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05
훈수 두는 천마님 103편
화경과 현경은 절대 좁힐 수 없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화경 초입과 완숙 화경은 운이 좋으면, 초입이 완숙을 잡을 수도 있었다.
숙련도의 차이일 뿐 각성 의념을 다루는 것은 똑같으니, 상성으로 밀어붙인다면 불가능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번 현경을 찍고 내려온 완숙 화경을 화경 초입이 잡을 수 있을까?
박현수는 화경 초입을 지났지만, 그렇다고 완숙 단계엔 못 미쳤다.
아래에서 들려온 스승의 외침에 박현수는 왼쪽으로 몸을 날렸다.
쾅-!!
검은 창격이 부서진 기암괴석을 완전히 가루로 만들었다.
그는 양손에 두른 흑강기를 물방울 형태로 바꾸어 사방에 퍼트렸다.
방울 방울이 의지가 담긴 듯 복잡한 궤적을 그리며 강서일에게 쏘아졌다.
강서일은 죽은 눈으로 그것들을 보다가 창을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그걸 본 천경의 눈이 부릅떠졌다.
“흑로지염창?”
[피해! 닿으면 끝이다!]회전하는 창끝에 검은 불길이 치솟더니, 순식간에 거대한 화염 폭풍이 되어 날아오는 루천을 모조리 태워 버렸다.
나아가 회전력을 실은 상태로 박현수를 향해 매섭게 휘둘렀다.
콰아아!!!
박현수는 혀를 차며 ‘태극마’로 기로(氣路)를 틀었다.
“큭!”
머리 위로 흑염의 폭풍이 떨어졌다.
화경의 묘리로 최대한 흘려보내고 있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8개의 꼬리를 개방했던 아이리스조차 이 정도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박현수는 숨이 턱 막혀 왔다.
‘이길 수 있을까?’
스승은 그의 명예를 되찾으라고 했지만, 명예 운운하기 전에 먼저 이길 수 있을지부터 파악했어야 했다.
‘더는 못 흘려보내.’
이쯤에서 몸을 빼야 한다.
의념을 전신에 두르고 흑강기를 내뿜었다.
태극마가 무너지며 불길이 파고들었다.
음양지체를 흡수한 천마지체는 화기에 강한 면역을 지녔지만, 상대가 상대인지라 피부가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박현수는 최대한 열기를 참아내고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아직은요.”
어느새 다가온 스승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서일이의 무공은 대표적으로 세 가지가 있다. 흑풍천일공(黑風天一功)이라는 심법과 흑로지염창(黑路之炎槍)라는 창술, 비천형(飛天形)라는 신법이다.]“하나같이 흉측한 이름들이네요.”
[맞다. 위력도 끔찍하지. 녀석이 이끈 흑풍대는 정찰대였지만, 녀석의 무공은 정찰과는 거리가 멀었어.]“상대법을 좀 알려 주세요.”
[창끝을 놓치지 마라.]“그게 끝이에요?”
[온다.]강서일이 허공을 박차고 이곳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바람의 마찰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창을 휘둘렀다.
천마신공의 흑강기와는 다른 느낌의 흑강기가 호수를 폭발시켰다.
박현수는 양팔을 교차시킨 상태로 다시 뒤로 물러났다.
호수에 내려앉은 강서일이 수면을 무섭게 밟으며 성큼성큼 다가왔다.
수면을 주먹으로 치자 거대한 물보라가 발생했다.
일단 상대의 시야를 가릴 목적이었지만.
“이런 씹!”
퍼버벙-!!
물보라에 커다란 다섯 개의 구멍이 뚫렸다.
박현수는 오로천으로 쏘아져 오는 기파를 흘려보냈지만, 그 범위가 상당해 후드 이곳저곳이 찢어졌다.
쇄애액!
정신을 차리기도 전, 물보라를 뚫고 온 강서일이 창을 휘둘렀다.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건 피하기 힘들다.
단전이 소용돌이치며 천마신공 극성으로 발현되었다.
의념이 주먹에 담겼다.
깡-!!
청량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박현수의 표정은 청량하지 못했다.
‘미친!’
주먹이 박살 난 것처럼 아프다.
눈물이 찔끔 나올 지경이었다.
반면, 강서일의 눈은 살짝 가늘어졌다.
그는 가볍게 착지한 후 아래에서 위로 창을 휘둘렀다.
박현수는 백 텀블링으로 공격을 간신히 피했다.
강서일이 창을 한 번 털어 내곤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 무공, 어디서 배웠지?”
“……말할 줄 알아?”
“묻는 말에나 대답해라.”
공기가 진동한다.
어마어마한 살기가 공간 전체를 잠식했다.
일순간이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박현수는 눈동자만 굴려 스승을 보았다.
천경의 눈이 더욱 슬퍼졌다.
차라리 이지를 상실한 상태였다면 좋았을 것을.
시체만 농락당한 게 아니라, 영혼까지 농락당했다.
분노가 끓어올랐지만, 당장에 해소할 곳이 없었다.
‘어떻게 할까요?’
[혼란만 가중할 뿐이다.]‘알겠습니다.’
박현수는 대답하지 않고, 대신 마보 자세를 취했다.
“말할 생각이 없다면, 말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주지.”
흑풍천일공의 검은 바람이 휘몰아친다.
창을 두어 바퀴 빙빙 돌리곤 양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지금부턴 봐주지 않겠다.”
지금까진 봐줬다는 뜻이다.
박현수는 부정하지 못했다.
그는 쉴 새 없이 몰아칠 수 있음에도, 가만히 지켜보는 것으로 몇 번이 기회를 주었다.
‘할리.’
-위험해, 현수.
‘알고 있어.’
-히잉.
할리가 우는 소리를 내며 건틀렛으로 변형했다.
“재밌는 장갑이구나.”
“오기나 하십쇼.”
“예의는 바르군.”
강서일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갔다.
“간다.”
그가 짧게 중얼거렸고, 신형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박현수는 호신강기를 두르는 동시에 가드를 올렸다.
빡!
창대가 박현수의 팔뚝을 후려쳤다.
그는 몸이 뒤로 날아가려는 걸 견디고, 최대한 중심을 유지했다.
검은 불꽃이 맺힌 창날이 아래에서 활처럼 쏘아졌다.
박현수는 손목을 꺾어 바깥쪽부터 안쪽으로 창대를 휘어잡았다.
오로천의 탈력으로 몸이 붕 떠올랐다.
박현수는 창대를 움켜쥐고 밀려오는 힘을 이용해 앞으로 나갔다.
구부러진 무릎이 펴지며 강기 실린 다리가 강서일의 머리를 노렸다.
강서일은 목을 돌려 가볍게 공격을 피하고 창을 반 시계 방향으로 회전시켰다.
“으앗!”
박현수의 몸이 옆으로 휙 돌아갔다.
[흑로지염 이창(二槍)] [사냥하는 오소리]허공에서 한 바퀴 회전한 박현수를 향해 뻣뻣한 창대가 휘어질 정도로 추격해 왔다.
박현수는 천마비행으로 허공을 밟아 방향을 틀었다.
파바밧-!
창날이 공기를 폭사시켰다.
뒤편에 착지한 박현수가 강서일의 등에 일장을 날렸다.
그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고개를 돌려 그의 모습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위로 들었다.
어느새 하늘까지 솟아오른 강서일이 창을 아래쪽으로 조준하고 있었다.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피할까?’
그 생각은 빠르게 철회됐다.
왠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이때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승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박현수는 회피나 방어 대신 공격을 택했다.
천마신공이 운용되며, 검은 기운이 날개처럼 활짝 펼쳐졌다.
대기의 모든 기운이 천마신회류를 타고 모여들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힘이 천마신회류를 거치지 않고 그것들을 집어삼켰다.
강서일이 창을 일직선으로 찔렀다.
공간이 일그러지며, 사나운 흑염이 불새가 되어 날갯짓했다.
그러나 흑염의 불새마저 모든 것을 흡입하려 드는 인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것까지 쓸 줄 안단 말인가.”
강서일은 놀란 얼굴이 되었다.
그 역시 살아생전에 몇 번 보지 못한 절대적인 무공.
파천마권의 오의가 세상을 꿰뚫었다.
* * *
거대한 힘의 충돌에 기암괴석들이 먼지로 변했다.
호수의 물은 바닥이 보일 때까지 증발을 멈추지 않았다.
빗방울은 그치고, 먹구름은 한 톨조차 남지 않고 일제히 소멸했다.
천지를 아울러 신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최후의 일권이 만들어 낸 광경이었다.
강서일은 옷을 털어 내며 주변을 살폈다.
‘천령인을 보게 될 줄이야.’
비록 그분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급했지만, 천령인은 분명 천령인이었다.
천지를 가로지르는 일권은 주변을 초토화하다 못해 모든 것을 소멸시켰다.
흑로지염의 삼창(三槍) 날아오르는 새와 충돌한 여파긴 하지만 무시무시한 결과물인 건 변하지 않았다.
‘어떤 놈인지 모르겠지만.’
감히 천마신공을 익혔다.
교인도 아닌 주제에 말이다.
심지어 천마신공의 경지가 상당한 것을 보면 꽤 오래 수련해 온 듯했다.
용서할 수 없었다.
천마신공은 오로지 천마만을 위한 것.
천마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자가 익힐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다.
“잠깐. 천마신공은 계승되는 무공. 익히고 싶다고 익힐 수 있는 게 아닌 것을.”
놈은 대체 어찌 익혔단 말인가.
홀로 의문을 가져 봐야 무의미하다.
그는 창을 고쳐잡고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쾅!!
묵직한 충격이 느껴졌다.
강서일은 창대가 떨리는 걸 보았다.
“이걸 막아?”
박현수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강서일을 보았다.
그가 아래쪽으로 가는 걸 보고 속였다고 확신했다.
실제로 강서일은 그가 의념으로 만든 더미에 확실히 속았다.
“의념으로 만들어 낸 가짜 기척이었군.”
“제길.”
창대를 양발로 밀어냈다.
그대로 크게 회전해 뒤쪽에 있는 작은 기암괴석에 착지했다.
강서일은 창을 유려하게 돌리더니, 창대를 등에 바짝 붙여 세웠다.
“의념에 꽤 자신 있는 모양이구나.”
그는 조소를 지으며 창을 쥐지 않은 손을 앞으로 뻗곤 손가락을 까딱였다.
“이 창마께서 네놈의 한계를 알려 주마.”
“본인을 그렇게 높여 부르고 싶으쇼?”
“하늘 아래 나보다 위대한 존재는 거대한 우주 아래 단 한 분밖에 안 계시다. 그러니 네겐 스스로를 높여도 괜찮다.”
‘스승님이 아꼈다고 하더니, 죽이 잘 맞을 것 같은 성격이네.’
몇 마디 대화에서 느껴진 그의 심성은 절대 순하지 않았다.
오히려 포악했다.
문제는 그 포악함을 감당할 정도의 실력이 있다는 것이다.
‘놈을 쓰러트리려면 사상 붕괴 말고는 없겠어.’
그에게도 ‘천지창’이라는 각성 의념이 있긴 하지만, 무엇이 됐든 선빵 필승이다.
지금 현경이 아니라면 이 법칙이 분명 통할 것이다.
아직 사상 붕괴와 무공을 접목할 만한 방법을 찾진 못했지만, 언제나 위기 상황에서 성장했던 자신이었다.
이번에도 그러지 말란 법은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이는군.”
“시끄러!”
천마추혼으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강서일이 창을 축 내리며 그게 휘저었다.
오로천으로 창을 흘려보내며 가슴 안쪽까지 파고들었다.
그러나 그는 당황한 기색은커녕, 여유만만하게 조소를 짓고 있었다.
“의념이란.”
그 순간이었다.
박현수는 다가가는 것을 멈추고, 천마탈혼으로 빠져나가려고 했다.
하나, 이미 늦었다.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거대한 창 여섯 개가 박현수를 에워쌌다.
기공으로 이루어진 창이 아니었다.
강서일의 심상이 의념을 통해 발현된 진짜 창이었다.
“의념의 수준이 다르다, 애송아.”
모든 창이 박현수를 꿰뚫었다.
* * *
천경은 제자의 기습이 실패한 것을 보고 혀를 찼다.
기습은 날카로웠지만, 창마 강서일은 저래 봬도 정찰대인 악호대의 대주였다.
기감만큼은 교에서 손에 꼽힐 정도였다.
기습이 무위로 돌아가자 박현수는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좋은 판단이었다.
두 사람은 잠깐 대치한 채로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죽었어도 여전한 놈이로군.’
항상 자신감으로 가득 찼던 무인이 바로 강서일이었다.
아닌 말로 자신이 그의 상관이었기에 망정이지, 부하였다면 정말 끔찍했을 것이다.
문제는 저 자신감이 허세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화가 끝이 나고 박현수가 천마추혼으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강서일이 창을 휘젓는 모습에, 오로천으로 공격을 모두 흘려보냈다.
칭찬해 마땅한 실력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강서일이었다.
‘의념을 본격적으로 쓸 생각이군.’
그 생각처럼, 의념으로 이루어진 여섯 자루의 거창이 박현수를 에워쌌다.
‘어째야 하지?’
그의 제자는 저것을 막을 수 있을까?
그 정도로 의념이 숙련되었던가?
마음 같아선 지시를 내리고 싶었지만, 더는 그럴 수 없었다.
만약에라도 박현수가 훈수를 따라오지 못한다면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제자를 못 믿는 게 아니라, 싸움의 수준이 현경에 근접해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제자가 죽는 꼴을 지켜볼 수만은 없는 노릇.
‘빙의를…….’
빙의를 쓰면, 더는 제자의 곁에 있을 수 없었다.
하지만 도저히 피할 각이 나오지 않는다.
그가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때.
동시에 여섯 개의 창이 박현수를 꿰뚫었다.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천경은 당장에라도 빙의를 사용하려고 했다.
지금 빙의하면 살릴 수 있다.
그때였다.
“가만히 있으십쇼!”
박현수의 외침이 공기를 울렸다.
천경의 눈이 커졌다.
여섯 개의 창이 깨져 나간다.
그의 의념으로는 강서일의 의념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랬어야 했다.
“이놈, 진기를!”
강서일이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박현수는 귀화가 타오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스승에게 말했다.
“거기서 지켜보고 계십쇼.”
[현수야, 안 된다!]“걱정하지 마세요.”
제자가 스승을 보며 빙긋 웃었다.
“죽지 않을 테니까.”
[그런 뜻이 아니잖느냐! 모든 무공을 잃을 것이다!]“괜찮아요. 그 정도쯤은.”
“혼자서 뭐라 떠드는 것이냐!”
강서일의 창에서 칠흑보다 어두운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는 죽음으로부터 거슬러 오며 전성기의 힘을 잃었지만, 현경에 도달해 본 이상 그때의 힘을 흉내 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보여 주마. 진정한 의념의 힘을!”
[천지창(天地滄)]그의 각성 의념이 검은 선이 되어 하늘과 땅을 이었다.
“상성이 안 좋아.”
박현수는 천지가 하나가 된 것 같은 광경을 보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뭐라?”
“결국, 당신은 시한폭탄이었어.”
박현수는 기혈이 급속도로 팽창하는 걸 느끼며 눈살을 찌푸렸다.
‘시한폭탄은 나였나.’
그래도 좋다.
그는 의념으로 가득 찬 세상을 보았다.
이것이 ‘현경’의 세상.
진기를 소모해 강제로 도달한 영역은 과연 초월의 영역이라 할 만했다.
문제는 생명력이 빠르게 고갈되는 게 느껴졌다.
아마 지금을 마지막으로, 영영 무공을 못 쓰게 될지도 몰랐다.
그래도 좋은가?
‘스승님을 잃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족해.’
박현수의 다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천마군림]천지가 뒤집힌다.
강서일은 천지창이 어긋나는 것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천지창은 그의 각성 의념.
그보다 고수라도 쉽게 파훼할 수 있는 무위가 아니었다.
“천마군림에 의념을 실었다?”
그것 말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정말 진기를 소모해 현경에 도달했단 말인가?
“그런 일시적인 현경 따위,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내겐 스승님이 더 중요하니까.”
“스승?”
“스승님이 말하셨어.”
박현수는 천천히 주먹을 쥐며 말을 이었다.
“당신의 명예를 지키라더군.”
“……그게 무슨 뜻이냐.”
“말 그대로. 은인의 명예를 더 이상 모욕되지 않게 하라고 명하셨다.”
은인?
세상천지 자신을 은인이라 부를 사람은 단언컨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그러나 말이 되지 않았다.
강서일은 확인받기 위해 그 이름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 말을 한 분이, 주군…… 천경 님을 말하는 것이냐?”
박현수는 대답하지 않고 기운을 오른 주먹에 응축시켰다.
“너의 스승이, 천경 님이란 말이냐?”
세상이 그에게 집중한다.
강서일은 답답한 목소리로 재촉했다.
“빨리 말해라!”
“그래. 내 스승님의 본명되신다.”
“말도 안 되는……. 너는 무림인이 아니다. 그 같잖은 버러지들의 적일 뿐이잖나.”
같잖은 버러지들은 킹과 그 수하들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만.”
박현수가 그의 말을 끊었다.
“시간이 없어.”
진기가 빠르게 소모된다.
그 전에 승부를 내야 한다.
“스승님께서 말하길.”
[의념]“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서 그만 쉬라십니다, 선배.”
[사상 붕괴] [천령인]“아.”
강서일은 거대한 힘에 거스를 수 없었다.
한 무인이 목숨을 걸고 강제로 열어 낸 현경의 힘이었다.
대가는 절대 평범하지 않을 테지만, 지금만큼은 그가 최강이었다.
‘주군.’
강서일은 마지막으로 봤던 주군의 얼굴을 떠올렸다.
떠오르지 않는다.
사후 망각은 그에게 가장 중요했던 인물조차 잊게 했다.
그는 박현수의 말을 고스란히 믿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익힌 천마신공은 진짜였다.
‘꼴이 우스워졌군.’
버러지 같은 것들에게 이용당하는 것도 모자라, 까마득한 후배에게 패배했다.
비록 전성기의 실력이 아니었지만, 자존심이 상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나, 그보다 박현수가 전해 온 천경의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주군이시여, 그날의 불충을 용서하소서.’
그의 몸이 천천히 가루가 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크아아아악!”
사방에서 검은 사슬이 튀어나와 그의 몸을 묶었다.
사슬은 그의 소멸을 허락하지 않았다.
-너는 아직 짐의 명령을 이행하지 못했노라.
강서일의 눈이 까맣게 죽었다.
사악한 힘이 창궐하기 시작했다.
폰들의 제약이 그 힘을 뒤덮었다.
‘안 돼.’
이지가 소멸한다.
강서일은 아득해지는 시야 속에서 주군의 얼굴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