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1
훈수 두는 천마님 10편
각성자에겐 고유 능력 말고도 ‘스킬’이라는, 외부에서 손에 넣을 수 있는 힘이 존재했다.
획득 방법은 다양했는데, 특정 몬스터를 죽이거나, 힘이 담긴 보물에서 축출하는 방식이 있었다.
스킬은 다섯 단계로 구분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중 ‘초월급’이란 등급은 존재하지 않았다.
박현수가 혼란을 느끼고 있을 때, 천경의 설명은 시작되었다.
천경이 땅으로 내려와 박현수를 등졌다.
[딱 한 번 보여 줄 테니, 머릿속에 완벽하게 새겨 넣어라. 너의 능력이라면 가능하겠지?]천경은 박현수의 고유 능력 ‘훈수 듣기’를 알고 있었다.
정확하게 알려 주면 해당 정보가 머릿속에 자동으로 인식된다.
천경은 해괴한 능력이라 생각했지만, 편리함까진 부정하지 않았다.
천마출도(天魔出道).
검은 바탕에 금색 용이 수실 된 피풍의가 펄럭였다.
발을 한 발짝 앞으로 내딛자, 부드러운 바람이 그를 감싸 안았다.
천경은 나긋한 목소리로 설명하며 자유로운 움직임을 선보였다.
부드럽게 연결되는 첫걸음과 다음 걸음은 전혀 충돌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동되어 하나의 선로를 그려 나갔다.
박현수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천경의 움직임을 눈에 담고, 머리에 새겨 넣었다.
알림음처럼 천마출도가 머릿속에 잘 새겨지지 않았다.
[일단은 보는 것으로 족해라. 처음부터 모든 걸 손에 넣으려는 건 과한 욕심이니.]천경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미풍이 불어 박현수의 머리를 뒤로 흩날렸다.
박현수는 스승이 움직인 자리를 보았다.
꼬불꼬불한 선이 뱀처럼 길게 이어져 복잡한 형태를 그리고 있었다.
천경이 껑충 뛰었다.
순간 그의 신형이 어지러이 사방으로 분열되더니,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마출도보다 가볍지만, 그보다 더 날카로웠다.
인식률은 천마출도보다 7%나 낮았다.
[하늘을 날듯 바람을 타, 사각을 최대한 없애는 움직임. 그것이 천마비행.]천경은 분명 발을 땅에 딛고 움직이고 있었다.
한데 그 말처럼 정말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집중해서 보던 박현수는 그 원리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공중에서 방향을 자유롭게 바꾸고 있다.”
저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천경은 분명히 그런 식의 움직임을 선보이고 있었다.
바닥에 착지한 천경은 가볍게 뒷짐을 지고 설명했다.
“파천마권이요?”
[본좌를 사상 최강으로 만들어 준 권법이다.] [초월급 스킬 ‘파천마권(破天魔拳)’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이 역시 초월급 스킬이었다.
박현수는 뜨악한 얼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박현수가 질문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천경이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현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천경의 말대로였다.
박현수는 아무것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다.
그저 무언가가 소리소문없이 앞을 질주하고 있다는 것만 예상할 수 있었다.
“이, 이게 뭐야?”
[이게 천마추혼. 적을 은밀하게 죽이기 위해 특화된 걸음이다.]“으왓!”
천경은 어느새 박현수의 뒤에 서 있었다.
[다음은 4보 천마탈혼(天魔脫魂).]후와아아악-!
광풍이 휘몰아치는 소리였다.
박현수는 반사적으로 양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우습게도 바람을 불어닥치지 않았다.
대신 그곳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말 그대로, 천경은 정확히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서 있었다.
문제는 그 앞에 있는 것이었다.
내공을 사용할 줄 모른다면 보지 못할 것이다.
천경의 앞엔 흉측할 정도로 일그러진 기의 덩어리가 무섭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해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섰다.
그 증거로, 이번엔 인식된다는 알림조차 뜨지 않았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파천마권은 총 11초식인가요?”
[아니. 마지막 12초식이 존재한다. 파천마권의 최종 절기라 할 수 있지. 그것은 5보 ‘천마군림(天魔君臨)’을 익힌다면 최소한의 사용 조건을 획득할 수 있다.]최소한의 사용 조건?
그 말은, 마지막 5보인 ‘천마군림’을 익혀도 확실하게 파천마권의 절기를 사용할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천경이 왼발을 들었다.
그리고 적당한 보폭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천지가 뒤집히는 건 순간이었다.
“아아.”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듯한 착각.
아니, 착각이라고 하기에도 뭣한 세상의 변화.
울컥, 박현수는 목구멍으로 뜨끈한 피가 역류함을 느꼈다.
코에서 두 줄기의 피가 흘러내렸다.
“쿨럭!”
기어코 기침을 했고, 한 움큼의 각혈이 쏟아졌다.
맞지도 않았는데 내장이 뒤흔들리는 격통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천경은 뒷짐을 풀지 않았다.
먼 허공을 응시하며 고집스러운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해 범주를 아득히 벗어난 상황 속에서 박현수는 어떻게든 공력을 한계치까지 일으켜 저항했다.
그러나 고작 한 줌의 내공으로 견딜 수 있는 게 못되었다.
천경이 입을 연 건 그때였다.
그것이 군림.
패도(霸道)의 정점에 선 천마만이 실현할 수 있는.
세상마저 경외하게 만드는 압도적이고, 절대적인 힘.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박현수는 의식을 잃었다.
* * *
늦은 밤.
박현수는 어지럽게 펼쳐진 이불 위에서 눈을 떴다.
‘꿈을 꿨나?’
기억이 흐릿했다.
천경에게 ‘천마군림보’라는 보법을 배운 것 같은데, 도중에 뭔가 뚝 끊겨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이마저도 꿈인지, 아닌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보다 목이 말랐다.
박현수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냉장고로 향했다.
그러다 옆에 서 있는 그림자를 발견했다.
그림자를 확인하기 위해 불을 켰다.
“우와아악!”
그곳엔 천경이 못난 제자를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까, 깜짝 놀랐잖아요! 왜 야밤에 그렇게 서 계시는데요?”
[한심한 놈.]“밑도 끝도 없이 한심하다고 하면 제가 어떻게 알아듣습니까?”
[고작 그걸 견디지 못해 기절하느냐?]“기절…… 이요?”
박현수는 인상을 찌푸리다가, 꿈이라 생각했던 기억들이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 꿈이 아니었구나.”
[쯧쯧. 이러니 한심하지 않을 수가 있겠냐? 응?]“그, 그럴 수도 있죠. 그보다 천마군림은 대체 뭡니까?”
박현수는 조금 전, 코와 입에서 줄줄 흐르던 피와 내장을 뒤흔들던 고통을 떠올렸다.
현실이었단 걸 인지하니, 끔찍했던 시간이 다시금 떠올랐다.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네놈이 직접 겪지 않았더냐?]“아.”
[본좌가 전력을 다했다면 넌 죽었을 것이다. 전신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 피를 분수처럼 뿜으며 말이지.]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란 걸 알기에 소름이 끼쳤다.
[물론, 당장은 꿈도 꾸지 말거라. 네게 천마군림보가 어떤지 보여 주려고 시범을 보인 것이다. 마지막 5보는 최소 2갑자의 내공이 있어야 감당할 수 있는 절기니.]“그럼 일단은 천마출도와 천마비행부터 마스터해야겠네요.”
[마스터는 또 뭐냐?]“완성한다고요.”
[어려운 말은 쓰지 말거라. 에잉, 이 세상 언어는 참으로 더럽게 복잡하단 말이지.]박현수는 그 말을 듣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느꼈다.
‘그런데 스승님과는 어떻게 대화가 통하는 걸까?’
뒤늦게 깨닫긴 했지만, 분명 천경은 이계에서 온 인물이었다.
‘무슨 상관이야~’
말만 통하면 됐지.
“아, 배고프다. 라면이나 끓여 먹어야지.”
[또 빨간 그거 먹으려고?]“네. 생각해 보니까 기절했으면 그 이후로 아무것도 안 먹은 거잖아요.”
[그렇지.]“그럼 먹어야죠.”
박현수는 신난 얼굴로 라면을 끓였다.
* * *
“트리플 서클 쪽에선 아직 연락 없어?”
“아직 공략 중이랍니다.”
“자신만만하게 굴더니만, 어지간히도 오래 걸리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레드 라이온에 맡길 걸 그랬나 봐.”
한 번도 등장한 적 없는 새로운 포탈 타입의 등장에, 협회는 국내에서 10위권 안에 드는 트리플 서클에 공략을 맡겼다.
상부에서 약간 우려했지만, 포탈의 등급은 여전히 B였다.
초반 기습과 그 외 변수 등을 고려해도 A급 헌터 둘 이상이 참전한 이상 공략 성공은 불 보듯 뻔했다.
그러나 그것도 반나절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분위기가 살짝 바뀌었다.
협회 소속 공략 2팀의 팀장 백진우는 흡연실에서 담배를 뻑뻑 피우며 말했다.
“지원팀을 꾸려야 하나?”
“기다려 보시죠. 공략대가 들어간 이상 포탈이 개방될 리는 없으니, 충분한 시간을 들여 성공시키고 돌아올 겁니다.”
B등급 포탈은 작은 도시 규모의 이계가 존재한다.
적정 등급의 공략대라면 일주일 정도 걸릴 테고, 트리플 서클이라면 여유롭게 잡아도 하루는 꽉 채워야 한다.
그만큼 헌터 간 등급별 격차는 상당했다.
이번에 투입된 트리플 서클 공략대엔 B급 헌터도 꽤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새로 나타난 포탈이니 여유 시간은 조금 더 필요할 겁니다. 너무 통상적인 기준으로 생각하지 말자고요.”
안일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상황에 적응하면 보통 그것에 맞춰 판단할 뿐이다.
더 나쁜 상황은 어지간하면 염두에 두지 않는다.
백진우 역시 비슷했다.
“그건 그렇지.”
다만, 그는 협회에서도 별종이었다.
“그런데 만에 하나라는 게 있다면?”
“예?”
“만에 하나라는 게 있어서 트리플 서클이 실패했다면?”
“하하. 팀장님도. 그럴 리가요. B등급 포탈에 A급 헌터 둘에 B급 헌터 다섯이 들어갔어요. 그 이하의 헌터들과 서포터들도 잔뜩 들어갔다고요. 만전까진 아니어도 B등급 정도면…….”
“그런데 새로 나타난 타입의 포탈이잖아.”
“…….”
새로 나타났다는 건 전례가 없다는 얘기이다.
비록 초입 기습이란 것 하나만으로 판단한 거긴 하지만, 그조차 전례가 없었다.
깊숙이 들어가 보면 뭐가 또 보일지 모르겠지만, 당장은 눈에 보이는 게 다였다.
“근데 뭐, 네 말이 맞겠지.”
하지만 별종일 뿐 백진우 또한 보통 사람이었다.
의심할 뿐, 그 의심에 확신을 담지 않는다.
“그래도 역시 레드 라이온이 맡아야 했어.”
“그건 그렇긴 하죠.”
두 사람은 조용히 담배를 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