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18
훈수 두는 천마님 115편
안데르센은 박현수가 전해 온 말을 곱씹으며 스테이크를 썰었다.
“몬스터 웨이브라.”
칭란에게서 그가 지난 2년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간략하게 들었다.
그마저도 믿기 힘든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전부 실화였다.
외계에 여러 문명이 있단 건 진즉 알고 있었다.
포탈과 킹의 군세, 아리스, 그리고 인간들이 각성한 이능력이 그 증거였다.
하지만 그곳에서 살아 보는 건 별개의 얘기다.
박현수는 외계 차원에서 2년, 아니, 40년을 보냈다.
‘고작 서른셋을 산 나조차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외계에서 40년을 보냈다면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을지 상상도 안 가는군.’
연고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세상이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박현수가 믿을 건 오로지 자신밖에 없었을 터.
그는 그곳에서 지구를 구하기 위해 여러 가지를 준비했다.
몬스터 웨이브는 그중 하나였다.
그 외에도 아직 밝히지 않은 것들이 많을 것이다.
안데르센은 설레는 한편 약간의 불안함을 느꼈다.
‘박현수는 우주에서 혼자 40년을 보냈다. 평범한 인생을 살아도 40년이면 성격이 바뀌기엔 충분한 시간. 과연 그는 내가 알던 박현수가 맞을까?’
외계에서의 생활은 분명 그를 다방면으로 바꿔놨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직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 걸 보면 바탕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지만, 칭란의 말에 따르면 이전보다 인상이 차가워졌다고 했다.
직접 보기 전엔.
아니, 그가 본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진 알 수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몬스터 웨이브를 대비하는 것뿐이겠군.”
내부에선 박현수가 미친 거 아니냐고 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안데르센은 생각이 달랐다.
“오히려 잘 됐어. 그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니까.”
2년 동안 뉴 월드는 확실히 각성자들의 힘을 많이 끌어올렸다.
또한 비각성자들에게도 몬스터에게 대항할 수단을 만들어 주었다.
바로 아이템의 무기화였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부족했다.
군세는 여전히 남아 있고, 그들의 제약은 얼마 안 가서 풀릴 것이다.
안일한 자들은 지금 전력으로 군세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고 떠벌리고 다닌다.
우스운 소리였다.
뉴 월드가 만들어 낸 일시적인 평화에 찌들어 현실 파악이 안 되는 머저리들이다.
몬스터 웨이브는 그런 머저리들의 정신머리를 고쳐 줄 훌륭한 매가 되어 줄 것이다.
“재밌겠군.”
안데르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때였다.
드르르륵-!
그의 핸드폰이 책상 위에서 진동하기 시작했다.
누구인지 확인하니, 수신인에 아르망이라 적혀 있었다.
“무슨 일이지?”
-큰일이다.
“뭐?”
-아프리카에서 일이 터졌어.
안데르센이 눈살을 찌푸렸다.
* * *
박현태는 크게 하품하며 눈을 떴다.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지 2년이 되었지만, 지금까지 푹 잤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리만치 개운했다.
지금까지 못 잔 잠을 한 번에 다 잔 것처럼 몸에 활력이 돌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품에서 곤히 자는 모나미를 보았다.
동그랗게 몸을 만 모나미는 색색 소리를 내고 있었다.
모나미가 깨지 않도록 조심히 몸을 일으킨 박현태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주변을 보았다.
‘형 집이네? 내가 언제 여기서 잠들었지?’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잠든 기억이 없다.
팔짱을 끼고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려보았다.
‘형 덕분에 조기 퇴근해서 함께 형 집에 갔지. 그리고 거기서 이상한 외계인이랑…… 그러고 보니까 외계인은 어디 갔지?’
마레의 정체를 모르는 박현태는 그를 이상한 외계인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아리스 출신의 초월자였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사람이랑 형이랑 대화를 나누다가…… 40년.’
문득 떠오른 기억.
형인 박현수는 지구를 벗어나 우주에서 40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때 충격으로 비명을 지르다가 갑자기 졸음이 몰려와 그대로 잠들었다.
“혀, 형은?”
좁은 원룸에 숨을 곳은 화장실 말고는 없다.
화장실 문을 벌컥 열었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박현태가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모나미가 작게 울며 깨어났다.
“뀨…….”
잠이 덜 깼는지, 반쯤 감긴 눈으로 작은 얼굴을 빙빙 돌렸다.
그리곤 다시 이불에 고개를 파묻고 잠들었다.
박현태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러다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어.”
시침이 10을 분침이 8을 가리키고 있었다.
설마, 하는 생각에 근처에 있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쉴 새 없이 온 부재중과 문자.
지각이다.
* * *
“살기 좋아졌어.”
박현수는 드높은 마천루 위에서 서울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뉴 월드가 헛짓을 한 건 아닌지 확실히 2년 전보다 도시가 깔끔해졌다.
지구에 돌아온 지 2달이 되었지만, 이렇게 여유를 가지고 도시 풍경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난간에 걸터앉았다.
얼마 만에 맛보는 여유인가.
40년.
인간에게 있어서 굉장히 긴 시간이었다.
그 긴 시간을 지구에서 보내지 못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세상에서 홀로 사투를 벌이며 살아남았다.
믿을 거라곤 오직 자신뿐이었다.
스승에게 배운 것만이 자신을 지켜 주었다.
매일 목숨을 걸었다.
사선이 아니었던 적이 없고, 배신은 밥 먹듯이 당했다.
정신이 망가졌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각오를 다졌지만, 그것도 시간이라는 압도적인 물결에 퇴색되었다.
인고의 시간이었다.
뭐든지 참고, 견디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우주에서 박현수란 인간은 한낱 미물에 불과했다.
그랬었다.
“그랬었지.”
박현수는 손바닥을 들여다보다가 피식 웃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오랜 세월 고통받았지만, 고통받던 시기가 영원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엉덩이에 묻은 먼지를 털고 난간에서 내려왔다.
그의 몸 주변으로 검보랏빛 파동들이 일렁거렸다.
“아프리카라.”
아까부터 파동을 찌르는 기분 나쁜 감각이 저 머나먼 대륙에서부터 느껴졌다.
박현수는 파동들을 거두었다.
“슬슬 뭔가 벌어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은 했지.”
박현수가 2년에 맞춰서 딱 돌아온 건 하유락과 그렇게 약속해서가 아니었다.
이미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포문을 열 준비는 끝났나, 킹?”
아직 제약이 끝날 시기는 아니지만, 2년이라면 군세도 뭔가를 도모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프리카에서 느껴지는 기분 나쁜 감각은 군세에서 준비한 게 분명하리라.
이대로 아프리카로 가면 군세가 준비한 게 무엇이 됐든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킹이나, 그의 동료들이 직접 나서는 게 아니라면 문제가 될 건 단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박현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아이작, 너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주마.”
또 다른 특이점인 아이작은 현재 아프리카에서 힘을 기르고 있었다.
그 역시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일을 충분히 알고 있을 터.
마레가 직접 선별한 셋 중 하나라면 이번 일은 혼자서 충분히 해내 줘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박현수의 주먹이 무서운 소리를 내었다.
“필요 없는 건 정리하는 게 나아.”
약해빠진 마검의 노예 따윈 인류의 미래에 오히려 방해가 될 것이다.
* * *
아이작은 검으로 빨려 들어가는 피를 보다가 다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마에 기괴한 검은 보석이 박힌 흑인은 사지가 마찬가지로 기괴하게 뒤틀린 채로 죽었다.
그는 시체에 다가가 이마에 박힌 검은 보석을 뽑아냈다.
이마 피부가 보석과 떨어지고 싶지 않은지 마치 치즈처럼 길게 늘어났다.
아이작은 거칠게 보석을 뜯어냈다.
그러자 시체가 순식간에 메마르더니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마검이 신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이작은 손안에서 꿈틀거리는 보석을 보다가 마검을 앞으로 들어 올렸다.
“네가 한번 먹어 봐라.”
[이봐! 어이! 잠……. 으으으읍!]마검의 비명을 무시하고 검면에 보석을 마구 문질렀다.
검면에서 뾰족한 이빨들이 튀어나오더니, 억지로 보석을 삼켰다.
마검은 혐오스러운 걸 먹은 것처럼 헛구역질을 연신 해대었다.
그리곤 쩝쩝거리며 눈동자를 굴려 아이작을 보았다.
“생물에만 기생하는 건가?”
[흠~ 어라? 잠깐만.]그때 마검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칼날에서 핏빛 마기가 줄줄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작은 바닥에 마검을 꽂고 조용히 기다렸다.
잠시 후 마기를 회수한 마검이 입을 열었다.
“어떻지?”
[이거, 완전 질병 덩어리야.]“질병?”
[세상 온갖 병이 응축되어있는 거 같다고 해야 하나.]“뱉어라.”
[퉷!]마검이 보석을 뱉어냈다.
마검의 설명으로는 직관적으로 알아듣기 어렵다.
아이작은 직접 보석을 입에 넣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보석이 어둠을 내뿜으며 그의 몸을 뒤덮었다.
마검은 주변을 둥둥 떠다니며 신기한지 연신 감탄했다.
[오우, 오우!]제 주인이 잡아먹히게 생겼는데 보일 반응은 아니었다.
물론, 마검은 미쳐 있었기에 실제로 주인이 죽어가더라도 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마검은 조금도 아이작이 집어 삼켜지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역겨워.”
어둠을 뚫고, 아이작의 팔이 튀어나왔다.
그의 손엔 핏빛 마기가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대로 마기를 움켜쥐자, 손가락 틈 사이로 삐져나온 마기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어둠을 휘감기 시작했다.
-끼이에에에에!!!!
비명 같은 끔찍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이작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어둠을 먹어치웠다.
“퉤.”
모든 힘을 다 빼앗긴 보석이 볼품없이 흙바닥을 나뒹굴었다.
그걸 다시 주웠다.
“네 말처럼 온갖 질병이 있단 것 말고는 알아낸 게 없다. 아무래도 다른 녀석들의 도움을 받아야겠군.”
“시끄럽다.”
이번 건은 자신이 알아낼 수 없다고 판단한 아이작은 고작 뉴 월드의 본거지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걸음을 멈추어야만 했다.
“아무래도 이거, 하나가 아니었던 모양이군.”
[와우. 바이러스가 가스 형태로 살포된 것 같은데?]아이작은 머나먼 하늘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아프리카의 하늘은 원래 어둡지만, 저곳의 하늘은 단순히 어둡다고 표현할 게 아니었다.
온갖 기괴한 색이 뒤엉켜 혼돈을 이루고 있다.
아무래도 이 지옥 같은 땅에서 무언가 벌어지려는 모양이었다.
아이작의 입꼬리가 약간 올라갔다.
“잡아먹을 게 많구나.”
[크헤헤헤헤헤!]이 땅에 나타나는 모든 몬스터와 괴현상은 하나도 남김없이 아이작의 경험치나 다름없었다.
질병으로 뒤덮인 하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 어떤 병도 마기로 범벅된 아이작에게 통하지 않는다.
“그전에.”
그렇다고 해서 생각 없이 달려드는 성격은 아니었다.
[왜애!]“먼저 이것에 대해 알아내는 게 급선무다.”
아이작은 보석을 던졌다가 잡길 반복하며 뉴 월드의 본거지로 향했다.
질병의 하늘은 그리 빨리 퍼지지 않을 것이다.
단순 감이었지만, 그의 감은 어지간해서 틀리지 않았다.
마검의 볼멘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 * *
“뀨우?”
해가 저물어갈 때쯤 모나미는 눈을 떴다.
헤츨링은 꾸물꾸물 일어나 작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창문으로 올라갔다.
반지하의 창문은 문자 그대로 반지하라 창문 바로 앞이 땅이었지만, 모나미는 개의치 않고 창살에 매달려 밖을 쳐다봤다.
그리곤 뭐에 홀린 것처럼 창살을 작은 몸으로 빠져나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얼마나 올라갔을까.
작은 날갯짓으로 올라가기엔 이미 건물들이 미니어처처럼 작아 보일 정도로 높은 곳이었다.
모나미의 시선이 건물 저 너머를 향했다.
정확한 방향은 알 수 없었지만, 작은 용이 보는 곳에선 끔찍한 무언가가 빠르게 창궐하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끼에에에!!!”
누군가 모나미를 꽉 안아 들었다.
그 덕에 정신 차린 모나미가 크게 당황해 빼애액 소리쳤다.
“나야, 나.”
“뀨?”
익숙한 목소리를 향해, 모나미의 목이 뒤를 향했다.
그곳엔 박현수가 웃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야 안도한 모나미는 긴장의 끈을 놓았는지 그대로 축 늘어졌다.
“하하하!”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웠는지,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웃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박현수는 상냥한 얼굴로 모나미에게 물었다.
“느꼈니?”
주어는 필요하지 않았다.
모나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뀨.”
“벌써 느끼다니. 장하다.”
“뀨뀨!!”
칭찬에 신이 난 모나미가 활짝 웃었다.
그리곤 아까 보던 곳을 손으로 가리키더니, 심각한 얼굴로 말하기 시작했다.
말이라 봐야 ‘뀨뀨’가 전부였지만.
“뀨우! 뀨뀨뀨! 뀨뀨뀨뀨뀨우우!”
“그래, 그래.”
하지만 아빠는 대충 대답할 뿐이었다.
모나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느껴지고 있었다.
어두운 땅에서 창궐한 사악한 힘을.
분명 아빠도 느꼈을 거라고, 모나미는 확신했다.
그런데 어째서 안 가고 가만히 있는 걸까?
“시험 중이야.”
“뀨?”
뜬금없는 말에 모나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모나미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박현수가 말했다.
“그래. 시험 중이야.”
아이작이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지.
박현수는 약간의 기대를 품고 보일 리 없는 아프리카 방향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