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09
훈수 두는 천마님 107편
박현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가에 맺힌 물기를 닦아 냈다.
그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곳곳에 박힌 굳은살은 박현수가 얼마나 열심히 수련해 왔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
주먹을 꽉 쥐었다.
턱이 주름이 질 정도로 입술을 꽉 다물었다.
손을 이렇게 단련시켜 준 사람은 이제 없다.
혹독하고, 괴롭고, 고통스러워도,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 줄 사람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같이 밥을 먹고, 농담 따먹기도 하고, 뉴스를 보면서 같이 욕해 줄 사람은 사라졌다.
몇 년간 외로움 속에서 허우적대던 자신을 구원해 준 사람은, 마지막까지 자신을 구원해 주고 사라졌다.
“스승님.”
눈물을 다 쏟아냈다고 생각했는데, 북받치는 감정은 참을 수 없이 눈물을 쏟아내게 했다.
고작해야 반년밖에 안 되었는데.
스승은 제자에게 절대 잃을 수 없는 소중한 인연이 되어 버렸다.
“으아아아아아!”
박현수는 괴로움을 참지 않았다.
그는 포효하며 슬픔을 고성으로 표출했다.
무너지는 이계 속에서 사라졌던 외로움이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스승님! 스승님!”
애타게 불러도 그는 돌아오지 않는다.
“스승님, 돌아오십시오. 스승님…….”
알고 있다.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내면에서 스승이 하는 행동과 하는 말들을 모조리 들었다.
그래서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아팠다.
아무리 외쳐도 결국 소리 없는 아우성이었다.
이런 결말을 원치 않았는데.
이런 결말이 아니었다면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죽었을 것이다.
그 무력함에 치가 떨려 스스로가 혐오스러웠다.
더 강했다면, 이라는 말이 무의미하다는 걸 안다.
스승이 쓰러트려 준 상대는 지금보다 조금 강해진다고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이런 것이 운명이란 것인가.
“크윽……. 젠장, 제기랄, 빌어먹을…….”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박현수는 스승이 마지막에 남겼던 말을 떠올렸다.
무(武)란 무엇인가.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스승은 다음에 만날 때까지 알아 오라고 숙제를 내주었다.
“다음이 있습니까, 스승님?”
양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체내엔 스승의 흔적이 조금이지만 남아 있었다.
박현수는 그 흔적이 흩어지지 않도록 기운을 갈무리하고 있었지만, 그럴수록 가슴이 미어터질 것만 같았다.
그때, 그의 시선에 한 여인이 잡혔다.
“아.”
헌터가 되고부터 지금까지 함께 해 온 여인이었다.
그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 그 앞에 무릎 꿇고, 조심스럽게 볼을 쓰다듬었다.
그녀가 눈을 찡그려졌지만, 깨진 않았다.
박현수는 하유락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손으로 눈을 감쌌다.
찌푸려진 미간은 어떻게든 울음을 참으려고 애쓰지만, 애써도 애써도 눈물은 그대로 쏟아져 내렸다.
‘아직 남아 있구나.’
스승을 잃고 온전히 혼자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아직 내 곁엔 사람들이 있어.’
자신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겠다고 선언한 칭란도, 죽을 장소라도 돕겠다고 한 타케시도, 언제나 긍정적인 질 로드먼도 있었다.
그뿐인가.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한 남동생도, 그런 남동생을 간호해 주는 차윤도,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이민아도, 그 외의 크고 작은 인연들이 남았다.
“내가 지켜야 할 인연들.”
박현수는 언젠가 스승님과 라면을 먹으며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스승님은 라면을 한 젓가락 들면서 ‘강함이 무엇이냐’라고 물어본 적 있었다.
그땐 ‘강함이 강함이지, 다른 게 뭐 있겠나요?’라고 대답했었다.
스승님은 ‘그건 그렇지’ 하고 웃으면서 라면을 드셨다.
오히려 그런 반응에 궁금해져서 스승님에게 역으로 질문했었다.
‘스승님은 강함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어보니, 스승님은 이렇게 대답하셨다.
‘지키는 것이다.’
지킨다는 말은 스승님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대충 그렇구나 하고 대답했다.
내 반응이 미적지근했는지 스승님은 웃으면서 이런 말을 해 주셨다.
‘현수야. 본좌는 너도 그랬으면 좋겠구나.’
폭력적인 스승님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당시엔 제자나 그만 때리라고 따졌다가 배로 맞긴 했지만.
그날의 추억을 떠올리자 옅은 미소가 입가에 맴돌았다.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스승님.’
강함이란 지키는 것.
어떤 사람에겐 강함의 정의가 다를지도 모른다.
하나, 적어도 자신에겐.
그리고 스승님에겐 강함은 폭력이 아니었다.
그런 길을 걸을 작정이었다.
비록 스승님을 지켜 내진 못했지만, 그러므로 더더욱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지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스승님은 여지를 남겨 주셨어.’
그 여지란 것이 단순히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배려라 할지라도.
가슴 속에서 또 하나의 각오가 다져졌다.
박현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꼴사납게 울고 있을 때가 아니야.”
이런 모습을 스승님께서 본다면 따귀를 올렸을 것이다.
이러나저러나 ‘초대 천마’에게 인정받지 않았던가.
“이제부턴 내가 천마니까.”
35대 천마가 무너져 가는 이계 안에서 탄생했다.
* * *
“본부는 지금 뭐 하는데!”
“빠르게 오고 있다고는 하는데, 아무래도 기후가 엉망진창이라 접근이 어려운 모양입니다!”
“젠장할!”
감독관 자크는 하늘에서 벌어진 심상치 않은 현상에 담배를 짓이겨질 정도로 씹었다.
새까만 포탈에 주렁주렁 달린 촉수들이 종말의 날이 연상될 정도로 기괴하게 뻗어 나왔다.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 차고, 쏟아지는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더니 종래에 이르러 천둥 번개를 동반한 태풍이 되었다.
자크는 아직도 갑판에 서 있는 이민아에게 다가갔다.
우비조차 입지 않았건만, 그녀의 몸엔 단 한 방울의 비도 닿지 않았다.
그녀의 능력이 염동력이었기 때문이다.
“왜 여기 계십니까? 위험하니까 안에 들어가세요.”
“안에 들어가면 안전합니까?”
“그건.”
자크는 대답할 수 없었다.
만약 공략대가 실패해 거대한 포탈이 개방된다면, 함선 따위는 먼지 한 톨 남지 않고 사라질 것이다.
그는 한숨을 쉬며 새 담배를 꺼냈다.
라이터 부싯돌을 돌렸지만, 불이 붙지는 않았다.
“빌어먹을.”
그는 라이터를 바닥에 던지며 담배를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기후 때문에 본대가 이곳으로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오히려 오지 않는 게 나을 수도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아까 나눈 대화 잊었나요?”
공략대가 실패한다면 어차피 지구에 미래는 없다.
그 말은 당연하지만 지금도 적용되고 있었다.
“의장님과 발두르 씨는요?”
“준비를 하고 있다더군요.”
공략대가 실패했을 때 벌어질 일에 대한 준비였다.
그 준비가 얼마나 쓸모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들로선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었다.
‘현수 씨, 언니.’
두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
살았는지, 죽었는지.
일은 잘되고 있는지, 아니면 위기에 처해 있는지.
알 수 있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답답함만이 계속해서 쌓여 갔다.
이민아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새까만 바다는 아무것도 비춰 주지 않았다.
그때, 새까만 바다가 순간적으로 에메랄드빛으로 물들었다.
뒤이어 자크가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 하늘을 보십시오!”
이민아는 곧장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녀만이 아니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선원들이 제자리에 굳은 것처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새까만 포탈 안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몰아치는 태풍은 거짓말처럼 잔잔해지고, 하늘 가득 덮은 먹구름은 동심원을 그리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은 인영이 하나둘 빛 속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이민아의 눈가에 물기가 차올랐다.
“현수 씨!”
그녀는 가장 먼저 보인 인영을 향해 그리 외쳤다.
빛 속에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그는 분명 박현수였다.
그가 멀리서 손을 흔든다.
이민아는 고민도 않고 바로 그에게로 날아올랐다.
“현수 씨!”
“어어?”
박현수는 빠르게 다가오는 이민아를 보며 당황하다 일단은 양팔을 크게 벌렸다.
제대로 받지 않는다면 큰 사고가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현수 씨!”
그녀가 한 번 더 이름을 부르며 품에 폭 안겨 왔다.
박현수의 눈이 동그래졌으나, 이내 웃으며 그녀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전 괜찮아요.”
“정말 괜찮으신 거예요?”
“네. 전 괜찮아요.”
“어, 언니는. 언니는 어디 있어요?”
박현수가 대답 대신 턱짓으로 하유락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반투명한 검은 구체에 공략대 전원이 들어가 있었는데,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한 상태였다.
이민아는 곧장 그곳으로 날아갔다.
하유락이 곤히 잠든 얼굴로 누워 있었다.
그 옆에선 칭란이 자고 있었다.
그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다들 괜찮은 거예요?”
“네. 의식만 잃은 거예요.”
“무슨 일이 있었길래.”
“가서 말씀드릴게요. 가서.”
할 얘기가 많았다.
박현수는 아래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모두가 공략대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이들이었다.
그는 아래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갑판에 모여든 사람들이 환호를 질렀다.
우리는 승리했다.
* * *
“놀라 자빠지겠군.”
카본은 90퍼센트 이상 무너진 이계를 배경 삼아, 아까 이곳에서 벌어졌던 싸움을 떠올렸다.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살면서 강력한 초월자를 못 본 건 아니었지만, 그 정도 수준에 이른 초월자를, 그것도 둘이나 동시에 본 것은 처음이었다.
전율이 일 정도의 격이었으며, 강함이었다.
특히 박현수의 몸을 차지한 초월자의 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 존재가, 박현수가 가지고 있는 힘의 근원이었던가?”
대체 얼마나 강력한 괴물을 뒷배로 삼고 있었던 거란 말인가?
억울할 지경이었다.
자신은 죽을 둥 살 둥 해서 손에 넣은 힘이었다.
물론 그의 재능이 부조리하단 건 알았다.
특히 킹이 준비해 놓은 안배와 싸울 때, 실시간으로 강해지는 걸 보면서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러니까 더 억울하다.
재능까지 충만한데, 엄청난 존재까지 뒷배를 뒀으니 탄탄대로였을 게 아닌가.
질투는 하지 않았다.
억울하다뿐이지, 자신이 약한 건 아니었으니까.
거기다 그 존재는 아무래도 사라진 것 같았다.
‘그 괴물을 죽여 주고 사라져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야.’
군세에 몰래 잠입해 간부 자리까지 올랐을 때도 청년의 모습을 한 강력한 초월자의 존재에 대해 듣지 못했다.
아마도 군세 내에서도 초월자를 아는 이는 몇 없을 거로 추정되었다.
이제는 다 상관없는 문제였다.
킹보다 높은 격을 가진 초월자는 박현수의 뒷배가 압도적인 무력으로 소멸시켰다.
다시 생각해도 그 광경은 잊을 수 없다.
“언젠가는 박현수도 그런 경지에 도달하겠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박현수와는 같은 배를 타는 게 좋을 거라 판단됐다.
목적지가 정해졌다.
카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나가 볼까.”
이곳도 곧 완전히 소멸해 없어질 것이다.
아무리 그라도 소멸하는 이계의 한가운데에 있다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카본은 허공에 떠 있는 바위 잔해에서 뛰어내렸다.
* * *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에 아주 많은 일이 있었다.
뉴 월드는 군세의 힘이 많이 약해졌다는 걸 알고, 그들의 거점으로 추정되는 곳을 일사천리로 정리했다.
또한 킹과 최상호 간에 있었던 계약에 관해서도 알게 되었다.
모두 찬이 토해낸 정보 덕분이었다.
고문의 영향으로 결국 정신이 망가져 죽고 말았지만, 그가 토해낸 정보 덕분에 인류는 아직 2년이 넘는 시간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뉴 월드는 곧장 대비를 시작했다.
군세는 많이 무너졌으나, 킹이 살아 있는 이상 그는 다시 지구를 침략할 게 분명했다.
아무것도 모르던 때와는 달랐다.
그들은 일단 불안정한 체계부터 확실히 잡아갔다.
많은 회의가 오갔고, 세계는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함께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하유락은 박현수의 집에 놓인 쪽지를 읽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 녀석, 귀띔이라도 해 주지.”
[2년 후에 돌아올게요.] -박현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