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13
훈수 두는 천마님 111편
하유락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헷갈렸다.
일단 박현수가 돌아온 건 기분 좋은데, 뜬금없는 새끼 드래곤 덕분에 무슨 반응을 보여야 좋을지 몰랐다.
기뻤던 감정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녀는 방실방실 웃으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헤츨링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귀, 귀여워.”
개나리색 피부에 앙증맞은 볼살과 동그란 눈, 작게 솟은 뿔과 고양이의 것과 같은 귀, 마지막으로 살랑거리는 두툼하고 짧은 꼬리까지.
누가 인형을 갖다 놓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귀여웠다.
하유락은 볼을 붉히며 손을 살살 떨었다.
만져 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 사람도 드래곤 아닌가?’
정확히는 드래곤의 힘을 이어받은 것이지만.
박현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뭐 해요?”
“아.”
박현수의 물음에 정신을 차린 하유락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뒤늦게 민망함이 찾아온 것이다.
그녀는 헛기침하며, 그 와중에도 힐끔 헤츨링을 쳐다봤다.
“아무튼, 다, 다시 만나서 반갑다고.”
“방금까진 울었으면서, 쿨한 척 인사하지 말라고요.”
“이 짜식이!”
하유락은 민망함을 참지 못하고 팔꿈치로 박현수의 가슴을 세게 찔렀다.
그리곤 피식 웃으며 박현수의 목에 양팔을 살짝 걸어 안았다.
“오랜만이야.”
“다녀왔습니다.”
* * *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저 아이는…… 뭐고.”
하유락은 여전히 헤츨링을 만지고 싶은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안아 볼래요?”
“그, 그래도 돼?”
“물론이죠.”
박현수는 머리 위에 있는 헤츨링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뀨우?”
헤츨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하유락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박현수는 두 눈을 반짝이는 하유락에게 헤츨링을 넘겨주었다.
“뀨우.”
헤츨링은 멍하니 하유락을 바라보며 얌전히 품에 안겼다.
하유락은 아기를 품에 안듯, 헤츨링을 안고는 사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말캉말캉한 촉감은 마치 살찐 고양이 느낌이었다.
헤츨링이 큰 눈을 끔뻑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무, 너무 귀여워.”
“저, 저기.”
“진짜 너무 귀여워.”
“누나?”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생명체가 있다고? 말도 안 돼.”
“저기요?”
이렇게 귀여운 걸 좋아하는 줄은 처음 알았다.
성격만 봐선, 귀여운 걸 별로 안 좋아할 줄 알았는데.
역시 사람이면 귀여운 걸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30분 정도가 흘렀다.
하유락은 뒤늦게 정신을 차렸는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잠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뀨?”
“그래, 그래. 모나미,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뀨우!”
“모나미?”
그새 이름까지 지었단 말인가?
그 와중에, 알아듣지도 못했으면서 헤츨링 모나미(?)가 활기차게 대답했다.
하유락이 샐쭉한 얼굴로 물었다.
“왜 싫어?”
“아녜요. 모나미, 이름 괜찮네. 볼펜 같고.”
“히히. 우리 모나미.”
그녀가 기분 좋게 웃으며 모나미의 뺨에 자신의 뺨을 비볐다.
모나미는 그게 좋은지 방실방실 웃었다.
“그래서, 2년 동안 어딜 가 있었던 거야?”
“이제야 물어보는 겁니까?”
“흠흠. 잠깐 정신이 팔리긴 했네.”
“잠깐?”
“시끄러워! 그래서, 2년 동안 어딜 갔었냐고! 말도 없이.”
2년이라.
박현수는 지난날들을 떠올리며 쓰게 웃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잔잔하게 흐르는 바다를 보았다.
“고생 좀 하다 왔죠.”
“고생?”
“뭐, 그런 일이 있었어요. 말하면 엄청나게 길어지니까, 다음에 하는 거로.”
“야!”
“돌아가죠. 저분들도 가서 쉬어야죠.”
박현수가 뒤를 턱짓하자, 그제야 잊고 있던 게 떠올랐다.
“맹호 부대!”
“저희는 멀쩡합니다.”
맹호 부대장 최필립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꽤 큰 피해를 받았을 텐데 상태가 멀쩡해 보였다.
다른 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하고 박현수를 쳐다봤다.
그는 실실 웃고 있을 뿐이었다.
“너…….”
“그만 돌아가죠. 여러분들도 그만 가셔야죠.”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때 최필립이 박현수를 향해 경례했다.
그와 함께, 모든 대원이 일제히 박자를 맞춰 경례했다.
“영웅의 귀환을 환영합니다.”
박현수가 개구쟁이처럼 웃었다.
그에 동조하듯, 모나미가 ‘뀨우웃’ 소리를 크게 내며 웃음을 터트렸다.
하유락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더 물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고개를 저었다.
2년 전 지구를 구한 영웅이, 돌아왔다.
* * *
박현태는 넥타이를 고쳐 매며 한숨을 푹 쉬었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지 1년하고도 9개월.
처음 깨어났을 땐 당최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포탈 임팩트를 기억하지 못했다.
일종의 기억상실증이었다.
처음 의사에게 2년간 지구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들었을 땐 몰래 카메라인 줄 알았다.
믿을 수가 있어야지.
학교만 잘 다니고 있었는데, 갑자기 포탈이 나타나고, 재앙이 세계를 덮치고, 몬스터가 나타났다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그러나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부모는 분명 고인이 되었다.
오히려 그 사실이 박현태에겐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한데, 하나 있는 친형은 지구를 구한 영웅이란다.
그런데 얼마 전, 2년 후에 돌아오겠다는 쪽지 하나만 남긴 채 사라졌단다.
박현태는 대체 뭘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게 지독한 악몽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형의 지인이었던 차윤이 옆에 있어 주었다는 점이다.
차윤은 하나부터 열까지 그를 보살펴 주었다.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나 싶었지만, 그녀는 친형 박현수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다면서 이렇게라도 해야 은혜를 갚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무튼, 그녀 덕분에 박현태는 감정을 추스르고 재활 운동에 들어갈 수 있었다.
3개월 정도가 걸렸다.
정상적으로 걷기까지.
그다음 하유락이라는 여자가 찾아왔다.
형인 박현수와 아주 가까인 사이로 보였으며, 형이 복귀하기 전까지 편의를 봐주었다.
하염없이 놀 수는 없었기에, 하유락의 소개로 협회에 취업했다.
말이 취업이지, 할 수 있는 게 없었기에 맨땅에 헤딩으로 일을 배웠다.
다행히 지금은 업무에 익숙해져서 살 만했다.
“현태 씨~!”
박현태가 화장실에서 세수하고 있을 때, 밖에서 최 과장이 그를 불렀다.
“네!”
그는 크게 대답하곤, 손수건으로 얼굴 물기를 닦으며 밖으로 나갔다.
“무슨 일이세요, 과장님?”
“다름이 아니고, 홀로 나가 봐요.”
“뭐가 왔나요?”
“누가 찾아왔어.”
“누군데요?”
“가 보면 알아요. 아주 좋겠어.”
최 과장이 실실 웃으며 그의 팔뚝을 가볍게 쳤다.
박현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홀로 나갔다.
그리고 머지않아 걸음을 멈추었다.
하유락이 몸을 돌리며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현태!”
박현태는 그 인사에 반응할 수 없었다.
원래라면 반갑게 맞이했겠지만, 그 뒤에 있는 남자에게 모든 시선을 빼앗겼다.
파란색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있는 남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본능은 그가 누구인지 알려 주고 있다.
박현태는 설마, 설마를 중얼거리며 한 걸음씩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입술을 달싹거리며 미간을 좁혔다.
그러곤 작게 목소리를 내었다.
“……형?”
“현태야.”
박현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몸이 경직된 사람처럼 뻣뻣하게 서 있다가, 약간의 준비 동작도 없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형!!”
“현태야!”
박현수는 품에 안겨 오는 동생을 꽉 껴안아 주었다.
2년.
아니, 동생에겐 4년.
두 형제에겐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박현태는 익숙하지 않은 형의 품에서 꺼이꺼이 울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단 얘길 들었을 땐 하늘이 무너졌고, 형이 사라졌단 얘길 들었을 땐 살아가는 데 의미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의미를 되찾았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가족이 돌아온 것이다.
하유락은 옆에서 눈물을 훌쩍이며 미소지었다.
비단 그녀만이 아니었다.
주변에서 형제의 상봉을 보던 이들 모두 눈물을 흘렸다.
박현태는 울먹이는 얼굴로 친형의 얼굴을 주무르듯이 만졌다.
“진짜 형 맞지? 현수 형 맞지?”
“그래, 인마. 형이다. 네 형이야.”
“으으으 …… 어디 갔었냐고. 왜 사라졌었냐고! 날 두고…….”
성인이 되었지만, 그가 의식 불명 상태가 됐을 땐 아직 고등학생이었다.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된 그에게 세상은 낯설었고,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힘들었다고, 정말 힘들었다고…….”
주변에서 편의를 봐주더라도, 신경 써 주는 이가 많더라도, 외로움이 가시는 건 아니었다.
“이젠, 이제는 안 사라져. 돌아왔으니까.”
박현수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동생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형의 머리 위에 있는 귀여운 생물체를 발견했다.
“뀨우?”
개나리색에 눈은 똥그란 도마뱀이었는데, 여타의 도마뱀처럼 징그럽지 않았다.
말랑말랑할 것 같은 피부와 고양이의 것과 같은 귀, 등에 앙증맞게 달린 작은 날개는 한 마리의 인형처럼 보였다.
“이건…….”
“아, 인사해. 헤츨링 모나미.”
“……헤츨링?”
“새끼 드래곤이야.”
박현수가 모나미의 턱을 살살 긁으며 말했다.
그의 동생은 좋아서 자지러지는 작은 생물을 보다가 경악했다.
“드, 드래곤?!”
“응. 드래곤.”
드래곤이 한 가족이 되었다.
* * *
“현수가 돌아왔다고?”
칭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 봐야, 앉은키나 선키나 거기서 거기였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녀는 가슴까지 오는 책상을 쾅 내려쳤다.
“요 녀석!”
외관은 어린아이라도, 실제론 칠십 넘은 노인이 바로 그녀였다.
박현수가 사라졌단 소식을 들었을 때 어땠었던가.
마치 손주가 집을 나간 것만 같았다.
칭란은 고운 눈썹을 찌푸리며 의자에 걸린 코트를 어깨에 걸쳤다.
“바로 가자.”
“어, 어디를.”
“어디겠어. 한국이지.”
부하의 물음에 그녀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20분 뒤에 회의가 있습니다만.”
“그깟 회의가 중요해? 2년 전에 쪽지 한 장 달랑 남기고 사라진 영웅이 돌아왔는데!”
“아,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칭란의 호통에 부하가 후다닥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현수 녀석.”
뉴 월드는 2년 동안 박현수의 행적을 잡아내지 못했다.
마치 지구에서 사라진 것처럼, 그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2개월 전부터 박현수로 여겨지는 인물이 나타나긴 했지만, 흔적만 남아 있을 뿐 실체를 쫓을 수 없었다.
그렇게 숨어 있던 녀석이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단다.
칭란은 2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낱낱이 파헤칠 작정이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2년 내내 걱정하며 받은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다.
-준비됐습니다.
그녀의 귓가로 부하의 통신이 들려왔다.
안데르센의 기술이었다.
이젠 통신기가 없어도 뉴 월드 본부에만 있다면, 등록된 사람에 한하여 텔레파시가 가능했다.
칭란은 곧장 지하로 향했다.
한 걸음으로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왔어요?”
“너도 와 있었구나.”
안데르센이 안경을 고쳐 쓰며 물결치는 포탈의 표면을 보았다.
개발 단계였을 때와 달리, 지금의 포탈은 군세가 만들어 내는 포탈과 똑같은 형태였다.
질 로드먼의 도움이 컸다.
그의 혼돈이 만들어 내는 포탈은 군세가 만들어 내는 포탈과 비슷한 성질이었고, 2년 전 박현수가 전리품으로 챙겨온 거울의 시스템에 대입한 결과, 포탈을 완성할 수 있었다.
“다른 놈들은?”
“의장도 가고 싶어 했지만, 할 일이 워낙 많으니 어쩔 수 없고. 타케시나 질, 모드는 어차피 만나게 될 거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학센 자식은?”
“그야 뭐, 포탈을 전전하고 있겠죠.”
소식을 들었을 텐데도 나타나지 않는 걸 보면, 2년이란 기간이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긴 한 모양이었다.
“그럼 너랑 나만 가는 건가?”
“저도 안 갑니다.”
“그럼 여긴 왜 왔어?”
“옆에서 실험을 하나 하고 있었는데, 당신이 한국에 간다길래 마중이나 할까 하고 왔습니다.”
“네 입에서 마중이란 말이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포탈이 실험 단계였다면 두 발 벗고 나서서 환영해 줬겠지만, 그건 실험체를 대하는 태도였다.
기본적으로 안데르센은 괴짜였고,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 정상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변덕이랄까요.”
“너한테도 2년은 비슷하게 작용했나 보구나.”
“그럴지도.”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칭란은 피식 웃으며 포탈 앞에 섰다.
“다녀오마.”
“안부 전해 주세요. 물론, 저랑은 별로 안 친하지만.”
“그래.”
칭란의 모습이 사라졌다.
안데르센은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고 포탈을 바라보다가, 이내 몸을 돌려 연구실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