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Instructor RAW novel - Chapter 121
훈수 두는 천마님 118편
밤이 되었다.
박현태는 집으로 돌아갔다.
박현수는 어깨에서 고롱고롱 자는 모나미를 집에 눕히고 밖으로 나왔다.
밤하늘은 구름에 덮여 달빛조차 가리고 있었다.
“거긴 어때?”
박현수는 하늘을 보다가 뜬금없이 입을 열었다.
주변엔 대답할 사람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귀신에게 말을 건 듯한 모습.
남이 보았다면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귀신에게 말을 건 것도, 미친 사람처럼 혼잣말한 것도 아니었다.
그 증거로.
-아, 죽겠다. 뒤지겠어, 진짜.
카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현수는 현재 외 차원에 있는 카본과 연락이 된 것이다.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대단한 마법사라도, 차원 간 통신은 뛰어난 아이템의 도움을 받아도 성사시키기 어려웠다.
박현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고생이 많은가 봐?”
-네가 도망치듯이 후딱 돌아가서 그런 거 아냐!
“하하하, 미안. 하지만 그렇게 약속했는걸.”
-개자식! 나한테 다 떠넘기고!
“그래서, 거긴 좀 어때?”
-거의 다 끝나가.
카본이 귀찮음이 잔뜩 서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르멘 주둔지는 거의 궤멸했으니, 지구 시간으로 다음 주 중이면 복귀할 것 같다.
“오염석은 완전히 파괴한 거야?”
-어. 위대하신 필리포스께서 친히 납셔서, 아름답게 깨부쉈지.
“또 비꼬기는. 필리포스가 그렇게 싫냐?”
-그럼 좋냐? 그 오만하기 짝이 없는 놈이.
그 말에 박현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카본의 말처럼, 필리포스라는 인물이 오만한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박현수에겐 꽤 중요한 인연이었다.
카본과 달리 관계가 나빴던 것도 아니고.
그리고 한 차원의 주인이라면 그런 모습도 썩 나쁘진 않았다.
무엇보다 몬스터 웨이브를 계획할 수 있던 것은 전적으로 필리포스 덕분이었다.
“아무튼, 다행이야. 솔직히 조금 걱정하긴 했거든.”
-네놈이 사르멘을 죽였으니, 나머지가 이 정도도 못 하면 이 차원은 망하는 게 나아.
“말을 해도 꼭.”
-그래서 거긴 좀 어때? 고작 2년밖에 안 지났는데. 변한 건 거의 없나?
“아니.”
박현수는 절반만 훤히 드러난 달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인류는 생각보다 많은 발전을 이뤘더라.”
-흠. 그래도 큰 쓸모가 있을 것 같지 않은데.
“그러기 위한 몬스터 웨이브야.”
-솔직히 이해가 안 간단 말이지. 대체 필리포스와 그런 계약은 왜 한 거야? 차라리 카르마 차원의 보물을 받는 게 더 도움 됐을 거야.
카르마 차원은 필리포스가 주인으로 있는 작은 차원이었다.
그곳엔 세 개의 위대한 보물이 있었는데, 그중 초월자라도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의 무기도 하나 존재했다.
그러나 박현수는 고개를 저었다.
“도구 하나로는 안 돼.”
-지구인들은 그 도구만도 못해.
“내가 그딴 말은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
-사실이 그런 걸 왜 정색하냐?
“닥치고, 빨리 와라. 이곳도 슬슬 킹이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으니까.”
-벌써? 아직 반년 정도는 남았을 텐데.
박현수는 마레에게 들었던 얘기를 카본에게 그대로 전해 주었다.
카본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킹과 동급으로 여겨지는 녀석이 셋 정도 더 있다는 말이군.
“동급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부하가 아닌 건 확실해.”
-동급이 아니기는. 놈들은 힘의 논리에 움직이는 녀석들이야. 직접 봐서 알잖아? 폰, 나이트, 비숍, 룩, 퀸, 킹. 강함의 순서야.
킹의 힘은 잘 모르지만, 그는 제약이 걸린 상태에서도 로벤을 죽였다.
퀸은 마레가 보여 준 아리스의 기억에서 홀로 무쌍을 찍었다.
룩은 직접 보지 못했지만, 8미의 아이리스를 생포할 정도로 강했다.
비숍과 나이트는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지만, 룩보다는 확실히 아래 수준이었다.
폰은 말할 것도 없었다.
카본이 폰으로 잠입해 있었긴 했지만, 그건 힘을 조절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대로 킹의 군세는 확실히 힘의 논리에 따라 서열이 책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동급이 아니라고? 친구라면서, 자기보다 약한 놈과 친구를 먹을 것 같냐?
“친구는 아니고, 동료라니까.”
-그거나, 그거나.
킹의 성격은 잘 알지 못하지만, 군세의 성격만 봐도 그럴 것 같진 않았다.
-일이 재밌게 돌아가네. 끝판왕인 줄 알고 처리했더니, 사실은 사천왕 중 최약! 뭐 그런 거 아니냐고.
“킹을 죽인 건 아니니까, 끝판왕을 처리한 건 아니지.”
-진지하게 파고들지 말고.
“아무튼, 그래서 네가 빨리 돌아와 줘야 해.”
-알았다고. 그럼 다음 주에……. 엇, 야……!
-현수! 현수 현수!
그때, 카본의 목소리를 뚫고 발랄한 여자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박현수는 손으로 눈을 가렸다.
설마 옆에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얌마! 지금 내가…… 으악!
-현수!
통신 주도권을 다시 가져오려던 카본의 애처로운 비명에 박현수는 한숨을 쉬었다.
-현수! 현수!
그리곤 계속해서 부르는 목소리에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 셀리.”
-현수다! 진짜 현수다!
“그래. 현수야. 옆에 있었구나?”
-응응! 옆에 있었어! 카본 도왔어!
-네가 돕긴 뭘 도와! 옆에서 도넛만 처먹……. 거억!
-시꾸라!
-미, 미친 녀석…….
바람 빠진 풍선처럼 카본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더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추측해 보건대, 셀리에게 배를 제대로 맞은 게 분명했다.
자주 그랬으니까.
‘옆에 있으면 있다고 말을 하지.’
박현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최대한 밝은 목소리를 내었다.
“뭐 하고 지냈어?”
-현수 생각!
“그것참 좋네.”
-그치? 그치그치?
“그런데, 카본이랑 아직 할 얘기가 있어서 통신 좀 넘겨줄 수 있을까?”
-나랑 통신하기 싫어?
“설마. 셀리하고 대화하는 건 언제나 좋지.”
-히히. 헤헤헤!
기분 좋은지, 신기한 웃음소리를 내며 웃는 셀리.
박현수는 빨리 이 시간이 지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알았어! 잠깐만. 카본 깨워야 해.
진짜 기절한 모양이다.
초월의 영역에 오른 마법사를 주먹 한 방에 녹다운시킬 정도의 위력.
박현수는 셀리의 주먹을 떠올리며 마른 침을 삼켰다.
-카본! 카본!
-잠……!
-카보오오오온!
-그아아아악!
찢어지는 비명에 박현수는 고개를 옆으로 빼며 눈살을 찌푸렸다.
대충 어떻게 깨웠는지 알겠다.
-히힛. 깨웠어.
“자, 잘했어.”
-그러면 조만간 봐!
“그래.”
…….
“조만간?”
-히히힛!
“이봐, 셀리? 셀리!”
웃음소리를 마지막으로, 셀리의 목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조만간 보자니.
저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어이, 카본! 셀리가 조만간 보자는데 무슨 말이야?”
-후우…… 나도 몰라……. 저 미친 토끼 자식. 진짜 죽을 뻔했네.
“괜찮냐?”
-괜찮겠냐? 세상에, 한 번도 뵌 적 없던 할아버지를 뵀어. 나는 할아버지랑 생각보다 많이 닮았구나.
“갑자기 무슨 헛소리야?”
-으아! 그래, 여긴 삼도천이 아니야!
정신을 차린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후우. 배가 아직도 아파. 대체 뭘 처먹었는데 저렇게 힘이 세지?
“단순히 힘이 세다 정도로 표현이 되는 거야?”
-하긴.
“그래서, 셀리가 조만간 보자는 말이 뭐냐고. 그냥 형식적으로 하는 말은 아닐 거 아니야.”
셀리의 성격을 아는 이상, 그녀가 절대 형식적인 말을 하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모른다고 이 자식아. 저 토깽이 생각을 내가 어떻게 알아?
“젠장……. 괜히 불안해지네.”
-그나저나, 마검 녀석은 어때?
“안 그래도 그 얘기 하려고 했어.”
박현수는 아이작을 시험하겠다는 얘기를 그에게 해 주니.
-네가 알아서 해.
“알겠다.”
-그럼 진짜 다음 주에 보자고. 물론, 지구 시간으로.
지구와 카르마 차원의 시간 흐름은 전혀 달랐다.
박현수는 피식 웃으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흐음.”
그는 웃음을 거두고 천천히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생각보다 거물인가?”
저 머나먼 아프리카 땅으로 향하는 거대한 힘이 박현수의 기감에 걸렸다.
과연 아이작은 저것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
아마도 오늘 밤,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사태가 종결지어질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사태가 발생할지, 아니면 새로운 영웅이 탄생할지.
“잡아먹히지 마라, 아이작. 그땐.”
그는 말끝을 마무리 짓지 않았다.
그저 존재감을 지우고 아프리카로 향했다.
* * *
“끄어어어.”
“우우우우…….”
“거걱…… 거어어.”
이마에 검은 보석이 박힌 인간들이 흡사 좀비처럼 땅을 배회하고 있다.
그들은 아프리카에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을 죽이며 가뜩이나 황폐해진 땅을 질병으로 물들여 갔다.
그 규모는 단순히 한 지역을 아우르지 않고, 대륙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시작점은 콩고 민주 공화국.
현재는 북부를 제외한 아프리카 전역.
“생존자만 있는 건 아니야.”
[음? 오오! 그렇구만!]킨샤사가 있었던 땅에 도착한 아이작은 검은 보석이 박힌 인간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들 중엔 얼마 전까지 살아 있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시체가 되어 이미 토양이 일부가 되었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시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매끈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는데, 모두 이마에 박힌 검은 보석 덕분이었다.
“그건 아니다.”
역천의 힘은 느껴지지 않는다.
[시체를 원래 모습으로 되돌리는 바이러스도 있어?]“그것까진 모르겠지만, 저들을 보면 없다고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재밌네. 키히히히히!]죽은 자를 일으키는 것도 모자라 생전의 모습을 가지게 하는 바이러스.
어쩌면 사령술보다 지독할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전염성이 엄청나게 강하군.”
아이작은 마왕의 보호와 아르망에게 받은 아이템들 덕분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검은 보석에 담겨 있는 수많은 질병은, 근처에 있기만 해도 병을옮겨 버리는 무서운 전염성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이 중 하나라도 타 대륙으로 넘어간다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재앙이 벌어질 것이다.
“어쩌기는.”
붉은 마기가 연기처럼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아이작은 마검을 뽑아 들었다.
“다 쓸어 버려야지.”
검은 보석의 숙주가 된 이상, 더는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는 것들이 되었다.
아이작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광기 어린 마검의 외침.
새빨간 참격이 반월을 그렸다.
쿠르릉-!!!
꽈앙――――――――!!
하늘이 찢어지듯 맹렬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사방에서 수백 개의 머리가 동시에 공중으로 떠올랐다.
잘린 단면에서 피가 솟구쳐 올랐다.
마검은 하나뿐인 눈을 부릅떴다.
모든 피가 포물선을 그리며 마검에 빨려 들어갔다.
마검을 쥔 팔의 혈관이 크게 부풀며 꿀렁거리기 시작했다.
마검의 환호 소리에, 아이작 역시 잔뜩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대량의 피를 섭취한 건 꽤 오랜만이었다.
정신이 몽롱해질 정도였다.
아이작은 이마를 짚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는 입꼬리를 바짝 올리고, 아직 살아남은 인간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검은 보석들이 지독한 질병을 내뿜었지만, 그가 알 바 아니었다.
사정없이 몰아치는 참격과 흩뿌려지는 피의 향연.
비록 검은 보석에 집어 삼켜져 숙주로 전락했지만, 한때 살아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아이작은 거침없었다.
얼마 안 가 모든 검은 보석은 바닥에 떨어져 바닥을 뒹굴었다.
“허억, 허억, 허억.”
아이작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붉게 물든 눈에선 피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광기의 시간이 끝났다.
그는 시체의 호수를 보며 웃음을 거두었다.
참혹한 살육의 현장엔 그 혼자만이 외롭게 서 있었다.
그렇기에 마검은.
그를 자극한다.