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07
훈수 두는 천마님 105편
박현수는 시야가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몸이 비틀거리더니, 다리가 풀려 그대로 주저앉았다.
-현수! 정신 차려, 현수!
할리가 애타게 소리쳤지만,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선 작게 울리는 메아리에 불과했다.
단전이 텅 빈 게 느껴졌다.
‘끝이구나.’
최후의 일격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다가왔다.
강서일을 쓰러트리는 순간, 모든 진기가 소모되었다.
무공을 잃어도 삶을 잃지는 않으려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다.
‘스승님은 어디 계시지.’
눈이 멀고, 귀가 먹었다.
촉감도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오감이 전부 상실된 모양이었다.
몸이 으슬으슬 떨려 왔다.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홀로 적막함을 느끼며, 알 수 없는 공포심이 차올랐다.
이것이 죽음인가.
‘죽고 싶지 않은데.’
동생도 깨어날 조짐도 보이고, 돈도 많이 벌 수 있게 되었다.
지구가 위험에 처했지만, 어떻게든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을 거라 믿어 왔다.
아니었다.
특이점이라고 치켜세워 주니 진짜 뭐라도 된 줄 알았다.
힘에 너무 도취해 있었나.
아니면 스승님을 잃을 수 없다는 압박감 때문에 무리를 한 것일까.
처음부터 동료들과 함께 상대했다면 이 지경은 안 되었을 텐데.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때, 마레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너는 여기서 멈춰선 안 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운이 좋았다. 마지막 경험치가 충족되었으니.
점점 거대해진 빛이 어둠을 뒤덮었다.
-너는 진화하리라.
[고유 능력 : 훈수 듣기의 레벨이 올랐습니다!] [천마지체[1레벨]가 변화하는 육체에 반응합니다!]어둠은 완전히 걷히고, 사방에 빛이 가득했다.
박현수는 잃어버린 모든 감각이 돌아옴을 느꼈다.
진기가 그 어느 때보다 충만하게 차올랐다.
비어 있던 단전에 소멸했던 내공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빛 속에서 수많은 인영이 자신을 바라봤다.
그중 가운데 서 있던 노인이 한 걸음 다가왔다.
일전에 한 번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네가 다음 대 천마다.”
[천마지체의 레벨이 올랐습니다!]개방되지 않았던 천마들의 기억이 머릿속에 가득 차올랐다.
‘초대 천마.’
그제야 저 노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많은 것이 베일에 싸여 있는 존재.
그가 자신을 인정해 주었다.
박현수는 몸이 재조립됨을 느끼며 기분 좋게 눈을 감았다.
* * *
“박현수!”
하유락이 그의 몸을 붙들었다.
“눈 떠! 의식을 잃으면 안 돼!”
“일단 치유계 헌터들에게 데려가자. 한시가 급하니까, 이럴 시간 없어.”
이곳엔 모드를 제외한 4명의 S급 헌터만 온 거라, 공략대 전원이 아래에서 대기 중이었다.
“아, 알겠어요.”
칭란의 말에 하유락은 그를 등에 업고 내려갈 준비를 마쳤다.
“이동하지.”
질 로드먼이 아래와 이어진 검은 구멍을 열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목숨이 끊어질 수도 있는 상황.
그들은 당황하지 않고, 최대한 침착하게 아래로 내려갔다.
천경은 굳은 얼굴로 그들을 따라갔다.
치유계 헌터들조차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면 더는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아빅, 모르테!”
타케시의 부름에 언급된 두 헌터가 재빨리 다가왔다.
다른 대원들은 갑작스러운 그들의 등장에 환호하려다가 급박해 보이는 상황처럼 보여 눈치를 살폈다.
“박현수가 죽어 가고 있다. 두 사람의 실력이 가장 뛰어나니 어떻게든 해 주길 바란다.”
타케시는 간절한 목소리로 그들에게 부탁했다.
“잠시.”
아빅이 바닥에 눕힌 박현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 옆으로 모르테가 자리를 잡았다.
먼저 아빅이 치유의 기운을 박현수에게 주입했다.
모르테는 맥박을 재며, 그의 눈과 코, 입을 살펴보았다.
“어, 어때?”
“호흡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CPR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계속 주입해 줘.”
“알겠어.”
아빅이 치유의 기운을 주입하는 동안 모르테가 손가락 끝에 날카로운 기운을 세우더니, 그대로 옷 앞부분을 세로로 잘랐다.
“세상에.”
근육질로 가득 차 있던 몸이 삐쩍 마르다 못해 앙상한 뼈마디가 드러났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시작하겠습니다.”
모르테는 최대한 힘을 조절하며 CPR을 시작했다.
심장에 펌프질을 하고, 고개를 들어 올려 인공호흡을 했다.
그 행동을 수차례 반복했다.
하지만 박현수는 깨어나긴커녕, 더는 숨을 쉬지 않았다.
“…….”
“왜, 왜 그러지?”
심각해 보이는 두 사람에게 하유락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무래도 늦은 것 같습니다. 맥박이 거의 멈추기 직전까지 줄어들었습니다. 호흡도 거의 안 합니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박현수는 특이점으로 세상을 구할 영웅이었다.
그 이전에 따뜻한 마음씨와 남을 생각할 줄 아는 좋은 사람이었다.
하유락은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박현수가 여기서 숨을 거둔다고?
믿을 수 없었다.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어 자신을 놀라게 만든 녀석이었다.
“안 돼……. 그건 안 돼.”
볼을 타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타케시는 착잡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질 로드먼은 모자를 푹 눌러썼고, 칭란은 말없이 창백한 박현수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천경은.
다른 사람들과 대조될 정도로 그의 얼굴이 환희로 물들었다.
아무도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천경만은 제자의 상태를 확실하게 감지하고 있었다.
분명히 모두 소모되었을 진기가, 거짓말처럼 차오르고 있다.
충만함을 넘어선 생명력이 박현수의 전신을 휘저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텅 빈 단전에 천마신공의 내공이 차오르고 있었다.
아직은 느려서 육안으로 살펴볼 수 없지만, 앙상했던 몸에 다시 근육이 서서히 붙고 있었다.
거짓말처럼 박현수의 몸은 원래대로 회귀하는 중이었다.
빙의란 스킬이 생겨났을 때만 해도, 절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제자가 진기까지 끌어올려 현경에 도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손에 지구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천경은 제자가 좋건 싫건, 빙의를 쓸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의 자랑스러운 제자는 이번에도 혼자 역경을 이겨 내고 있다.
마치 운명 같은 건 개나 줘 버리라는 듯 부활하고 있었다.
“잠깐.”
천경에 이어 칭란의 눈이 묘해졌다.
그녀는 박현수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눈을 크게 떴다.
“사, 살았어.”
“……무슨 소리예요?”
하유락이 훌쩍이며 묻자, 칭란이 박현수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가 얼굴을 매만졌다.
따뜻한 것이 피부에 온기가 돌고 있다.
“저, 정말입니다. 심장이 다시 뜁니다.”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말랐던 몸도 다시 근육이 차오르고 있어요!”
“진짜인가?”
타케시가 한걸음에 달려와 박현수의 상태를 살폈다.
“허.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서서히 차오르던 근육이 어느 순간부터 급속도로 부풀어 올랐다.
하유락은 그 광경을 보며 엉엉 소리가 날 정도로 울었다.
죽은 줄 알았던 박현수가 되살아났다는 행복에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보이란 말이야.”
질 로드먼은 안도 섞인 미소를 지으며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 박현수가 서서히 눈을 떴다.
* * *
“허억!”
룩은 심장에서 느껴지는 격통에 숨을 쉴 수 없었다.
‘이럴, 이럴 수는 없다.’
강서일에게 넘겼던 제약의 힘이 다시 그에게 돌아왔다.
그것은 아무리 룩이라도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는 비틀거릴 것도 없이 그 자리에 엎어져 경련을 일으켰다.
이대로 있다가는 죽고 말 것이다.
킹에게 가야만 한다.
그분이라면 이런 고통 따위 단숨에 지워 주시리라.
“너는 글렀어.”
그때, 젊어 보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룩은 떨리는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보았다.
그곳엔 청년이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도 갔어야 했어.”
“누, 누구…… 쿨럭!”
기침을 내뱉자 피가 한 바가지 쏟아졌다.
“누군진 모, 모르겠지만…… 살려, 살려 줘…….”
“네가 갔다면 일이 좀 더 잘 풀렸을지도 모를 일이지.”
“살려…….”
“제약이 걸렸다지만, 쓸모가 없어도 너무 없어.”
그는 쪼그려 앉아 얼굴 전체에 혈관이 돋은 룩의 얼굴을 비스듬히 바라봤다.
“내 시나리오에 넌 이제 필요 없을 것 같아.”
“…….”
더는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룩은 금붕어처럼 입술을 뻐끔거렸지만, 청년은 고개를 살살 저으며 일어났다.
그리곤 사뿐히 그의 머리에 발을 올리곤.
퍽-!
터트렸다.
경련하던 몸이 경직되더니, 그대로 늘어졌다.
청년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계속 관여하면 안 되는데.”
킹의 군세가 처음 발호한 순간부터 얼마 전까지, 그는 하는 일에 간접적인 도움만 줄뿐 어지간하면 관여하지 않았다.
한데 ‘특이점’이라 불리는 박현수의 등장으로 일이 조금 꼬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킹의 계획이 틀어진 거지만, 크게 볼 땐 청년 역시 피해를 보고 있었다.
그래서 손해를 감수하고 킹을 딱 한 번 도와줬다.
바로 박현수의 대적자를 찾아 주는 것.
생각보다 강한 개체가 걸려서 문제없이 박현수를 정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오산이었다.
녀석의 저력이 그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러고 있다간 시나리오가 무너지겠어.”
얼마나 많은 고객이 기다리고 있는데 절대 그것만큼은 사양이었다.
“직접 손을 쓰고 싶지 않았는데.”
킹에게 소설가라고 불렸던 청년은 주머니에 손을 넣곤 어딘가로 향했다.
“그때 치울걸.”
그는 박현수의 뒤를 봐주고 있는 초월적인 존재를 떠올렸다.
“어려울까?”
잘 모르겠다.
어차피 강함을 떠나서, 실체가 없다면 가만히 구경할 수밖에 없으리라.
“개연성 없다고 욕먹지는 않겠지?”
청년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 * *
“박현수!”
하유락이 덮치듯 그를 껴안았다.
막 눈을 뜬 박현수는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누, 누나?”
“어흐흑……. 살아나서 정말, 정말로 다행이야.”
그녀는 박현수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서럽게 울었다.
칭란은 어울리지 않는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타케시와 질 로드먼은 그들을 지켜보다가, 상황을 정리하겠다며 공략대 쪽으로 향했다.
박현수는 당황하긴 했지만, 그녀가 얼마나 걱정했을지 알고 있었기에 천천히 등을 두들겨 주었다.
“미안해요.”
“다신, 다신 죽지 마. 다시는…….”
“알겠어요, 두 번 다시는.”
하유락이 훌쩍이며 고개를 들었다.
벌겋게 부은 눈과 코는 그녀의 미모를 바라게 했지만, 어쩐지 귀엽게 느껴졌다.
박현수는 어깨를 으쓱이며 웃어 보였다.
하유락이 피식 웃었다.
“울다 웃으면 엉덩이 뿔난대요.”
“장난치지 마.”
“컥.”
박현수의 농담에 하유락이 배에 주먹을 꽂아 넣곤 민망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괜히 자리를 옮겼다.
“다행이구나.”
“그러게요.”
“모두가 걱정했어.”
“죄송해요.”
칭란은 다시 한번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더 쉬고 있어.”
“네.”
그녀는 하유락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혼자 남은 박현수는 그제야 옆을 바라볼 수 있었다.
“스승님.”
[너란 놈은 스승을 괴롭히는 데 천재로구나.]“괴롭히다뇨. 괴로워서 죽을 뻔한 건 저였는데.”
[몸은 어떻냐.]“좋아요. 아니. 아주아주 좋아요.”
새롭게 태어난 느낌이었다.
실제로, 또 한 번의 환골탈태를 겪었다.
하지만 낙원의 파편 때와는 꽤 달랐는데, 그땐 육체가 거대한 힘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적응하기 위해 진화를 했다면, 이번에는 완전히 재구성되었다.
뼈와 근육과 혈관과 신경과 기혈 전부 새것이 된 것이다.
“그러고 보니, 고유 능력의 레벨이 올랐는데.”
[고유 능력 : 훈수 듣기][6레벨] -더는 훈수를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기존의 능력들은 현상 유지되나, 훈수 관련 효과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가지고 있는 힘을 더욱 단련하십시오. [특정 인물 목록] -천경
[특이 체질] -천마지체(天魔肢體)[2레벨] : 천마신공을 기반으로 한 무공의 효과가 300% 증가합니다! 역대 천마들의 무공 지식 ‘일부’가 전수됩니다! 존재만으로 다른 이에게 강한 위압을 줄 수 있습니다! 모든 신체 능력이 250% 증가합니다!
*역대 천마들의 기록을 열람할 자격이 생겼습니다.
“뭐가 어떻게 된…….”
[무슨 일이냐?]“훈수 관련 능력들이.”
그 순간이었다.
박현수의 눈이 점점 커졌다.
중력이 강해진 것처럼 무언가 몸을 짓눌렀다.
숨이 턱 막혀 왔다.
-현수……. 이건.
할리 역시 느꼈는지 반지가 부르르 떨렸다.
[설마.]천경이 심각한 얼굴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모든 대원이 픽픽 쓰러져 갔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하유락을 비롯한 S급 헌터들도 뜬금없이 의식을 잃었다.
오직 박현수만이 의식을 잃지 않았다.
“대단해.”
발랄한 남성의 목소리였다.
박현수는 마른 침을 삼키며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본능적인 공포에 몸이 저절로 떨렸다.
그곳엔 하얀 와이셔츠에 평범한 검은 슬랙스를 입은 청년이 서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갈색 곱슬머리 머리카락을 아래로 쭉 당기고 있었다.
“너도 기절시킬 생각이었는데, 확실히 다른 아이들이랑은 격이 다르구나.”
“…….”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청년이 박현수가 말하는 걸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덕분에 일이 아주 귀찮아졌어. 솔직히 관여하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손을 쓰지 않으면 너무 답이 없어질 것 같거든.”
어느새 박현수의 코앞까지 다가온 청년은 천천히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붙잡았다.
뱀 앞에 개구리도 이렇게 몸이 굳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야. 너의 스승이 관여하지 못하니까. 그렇지?”
청년이 눈이 정확히 천경을 향했다.
그는 전신의 털이 솟아오를 정도로 분노하고 있었다.
“여전히 무서운 얼굴이야.”
청년은 박현수를 그대로 들어 올렸다.
“그렇다고 멈추진 않아.”
그가 반대 손을 들었다.
그대로 박현수의 심장을 찔렀다.
찌르려고 했다.
“……?!”
“결국.”
청년은 붙잡힌 손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박현수가 얼굴을 붙잡고 있는 손까지 마저 떼어 냈다.
“운명이란 건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군.”
우드득-!
청년의 손이 잘게 부서졌다.
그러나 청년은 충격받은 표정만 지을 뿐, 고통스러워하지 않았다.
고작 뼈가 부서진 것 정도는 그에게 고통을 줄 수 없었다.
그건 박현수도, 아니, 천경도 알고 있었다.
“너는 실수한 게다.”
감히 예측할 수 없는 거대한 기운이 박현수의 단전을 타고 흘러나왔다.
“후회하거라. 그리고.”
천경이 읊조리듯 말을 내뱉었다.
“절망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