.
‘괴물 자식.’
소름 끼칠 정도로 강하지만, 그래서 더 기대되었다.
“네가 전력으로 나오면, 나 역시 전력으로 해 줘야겠지. 할리.”
-응!
반지가 액체처럼 출렁이더니, 그의 양팔을 순식간에 휘감았다.
[가속 09:59]몸이 가벼워지고, 보이는 모든 게 서서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박현수가 앞발을 튕겼다.
그의 육체가 번쩍이듯 사라졌고,
론드벨의 머리 위로 하늘이 떨어졌다.
* * *
“키키킥! 그렇게 해서 어디 되겠어?”
“뒤에 숨은 놈이 입만 살아선!”
하유락은 몰려오는 좀비처럼 생긴 몬스터들을 불로 태우며, 멀리서 비아냥거리는 샐든에게 소리쳤다.
뭐 하는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저놈이 이 영역을 다스리는 존재인 것 같았다.
‘저 녀석을 잡으면 아마도, 공략 성공.’
그녀는 뒤에 부하들을 확인했다.
전원이 A급 중에서도 정예인 헌터들답게 어렵지 않게 좀비 같은 놈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문제는 물량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아비!”
“네, 여기 있습니다!”
아비라 불린 중년의 헌터가 몬스터 세 마리의 머리를 도끼로 가르며 하유락에게 다가왔다.
그는 3부대에서도 유독 경험이 많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었다.
“지금부터 길을 뚫을 거야.”
“저놈한테 말입니까?”
“그래.”
“준비가 필요하겠군요.”
베테랑답게 눈치가 빨랐다.
하유락은 대답할 시간에 집중했다.
“대장에게 몰려오는 몬스터들을 모두 치워 버려라!”
아비의 외침에 대원들이 눈을 빛내며, 하유락에게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치워 버리기 시작했다.
물량이 많다뿐이지, 전투력은 확실히 차이가 났다.
샐든은 찢어진 눈을 더 찢으며 투덜거렸다.
“더럽게 약하네.”
그는 자신의 손가락을 타고 오르는 기생충 한 마리를 보았다.
애초에 나약한 놈들한테 이것들을 심어 놓긴 했지만, 증폭 효과를 걸어놨는데도 고작 저 정도일 줄은 몰랐다.
“뭐, 어차피 도구니까 상관없나?”
샐든은 기생충술사.
온갖 기생충을 부리며, 기생충을 통해 타인을 지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모두 몸을 옮겨 타라.”
그가 명령한 순간, 몬스터들의 촉수에 있던 기생충들이 머리를 뚫고 튀어나와 헌터들을 향해 날아올랐다.
모두가 정예로 이루어진 헌터 부대.
저것들을 손에 넣는다면 자신의 부대는 한층 더 강력해질 것이다.
심지어 마론이 저기 있었다!
“크히히히! 마론만 내 걸로 만들 수 있다면!”
지금은 드래곤의 모습이 아니지만, 그 힘은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저것만 자신의 것이 된다면, 나이트가 되는 것도 꿈은 아닐 터!
“이게 뭐야!”
“젠장!”
“모두 몸을 털어!”
헌터들이 몸에 들러붙은 기생충들을 떼어내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이미 닿은 순간 끝이었다.
“자, 모두 내 인형이 되어라!”
샐든이 만세를 하며 활짝 웃었다.
그 순간.
“기생충?”
불꽃이 타올랐다.
불꽃은 노란빛을 내뿜으며 서서히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어쩐지 좀비 같더라니, 개수작을 부렸었구나?”
불꽃은 3부대 전원을 휘감았다.
부대원들은 갑작스러운 현상에 놀랐지만, 이내 불꽃이 뜨겁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리곤 모두가 하유락에게 시선을 옮겼다.
“오…….”
한 헌터의 입에서 흘러나온 소리였다.
비단 그만이 아니었다.
모든 대원들이 넋을 잃은 표정으로 하유락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마치 천사가 강림한 것 같은 새하얀 날개는 깃털 대신 불꽃이 타올랐고, 갈기와 같던 붉은 머리카락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그 끝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은 옷은 사라지고 새빨간 불길이 드레스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너무 아름다워.”
“여신인가?”
“미쳤군.”
대원들이 홀린 듯한 얼굴로 감상평을 한 명씩 내뱉었다.
그 정도의 아름다움이었다.
그러나 웃지 못하는 이도 있었으니.
“뭐, 뭐야? 내가 아는 마론보다 더 강한데?”
하유락이 가진 힘의 원주인을 아는 샐든으로선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열한 명의 왕 중 드래곤이었던 그녀는 태생이 남달라 특출난 강함을 가지긴 했지만, 충분히 자신의 기생충으로 제압할 수 있었다.
한데, 저만한 힘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모든 기생충이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지고 있었다.
하유락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며 박현수를 떠올렸다.
‘네 짓이구나.’
낙원의 파편에서 죽어 갈 때, 박현수가 자신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로선 단순히 살리려고 그런 것일 테지만, 아무래도 자신의 몸에 큰 변화를 일으켰던 모양이다.
‘예감은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걸.’
모든 힘을 회복했을 때, 이전보다 힘의 총량이 증가했다는 건 눈치챘었다.
하유락은 앞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허공을 쥐듯 살포시 주먹을 쥐자, 그 안으로 불길이 스며들어 한 자루의 검으로 변했다.
“금방 도우러 갈게.”
하유락의 신형이 불길에 휩싸였다.
샐든은 위기감을 느끼곤 곧장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녀가 훨씬 빨랐다.
“크헉!”
어깨가 타들어 갈 듯이 뜨거웠다.
아니, 진짜로 타들어 가고 있었다!
샐든의 두 눈에 실핏줄이 잔뜩 돋았다.
“네, 네가 어떻게 그런 힘을?”
하유락은 그 얼굴을 보며 웃어 주었다.
“꺼져.”
검이 폭발했고, 새하얀 화염이 주변 일대를 벌레 한 마리 남기지 않고 모조리 산화시켰다.
동시에 빛의 기둥이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 * *
“그래서 날 잡겠어?”
카트리나가 나비처럼 생긴 날개를 펄럭이며 타케시와 질 로드먼의 주변을 배회했다.
그녀는 조롱 어린 웃음을 터트리며 계속 매혹 가루를 뿌렸다.
심지어, 그녀의 무수히 많은 자식들도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매혹 가루를 뿌렸다.
“질, 몇 분 남았지?”
“10분 남았어.”
“충분하겠군.”
타케시는 시간을 확인하고, 도를 일(一) 자로 세웠다.
“너흰 실수했다. 우리 앞에 나타나지 말았어야 해.”
그는 불과 5분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한창 매혹의 근원을 찾으러 다니던 중 갑자기 카트리나가 앞에 나타났다.
그리곤 자기가 매혹의 근원지이며, 너희는 어차피 내 소유물이 될 거라며 큰소리를 뻥뻥 쳤다.
실제로 맞는 말이었다.
아무리 그들의 저항력이 높아도 계속 매혹에 당하면 결국 노예가 될 게 뻔했다.
문제는 카트리나가 그들의 앞에 나타났단 것이다.
상당히 재빠르고, 약한 것도 아니라서 쉽게 죽이긴 어려웠지만.
“그것도 결국 시간문제일 뿐인 거지.”
그렇다고 죽일 수 없는 건 아니다.
“시작하지.”
“준비는 끝났어.”
질 로드먼이 모자챙을 밑으로 내리며 혼돈의 힘을 사용했다.
그걸 본 카트리나가 소리 내어 비웃었다.
“꺄하하하! 어리석은 것들. 내가 아무런 답도 없이 이곳에 나타났을 것 같아?”
그녀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소리쳤다.
“히나린도 사르카샤도 결국 내 손에 당했어! 그 힘을 이어받은 너희 따위는 결국 아류. 그땐 손에 넣지 못했지만, 이젠 내 장난감이 되어 줘야겠어.”
아리스 시절, 그들이 가진 힘의 본래 주인들은 카트리나한테 한 번 당한 전적이 있었다.
오로지 카트리나만의 힘으로 그들을 죽인 것은 아니었다.
당시엔 폰 중 가장 나이트에 근접했던 찬의 도움을 받았다.
그녀의 정신 공격은 강하지만, 열한 명의 왕 중 단 하나조차 정면으로 이길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이 오만함으로 남았다.
비록 찬은 없지만, 한 번 쓰러트렸던 상대라면 혼자서도 충분하다는 오만함이.
“그딴 옛날이야기는 관심 없다.”
타케시는 그녀의 말을 관심 없다고 일축하고 도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중요한 건,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거지.”
질 로드먼이 그의 말을 받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뭐, 뭐야?”
하늘에 검은 선이 지그재그로 그어지며 그물처럼 엮여 갔다.
카트리나는 땅을 덮는 그림자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다 허튼……!”
“허튼짓인지, 아닌지는 네가 결정할 게 아니다.”
그녀는 허공에 녹색 선들이 입체적으로 그려지는 걸 보곤 입을 틀어막았다.
벗어나야 한다.
날개를 최대한 펄럭이며 매혹 가루를 뿌리곤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나비는 거미줄에 걸리면 보통 잡아먹히지.”
선들이 한쪽으로 휘었다.
“으야!”
카트리나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뒤로 끌려갔다.
타케시가 공간을 끌어당긴 것이다.
비록 로벤처럼 시공간 전체를 다루진 못하지만, 적어도 공간의 형태를 바꾸는 것만큼은 타케시가 더 뛰어났다.
“사라져라.”
“억.”
하늘을 덮은 혼돈의 거미줄이 가시를 뻗어 카트리나의 몸을 꿰뚫었다.
그렇게 고정되었을 때, 좌표를 이루는 선이 직선으로 휘었다.
“잠!”
뎅겅-!
그녀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목이 떨어져 나갔다.
“꺄아아아악-!!”
카트리타의 자식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그 비명은 단말만을 남긴 채 모두 침묵했다.
타케시는 횡을 벤 검을 가볍게 털어 내고 도집에 넣었다.
칙칙한 공기가 사라지며, 환한 빛이 땅을 적시기 시작했다.
이윽고 빛은 중심에 모여 거대하게 뭉쳤고, 기둥이 되어 하늘 높이 솟구쳤다.
* * *
“……넌 대체 누구야?”
칭란은 피범벅인 몰골로 붕대의 사내를 보았다.
그리곤 옆에 쓰러져 있는 모드를 보았다.
모드의 왼팔은 사라진 채로 기절해 있었다.
부대원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모두 카본이 한 짓이었다.
“말을 해!”
“쉿.”
그녀가 악에 받쳐 소리치자, 카본이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댔다.
“조용히.”
“……뭐?”
“슬슬 끝을 향해 가는군.”
그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까만 하늘엔 별조차 보이지 않았다.
칭란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조차 할 수 없었다.
현재 그녀는 카본이 만든 공간에 갇혀 있었다.
바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희망적이다.”
“뭐가 말이지?”
“너희 동료들이 모든 폰을 정리했어.”
“……?”
폰이라면 체스 말의 한 종류로, 가장 낮은 등급이었다.
즉, 나이트와 비숍 아래 있는 간부라고 보면 되었다.
“그들이 전부 죽었다고?”
“놀라워. 희생자가 단 한 명도 안 나왔어. 그들이 방심한 탓인지, 아니면 너희가 생각보다 강한 건지 모르겠군.”
카본은 붕대로 감싼 턱을 문지르며 고개를 저었다.
“……네 동료들이 죽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거냐?”
“동료? 걔들이?”
그는 그녀의 말이 이해가 안 가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쓰레기들하고 내가 어떻게 동료지?”
“넌, 등급이 뭐냐.”
“폰이다만.”
‘폰이 이렇게 강하다고?’
나이트와 비숍을 겪어 본 적은 없지만, 정황상 충분히 그들의 전력을 파악할 수 있었다.
놈은 최소 나이트와 동급이거나, 그 이상이었다.
“하긴, 폰이라기엔 너무 강하긴 하지.”
그 역시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걱정은 하지 마. 딱히 너희를 죽일 생각은 아니라서.”
갑작스러운 카본의 말에 칭란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자신들을 죽이지 않겠다?
그렇다면 아군으로 만들 셈이라는 걸까?
“우리를 세뇌할 작정이냐?”
“무슨 세뇌씩이나. 너희를 너무 과대평가하지 마. 그 정도의 가치가 없어, 너희는.”
S급 헌터가 가치가 없다면, 대체 무엇에 가치가 있단 말인가?
“그래. 가치라면 지금은 그놈밖에 없지. 박현수.”
카본의 입에서 박현수가 언급됐다.
그는 히죽 웃는 듯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곧 승부가 나. 난 그걸 보러 가야겠어.”
“어딜 가겠다는 거냐!”
칭란의 주변에서 검은 난초라 자라났다.
그녀는 난초를 몸에 두르고 그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카본은 심드렁한 얼굴로 작은 주먹을 가볍게 붙잡았다.
그리고 바닥에 내팽개쳤다.
“커헉!”
“쓸모가 없다니까, 쓸모가.”
그는 주머니에 손을 꽂고 걸음을 옮겼다.
“다들 쉬고 있어. 끝나면 올게.”
손가락을 튕기자 어둠 속에서 작은 문이 생겼다.
카본이 문을 열고 나가자, 문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기, 기다려…….”
칭란은 문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손을 뻗다가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 * *
론드벨은 온몸에 생긴 타박상을 보며 걸쭉한 피를 토해냈다.
‘말이 안 되는군. 내가 약해진 건지, 아니면.’
그는 정면에서 다가오고 있는 박현수를 보았다.
‘저놈이 나를 넘어설 정도로 강한 건지.’
전력을 동원했음에도 박현수와 대등한 승부를 펼치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얻어맞았다.
한때 배틀 마스터라고 불렸던 자신이었다.
별명엔 관심 없었지만, 힘엔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한때, 그 룩조차 자신에게 몇 번이나 패했었다.
한데 각성한 지 고작 반년밖에 안 된 애송이한테 신나게 얻어터지고 있었다.
‘시험은 통과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왠지 추하단 생각이 들었다.
론드벨은 웃으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더 할 생각이야?”
“착각하는 게 하나 있군. 너와 나는 단순히 승부를 겨루는 게 아니다. 지금 너와 내가 하는 것은 생사결이다.”
“뭐, 좋아. 죽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다.”
박현수는 남은 가속 시간을 확인했다.
[가속 01:28]1분 반 정도 남아 있었다.
여유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부족하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박현수가 론드벨을 향해 손을 뻗자, 건틀렛에서 기묘한 붉은빛이 돌았다.
“또 이 힘인가!”
론드벨은 빨려 들어갈 것 같은 힘에 최대한 저항했지만, 발이 바닥에서 떨어지는 걸 막지 못했다.
하는 수없이 허공에서 몸을 뒤로 왼 다리에 힘을 싣고 아래로 내려찍었다.
박현수는 내려찍어오는 다리를 오로천으로 흘려보내고, 반 바퀴 회전해 팔꿈치로 그의 가슴을 찍었다.
“큭!”
가슴이 답답해질 정도로 통증이 일었지만, 론드벨은 몸부림치기보다 가슴에 꽂힌 팔꿈치를 다리에 걸었다.
오로천으로 빠져나가기 전에 팔 하나로 손목을 묶었다.
“잡았다!”
박현수는 팔을 빼내려고 했지만, 힘이 생각보다 강했다.
이대로 있다간 팔이 부러진다.
그는 의념으로 팔을 감쌌다.
붙잡힌 면 전체의 신경이 하나하나 느껴졌다.
‘팔이 통째로 주먹이 된다.’
흑강기가 피부를 타고 흘렀다.
[목파]침투경의 수법이 면 전체에서 발생해, 론드벨이 붙잡고 있는 모든 부분을 파고들었다.
“크악!”
팔과 맞닿은 가슴, 양다리에서 속살까지 파고 들어오는 고통에 비명이 나왔다.
론드벨은 영문도 모른 채 바닥을 두 차례 구르고 벌떡 일어났다.
“무슨 짓을 한 거지?”
“몰라도 돼!”
천마신회류로 흡수된 마나가 육체를 강화한다.
박현수의 신형이 총알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론드벨은 간신히 그 속도에 반응해 가드를 올렸지만,
한 번 더, 침투경이 가드를 뚫고 몸 내부를 진탕 시켰다.
“쿠헉!”
피가 한 움큼 쏟아졌다.
그러나 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땅 위로 막대기 같은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론드벨은 튕기듯 고개를 위로 들었다.
굳은살이 가득한 발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박현수는 실패에 실망하지 않고, 연이어 공격을 퍼부었다.
모든 공격엔 파천마권의 묘리가 들어가 있었고, 간간이 사용되는 인력은 론드벨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빡-!!
그리고 무릎이 론드벨의 턱에 정확히 꽂히고 말았다.
천경의 말처럼, 박현수는 그의 턱이 부서졌음을 실시간으로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얼굴을 붙잡고 반대편 발을 들어 쇄골을 찍었다.
쇄골이 움푹 들어갔다.
론드벨의 몸이 한 차례 떨렸다.
박현수는 부러진 쇄골을 디딤대 삼아 얼굴을 붙잡고 물구나무를 섰다.
“끝이다.”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다리가 구부러지며 속도를 받은 무릎이 송곳처럼 떨어졌다.
“너라면…… 된다.”
그 순간 론드벨이 알 수 없는 말을 했고, 두 무릎은 정확히 그의 머리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