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17
훈수 두는 천마님 114편
한 남자가 뜨거운 햇볕은 견디며 힘겹게 사막을 횡단하고 있다.
그는 누더기 같은 천을 당장에라도 집어 던지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햇볕이 살이 타들어 갈 게 분명해서 그럴 수 없었다.
남자는 알제리 출신으로 현재는 지옥이나 다름없는 아프리카의 생존자였다.
그가 횡단 중인 사막은 그 유명한 사하라.
현재 말리에 자리를 잡았다는 영웅 아이작을 만나기 위해 위험을 무릎 쓰고 그곳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목이 말라…….’
그러나 그것도 한계에 봉착했다.
물은 거의 남지 않아서 함부로 마셨다가는 이 긴 사막을 성공적으로 횡단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안 마시기엔 지금 당장 목이 타들어 갈 것 같았다.
남자는 메마른 목구멍을 아주 조금 적시자고 다짐하고, 물통 뚜껑을 열었다.
뻥- 소리와 함께 뚜껑이 시원하게 열렸다.
물은 미지근해지다 못해 뜨거운 수준이었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고 혀를 적시는 정도만 물을 삼켰다.
“하.”
고작 혀를 적신 정도다.
뻣뻣하던 식도가 그나마 풀렸지만, 오히려 더 물을 요구한다.
갈 길이 멀기에 남자는 뚜껑을 닫았다.
아니, 닫으려고 했다.
“으앗!”
갑자기 땅이 아래로 푹 내려갔다.
물통이 바닥에 떨어지며 그대로 엎질러졌다.
다급히 물통을 주웠다.
다행히 물은 조금 남아 있었다.
문제는.
“으아아아아악!”
순식간에 확장된 개미지옥에서 탈출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남자는 발버둥을 쳤지만, 그럴수록 몸은 점점 깊이 빨려 들어갔다.
그때, 남자의 눈에 기묘한 형태를 한 검은색 보석이 들어왔다.
검은색 보석에선 어두운 빛깔의 색들이 섞여 있었는데, 남자는 귀신에 홀린 것처럼 그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
남자가 보석을 쥐기 무섭게 두 눈에서 생기가 사라졌다.
그가 말했다.
“세상을 먹어치워라.”
사하라 사막 한복판에 어둠이 발생했다.
* * *
마레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다행히 살아남을 수 있겠군.”
“대실종의 원인이 네가 아니라고?”
“그렇다. 미안하지만, 나는 마르카나에서 그를 찾아내었다. 그리고 그의 출생이 지구란 사실을 알게 되었지.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그가 다시 귀환할 수 있도록 뒤에서 도왔다.”
“그렇다면 대실종을 누가……?”
“간혹 우주엔 영문을 알 수 없는 구멍이 생기지. 너흰 그걸 웜홀이라고 부르더군. 지구라고 예외가 아닐 테니, 그걸로 인해 마르카나로 가게 됐다고 생각했다만.”
“그렇다면 대실종이란 이름이 붙지 않았겠지.”
“그전에 대실종은 무엇이지?”
박현수는 대실종에 대해 짧게 설명해 주었다.
마레는 생각에 잠긴 얼굴이 되었으나, 이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도저히 모르겠군. 확률적으로 따져도 그 많은 아이들에게 웜홀이 동시다발적으로 생겼을 리는 없다.”
“……군세의 짓인가?”
“아니. 그 당시 군세는 아직 지구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기나긴 시간 동안 군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비록 해야 할 일을 위해 장기간 자리를 비운 적 있었지만, 그때도 감시할 방법을 마련해 놓고 자리를 비웠다.
군세가 지구를 발견한 것은 6년도 되지 않았다.
박현수는 이마를 찌푸렸다.
대실종은 10년도 더 된 일이다.
군세가 한 일이 아니라면, 다른 누군가에 의해 대실종이 벌어졌다는 뜻이 된다.
“군세 말고도 누군가 지구를 노리고 있는 건가?”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당장은 눈앞의 적부터 신경 써야 할 때다.”
맞는 말이었지만, 박현수는 찝찝한 기분을 떨쳐 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부터 조사할 수도 없는 게, 아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마레의 말처럼 눈앞의 적에게 집중해야 할 때다.
대실종의 원인을 알아내는 것은 그다음 문제다.
‘애초에 대실종이란 게 누군가의 손에 이루어진 거라면, 지금까지 놔두고 있는 이유가 분명 있을 터.’
낌새라는 게 보이지 않는 이상, 한동안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벌어진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 어떤 적이 오더라도.
박현수의 눈이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급변한 분위기에 마레는 속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내가 아는 박현수는 더는 없군.’
이전과 비슷한 부분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마레는 그 모습이 연기라고 확신했다.
엉성하고, 감정적이던 시절의 박현수는 더는 없다.
이면에 어떤 얼굴을 숨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 얼굴을 공개하는 날이 온다면.
‘천경, 보고 있는가? 당신의 제자는 이 정도로 성장했다.’
그 성장의 방향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마레는 확신하고 또 확신했으며, 자기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너를 선택하길 정말 잘했다.’
마레가 속으로 환희하고 있을 때, 모나미가 펄쩍 뛰어 박현수의 어깨에 안착했다.
“뀨우.”
그리곤 작게 울며 그의 볼을 핥아 주었다.
마치 괜찮다고 위로해 주는 듯했다.
박현수는 볼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에 작게 웃으며 모나미의 턱을 살살 긁적거렸다.
“뀨우우우~!”
기분이 좋은지 어깨 위에서 자지러진다.
박현수는 목에 얼굴을 비비는 모나미를 보다가 다시 마레에게 시선을 옮겼다.
“대실종에 관한 건 일단 넘겨두고, 너에게도 지구에서 있었던 일을 듣고 싶다.”
“협회에서 다 듣지 않았나?”
“넌 뭔갈 더 알고 있잖아.”
뉴 월드의 정보력은 2년 동안 급속도로 발전해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실시간을 알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군세에 관한 정보만큼은 쉽게 알아내지 못했다.
특히 킹의 거처는 계속해서 추적 중이지만,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만, 그것은 그들이 초월의 영역에 발을 들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킹은 명백한 초월자.
비초월자는 초월자가 허락하지 않는 이상 위치는 물론이고, 흔적조차 발견하는 게 허락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마레는 알 수밖에 없었다.
“네가 모른다면 정말 실망할 것 같아.”
박현수의 냉담한 어조에 마레는 졌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딱히 숨길 생각은 아니었지만, 모르는 척해 보려고 해도 숨길 수 있는 게 아니군.”
“머나먼 우주에서 놀고먹은 건 아니니까.”
“고작 40년 만에 그만한 경지에 오른 건 네가 처음일 거다.”
“스승님이 계시다.”
“그를 잊고 있었군.”
“웃긴 거짓말은 집어치워. 다시 날 시험하려 든다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
마레가 천경을 잊었을 리 없다.
의도적으로 지금의 박현수에게 천경의 존재가 남아 있는지 떠본 것이다.
그것이 매우 불쾌했다.
“미안하군. 너란 인간을 조금 더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너는 그냥 나를 도우면 돼.”
싸늘한 목소리에 마레는 오싹함을 느꼈다.
모나미가 왜 또 그러냐는 듯이 목소리를 냈지만, 이번엔 반응해 주지 않았다.
“……네 말처럼 군세의 위치를 알고 있다.”
“그곳은 어디지?”
“알려 줘도 찾아갈 수 없다.”
“어째서지?”
“박현수, 네가 알아 둬야 할 것이 있다.”
마레는 한 차례 숨을 고르더니, 2년 동안 알아낸 정보를 박현수에게 고스란히 전해 주었다.
“킹은, 여태까지 숨겨 두었던 자신의 ‘진짜’ 동료들을 부활시켰다.”
“진짜 동료?”
“나도 모른다. 아리스 땐 그들의 모습은 보지 못했으니까. 아무래도 놈이 숨겨 둔 패였던 모양이야.”
지금까지 위기를 겪지 못했던 킹은 여태까지 숨겨둔 패를 꺼내지 않았다.
그럴 필요성을 못 느낀 것이다.
그러나 박현수의 등장과 함께 지금까지의 계획이 몽땅 실패했다.
군세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배후를 봐주던 소설가 역시 소멸을 피하지 못했다.
킹의 입장에선 궁지에 몰린 것이다.
제약이 끝나지 않아 함부로 나설 수도 없는 상황.
“원래라면 그들을 부활시킬 생각이 없었을 거다.”
“한계에 몰려서 어쩔 수 없이 진짜 동료들을 깨운 거라는 말이야?”
“나는 그렇게 파악하고 있다.”
박현수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킹의 진짜 동료라는 건 서열이 동급이라는 뜻이었다.
부하가 아니라는 건데, 그렇다면 강함 또한 킹과 필적할까?
만약 그렇다면 총체적 난국이 된다.
완숙한 초월자 넷이라면 지구는 멸망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퀸’의 존재도 목에 걸린 가시처럼 남아 있었다.
마레가 보여 줬던 과거 아리스의 기억에서 퀸의 모습은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초월의 영역에 발을 들인 수준이었다.
군세엔 총 다섯의 초월자가 있는 셈이 된다.
이는 단순히 우주 해적이라고 칭할 수 없었다.
그런 박현수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마레가 입을 열었다.
“킹과 같은 수준은 아닐 거다.”
“어떻게 장담하지?”
“킹은 궁지에 몰린 상태로 그들을 깨웠다. 이게 뜻하는 바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때가 되지 않았는데 깨웠다는 말을 하는 거야?”
“맞다. 그리고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보자고. 그들이 왜 잠자리에 들어야만 했는가.”
“……많은 힘을 잃어서?”
“추측에 불과하지만, 정황상 그렇게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
킹의 동료들은 모종의 이유로 힘을 잃고 잠에 빠졌다가, 킹이 궁지에 몰리며 어쩔 수 없이 회복이 덜 된 채로 깨어나게 되었다.
그럴듯한 추론이었다.
“놈들에게 접근할 방법은?”
“없다.”
“없다고?”
“놈들의 이계는 세상과 완전히 단절돼 있다. 안에서만 열 수 있는 구조지.”
“부수는 건?”
“시도한 적 없지만, 아마도 어려울 거다.”
마레의 말이니 아마 맞을 것이다.
카본이라도 있다면 시도는 해 봤을 테지만, 그가 돌아오려면 아직 몇 개월 남았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딱히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어차피 군세의 제약이 풀리려면 아직 반년 조금 덜 남았다.
킹도 그전까진 움직이지 않을 터.
“몬스터 웨이브에 집중할 수 있겠어.”
“몬스터 웨이브?”
마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게 몬스터 웨이브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마레는 헛웃음을 삼켰다.
설마 박현수가 그런 짓을 할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지금의 박현수이기에 그런 잔인한 짓을 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많이 독해졌구나.”
“독해졌다라.”
박현수는 모나미의 볼을 쓰다듬으며 자조했다.
“더 할 얘기 없으면 그만 가.”
“자신에게 잡아먹히지 마라.”
마레는 그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박현수는 모나미를 내려놓고, 동생을 이불에 눕힌 뒤 바닥에 앉았다.
모나미가 무릎 위로 올라와, 가랑이 사이에서 몸을 말고 누웠다.
말랑말랑한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돌아왔구나.’
이제야 집에 돌아온 게 실감되었다.
* * *
핏빛 마검이 허공을 갈랐다.
해일처럼 몰려오던 몬스터 떼는 마치 모세가 홍해 바다를 가른 것처럼 양옆으로 밀려났다.
아이작은 그 안으로 몸을 던졌다.
붉은 망토가 펄럭이며, 갑주 곳곳에 달린 무수히 많은 입이 이빨이 보일 정도로 입을 크게 벌렸다.
-크와아아아아!
-끼요오오오옷!
살아남은 몬스터들이 각기 괴성을 지르며 아이작에게 달려들었다.
벌어진 입에서 핏빛 광선이 사정없이 쏘아졌다.
마검이 징그러운 눈을 부라리며 비명처럼 파괴를 외쳐 댔다.
아이작은 듣기 싫었지만, 마검은 말린다고 듣는 놈이 아니었다.
갑주의 입들이 모두 닫혔다.
주변을 둘러봤다.
수십 줄기의 광선은 수백 마리의 몬스터를 한 마리 남기지 않고 모조리 소멸시켰다.
“닥쳐.”
아이작은 그리 말하며 마검을 들어 올렸다.
눈에서부터 시작된 보라색 혈관이 칼날 전체를 휘감자, 몬스터들의 사체에서 피가 뽑혀 나와 마검으로 모여들었다.
마검은 수백 마리 분의 몬스터 피를 섭취하자 황홀한 목소리로 신음했다.
“미친놈.”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이작 본인도 혈관을 파고드는 거대한 힘에 약간 흥분한 상태였다.
2년 동안 매일 이 짓을 했지만, 처음의 거부감만 있을 뿐 전혀 질리는 느낌이 아니었다.
오히려 성감대를 자극하는 느낌과 흡사해 중독될 지경이었다.
킹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중독을 이겨내고 있을 뿐이다.
만약 평범한 사람이 마검을 쥐었다면 진즉 마검의 노예가 됐을 것이다.
아이작이 특이점이 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모든 피를 완전히 흡수하고 검을 내렸다.
마검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는지 기분 나쁜 신음을 계속 흘렸다.
“오늘부로 이곳도 끝이군.”
그래 봐야 이곳에 또 포탈이 나타난다면 다시 몬스터 천지가 되겠지만.
아이작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사람의 기척을 느꼈다.
이곳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으로, 인기척 같은 게 있어선 안 되었다.
그는 곧장 인기척이 느껴진 곳으로 몸을 날렸다.
“진짜 사람?”
누더기를 걸친 흑인이 바닥에 엎어져 있었다.
몬스터에게 당하기라도 한 것일까?
몸을 바로 눕혀 상태를 확인했다.
습격당한 건 아닌지 상처는 없어 보였다.
건강상으로 나빠 보이긴 했지만, 고작 그게 다였다.
아이작이 이상함을 느낄 때였다.
흑인의 눈이 부릅떠지며, 손이 아이작의 얼굴을 움켜쥐었다.
“세상을 먹어치워라!”
흑인의 이마에 검은빛이 도는 보석이 떠올랐다.
어둠이 주변을 뒤덮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