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11
훈수 두는 천마님 109편
“이 녀석, 또 말도 없이.”
하유락은 거대한 무언가가 있었던 흔적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얼마 전 이곳에 출현한 S등급 포탈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또 그 사람인가요?”
그녀의 직속 보좌관 차미리가 옆에서 물었다.
하유락은 풍성한 적색 머리칼을 어깨 뒤로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녀석 말고는 단시간에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아마도 맞겠지.”
아이작일 리는 없다.
아프리카를 벗어난 적이 거의 없으니까.
어쩌면 그일 수도 있겠지만, 안데르센이 만든 최신 감시 시스템은 단 한 번도 아이작을 놓친 적 없었다.
그러니 이런 짓을 할 사람은 단 한 사람뿐이다.
‘박현수. 왜 내 앞에 나타나지 않는 거야?’
박현수로 추정되는 인물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한 건 약 두 달 전부터였다.
그전까지 박현수는 마치 귀신이 된 것처럼 어디에도 포착되지 않았고, 포탈 공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두 달 전부터 의문의 존재가 위험군에 속하는 포탈들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아이작이나, 새로운 각성자의 탄생인 줄 알았다.
둘 다 아니었다.
아이작은 아프리카를 벗어나지 않았고, 그만한 각성자의 탄생이 알려지지 않을 리가 없었다.
남은 건 S급 헌터들인데 그들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남은 경우의 수는 한 가지였다.
2년 전 한 줄짜리 쪽지 하나 남기고 사라진 박현수.
그 말고는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추측에 불과했다.
하유락이 박현수임을 확신하게 된 건 한 달 전 일이었다.
‘그건 분명 현수가 한 일이 맞아.’
뉴 월드에 반기를 든 다크 스피릿 연합이 이탈리아에서 발호했다.
그들은 시민들을 인질 삼아 뉴 월드에 독립권을 달라고 협박했다.
뉴 월드는 곧장 대응에 나서려고 했지만, 의문의 존재가 먼저 그들을 정리했다.
하유락은 모든 사건이 종결된 후, 다크 스피릿 연합과 의문의 존재가 전투를 벌인 곳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 새겨진 흔적을 보고 확신했다.
그것은 분명 박현수가 싸운 흔적이었다.
몇 번이고 봐 왔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대체 뭘 하는데 안 나타나는 건데?”
2년이면 많이 기다렸다.
하유락은 한숨을 쉬며 몸을 돌렸다.
“보, 보고는 어떻게 할까요?”
“알아서 처리해.”
“네.”
차미리는 상관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그녀는 1년 동안 하유락을 보필했는데, 상관은 생각보다 쿨한 사람이었다.
문제는 한 남자가 끼어드는 순간, 쿨했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바로 박현수였다.
차미리는 박현수란 사람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한국이 배출한 불세출의 영웅이란 건 알았지만, 실제로 본 적이 없으니 어떤 사람인지 몰랐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차미리는 각성한 지 이제 1년 조금 지났다.
운 좋게 A급 능력을 각성하고, 사무 능력이 특출나 하유락의 보좌관이 됐을 뿐이다.
그전까진 다른 헌터들에게 보호받는 위치였으니, 그들을 대단하게 여길 뿐 어떤 사람인지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한 번쯤은 보고 싶다.’
뉴스에 자주 나와 얼굴은 알고 있지만, 실물은 역시나 본 적 없었다.
그녀의 상관은 대단한 미모에, 엄청난 몸매, 털털한 성격, 거기에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는 이 시대의 위너였다.
그런 하유락이 매달리는(?) 남자라면 능력 말고도 많은 부분이 대단할 것이다.
“뭐 해?”
차미리는 생각이 많을 때면 자리에 멈춰 서는 버릇이 있었다.
하유락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그녀를 불렀다.
“아, 지금 가요!”
그녀는 당황한 얼굴로 대답하며 하유락에게 달려갔다.
하유락은 그녀가 오는 걸 보곤 다시 걸음을 옮겼다.
* * *
“또 박현수란 말이지.”
“그놈 돌아왔으면 얼굴이라도 보여 주지.”
“그러니까요.”
하유락과 칭란, 아르망이 한자리에 모였다.
칭란은 차를 홀짝이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2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얼굴이었다.
뉴 월드 측에서 배려해 한 번도 능력을 사용하지 않은 덕분이었다.
“많이 변했으려나.”
“그건 모르지.”
아르망은 다리를 꼰 채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인류의 미래를 일 보 전진시킨 그 날의 전투에 참여하지 못한 그는 집무실에서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박현수의 활약으로 승리했다는 사실을 듣곤 당장에라도 그를 만나고 싶었다.
“그렇게 훌쩍 사라질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박현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쪽지 한 장만 남긴 채 훌쩍 사라졌다.
심지어 동생에게도 찾아가지 않았단다.
조용히 찾아갔을 수도 있지만, 병원 내에서 그를 목격한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그로 추측되는 존재가 두 달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하유락은 박현수라고 확신까지 했다.
뒤이어, 학센도 그가 맞다고 주장했으니 뉴 월드 측에선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가 있는 거겠지.”
“그건 그렇긴 한데.”
하유락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하루라도 빨리 박현수에게 변한 세상을 보여 주고 싶었다.
2년 동안 뉴 월드는 세상 발전에 많은 것을 이바지했다.
불안정했던 체계는 대부분 틀이 잡혔고, 경제 시장은 포탈 임팩트 전 수준까지 올라왔다.
국가마다 언제든 포탈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협회를 설치했고, 해당 국가의 지역마다 지부를 설치해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한 안데르센이 제작한 포탈이 양산화에 성공했다.
그 값이 적진 않아 지부마다 설치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적어도 주요 도시는 한 걸음으로 이동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물론, 조용한 곳에서 열린 포탈은 지금도 발견하기 쉽지 않지만, 예전만큼 포탈이 개방되는 횟수는 50퍼센트 이하로 줄어들었다.
그날 이후 세상은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그렇다고 방심하는 건 아니었다.
뉴 월드는 언젠가 다시 나타날 킹의 군세에 맞설 군대를 조직했다.
핵을 제외한, 몬스터들에게 통하는 무기도 성공적으로 개발됐다.
이 모든 걸 박현수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인류는 진화했노라고 꼭 보여 줄 생각이었다.
‘어쩌면 이미 봤을 수도.’
혼자 돌아다니며 세상이 어떻게 되었는지 파악했을지도 모른다.
2년 전과 달라져서 깜짝 놀라는 부분도 많겠지.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셈인지.”
“그러니까. 이렇게 어여쁜 여자친구가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데.”
“무, 무슨 헛소리예요?”
칭란에 놀림에 하유락이 발작하듯 소리쳤다.
칭란은 큭큭 웃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다, 단순히 가장 가까웠던 동료였으니까 신경 쓰는 것뿐이라고요.”
“그런 것치고 막 나왔을 때 박현수가 너만 엄청나게 걱정했다던데?”
“시끄러워!”
아르망까지 합세하자 하유락은 빽 소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만 가 볼래.”
“또 현수 집에 가니?”
“……오늘은 또 모르니까요.”
“사랑이란 무서워.”
“시끄럿!”
쾅- 소리와 함께 의장실 문이 닫혔다.
아르망은 문이 흔들리는 걸 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언제나 놀리는 맛이 있는 하유락이었다.
칭란은 소파에 몸을 기댄 채 입을 열었다.
“많이 강해졌겠지?”
“더는 닿을 수 없는 영역에 도달했을지도.”
2년 전에도 박현수는 이미 S급 헌터들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에 도달해 있었다.
그들을 비롯한 모든 S급 헌터가 그날 이후로 수련을 게을리한 건 아니지만, 그때의 박현수와 같은 수준에 도달한 이는 없었다.
A급이었던 헌터가 반년 만에 S급 이상의 힘을 손에 넣은 재능이었다.
2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강해졌을지 그들로서는 상상이 안 되었다.
“그보다, 아이작 쪽은 어때?”
칭란의 질문에 아르망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
“녀석이야 한결같지. 계속해서 우리를 무시하고 있어.”
2년간 아이작은 딱히 거취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몬스터에 점령당한 아프리카 땅들을 되찾으며, 하루에도 수차례 포탈을 공략했다.
영웅적인 행보였으나, 뉴 월드 측에서 꾸준히 관찰한 결과 그는 고통받는 아프리카인들을 구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작은 맹목적으로 적을 죽이는데 몰두했다.
필요하다면 생사결을 아끼지 않았고, 그 덕분에 몇 번이나 죽을 뻔한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뉴 월드에서 그를 도우려고 했지만, 그는 도움을 일절 받지 않았다.
오히려 찾아가는 이들을 위협했다.
혹시라도 다치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싶어 전투 드론을 보냈지만, 아이작은 드론들을 모두 파괴했다.
그 이후로는 같은 패턴의 반복이었다.
“정말 귀찮은 애새끼야.”
“애새끼라기엔 너무 컸어.”
“마검이 몸뚱이만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야. 정신 연령은 그대로일 거라고.”
아르망은 아이작을 로벤 다음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 녀석은 로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강해지려고 아득바득 노력했다.
그러나 제 딴엔 노력과 비교해서 성과가 없다고 생각해, 항상 날이 서 있는 놈이었다.
그래도 착했다.
싸가지가 많이 없긴 하지만, 그 정도면 봐줄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특이점인 이상 쉽게 건드릴 수도 없으니.”
“골치 아픈 꼬맹이야.”
아이작은 상상 이상으로 강해졌다.
2년 전의 박현수와 비교하면 아직은 부족하겠지만, 이미 S급 헌터들의 수준을 넘어섰다.
마검은 그를 폭발적으로 성장시켜 주었다.
그리고 성장세는 현재도 진행형이었다.
아마 계속해서 강해진다면, 언젠가 박현수와 같은 영역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아이작만 뉴 월드에 들어와 준다면, 인류는 생각보다 많은 걸 할 수 있게 된다.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자고.”
“안 그래도 오늘 미국 대통령을 만나기로 했어.”
“신무기가 완성됐나 보지?”
칭란의 물음에 아르망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시를 단정히 했다.
“세상은 한 번 더 변화할 거야.”
그는 웃으며 허공에 포탈을 열었다.
* * *
하유락은 서늘하기까지 한 박현수의 집을 둘러보았다.
2년 동안 변한 게 하나 없는 이곳은 그녀가 매주 한 번씩 관리해서 먼지는 쌓여 있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는 잡지 못했다.
“발 시려.”
하유락은 스타킹 아래로 느껴지는 한기에 괜히 발을 비볐다.
한겨울에 보일러도 안 떼는 곳이니 발이 시릴 수밖에 없었다.
능력을 쓴다면 이깟 한기쯤이야 처음부터 없던 것으로 만들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2년 하고도 17일.”
하유락은 스마트폰에 적힌 날짜를 보며 작게 한숨 쉬었다.
박현수가 사라진 날로부터 오늘까지의 시간이었다.
그녀는 고이 접혀 있는 이불 옆에 앉아 다리를 끌어모았다.
시계는 약이 다 됐는지 언젠가부터 바늘이 움직이지 않았다.
싱크대도 마른 그릇들이 놓여 있을 뿐 2년 동안 사용된 적 없어 물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돌아온 게 분명한데 집에는 오지 않았다.
“나쁜 놈.”
하유락은 무릎 사이에 고개를 파묻었다.
검은 스타킹에 화장이 묻었지만 개의치 않고 더욱 깊게 파묻었다.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반지하 창문으로 들어오던 햇살이 조금씩 약해지며 붉은 노을이 지곤, 이내 깜깜한 밤이 도래했다.
반지하 특성상 밤이 되면 불을 켜지 않는 이상 굉장히 어두웠다.
그녀가 눈을 뜬 것도 방이 어둠으로 완전히 물들었을 무렵이었다.
“잠들었었네.”
잠깐 눈이 감겼다는 게, 꽤 깊게 잠든 모양이었다.
하유락은 입술을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다 등에 뭔가 걸쳐져 있는 게 느껴졌다.
그것을 쥐고 얼굴 앞으로 끌어당겼다.
옆에 개어져 있어야 할 이불이었다.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는 사이에 이걸 덮은 걸까?
그렇다기엔 처음 자세 그대로 지금까지 잠들어 있었다.
“박현수!”
그녀는 벌떡 일어나 그 이름을 외쳤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유락은 손에 들린 이불을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이 자식 끝까지.”
쥐도 새도 모르게 움직이는 데 취미가 들린 걸까?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스마트폰을 막 꺼낼 때였다.
삐이이이-!!
경보음이 핸드폰에서 터져 나왔다.
재빨리 내용을 확인했다.
“몬스터가 등장했다고?”
동해에 초거대 몬스터가 나타나 항구와 정박해 있는 배들을 파괴하고, 육지로 올라오고 있다고 나왔다.
대한민국은 그녀 관할.
대체 초거대 몬스터가 어디서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나중 문제였다.
하유락은 곧장 밖으로 뛰쳐나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동해까지 전력으로 비행한다면 10분이면 충분하다.
그녀의 전신이 화염에 휩싸이더니 펑-! 소리와 함께 강원도 방향으로 솟구쳤다.
그리고 그녀가 사라짐과 동시에, 한 남자가 어둑한 골목에서 걸어 나왔다.
“조만간 봬요.”
그는 손에 들린 타조 알 크기의 알을 문지르며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