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06
훈수 두는 천마님 104편
천지를 가로지르는 검은색 선과 그 선의 균형을 완전히 무너트리는 발 울림, 마지막으로 조화된 모든 것을 파괴하는 일권.
천경은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은 강렬한 빛을 보며 슬며시 눈을 감았다.
진기까지 끌어낸 박현수는 일시적으로 현경에 진입했고, 결국 강서일을 완전히 영면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의 더럽혀진 명예를 지켜 낸 것이다.
한데 왜 이리도 슬프단 말인가.
뒤따라갈 터이니.
천경은 뒷말을 삼키고 흐릿해지는 빛을 보았다.
박현수가 호수 위로 사뿐히 착지했다.
일시적이라곤 하지만 현경의 힘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보내 드리고 왔습니다.”
그는 스승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천경은 잘했다는 얼굴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의 좋은 가르침 덕분이죠. 하하!”
[실없기는.]천경은 작게 웃었지만,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박현수의 내공은 느리지만, 분명히 소멸하고 있었다.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소멸하는 것이다.
소멸한 내공은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으며, 결국엔 모든 것을 잃고 평범한 인간이 되리라.
어쩌면 진기라 불리는 생명력을 끌어다 쓴 탓에 신체 일부분을 쓰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
“돌아가죠.”
이곳에서 스승을 잃지 않았다.
운명의 장소가 아니었던 것이다.
박현수는 안도했다.
비록 많은 걸 잃었지만, 가장 중요한 스승님을 잃지 않은 것만으로 충분했으니까.
분명 그럴 거라 생각했다.
――――――――――――――――!!!!
하늘에서 새까만 기운이 폭발했다.
고막이 터지며,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의 이명이 발생했다.
박현수는 기막을 펼쳤지만, 기막조차 먼지가 되었다.
천경의 눈에 경악이 어렸다.
새까만 기운이 한 점으로 응축되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형상을 갖추었고, 이윽고 한 자루의 창을 만들어 내었다.
먹구름이 개어 창창하던 푸른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불길한 바람이 불어오며, 호수가 그에 맞춰 출렁였다.
하늘에 떠 있는 이는 분명 영면에 들었어야 할 강서일이었다.
한데, 시체 같던 피부는 어디 가고, 독에 오염된 듯한 보라색 피부를 하고 있었다.
머릿결도 생기가 돌았다.
무엇보다 얼굴의 흉터가 어느 때보다 선명했다.
“젠장, 무슨 일이…….”
박현수는 어질한 머리를 털어 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사상 붕괴의 묘리가 담긴 천령인에 정확히 직격당했다.
견딜 수 없는 공격이었고, 일부분이 소멸하는 과정을 두 눈으로 직접 지켜보았다.
그런데 소멸하긴커녕, 훼손된 부분까지 완벽하게 수복되었다.
무엇보다, 느껴지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다.
“칫!”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진 모르겠지만, 현경의 힘이 남아 있을 때 끝을 봐야 했다.
박현수는 고민할 것도 없이 강서일에게 뛰어올랐다.
박현수는 스승의 제지를 무시하고, 내력을 극성으로 개방했다.
경지에 오른 흑강기는 단순히 까맣지 않았고, 마치 비단처럼 부드러운 빛을 흘렸다.
천마비행으로 순식간에 위로 올라간 그는 강서일을 향해 일권을 뻗었다.
휘리릭-!
창이 회전한다.
박현수의 눈이 부릅떠졌다.
“컥!”
왼쪽 골반에서 오른쪽 어깨까지 베였다.
호신강기가 종잇장 수준으로 전락했다.
아무리 약해지고 있는 상태라지만, 현경은 현경이었다.
현경에게 피해를 주려면 적어도 같은 현경이거나, 그 이상의 경지에 도달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현경이라고?’
이미 죽은 자이기 때문에 자신처럼 끌어올릴 진기도 없을 터였다.
박현수는 기로 상처를 압박해 출혈을 멈추었다.
상대가 현경이라는 건 충분히 알았다.
그렇다면 그에 맞춰 상대할 뿐이다.
‘시간이 없어.’
힘을 잃기 전에 끝내야 한다.
허공을 박차고 강서일에게 돌진했다.
창이 부드럽게 움직이더니, 수많은 잔상을 그리며 쇄도해 왔다.
박현수는 파천마권으로 응수하며, 상대와 거리를 좁혀 갔다.
의념과 의념의 싸움.
누구의 의념이 더 강하냐에 따라 승부가 날 것이다.
흑강기가 둥글게 형성되며, 매섭게 돌아가는 바퀴처럼 강서일의 창을 긁었다.
불똥이 튀어 오를 정도로 격렬한 충돌이었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게 흑륜을 쳐 냈다.
그 사이에 약간의 틈이 생겼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천마추혼으로 바짝 붙어 장을 날렸다.
그러자 강서일도 손바닥에 내기를 불어넣고 일장을 내질렀다.
파앙-!
공기가 터졌다.
소매가 부풀어 오르더니 그대로 찢겨 나갔다.
기혈에 부담이 갔지만, 공격을 멈출 수 없었다.
다시 한번 추격해, 투로(鬪路)를 이어 갔다.
가까운 거리인데도 창은 상관없다는 듯 자유롭게 움직였다.
의념으로 강화된 파천마권 전반 6초식이 난잡하게 펼쳐졌다.
모조리 창에 막혔다.
이를 악물고 창 안쪽으로 다리를 넣어 창대에 오금을 걸었다.
그대로 뺏을 작정이었는데, 강서일의 눈이 빛났다.
다리가 걸린 상태에서 고속으로 회전하는 창이 탄환처럼 박현수의 얼굴을 노리고 날아왔다.
비스듬히 고개를 트는 순간, 머리가 꿰뚫리는 이미지가 그려졌다.
재빨리 다리를 풀었다.
박현수의 몸이 딱 1보 뒤로 물러나며, 내공으로 이루어진 폭풍을 일으켰다.
경지가 미숙했을 때도 학센의 몸뚱이를 난자했던 파괴력이었다.
한데.
쿠확-!!
폭풍이 찢기며 육안으로 보일 정도의 커다란 구멍이 만들어졌다.
그 범위는 고개를 트는 것 정도로는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박현수가 놀라는 사이에 다시 창이 그를 노리고 쏘아졌다.
박현수의 등 뒤로 빛을 흘리는 검은 날개가 펼쳐졌다.
[흑접비]‘크윽!’
한쪽 날개가 꿰뚫렸다.
그래도 팔을 잃는 건 피할 수 있었다.
두 번의 공격이 실패하자 강서일의 표정이 나빠졌다.
그는 상체를 바짝 숙이더니 허공을 박찼다.
그의 신형이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유롭게 움직였다.
허공을 밟아 움직이는 박현수와 비교하면, 압도적인 기동력이었다.
아까 전엔 저런 기술을 쓰지 못했다.
‘현경이 됐기 때문인가?’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다.
[지상으로 내려와라!] [훈수 듣기가 발동합니다!]오랜만에 들려오는 알림음.
박현수는 추락하듯 호수 아래로 떨어졌다.
풍덩- 소리와 함께 축축한 느낌이 전신에서 느껴졌다.
양손에 강기를 둘렀다.
그리고 의념을 덮어씌웠다.
수면 위로 빠르게 다가오는 그림자가 보였다.
그림자가 가장 커진 순간.
아홉 개의 검은 구체가 주변으로 떠올랐다.
수면이 소용돌이치더니, 한 자루의 창이 하얀 포말을 가득 일으키며 나타났다.
동시에 박현수의 두 손이 하나가 되자, 모든 구체가 일제히 창을 향해 움직였다.
* * *
“쿨럭, 쿨럭.”
“언니 깼어요?”
“어떻게 된 거야……?”
칭란은 힘겹게 뜬 눈으로 주변을 보았다.
하유락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녀를 보며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겨 주었다.
“일단은 모든 영역이 공략됐어요.”
“너희가…… 그 붕대 녀석을 쓰러트렸어?”
“붕대 녀석? 그런 놈은 없었어요. 그곳엔 언니랑 모드만 기절한 채 누워 있었어요.”
“……놈을 죽이지 못했는데 어떻게 공략이 된 거지?”
“언니!”
칭란은 몸을 일으키다 강한 현기증에 잠시 휘청였다.
하유락이 유난을 떨자, 그녀가 괜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
“엄청난 놈이었어. 나와 모드를 일격에 제압했고, 모든 부대원을 어딘가로 이동시켜 버렸어.”
“현수가 쓰러트린 거 아녜요?”
“박현수가?”
박현수는 S급으로 취급하기엔 이미 너무 강해졌지만, 그렇다고 해도 붕대 녀석을 쉽게 이길 것 같진 않았다.
그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였다.
그런데 그곳이 공략됐다는 건, 놈이 죽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영역의 주인이 영역을 포기할 수 있단 사실을 모르는 그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모드는 좀 어때?”
“안정을 취하고 있어요. 그런데 팔이…….”
칭란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옆에서 다이아몬드 정도로 경화된 그의 팔이 날아가는 걸 똑똑히 보았다.
깨어난다면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보다, 저길 봐요.”
그녀는 하유락이 가리킨 곳을 보았다.
“저, 저게 뭐야?”
칭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신이 없어 보지 못하고 있었는데, 단순히 못 봤다고 치부하기엔 끔찍할 정도로 불길한 ‘포탈’이 하늘에 있었다.
“모든 영역이 공략되고 만들어진 포탈이에요. 아마 저곳까지 공략한다면 끝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 정도면 매번 기록이 경신되는 수준이었다.
역대급 포탈.
이런 말로도 부족했다.
포탈 임팩트가 발생한 지 2년하고도 반년이 흘렀다.
많은 포탈이 나타났고, 최근 반년은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은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결국 서 있는 건 인류였다.
한데 저건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저런 걸 공략해야 한다고?”
붕대 녀석조차 어쩌지 못했던 자신들이?
그들이 포탈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드디어 찾았다.”
“질.”
질 로드먼이 땀을 닦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모자를 벗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끔찍한 재앙이야.”
“다른 사람들은?”
“오고 있어.”
좌표를 찍어 놨으니 곧 도착할 것이다.
그는 절망스러운 표정을 한 칭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미 박현수는 올라갔어.”
“뭐?!”
“진짜야?”
두 여자가 동시에 소리쳤다.
질 로드먼은 당황하지 않고 고개를 주억였다.
“내 혼돈에 잡혔어. 그것도 꽤 오래전에.”
그는 하늘에 포탈이 올리자마자 혼돈의 힘으로 누군가 저곳에 들어가지 않을지 계속해서 확인했다.
그때 잡힌 게 박현수였다.
정확히는 박현수로 추정되는 거대한 기운이었다.
“도우러 가야 해.”
아무리 박현수라도 포탈에서 느껴지는 공포는 S급 헌터들조차 움츠러들게 만들 정도였다.
박현수가 논외의 강함을 가졌더라도 혼자 해결할 수 없을 터였다.
“저기 오는군. 도착하는 대로 출발하지.”
질 로드먼의 말에 두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칭란은 붕대 녀석이 계속 걸렸지만, 당장은 저곳이 우선이었다.
그녀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좋으나 싫으나, 공략대를 책임질 총사령관이다.
“다들 집합!”
작은 소녀의 성대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 * *
호수의 절반이 사라지고, 기암괴석 대부분이 무너졌다.
박현수는 축 늘어진 왼팔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진기의 소모가 가장 먼저 왼팔을 가져갔다.
모두 치열한 접전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미쳐 버리겠군.’
천경이 다급하게 다가왔다.
박현수는 그에게 손을 들어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아직은, 아직은 괜찮아요.”
[왼팔이 맛이 갔는데 뭐가 괜찮다는 것이야!]“저자도 멀쩡하진 않잖아요.”
박현수는 너덜너덜해진 강서일을 턱짓했다.
확실히 그의 꼴도 정상은 아니었다.
현경 간의 싸움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할 정도로 치열했다.
화경은 그 안에서 여러 경지로 구분하지만, 현경부터는 그런 게 없었다.
이때부턴 경지의 차이가 아닌, 단순히 강함의 차이로 승부가 난다.
“충분히 할 수 있어요.”
[한쪽 팔 없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스승님을 잃는 것보단 나아요!”
천경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지금 자신은 대체 무얼 고민하고 있단 말인가.
세상을 피로 물들였던 천마가 고작 인연 때문에 주저하고 있단 말인가.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었다.
하늘 아래 자신을 제외한 모든 생물은 평등하다 여겼다.
‘처음엔 무림으로 돌아가기 위한 도구라고 생각했거늘.’
이제는 없어선 안 될, 가져 본 적도 없는 핏줄처럼 느껴졌다.
박현수가 전투 자세를 취했다.
팔이 하나 없어도 의념으로 대체하면 그만.
“지켜보고 계세요. 그리고 당신이 만들어 낸 게 무엇인지 똑똑히 보세요.”
천마신공이 극성을 넘어 초월의 영역에 발을 걸쳤다.
고고한 은하수와 같은 흑강기가 몸을 타고 넘실거렸다.
강서일이 창을 고쳐 쥐었다.
두 무인이 동시에 움직였다.
따앙-!
맑은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박현수는 창끝에 닿은 주먹을 있는 힘껏 밀었다.
천마신공의 내공이 폭발했다.
강서일이 뒤로 주춤한 순간, 빠르게 다가가 옷깃을 움켜쥐었다.
그가 손을 털어 뿌리치려는 걸, 옷깃을 놓는 것으로 피하고 역으로 손목을 낚아챘다.
수준급의 금나수였다.
창이 목을 노렸다.
낚아챈 손목을 잡아당기며 바깥으로 몸을 회전시켰다.
창이 허공을 가로지름과 동시에 박현수의 팔꿈치가 옆구리를 찔렀다.
강서일의 몸이 축 밀려났지만, 손목은 아직 붙잡혀 있었다.
그대로 손목을 잡아당기며, 전력으로 뛰어 무릎으로 턱을 노렸다.
턱이 뒤로 휙 넘어가자, 무릎이 허공을 스쳤다.
그때, 박현수는 무릎을 펼쳐 낡아빠진 혁대에 발을 걸쳤다.
강서일이 혁대를 풀어 버렸다.
“칫!”
가슴을 한 번 차고 뒤로 뛰어올랐다.
주춤한 강서일은 자세를 고쳐잡고 창을 앞세운 채 황소처럼 돌진했다.
극성으로 운용되는 흑풍천일공이 검은 폭풍을 일으켰다.
뻐엉-!
공기가 터져 나가는 소리가 울렸다.
박현수는 교차시킨 양팔이 저렸다.
강서일은 그를 힐끗 보곤 창을 아래로 떨어트렸다.
창끝이 아래로 떨어지더니 방향을 왼쪽으로 비스듬히 틀었다.
박현수가 있는 방향이었다.
그가 발끝으로 막대 밑부분을 찼다.
검은 바퀴가 창을 떨어트렸다.
강서일은 수면에 닿기 직전에 창을 낚아채고 그대로 투창했다.
퍽-!
“크악!”
어깻죽지가 꿰뚫렸다.
멀리서 스승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어차피 쓰지 못하는 왼쪽 어깨였다.
박현수는 오른손을 들어 인력을 발동시켰다.
강서일은 당겨오는 힘을 오히려 이용하겠다는 듯, 이기어의 수법으로 창을 붙잡은 다음 매섭게 창을 찔러왔다.
의념으로 이뤄진 창 수 자루가 동시에 떨어졌다.
퍼버벙-!
물보라가 백여 미터 이상 치솟았다.
‘딱 한 번이면 되는데.’
박현수는 시야가 흐릿해지는 걸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딱 한 번의 기회만 온다면 이길 수 있다.
그는 아까부터 사상 붕괴의 힘을 오른손에 집중시키고 있었다.
제대로 된 일격을 꽂지 못해서 계속 아껴 두고 있었다.
기회가 생겨서 사상 붕괴가 담긴 일권으로 놈의 본질을 파괴할 수만 있다면 승리다.
문제는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려웠다.
‘변수는 없나.’
결국, 스승이 나서야만 된단 말인가?
박현수는 스승이 사라질 정도의 기술이 뭔지 알지 못했다.
만약 그 기술을 사용한다면 지금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어린애 칭얼거림처럼 들려도, 아직 이별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었다.
‘내가 해내야 한다.’
두 눈에 검은 귀화가 깃들었다.
‘이 한 번이 끝이야.’
진기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모든 진기를 소모한다면 그땐 무인으로서의 힘을 잃을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위협받을 것이다.
강서일도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천지창이라고 했던가.
하늘과 땅을 잇는 검은색 선.
아까 전엔 허무하게 깨졌지만, 지금의 천지창은 보는 것만으로도 상상을 초월했다.
하늘과 땅을 잇는 검은 선은 바로 창이었다.
강서일의 의념이 궁극으로 완성된 형태.
그가 검은색 창을 쥐었다.
콰지직-!!
검은 전류가 사방으로 흐르며 아무것도 없던 하늘이 순식간에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파괴적인 위력이 느껴졌다.
하지만 저것도 결국 ‘본질’이 존재할 터.
“후우.”
박현수가 짧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고개를 치켜든 순간.
천지창이 떨어졌다.
동시에 일권을 정면에 내질렀다.
콰아아앙-!!!!!!!
천지가 들썩일 정도의 무식한 충돌이었다.
대기가 비틀리고, 초월적인 힘에 이계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힘의 축은 한쪽으로 급속도로 쏠리기 시작했다.
천경은 기운을 일으켰다.
사상 붕괴는 각성 의념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힘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많이 약해진 박현수는 천지창의 본질을 파괴하는 데 실패했다.
남은 방법은 빙의뿐.
천경이 박현수에게 손을 내밀었다.
“바아아아아악- 혀어어어언- 수우우우우우!!!”
그때, 익숙한 처자의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새하얀 불길이 하늘을 가로질러 강서일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뒤이어 세상이 입체도면처럼 바뀌더니, 공간을 가르는 참격이 날아왔다.
검은 난초가 바닥에서 솟구치고, 혼돈의 구체가 몸을 부풀렸다.
아무리 현경이라도 S급 헌터 네 명의 집중포화에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모두……!”
박현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모두 끝이라고 생각했다.
죽음을 받아들이거나, 스승을 떠나보내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둘 다 아니었다.
그에게는 동료들이 있었다.
“늦어서 미안하다.”
타케시가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발도했다.
강서일의 몸에 굴곡이 생기나 싶더니, 가슴 한복판에 칼자국이 생겼다.
하지만 호신강기를 뚫지 못했다.
“내가 있어!”
특유의 공간 이동으로 그의 앞에 나타난 칭란이 어그러진 호신강기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검은 난초가 사방으로 자라났다.
그 위로 순백의 화염으로 이루어진 검이 꽂혔다.
칭란은 곧장 뒤로 물러났다.
순백의 화염은 그녀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열기를 자랑했다.
호수가 증발하기 시작했다.
“네가, 아끼는 내 동생을 저리 만들었냐?”
전신을 덮을 화염이 분노로 펄럭였다.
“각오해라.”
불의 검을 양손으로 쥐자,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광선처럼 쏘아졌다.
[굉장한 열기!]천경이 놀랍다는 목소리로 외쳤다.
남아 있는 기암괴석의 잔해들이 빛에 닿자마자 붉은빛을 내며 녹아내렸다.
그러나, 그 역시 강서일의 호신강기를 뚫지는 못했다.
오히려 천지창의 일부가 그녀를 노렸다.
박현수가 피하라고 외치려 할 때 질 로드먼이 혼돈으로 그녀를 이동시켰다.
그러나, 천지창은 각성 의념.
의지가 닿는 곳이라면 어디로든 향할 수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날 잊었습니까, 선배?”
박현수의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진기를 모두 소모할 작정으로 내공을 일으켰다.
이 한 번으로 모든 것을 잃어도 좋다.
왼발을 앞으로 내밀고, 뒤로 빼낸 주먹을 다시 한번 지른다.
“……!”
강서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천지창이, 또다시 깨져 나갔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일직선으로 뻗어 나간 천령인은 그의 호신강기마저 헤집어 버렸다.
그리고 박현수는 보았다.
“……당신.”
“주군의 제자인 너라면, 끊을 수 있다.”
강서일이 굵직한 사슬에 포박되어 있었다.
일전에도 저 사슬들을 본 적 있었다.
-키, 킹의……!
할리를 포박하고 있던 사슬과 같은 종류였다.
결국, 이런 꼴로 만든 것은 킹이었단 말이나 다름없었다.
“진짜로 쉬십시오.”
“진짜로 그리되길 빈다.”
박현수가 손을 젓자 모든 사슬이 깨져 나갔다.
강서일은 씁쓸하게 웃다가, 표정을 굳혔다.
“……주군.”
박현수의 뒤로 보이는 낯익은 노인.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모습보다 많이 늙긴 했지만, 그는 분명 평생을 충성했던 자신의 주인 천마 천경이었다.
“아아.”
진짜였구나.
강서일의 마지막은 전혀 씁쓸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밝게 웃으며 가루가 되었다.
박현수는 그의 마지막을 보며,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