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19
훈수 두는 천마님 116편
아르망은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괴현상을 조사하기 위한 조사대를 꾸리고 있었다.
괴현상의 원인은 대량의 바이러스로 추정되어서 현재 질병에 면역력이 높은 헌터들을 우선순위로 두는 터라 시간이 꽤 지체되었다.
“후, 드디어 끝났군.”
그는 조사대 편성표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인재는 많지만, 위치가 아프리카인 이상 확실한 실력자들로만 구성했다.
이미 검증된 자들이니 어렵지 않게 괴현상을 조사, 분석하고 돌아올 것이다.
아르망은 옆에 버튼을 눌러 비서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편성표야. 빠르게 전달해 줘.”
“알겠습니다.”
편성표를 받은 비서는 뉴 월드 작전기획실로 향했다.
인원이 꾸려졌으니 그곳에서 명령을 하달할 것이다.
그때 문을 열고 다른 비서가 들어왔다.
그는 보고서를 제출하며 말했다.
“중동 지역 협회들이 보내온 정보들입니다.”
중동은 아프리카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인 만큼 남유럽과 더불어 아프리카에 가장 민감한 지역이었다.
그들은 상시 아프리카 전역에서 벌어지는 일에 집중했고, 그 어떤 곳보다 빠르게 괴현상의 정보를 수집했다.
“흠.”
아르망은 보고서를 빠르게 읽은 후 눈살을 찌푸렸다.
“이마에 검은 보석을 박힌 인간들?”
케냐 방면에서 이마에 검은 보석을 박은 인간들이 생기 없이 돌아다니는 게 목격되었다.
케냐는 포탈 임팩트 초기에 포탈 개방을 버티지 못하고 빠르게 멸망한 나라였다.
그곳은 인간이 살 수 없는 불모지가 되었고, 현재까지도 금역으로 취급되었다.
한데, 그곳에서 꽤 많은 무리의 인간이 발견되었다.
머리엔 검은 보석을 박은 채 말이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케냐와 인접해 있는 탄자니아, 에티오피아, 소말리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뭔가 벌어져도 단단히 벌어졌군.”
“그리 무능하진 않네.”
그때, 뒤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서는 급히 허리춤에서 무기를 꺼내 들었지만, 한 차례 경련하더니 그대로 기절했다.
아르망은 성급하게 움직이지 않고 뒤에 선 이에게 물었다.
“누구냐.”
“목소리도 몰라보는 건가?”
그 말에 아르망의 눈썹이 살짝 찡그려졌다.
그는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봤다.
“아이작!”
“얼굴은 안 까먹었나 보구나. 하긴, 관음증 환자처럼 매일 지켜보고 있으니 얼굴 모르는 게 더 이상하겠어.”
아이작은 그리 말하면서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곤 쓰러진 비서의 배 아래로 발을 집어넣고 그대로 차 버렸다.
“인마!”
비서가 날아가는 광경을 보며 아르망이 버럭 소리쳤다.
“저 정도로는 안 죽는다.”
“너란 놈은 애일 때나 지금이나……!”
“흥.”
그는 콧방귀를 뀌며 마기로 의자 하나를 끌고 와 자리에 앉았다.
아르망은 인상을 쓰며 염동력으로 비서를 바로 눕혀 주었다.
“네가 여기까진 무슨 일이냐? 그보다, 여기 위치는 어떻게 안 거지?”
“너희만 나를 보리란 법은 없지 않나?”
“……역추적을 했단 거야?”
“어려울 것도 없지.”
마검이 아이작의 말을 따라 했다.
아르망은 가늘게 뜬 눈으로 마검을 노려보았다.
아이작을 타락으로 이끈 에고 소드.
그 힘은 측정 불가 수준이며, 아이작을 한순간에 S급 헌터로 도약시켰다.
2년이 지난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성장했을 테니, 가히 경악스럽다고 표현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내 걸 너무 무섭게 쳐다보지 마.”
“그래서 여긴 무슨 일로 찾아온 거지? 이유가 없진 않을 텐데.”
“도움이나 좀 받을까 싶어서.”
“도움?”
아르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이작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2년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뉴 월드의 요청을 들어준 적 없었다.
그러긴커녕, 사람을 보낼 때마다 죽일 기세로 위협했다.
괜히 지켜만 본 게 아니었다.
한데 그런 작자의 입에서 도움이라는 말이 나왔다.
아르망은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충격받은 얼굴인데?”
“그럼 안 충격받겠냐?”
“그럴 수도 있겠군.”
자기가 한 짓 정도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아이작이었다.
[키히히! 키히히히!]“닥쳐.”
[겍!]뜬금없이 기괴하게 웃는 마검을 세게 친 아이작은 다시 아르망을 보았다.
“아프리카 건에 관한 거다.”
“너 역시 알고 있었구나.”
“모르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현재 아프리카를 휘젓고 다니는 헌터는 아이작이 유일했다.
“정확히 무슨 도움을 구한다는 거지?”
“괴현상에 관한 정보 및 보조형 아이템을 내놔라. 그리고 너희는 일절 나서지 마.”
“뭐?”
“나 혼자서 충분해.”
“닥치라고.”
[게겍!]아이작이 마검을 다시 한번 세게 후려쳤다.
아르망은 뻔뻔하기 짝이 없는 요구에 어이가 없었다.
다짜고짜 찾아와서 비서를 기절시키더니, 이제는 정보와 아이템을 내놓으란다.
이건 도움을 요청하는 게 아니라,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너 혼자서 해결할 수 있다고?”
“내 요구만 들어준다면 어려운 일도 아니지.”
자신만만한 대답에 아르망은 웃고 말았다.
“자신감이 너무 넘치는 거 아니냐?”
“그래도 되잖아?”
“허.”
“딱히 너희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상관은 없지만, 나로서도 위험부담은 적은 게 좋으니까.”
아이작은 검은 보석을 이마에 박은 인간이 내뿜는 힘을 직접 겪었다.
그에게 위협적인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것도 많이 모인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이었다.
“괴현상은 바이러스로 이루어져 있다. 직접 겪어 본 바에 따르면, 어지간한 각성자라도 소량을 흡입하면 그대로 죽을 거야. 그런 바이러스들이 빠른 속도로 아프리카 전역에 퍼지고 있지. 얼마 안 가서 남유럽과 중동, 인도에 영향을 끼칠 테고 아시아권을 넘어 전 세계를 뒤덮을지도 모른다.”
“시간 싸움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 실제로 시간 싸움이라는 거다. 조사대를 꾸리고, 조사대가 조사에 나서고, 얻은 정보를 다시 가지고 와 분석하고, 그걸 통해 또 뭔가를 하고, 하고, 하고. 모두 시간 낭비다.”
“…….”
“그러니까 날 도와라.”
처음엔 도움받고 싶어서 왔다고 한 주제에 이젠 도우라고 압박한다.
자존심 같아선 꺼지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의 말은 틀린 게 하나 없었다.
아르망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두드리다가 말했다.
“빌어먹을 정도로 짜증 나지만, 네 말이 맞다. 돕도록 하지.”
“역시 너랑은 말이 꽤 통해. 아르망.”
“싸가지 없는 자식.”
“그런 건 원래 안 키웠어.”
“닥치라니까.”
[아파!]마검을 쥐어박은 아이작은 자리에서 일어나는가 싶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
“또 왜?”
“박현수는 뭐 하지?”
“그것도 알고 있었냐?”
“그 정도로 거대한 힘이 지구에 나타났는데 모르는 게 이상하지.”
다른 S급 헌터들과 달리 아이작은 두 달 전 강력한 무언가가 지구에 강림한 걸 느꼈다.
처음엔 킹이라도 나타난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박현수였다.
그는 두 달 동안 조용히 지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사람들 앞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나도 몰라. 아직 그를 만나지 못했으니까.”
“그런가.”
“너도 신경 쓰이긴 하는가 보지?”
“안 쓰인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박현수의 힘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 봤다면, 농담으로도 관심 없다는 말은 못 할 것이다.
그만한 충격이었다.
‘대체 2년 동안 무슨 일을 겪은 거지?’
아프리카에서 쉬지 않고 힘을 기르는 데 집중했다.
한데 박현수와 비교하면 여전히 부족했다.
그래서 알고 싶었다.
박현수가 2년 동안 뭘 했는지, 뉴 월드라면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예상대로 아르망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나도 많은 걸 알진 못해. 애초에 박현수가 많은 걸 밝히지 않았다더군.”
아르망은 턱을 괴곤 칭란에 했던 말을 그대로 전했다.
모든 얘기를 들은 아이작의 눈에 약간의 동요가 일렁거렸다.
마검이 장난기를 싹 뺀 목소리로 말했다.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였지만, 덕분에 아이작은 동요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고맙다.”
[별말씀을.]마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곤 다시 침묵했다.
“했던 말이 모두 사실인가?”
“그래.”
“40년의 세월도 그렇고, 몬스터 웨이브도 그렇고. 어이가 없군.”
비현실적인 얘기였지만, 박현수라면, 그리고 그 힘을 직접 느꼈던 당사자로서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박현수를 만나러 갈 생각이냐?”
“아니.”
박현수가 신경 쓰였을 뿐이지 딱히 보고 싶다 이런 감정은 없었다.
“아무래도 좋아. 대기하고 있어라. 요원이 보관 창고로 안내해 줄 거야.”
필요한 아이템을 모두 대여해 줄 것이다.
아이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인사도 없이 마기와 함께 허공에서 흩어졌다.
아르망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많이 바뀌었잖아.”
2년 만의 대화였다.
짜증 나는 건 여전했지만, 아이작은 2년간 외모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 많은 게 달라져 있었다.
아니, 아이작뿐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
의장이란 감투를 쓴지 이제 2년.
그동안 많이 억척스러워졌음을 부정할 수 없다.
몬스터 웨이브에 관한 얘기를 들었을 때도 그랬다.
예전이었다면 박현수의 행동에 불같이 화를 냈을 텐데,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땐 어떻게 반응했던가.
‘곧바로 작전을 계획했지.’
로벤이나 할 법한 행동들.
이제는 자신이 하고 있다.
아르망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겨울바람이 차가웠지만, 그는 말없이 바깥 풍경을 바라봤다.
* * *
한때 콩고 민주 공화국의 수도였던 킨샤사의 흔적이 남은 땅.
그곳에 탁한 회색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검은 드레스의 여인이 서 있었다.
머리 위에 검은 면사포를 두른 여인은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곳엔 온갖 바이러스가 뒤엉켜 기묘한 색들이 뒤섞인 하늘이 있었다.
“생각보다 늦게 퍼지네요.”
여인의 목소리는 꾀꼬리처럼 맑았다.
그녀는 붉은 입술을 위로 올리며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 피부가 쩍쩍 갈라지더니 그곳에서 검은 보석이 비집고 나왔다.
다른 손으로 보석을 뽑아낸 여인은 손을 한 번 털어 준 뒤 바닥에 보석을 던졌다.
흙바닥을 구른 보석이 그대로 땅으로 빨려 들어갔다.
“다음은 저곳일까요?”
여인은 혼자 중얼거리며 남서쪽에 있는 앙골라를 가리켰다.
“피곤하네요.”
그리곤 어깨를 두드리며 한숨을 쉬었다.
“깨어나시자마자 이런 귀찮고, 어려운 일을 시키시다니. 바이스 님도 너무 하시지.”
그녀는 자신의 상사를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상사가 까라면 까야지.
죽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여인은 앙골라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세상을 질병으로 뒤덮기 위해서.
* * *
“끠이이이이!”
모나미가 한껏 기지개를 켰다.
헤츨링은 방실방실 웃으며 하얀 테이블을 안방처럼 돌아다녔다.
하유락은 그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보다가 급정색을 하며 박현수를 쳐다봤다.
“이번엔 지켜보겠다고?”
“표정이 너무 급변하는 거 아니에요?”
“지금 그런 게 중요해?”
“단순히 지켜본다는 게 아니에요.”
“그러면.”
“아이작을 시험해 보고 싶다는 거죠.”
아이작을?
하유락은 그 말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아이작은 충분히 강했다.
다른 S급 헌터들보다도 강해졌으며, 거기서 멈추지 않고 나날이 성장하는 중이었다.
곧 다가올 본격적인 전쟁에서 충분히 쓸 수 있는 날카로운 검이었다.
그러나 박현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작은 불안정해요.”
“이해하기 쉽게 얘기해 줘.”
“쉽게 말해서, 전 녀석을 믿지 않고 있어요.”
“……마검의 주인이라서?”
“네.”
“하지만, 아이작은 충분히 마검을 통제하고 있는데?”
“지금은 그렇죠. 하지만 정말 위기에 몰렸을 때도 과연 그럴까요?”
아이작이 아프리카에서 생활한다지만, 그에게 위협이 될 만한 적은 존재하지 않았다.
가끔 나타나는 S등급 포탈도 이전만 못 해서, 인류를 위협하는 정도도 못 되었다.
그러니까 마검을 손에 넣고 단 한 번도 목숨이 위험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마검이란 건 소유자가 가장 간절할 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간절할 때 이빨을 드러내요.”
우주를 40년 동안 배회하면서 여러 마검을 보았다.
개중엔 주인을 완전히 잠식해 숙주로 삼는 마검도 있었고, 끊임없이 유혹해 타락시키는 마검도 있었다.
주인을 배신하는 마검도 흔했다.
아이작의 마검은 그런 것들 중에서도 단연 손에 꼽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무려 마왕이 만들어 낸 마검이었으니 말이다.
“마왕이란 건 말이죠. 우주의 이치를 벗어난 괴물이에요.”
어떤 마왕인지는 모르지만, 박현수가 겪어 온 마왕들은 하나같이 무서운 수준의 초월자였다.
그들은 맹목적인 악이었고, 클리셰처럼 사용되는 사연 따윈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런 것이 만들어 낸 마검입니다. 아이작이 지금은 잘 통제하고 있지만, 분명 기회가 생긴다면 잡아먹으려 들 거예요.”
“……마왕 얘긴 너무 비현실적이니까 넘어간다 쳐도, 지금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사태가 그 정도로 위험하다는 얘기야?”
“가만히 방치한다면 그렇게 되겠죠.”
“너 뭘 얼마나 알고 있는 거야?”
“안다기보단 잘 느끼는 거예요.”
지금도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불길한 기운이 계속해서 그를 자극하고 있었다.
“아이작이 실패한다면 제가 책임지고 어떻게든 할게요.”
“하아. 너란 녀석은 정말.”
“미안해요.”
부드러운 박현수의 사과에 하유락은 짜증을 낼 수도 없었다.
“아이작이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네.”
“……아깐 못 믿는다더니, 대답은 왜 이렇게 확고한 거야?”
“못 믿는 것과 별개로, 아이작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박현수는 자신의 손가락 가지고 장난치는 모나미를 보며 미소지었다.
“그 녀석의 힘은 진짜니까요.”
박현수가 시험하려는 것은 그가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가가 아니었다.
위기 상황에서 마검을 통제할 수 있는지, 바로 그것을 볼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사태는 그의 손에 확실히 마무리될 것이다.
다만, 또 다른 사태로 번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